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언론장악 방지법(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법)’은 여야 이사회 추천 권한 등의 문제로 여당이 반대하고 있다. 공영방송은 정치적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고 말하면서 왜 국회가 이사회 추천 권한을 갖느냐는 이유다.

그동안 학계와 언론계에서도 여당과 야당이 7대 6으로 추천해 공영방송 이사회를 구성하는 것의 한계에 대한 지적은 계속 나왔다. 공영방송을 정파성으로부터 완전히 독립시킬 방법을 찾기 쉽지 않기 때문에 현재의 입법안은 제왕적 정권의 언론장악을 막기 위한 최소한의 토대라는 주장도 있다.

28일 오후 3대 언론학회(한국언론학회·한국방송학회·한국언론정보학회)와 박홍근(민주당)·김경진(국민의당)·추혜선(정의당) 의원 등 공동 주최로 국회에서 열린 ‘공영방송, 권력의 품에서 국민의 품으로-공영방송의 공공성 회복을 위한 개혁 방안’ 토론회에서도 제도 개선과 함께 건전한 상식을 가진 다양한 사람이 공영방송 이사회에 들어갈 수 있는 방안에 대한 여러 제안이 나왔다.

▲ 지난해 12월8일 서울 여의도 새누리당사 앞에서 전국언론노동조합 조합원 1000여 명이 ‘언론부역자 청산, 언론장악 방지법 즉각 제정’ 총력투쟁 결의대회를 열었다. 참가자들은 박근혜 대통령,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 고대영 KBS 사장, 이인호 KBS 이사장, 고영주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 안광한 전 MBC 사장의 탈을 쓰고 퍼포먼스를 펼쳤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지난해 12월8일 서울 여의도 새누리당사 앞에서 전국언론노동조합 조합원 1000여 명이 ‘언론부역자 청산, 언론장악 방지법 즉각 제정’ 총력투쟁 결의대회를 열었다. 참가자들은 박근혜 대통령,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 고대영 KBS 사장, 이인호 KBS 이사장, 고영주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 안광한 전 MBC 사장의 탈을 쓰고 퍼포먼스를 펼쳤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이날 토론회 발제를 한 김동준 공공미디어연구소 소장은 “다양성에 대한 보장 차원에서 전체 공영방송 이사 수를 늘리고 공정성 실현 차원에서 여야 추천 인원의 균형을 유지한 것 등은 바람직하다고 평가할 수 있다”면서도 “국회의 추천권은 공영방송 이사회와 추천 정당의 이해관계로 인해 이사회의 독립성에 심각한 훼손을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 소장은 이에 대한 견제 장치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국회에서 공영방송 이사 후보자들을 추천할 때 공영방송사의 이사 자격 기준과 추천 절차, 각계 의견의 접수창구를 만들고 공개해 공영방송에 대한 국민의 의견을 대의할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토론자로 참석한 김성해 대구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지금의 공영방송은 ‘제도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의 문제’가 더 크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공영방송에 대한 철학도, 사회적 책임감에 대한 소명의식도, 국가공동체에 대한 최소한의 양심도 없는 인물이 어떻게 ‘권력’을 차지할 수 있었지만, 역량도 부족했고 양심도 없었고 결과적으로 국민으로부터 박근혜 대통령과 함께 탄핵받았다”며 “이사회 구성이나 의사결정 구조를 어떻게 하는 것만큼이나 ‘제대로 된 인물’이 공적인 자리에 앉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방송문화진흥회 임원 명단. 이중 한균태 감사를 제외한 6명(고영주·권혁철·김광동·김원배·이인철·유의선)이 청와대 추천 이사다. 사진=방송문화진흥회 홈페이지
▲ 방송문화진흥회 임원 명단. 이중 한균태 감사를 제외한 6명(고영주·권혁철·김광동·김원배·이인철·유의선)이 청와대 추천 이사다. 사진=방송문화진흥회 홈페이지
지난해 야당 소속 국회의원 162인이 발의한 언론장악 방지법에는 공영방송 이사 추천 시 현행의 각 분야 대표성 외에도 방송에 관한 전문성과 지역성 등도 고려하도록 했지만 여전히 모호하고 포괄적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김 교수는 “공영방송이 지금처럼 망가진 이유는 결국 일부 권력 엘리트의 ‘이해관계’가 작용한 결과였으므로 자격 요건만 갖추면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마음대로 임명할 수 있는 구조를 바꾸어야 한다”며 “국회 차원이 아닌 ‘공영방송 청문회’를 따로 규정해 관련 분야의 ‘대표자 회의(가령 학회·변호사회 등)에서 별도의 청문 절차를 거치게 하는 것도 생각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김 교수는 또 “공영방송의 직위를 발판으로 삼아 정치권 진출이나 다른 곳으로 경력을 쌓는 발판이 되지 않도록 ‘명예직’으로 만들고, 공무원에게 적용하는 것과 같은 ‘휴식년’ 제도를 도입하는 것도 생각할 수 있다”면서 “이사회의 가장 큰 문제는 기록을 안 남기는 거여서 영업상 비밀 등은 충분히 인정하더라도 이사들이 자기의 말과 행동에 대해 책임지도록 하는 부분도 반드시 명시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동원 전국언론노동조합 정책국장은 “보수 양당 체제와 제왕적 대통령제인 우리나라에서 여당은 대통령에 종속돼 입법 기능은 약화하고 행정부가 우위에 서면서 공영방송도 제왕적 대통령의 결정에 좌우됐다”며 “지난 10년간 공영방송의 시장 경쟁력은 급격히 약화했지만 시장에서 기능이 약화할수록 중간광고 허용 요구 등 국가에 의존해 수익을 내려는 국가 의존도는 높아졌다”고 지적했다.

김 국장은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에서 방송법 등 통과가 안 되면 앞으로 대선에서도 정권 교체만 가능할 뿐 국가 종속의 공영방송 시스템은 그대로 흘러가는 것”이라며 “공영방송 문제를 고민할 때 정치적 독립을 얻기 위해 정치에 의존해야 하는 모순적 상황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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