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는 일찌감치 박근혜 정부와 선을 그었다. 레임덕이 오기 전에 우병우 청와대 수석을 치고 보수 세력을 재편하려고 기회를 노렸으나 박 대통령의 몽니로 타이밍을 놓쳤다. 청와대의 반격에 방상훈 사장의 오른팔로 꼽혔던 송희영 주필을 잃기도 했지만 탄핵 국면에서 강한 존재감을 과시했다. 박근혜를 안고 가려면 다 같이 죽는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조중동 등 족벌 언론이 정권 연장을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는 건 생존 본능이다.

그런데 공영방송 MBC는 어떤가. MBC의 지분 70%를 보유하고 있는 방송문화진흥회는 지난달 23일 임시 이사회를 열고 김장겸 보도본부장을 신임 사장으로 선임했다.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김장겸 사장은 2014년 보도국장 시절 편집회의에서 세월호 관련 보고를 받던 도중 “완전 깡패네, 유족들 맞아요?”라는 발언으로 물의를 일으킨 적 있다. 2013년 보도국장으로 발령난 이후 바닥없이 추락하는 MBC의 보도를 총괄했던 사람이다.

김장겸 보도국장 시절 미디어오늘 기자가 노동조합 보고서와 관련해 의견을 들으러 찾았을 때 김 국장은 “어딜 들어오느냐”며 직원을 불러 강제로 끌어냈다. MBC는 모욕을 주는 데 그치지 않고 기자를 현주 건조물 침입 및 업무방해, 퇴거불응 등의 혐의로 고소했고 법원은 벌금 100만원을 선고했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이 성명을 내고 “언론사가 법을 악용해 스스로 언론자유를 부정하고 훼손하는 어처구니없는 행태”라고 비난했을 정도다.

최순실 게이트가 터지고 모든 언론이 특종 경쟁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MBC는 정권의 순장조가 되기로 작정이라도 한 듯 박 대통령의 입장을 대변해 왔다. 조중동조차 꺼리는 변희재 미디어워치 대표의 주장을 인용해 태블릿 PC 조작 의혹을 확대 재생산했고 최순실과 고영태의 농단일 뿐 박 대통령은 죄가 없다는 주장을 계속하고 있다. 오죽하면 MBC 사옥 앞에서 열린 탄핵 반대 집회에서 “믿을 만한 언론은 MBC 뿐”이라는 구호가 나올 정도였다.

MBC가 김장겸 사장을 선임한데 이어 백종문 녹취록의 장본인 백종문 미래전략본부장을 부사장으로 꽂은 건 끝까지 박근혜 정권과 운명을 같이하겠다는 의지 외에 달리 해석할 방법이 없다. MBC가 대규모 경력 직원 공채를 시작한 것을 두고도 MBC DNA를 바꾸려는 시도로 보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2012년 170일 파업 이후 보복성 징계로 이미 100명 이상의 기자와 PD들이 취재 현장에서 떠나 있는데 그나마 남은 직원들까지 물갈이를 하려는 것이다.

최근 MBC 상황과 관련, 유기철 방문진 이사(야당 추천)는 지난 1월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이렇게 설명했다. “보도지침 시절보다 지금이 훨씬 더 심하다. 지금 MBC 경영진은 단지 보수여서가 아니라 자리 욕심이 있어서 그런 거다. 현 경영진 특징이 대부분 인정을 못 받다가 ‘김재철 시대’가 열리면서 발탁된 이들이다. 밀려 있던 사람들이 끝나는 줄 알았는데 권력의 부름을 받았으니 충성심이 강한 거다.”

김장겸 사장이나 백종문 부사장 같은 사람들은 시청률이 추락하거나 말거나 기자들이 취재 현장에서 몰매를 맞거나 말거나 정권에 충성하는 걸로 자리를 얻고 그걸로 만족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자유한국당 정권이 정권 연장에 실패하더라도 최대한 버티면서 언론 자유를 외치면서 자리를 보전하려 할 것이다. 솔로몬 재판의 가짜 엄마처럼 이들은 끝까지 아기를 놓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

MBC에겐 아직 기회가 있다. 기자와 PD들은 김장겸이나 백종문 같은 자들과 가는 길이 다르다. 박근혜 정권과 운명을 같이 할 수도 없고 정권이 바뀐다고 해도 정치적 독립과 공정방송의 조건이 거저 주어지지는 않는다. 김연국 신임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장이 집회에서 이런 말을 했다. “MBC는 이미 파괴됐지만 더 철저하게 파괴되어야 다시 세울 수 있을 것이다. 뉴스를 하지 않을 각오로 철저하게 MBC를 무너뜨리고 다시 세워야 한다.”

미국산 소고기 수입 반대 촛불 집회가 한창이던 2008년 봄, 서울광장에서 집회를 마친 시민들이 여의도까지 걸어서 행진을 하곤 했다. 시민들은 “힘내라 MBC”를 외치고 “정연주 퇴진 반대”를 외쳤다. 그로부터 MBC와 KBS는 너무 멀리 왔다. 이제 다시 제 자리를 찾아가야 할 때다. 정권에 충성하지 말고 진실에 복무하라. 무너진 신뢰를 회복하기가 쉽지 않겠지만 싸워야 할 때다. 어버이연합이 아니라 시민들이 돌아올 것이다. 그들이 MBC를 지켜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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