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소추위원 측이) 자꾸 논란을 벌이고 기일을 끌고 싶어 하는 것 같다” 노무현 대통령 탄핵심판 최종변론 기일인 2004년 4월30일 문재인 당시 대통령 대리인단 간사의 말이다. 당시 국회 소추위원인 김기춘 법제사법위원장은 “(추가) 증거채택을 하게 되고 우리 주장이 받아들여지면 최종변론이 늦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사건에선 정반대다. 대통령 측이 무더기로 증거·증인을 신청해 시간을 끈다는 지적을 받았고, 국회 측이 헌재가 제시한 일정에 충실히 따르고 있다. 13년 전엔 국회 측이 약속했던 30분을 훌쩍 넘겨 2시간가량 최종변론을 했고, 이번엔 대통령 측이 약속했던 1시간을 훌쩍 넘겨 약 4시간50분가량 최종변론을 했다.

▲ 2007년 1월9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대국민 특별담화문을 발표하고 있는 노무현 대통령. 사진=연합뉴스
▲ 2007년 1월9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대국민 특별담화문을 발표하고 있는 노무현 대통령. 사진=연합뉴스

헌재는 앞으로 약 2주간 재판관들 간 비공개회의인 평의를 진행한다. 선고기일은 아직 정하지 않았다. 이번 탄핵심판은 크게 세 가지 사건으로 구분할 수 있다. 대통령이 최순실이라는 비선실세의 국정농단을 도왔거나 방조한 사건, 세월호 참사에 적극 대응하지 못한 문제, ‘정윤회 문건’을 보도한 세계일보를 탄압했다는 의혹 등이다.

이 중 특히 국정농단 내용이 방대해 여러 개 쟁점으로 나눌 수 있다. 국회 소추위원단은 탄핵 사유를 총 13가지로 나눠 탄핵소추안을 작성했고, 최종변론에선 17가지로 구분해 변론했다. 변론편의를 위한 구분일 뿐 실제 박 대통령과 최순실이 개입한 사안들이 명확하게 구분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삼성합병 건에는 뇌물죄 등 형사법 위반혐의, 대통령 권한남용 등이 동시에 걸린다.

이와 별개로 박 대통령 측은 탄핵심판 자체에 절차상 하자가 있어 무효이며, 재판관 ‘9인체제’로 평의와 선고를 내리지 않으면 재심사유에 해당한다는 등의 주장을 했다.

헌재, 탄핵쟁점 5가지로 정리

헌재는 국회가 제시한 탄핵소추 사유를 헌법을 기초로 해 △국민주권주의 위반(비선에 의한 국정농단) △대통령의 권한 남용(국정농단 협조, 인사권 남용 등) △뇌물죄 등 형사법 위반(재벌의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 대가성 여부) △언론의 자유 침해(세계일보 탄압) △생명권 보호 의무 위반(세월호 참사) 등 5가지로 정리했다.

국정농단 관련 국민주권주의 위반과 대통령 권한남용에 대해 국회 측은 “국민이 위임한 권력을 남용하고 민주주의를 훼손했다”고 주장했다. 최순실에게 연설문과 정책·인사자료를 넘겼고, 문화계 블랙리스트를 만들게 해 문체부 1급공무원 등을 강제면직했으며, 문체부 공무원 노태강·진재수 등 최순실 사익추구에 방해된 공무원을 부당하게 인사조치 했다고 주장했다. 미르와 K스포츠재단설립 과정은 뇌물죄 위반과도 연결된다.

▲ 박근혜 대통령 취임 4주년인 25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 마련된 광화문 구치소에 박 대통령, 이명박 전 대통령, 황교안 국무총리, 최순실 등의 조형물이 세워져 있다. 사진=포커스뉴스
▲ 박근혜 대통령 취임 4주년인 25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 마련된 광화문 구치소에 박 대통령, 이명박 전 대통령, 황교안 국무총리, 최순실 등의 조형물이 세워져 있다. 사진=포커스뉴스

이에 대통령 측은 “최순실 등의 이익을 위해 대통령의 권한을 사용한 적이 없으므로 국민주권주의를 위반하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대통령 측은 최순실은 전문성이 없고, 최순실에게 추천받은 사람을 임명한 적이 없으며 공무원 인사조치는 비위가 있는 등 정당한 사유가 있었다고 주장했다. 재단 관련해선 문화·체육분야 성장을 위한 것이었다는 입장이다.

두 재단설립과 관련 국회 측은 “대통령이 재벌에 자금출연을 강요한 뒤 최순실에게 운영을 맡겼고, 재벌은 정책상 혜택을 봤다”고 주장했다. 대표적으로 삼성이 정유라를 지원하고 재단에 출연금을 낸 대신, 국민연금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에 찬성하게 해 삼성의 3대세습을 도왔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통령 측은 재벌이 자발적으로 출연금을 냈고, 대통령은 누구에게도 부정한 청탁을 들어준 일이 없다고 반박했다.

현대차가 최순실 지인회사인 KD코퍼레이션 특혜를 제공하도록 압력을 넣었다는 주장, KT와 포스코 등에 인사개입, 포스코가 펜싱팀을 창단해 최순실 회사인 더블루케이에 맡기도록 한 것 등에 대해 대통령 측은 어려움을 겪는 중소기업을 지원하거나 능력있는 사람에게 기회를 주라고 했을 뿐 부당한 압력을 행사한 적 없다고 반박했다.

▲ TV조선 2016년 11월14일자 보도. (사진=TV조선 화면 캡처)
▲ TV조선 2016년 11월14일자 보도. (사진=TV조선 화면 캡처)

언론자유 침해에 대해선 국회 측은 ‘정윤회 문건’보도 이후 통일교 한학자 총재를 압박해 조한규 당시 세계일보 사장을 해임하도록 했고, 통일교 계열사인 청심을 상대로 고강도 세무조사한 것, 세계일보 기자 사찰 의혹 등을 근거로 언론자유 침해·직업선택의 자유를 침해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통령 측은 조 전 사장을 해임하도록 지시한 적 없고, 세무조사는 정기적인 것이었다고 반박했다. 검찰 조사 결과 정윤회와 청와대 잘못이 없었다는 점도 강조했다.

세월호 참사에 대해 국회 측은 “대통령이 관저에 머물면서 상황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해 국민의 생명권 보호 의무와 직책 성실수행 의무 등을 다하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대통령 측에서 당일 행적에 대해 밝힌 내용이 명확하지 않고, 대통령이 형식적인 지시만 반복한 점을 근거로 삼았다.

이에 대통령 측은 “집무실이 아닌 관저에서도 상황을 보고받아 구조를 지시했고, 미용이나 의료시술을 받은 건 아니”라는 입장이다.

‘8인체제’ 선고는 무효? 재심사유 되나?

박 대통령 측은 탄핵심판 절차상 문제점에 대해 지적했다.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을 의원 3분의2의 동의를 받아 가결했는데 이렇게 표결해선 안 되고, 13가지 탄핵사유에 각각 3분의2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표결을 13번 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런 절차상 문제가 있기 때문에 탄핵심판을 하지 말고 심리를 종료하는 ‘각하’처분을 해야 한다는 게 대통령 측 주장이다. 김평우 변호사는 ‘섞어찌개 탄핵’이라고 했다.

국회 측은 “헌법이나 국회법 조문 어디를 봐도 ‘탄핵 사유별로 따로 투표해야 한다’는 조항은 없다”고 반박했다. 노무현 대통령 탄핵심판사건 당시에도 3가지 탄핵사유별로 각각 표결하지 않았다.

대통령 측은 재판관 결원이 있는 상태로 탄핵심판이 결정되면 재심사유에 해당하므로 후임 재판관을 임명해야 한다고도 주장했다.

과거에도 7~8인 체제로 결정한 사례는 무수히 많다. 한 예로 지난 2005년 ‘자녀는 반드시 아버지 성을 따라야 한다’는 옛 민법 조항을 재판관 8명이 심리해 7대1로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헌재법에는 재판관 7인이상이 출석하면 심리가 가능하다고 규정하고 있다.

헌재는 과거 8인체제 공정성 시비에 대해서 결정을 내린 적이 있다. 8인체제로 내린 게 혹 문제라 하더라도 이는 후임자를 임명하지 않은 국회·대통령·대법원의 문제일 뿐 헌재는 결정자체는 유효하다고 봤다. 또한 8인체제라며 재심을 청구한 사례도 없다.

물론 재심 신청을 할 수는 있다. 선고 이후 30일 이내에 재심신청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심판과정에서 재판증거가 된 문서가 위조되는 등 명백하게 권리가 훼손돼야 재심 신청이 받아들여진다. 탄핵심판과정을 보면 오히려 대통령 측의 증인·증거를 더 많이 채택하는 등 훼손된 권리가 없어 재심신청을 하더라도 각하될 가능성이 크다. 또한 탄핵인용 결정이 날 경우 즉시 대통령 직위를 박탈하기 때문에 재심신청으로 조기대선을 막을 수 없다.

대통령 측이 절차상 하자를 지적하는 건 사실 선동성 구호에 가깝다. 박한철 전임 소장이 퇴임한 지 한 달이 다됐는데 이제와 ‘8인체제로 선고하면 재심청구가 가능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법적 주장이 아닌 정치적인 메시지라고 해석할 수 있다. 소추안 표결의 문제제기도 지난해 말엔 제기하지 않다가 변론 막바지에 와서 주장했다.

대통령 파면, 최초 사례 나오나

탄핵안 가결 이후 80일간 헌재는 총 25명의 증인을 신문하고 17차례 변론을 마쳤다. 28일부터 재판부 8명은 매일 비공개회의를 열고 강일원 주심재판관 주도로 결정문 초안을 작성한다.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 당시엔 인용과 기각 두 가지 결정문을 동시에 작성한 뒤 선고당일 결론을 냈다. 노무현 대통령 탄핵심판 때는 선고 3일전 선고일자를 공지했다.

▲ 박근혜 대통령 취임 4주년인 25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 일대에서 박근혜정권퇴진 비상국민행동 주최로 열린 민중총궐기 및 17차 촛불집회에 참가자들이 촛불을 들고 있다. 사진=포커스뉴스
▲ 박근혜 대통령 취임 4주년인 25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 일대에서 박근혜정권퇴진 비상국민행동 주최로 열린 민중총궐기 및 17차 촛불집회에 참가자들이 촛불을 들고 있다. 사진=포커스뉴스

‘선고전 하야설’·‘탄핵기각설’ 등 여러 설이 나왔지만 3월13일 탄핵 인용 결정에 무게가 실린다. 노무현 대통령 탄핵사건 당시 법리상 불리했던 국회 측이 최종변론기일을 지연하려 했다. 당시 무리하게 탄핵소추 했다는 비판이 많았다. 박 대통령 탄핵사건에선 대통령 측이 최종변론기일을 연기하려 노력했다.

재판부 구성이나 다루는 사안의 특성 등 헌재는 정치적 성격이 크다. 법적으로 불리한 쪽은 시간을 끌며 다양한 방식으로 이를 보충할 수밖에 없다. 대통령 측은 최종변론에서 탄핵소추 쟁점을 반박하기보다는 절차상 하자를 문제 삼거나 색깔론·공정성 시비 등 정치적인 주장을 하는데 비중을 뒀다. 사건 초기부터 법조계에선 탄핵인용에 문제가 없다고 예측했다.

헌재결정은 단심제다. 인용시 대통령직이 즉시 박탈된다. 전직대통령 예우에 관한 법률에 근거한 권리를 받을 수 없게 되고, 불소추특권(기소되지 않을 권리)도 사라진다. 민형사상 책임을 면하진 않는다. 특검은 박 대통령을 조건부 기소중지 처분하지 않은 채 검찰로 사건을 넘길 계획이다. 기소나 출국금지신청이 없을 경우 해외 도피가능성은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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