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가브리엘은 에이즈환자다. 이름만 들어도 공포와 죽음을 떠오르게 하는 바로 그 질병의 당사자다, 그래서 우리 사회 어디서도 환영받지 못한다. 누군가에게 피해를 줄 수 있는 사람으로 인식되어 왔던 익숙함 때문인지 몰라도 자신의 질병을 드러내는 것에 늘 주저한다. 하지만 윤가브리엘은 용기가 있는 사람이다. 「하늘을 듣는다」라는 자전적 에세이를 쓰고 「옥탑방 열기」라는 독립 다큐멘터리에도 직접 출연하면서 에이즈환자에게 덧씌워진 낙인과 차별을 지우기 위해 오랜 시간 활동해왔다. HIV/AIDS인권연대 나누리+라는 단체를 2003년에 설립하면서 에이즈인권운동의 시작을 알렸고, “나 같은 사람에게 무슨 인권이 있냐”고 손사래 쳤던 많은 HIV감염인/에이즈환자들에게 희망을 준 인물이다. 그가 온 몸으로 경험한 차별의 사례들은 셀 수없이 많다. 최근에도 시력과 청력을 잃어 장애1급 판정을 받았는데 활동보조가 필요한 상황에서도 “나 같은 사람에게도 올 수 있는 장애인활동보조인이 있을까” 하는 자조 섞인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에게 보이지 않지만 낙인의 상처가 얼마나 깊은지 늘 확인하게 된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한국에서 에이즈라는 질병이 발병된 지 30년이 지났다. 삼지창을 든 악마의 모습으로 표현되곤 했던 HIV는 지금도 붉은 반점, 마른 몸의 환자, 곧 죽음을 앞두고 있는 모습, 불치병, 하늘의 천형, 문란한 성행위 등을 연상하게 한다. 질병관리본부 홈페이지만 들어가 봐도 질병 정보에 대해 자세히 얻을 수 있지만 사람들이 가진 막연한 편견은 질병 당사자에 대한 거부감으로 이어지고 있다. 또 불합리한 대우를 받아도 본인이 잘못해 감염되었으니 스스로 감당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반면 구호단체들이 모금을 위해 아프리카의 에이즈 고아를 광고영상에 등장시키는 것에는 큰 거부감을 느끼지 않는다. 그들과 아무 거리낌 없이 스킨쉽하는 연예인의 모습 속에서 오히려 아이들이 불쌍하다. 돕고 싶다는 마음을 가질 뿐이다. 이쯤에서 질문을 하나 던져보자. 우리는 에이즈라는 질병에 대해 정확하게 알고 있는가. 당신은 윤가브리엘과 손을 잡거나 포옹을 하거나 식사를 편안하게 할 수 있겠는가. 기침을 하다 침이 튀었다고 치자. 감염될 확률이 있는가. 감염인의 혈액이 내 몸에 묻었다면? 감염인의 혈액을 가지고 있는 모기가 나를 물었다면? 무수히 따라오는 질문목록이 있지만 이 질병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고 있다면 정답을 쉽게 맞힐 수 있다. 우선 일상생활을 함께 하는 것만으로 감염되지 않는다. 김치찌개를 함께 먹어도 괜찮고, 물잔을 같이 써도 괜찮다. HIV는 인체면역결핍바이러스라 곤충을 통해 감염될 가능성은 전혀 없다. 또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느끼는 공포의 무게와 달리 아주 약한 바이러스이기 때문에 인체 밖에서는 바로 사멸해 버린다. 그래서 감염인의 혈액이 몸에 묻었다고 하더라도, 만졌다고 하더라도, 또 침이 튀었다고 하더라도 감염될 가능성은 전혀 없다. 키스를 해도 상관없고 콘돔을 사용한다면 감염인과 성관계를 맺는다고 하더라도 HIV에 감염될 가능성은 없다. 치료제를 복용하는 감염인의 경우는 보통 사람과 수명이 비슷할 정도로 위험하지 않다. 그런데 우리는 잘 알지도 못하면서 감염인을 두려워하고, 이들이 경험하는 차별을 당연하게 여기고 있는 것일까.

낙인의 흔적

질병관리본부가 발표한 2015 에이즈에 대한 지식·태도·신념 및 행태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2015년 에이즈 낙인 점수는 67.2점(100점 만점, 점수 높을수록 낙인 심함)이었다. 점수 추이를 보면 2010년 64.2점, 2012년 64.8점, 2013년 63.1점으로, 2015년 점수가 근래 5년간 가장 높았다. 감염인을 격리해야 한다는 법조항이 1999년에 폐지되었음에도 불구하고 47%는 감염인이 다른 사람들로부터 격리되어야 한다고 응답했다. 2007년 국가인권위원회가 HIV감염인에 대한 공포와 감시, 통제에서 예방, 교육, 지원으로 관점이 전환되어야 하고, HIV감염인의 인권보장이 적절한 치료와 감염예방에 필수적인 요건이라고 언급했지만 설문에서 39.4%는 감염인의 자유를 제한해도 괜찮다고 응답했다. 감염인과 같은 물 잔을 사용하는 것이 두렵다고 70%의 응답자들이 ‘그렇다’에 체크했으며, 응답자의 71.7%가 같은 동네에 감염인이 있다면, 같이 어울려 잘 지내기 힘들 것이다라고 말했다. .

절망스러운 수치가 아닐 수 없다. 질병의 역사가 길어질수록 에이즈에 대해 이해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져야 하는데 결과는 정반대다. 두려움과 거부감은 좀처럼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고, 꽉 막힌 도로처럼 정체되어 있다. 낙인지수는 더 높아졌다. 그렇다면 질병에 대한 무지와 편견은 감염인 당사자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까. 유엔에이즈는 2016년 처음으로 한국에서 감염인 낙인지표조사를 진행하였다. 설문과 인터뷰에 참여한 감염인들은 직접 차별 받은 경험보다 ‘내재적 낙인’ 지수가 굉장히 높게 나왔다. 내재적인 낙인은 자신을 드러낼 수 없는 상황이기에 별다른 치유법 없이 마음이 곪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응답자의 64.4%가 죄책감을 가지고 있었고, 75.0%가 자신을 탓하고 있었으며, 심지어 36.5%가 자살 충동을 느끼고 있다고 응답했다. 또한 63.5%가 특정 종교단체으로부터, 74.0%가 언론의 보도행태로부터, 75%가 인터넷 등 미디어의 HIV/AIDS 관련 댓글을 통해 부정적 시선을 느끼고 있다고 응답했다. 감염인을 위축되게 만드는 사회적 낙인이 여전하다는 사실을 이 연구 결과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함께 살 길을 모색할 것인가 아니면 혐오로 배척할 것인가

2015년 HIV/AIDS 신고현황을 보면 10,000명 이상의 생존 감염인이 우리와 더불어 살아가고 있고, 매해 천 명 이상의 신규 감염인이 발생하고 있다. 우리 사회는 예산적으로나 정책적으로나 무관심으로 일관하고 있는데 차별 앞에 절망을 느낄 또 다른 윤가브리엘들이 점점 더 많아지는 것 같아 안타깝기만 하다. 국가인권위원회법은 병력에 의한 차별을 분명히 금지하고 있다. 하지만 감염인들이 일상생활 속에서 경험하는 차별은 더 공고해지고 있는 듯하다. 병원의 문턱은 더 높아져 진료거부/의료차별 사건이 비일비재하게 발생하고 있고, 개인의 질병정보가 노출되어 어려움을 겪는 일도 여전히 일어나고 있다.

유엔에이즈는 에이즈로 인한 낙인과 차별을 방지하지 못하는 사회적, 법적 환경이 곧 에이즈 치료와 예방에 대한 보편적 접근을 가로막고 있고 인권과 성평등이 증진되어야 에이즈 예방을 이룰 수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우리의 모습은 어떤가. 언론에서는 ‘소나무에이즈’라는 표현을 버젓이 사용하며 죽음을 연상케 하고 있고, 에이즈 혐오를 통해 인권을 깎아내리는 이들이 당당히 자기 목소리를 내고 있지 않은가. 이제는 윤가브리엘에게 덧씌워진 낙인을 지워야 한다. 인권은 함께 살 길을 모색하기 위한 중요한 가치이고 실천이다. 감염인이라는 이유로 모든 사람에게 주어진 권리로부터 배제될 이유가 없다. 인권은 상호의존성을 가지고 있기에 감염인의 인권이 존중받지 못할 때 나의 인권 역시 무너질 수 있음을 이해하고 이제는 차별과 배제가 아니라 인권으로서 또 다른 윤가브리엘들과 만났으면 한다.

‘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 (http://change2020.org/) 에서 이와 관련한 카드뉴스를 미디어오늘에 보내왔습니다. 바꿈은 사회진보의제들에 대한 소통을 강화하고 시민단체들 사이의 협력을 확대하기 위해 2015년 7월에 만들어진 시민단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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