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 칼럼니스트 황교익(56)씨는 지난 1월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지지했다는 이유로 KBS 출연 보류 통보를 받았다. KBS 교양 프로그램 ‘아침마당’에서 ‘맛있는 식재료 고르는 요령’을 주제로 특강을 할 참이었다.

황씨는 자신의 출연 보류 통보 내용을 페이스북을 통해 알리고 비판을 쏟아냈다. 공영방송이 표현의 자유를 침해했다는 논리였다.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는 누구든 자신의 정치적 신념을 표명할 수 있으며 그 신념의 표명으로 방송 출연 금지 등의 불이익을 받을 수는 없다.” 

그에 대한 출연 배제는 ‘KBS 블랙리스트’ 논란까지 촉발시켰다. MB정부에서 김미화·김제동·윤도현·정관용 등 KBS 프로그램 진행자들이 하차하며 불거진 ‘출연자 블랙리스트’ 논란이 재현됐다는 비판도 있었다. 

KBS는 “방송제작가이드라인에 따라 출연 연기를 권유했다”고 해명했으나 황씨 출연을 제한할 사유가 될 수 없다는 주장이 내부에서 나왔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논란은 문 전 대표와 KBS간 갈등으로 점화됐다. 문 전 대표는 KBS 대선주자 토론회 불참을 선언하며 황씨를 지지했다. KBS가 납득할 만한 조처를 취하지 않으면 토론회에 불참하겠다고 말했다.  

결국 토론은 성사되지 않았다. KBS는 지지율 1위 대선 후보 불참이라는 오점을 남기게 됐다.

지난 24일 서울 마포구 tbs 교통방송 상암동 사옥에서 만난 황씨는 민주공화정의 원칙을 강조했다. 그는 이번 사태가 “민주공화국에서 가장 중요한 기본권인 표현의 자유를 억압한 사례”라고 강조했다.

황씨는 “나를 섭외하면 이 문제는 간단히 풀린다”며 “방송금지가 제작진 생각인지 아니면 간부들 생각인지 드러날 것이고 블랙리스트 여부도 확인될 것”이라고 말했다. “1분 아니 30초짜리 인터뷰도 좋다. 나를 섭외하라.” 그의 목소리는 또렷했다.

▲ 맛 칼럼니스트 황교익씨가 24일 오전 서울 마포구 상암동 tbs 사옥에서 미디어오늘과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김도연 기자
▲ 맛 칼럼니스트 황교익씨가 24일 오전 서울 마포구 상암동 tbs 사옥에서 미디어오늘과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김도연 기자
- 문 전 대표를 지지한 뒤 출연이 금지됐고 논란은 해소되지 않고 있다.

“특정 대선 후보를 지지했다는 이유로 교양 프로그램 출연을 막았다. 정치·시사 프로그램도 아니었고 선거 기간도 아니었다. 선거 기간 정치·시사 프로그램에선 공정성을 유지할 필요가 있지만 교양·연예·오락 프로그램에서까지 출연을 배제시킬 이유와 근거가 없다.”

- KBS 제작진은 “선거 기간 중 비정치 분야 취재를 하는 경우 특정 정당·후보자를 공개적으로 지지한 사람을 인터뷰하거나 방송에 출연시키지 않도록 주의한다”는 KBS 제작가이드라인을 적용했다고 밝혔다.

“제작가이드라인에는 관련 내용이 없다. KBS가 언급한 건 제작가이드라인 책자 안에 부록이다. (편집자주 : 언론노조 KBS본부는 “회사가 내세우고 있는 해당 항목은 KBS 제작가이드라인 책자 안에 ‘부록’으로 별도 수록된 ‘실무자를 위한 KBS 공정성 가이드라인’ 중 ‘선거보도’ 세부준칙의 일부 내용”이라며 “회사가 기초적인 사실관계도 확인하지 않고 공식 해명을 내놔 논란만 키우고 있다”고 비판했다.) 해당 조항은 보도에 해당하는 것이지 교양·예능·오락 프로그램에 적용할 수 있는 조항이 아니다. 상위법에도 특정 정치인을 지지했다는 이유로 방송에서 배제하는 조항은 없다. 헌법이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KBS는 위헌 행위를 했다.”

- ‘KBS 블랙리스트’를 언급하면서 블랙리스트 논란도 일었다. KBS에 블랙리스트가 있다는 건 확인되지 않았는데?

“블랙리스트는 문건으로 존재하는 리스트만을 의미하진 않는다. 정치적 이유로 ‘저 사람 빼라’고 지시하고 일선 제작진이 실제 배제한다면 그게 현실화한 블랙리스트다.”

- KBS에서 방송하고자 했던 강연은 어떤 내용이었나?

“좋은 식재료를 구하는 방법 등 음식에 관해 이야기하려고 했다. 이전에도 아침마당에서 ‘음식에 반응하는 인간 미각’을 주제로 강의한 적 있다. 이번의 경우 지난해 12월 말 KBS에서 섭외 요청이 있었다. 1월 초 만나 방송 내용에 대해 구체적으로 이야기를 나눴다. 관련 자료를 넘겨주기로 한 시점에 사태가 터졌다. 더불어포럼 공동대표로 참여하게 됐으니 방송을 미루자고 했다. 사실 방송국에서 방송을 미루자는 건 방송을 하지 말자는 뜻이다. 아침마당만이 아니라 KBS 모든 방송 프로그램에서 배제됐다는 뜻이기도 했다.”

- 선대인 선대인경제연구소 소장도 박근혜 정부 부동산 정책을 이야기했다가 지난해 9월 하차 통보를 받아 논란이 일었다.

“정부의 부동산 정책과 불어나는 가계 대출 문제를 비판한 것으로 안다. 더 심각한 문제다. 정부 정책에 대해 다양한 의견이 소개되고 토론이 이뤄져야 하는 곳이 공영방송 아닌가. 정부 정책과 반대되는 이야기는 하지 말라는 조치다.”

▲ 지난달 25일 KBS 뉴스9 리포트에 출연한 허완석 전 아침마당 CP. 사진=KBS
▲ 지난달 25일 KBS 뉴스9 리포트에 출연한 허완석 전 아침마당 CP. 사진=KBS
- 문 전 대표도 이 건으로 KBS 토론회에 불참했다. 그런 결정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나?

“처음에는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내가 폐를 끼친 게 아닌가 싶었다. 문 대표는 연로하신 분들의 지지가 낮은 편이다. KBS 주 시청자들이 나이가 많으신 분들이니 걱정이 됐다. 하지만 며칠 지나면서 생각을 바꿨다. 정치인이 해야 할 마땅한 일이었다. 민주공화국에서 가장 중요한 권리는 ‘표현의 자유’다. 기본권을 억압하는 KBS 조치에 제대로 항의하지 않는 정치인들, 되레 ‘토론회를 회피한다’며 문 대표를 비난하는 정치인들에게 묻고 싶다. 그대들은 민주공화국 시민으로서 시민 의식을 갖고 있는가. 표를 얻는 게 더 중요한지 아니면 국민 권리를 보호하는 것이 중요한지 묻고 싶다.”

문 전 대표가 KBS 토론회에 불참했던 지난달 25일, KBS ‘뉴스9’은 관련 소식을 보도했다. 이 보도에서 허완석 전 KBS 아침마당 CP는 “2월 중후반에 녹화를 해서 3월 중에 방송을 할 예정이었다”며 “그런데 이 시기가 되면 선거 기간이 될 가능성이 있어서 저희가 이러한 점을 감안해서 (시기를 조정하자고 한 것)”이라고 말했다.

- 논란 이후 몇 주 전 허완석 CP가 아침마당에서 사퇴했다.

“이 문제는 아직 해결되지 않았다. 논란을 해소하고 사퇴하는 게 수순이다. 나는 (방송제작가이드라인을 배제 사유로 꺼내는) 그가 거짓말하고 있다고 본다. 언론인은 사실관계를 왜곡해서는 안 된다. 보도를 보니 그가 마음 고생이 심했다고 하던데 이미 내뱉은 거짓말을 주워 담으려니 힘들었던 게 아닐까 싶다.”

▲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지지했다가 KBS로부터 방송 보류 통보를 받은 황교익씨. 황씨는 24일 미디어오늘 인터뷰에서 “이 문제는 아직 해결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사진=김도연 기자
▲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지지했다가 KBS로부터 방송 보류 통보를 받은 황교익씨. 황씨는 24일 미디어오늘 인터뷰에서 “이 문제는 아직 해결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사진=김도연 기자
- 문 전 대표 지지 이후 다른 방송에서 출연 배제된 적이 있나?

“전혀. 전혀 없을 수밖에 없다. 민주공화국 시민으로서 내 의사를 표현한 것에 불과한데 불이익을 받는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독재정권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시대에는 정치적 의견을 표명하면 어떤 식으로든 배제시켜왔다. 이와 같은 잘못된 관습이 왜곡된 채 지금껏 이어지고 있다. KBS는 민주공화국에서 시민에게 주어진 기본권이 훼손됐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 이번 일을 바로잡아야 하는 이유다. 헌법이나 방송법 등 상위법들은 제대로 구비돼 있다. 그걸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이들로 인해 현재 언론과 방송이 이렇게 된 것 아닌가. 원칙을 지키면 된다.”

-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선 어떤 조치가 필요할까?

“KBS PD들이 날 섭외하면 된다.(웃음) 교양·연예 어떤 프로그램이든 상관없다. 1분 아니 30초짜리 인터뷰도 좋다. 언제든 나가겠다. 방송이 나가는지 불방되는지 나중 문제다. (내가 출연하면) 이번 사태가 제작진 생각인지 CP 생각인지 아니면 간부들 생각인지 확인할 수 있다. 블랙리스트 존재 여부도 확인할 수 있다. 방송에 다시 나가면 해결될 문제다. KBS PD협회, 언론노조 KBS본부도 항의 성명을 내며 비판의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행동으로 이 일을 바로잡을 의지가 있는지는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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