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심판 대통령측 대리인단의 일원인 김평우 변호사가 지난 22일 16차 변론이 끝난 뒤 재판정을 나서면서, 질문을 하는 기자에게 ‘막말’을 퍼부었다. 온건하게 표현해서 ‘막말’이지 실질적으로는 ‘폭언’이나 다름없었다. 헌재 정문 앞에 대기하고 있던 ‘뉴스타파‘ 기자가 “대통령 출석 결정을 미루셨는데 왜 미루셨습니까? 재판부 신문이 부담스러워 박 대통령 출석을 미룬 겁니까?”라고 정중하게 묻자 김평우는 “묻지 말라”고 한마디로 뿌리쳤다. 그 기자가 “법정에서 소동이 있었다고 들었습니다”라고 말하자 그는 성난 표정으로 “니들 마음대로 쓰면서 뭘 나한테 물어봐”라고 큰소리로 말했다. 기자가 다시 “대통령 탄핵 찬성이 70~80%로 나오고 있습니다”라면서 견해를 묻자 김평우는 “당신들 같은 쓰레기 언론 때문에 그렇게 된 거야. 똑바로 알아두라고. 쓰레기 언론들이 사실을 보도하지 않기 때문에 그렇게 된 거야”라고 호통을 쳤다. 그는 기자에게 반말로 ‘훈계’도 했다. “양측의 의견을 똑같이 보도하는 게 언론인데, 니들은 지금까지 한 번도 그렇게 한 적이 없어. 쓰레기 언론들은 꺼져!” ‘뉴스타파’ 기자 옆에는 다른 매체 기자 여러 명이 함께 있었다. 김평우가 ‘니들’이라는 말을 쓴 것을 보면 그는 박근혜와 최순실의 국정농단 실상을 적극적으로 보도하면서 헌재 심판에서 대리인단이 무리한 주장을 거듭한 것을 비판한 기자들 모두를 ‘쓰레기’라고 공격한 것이 분명해 보인다.

▲ 2월24일 뉴스타파 ‘헌재 60일의 기록-박근혜 ‘심판의 날’ 다가오다’ 갈무리
▲ 2월24일 뉴스타파 ‘헌재 60일의 기록-박근혜 ‘심판의 날’ 다가오다’ 갈무리
기자들에게 ‘쓰레기’라는 폭언을 퍼붓기 전에 김평우는 헌재 재판정에서 소장 권한대행 이정미와 주심 재판관 강일원에게 변호사로서는 차마 해서는 안되는 막말을 쏟아냈다. 요지는 이렇다.

“강일원 재판관은 국회 쪽에 질문하고 끝낸 걸 뭐가 부족하다고 한 술 더 뜨나?. 법관이 아니라 국회 수석대변인이다. 이정미 재판장도 문제가 있다. 자신의 퇴임에 맞춰서 재판을 과속으로 진행하는 거야말로 국정 불안으로 국민을 몰고 가는 거다. 국회 소추위원장하고 한 편을 먹고 뛰는 것 같다. 헌재가 약한 여자 편을 안 들고 국회 편을 들었다. 역사에 없는 섞어찌개 탄핵소추다. 국회의원들이 야쿠자냐?”

이정미가 “언행을 조심하시라”고 경고했는데도 김평우는 막무가내였다. 그래도 이정미는 김평우에게 퇴장을 명하거나 감치 처분을 하지 않고 변론을 계속하게 했다.

여론조사 결과 80% 안팎의 국민이 박근혜 탄핵에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난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김평우는 지난 25일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열린 ‘태극기 집회’ 무대에 올라 “지금 국회의원부터 장관까지 나와서 무조건 헌재 결정에 승복해야 된다고 한다”며 “지금이 조선 시대냐? 복종하라면 복종해야 하는 우리가 노예냐?”라고 열변을 토했다. 대통령측 대리인단에 속해 있는 변호인이 재판정에서 주장해야 할 의견을 박근혜를 열성적으로 지지하는 군중 앞에서 서슴지 않고 토해버린 것이다.

김평우의 ‘기자 쓰레기’론은 새로운 ‘학설’이 아니다. 지난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침몰 사건이 터진 뒤 공영방송과 극우보수 신문들이 ‘전원 구조’ 같은 오보를 내고도 사죄나 반성을 하지 않는가 하면 참사에 가장 책임을 져야 할 박근혜 정권이 발표하는 사실들만을 일방적으로 보도했을 때 참사 희생자들의 유족과 실종자들의 가족은 일부 매체를 제외한 대다수 언론의 기자들을 ‘기레기(기자+쓰레기의 합성어)’라고 부르면서 취재 자체를 거부했다. 김평우가 말하는 ‘쓰레기 기자’와는 정반대 개념이다.

▲ 2월22일 오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16차 변론기일에 참석한 박 대통령 법률대리인단의 김평우 변호사가 관계자들과 대화하고 있다. 사진=포커스뉴스
▲ 2월22일 오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16차 변론기일에 참석한 박 대통령 법률대리인단의 김평우 변호사가 관계자들과 대화하고 있다. 사진=포커스뉴스
헌법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김평우는 헌재소장 권한대행을 비롯한 재판관들이 마치 헌법을 위반한 것처럼 몰아붙였다. 그렇다면 그 자신은 헌법과 법률을 엄정하게 지키고 있다는 뜻인가? 여기서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래 법조인들이 헌법을 어떻게 어기거나 유린했는지를 가늠해 볼 수 있는 자료를 보기로 하자.

지난 16일 ‘반헌법행위자 열전 편찬위원회’는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전’ 수록 대상자 405명의 명단을 발표했다. 거기에는 대통령 박근혜, 대통령 권한대행 황교안, 대법원장 양승태 등 행정부와 사법부의 현직 수장들이 포함되었다. 검찰과 사법부의 전·현직 가운데 검찰이 69명, 사법부가 40명으로 법조인이 모두 109명이나 되니 수록 대상자 전체의 4분의 1을 훌쩍 넘는 수치이다. 전 청와대 비서실장 김기춘(구속 중), 전 민정수석 우병우, 전 문화부장관 조윤선(구속 중)도 들어 있다. 이승만·박정희·전두환 등 전·현직 대통령 6명이 수록 대상자인 데 비해 전·현직 대법원장은 4명이다. ‘헌법을 수호해야 할 의무’를 지닌 대통령들과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해야 할 대법원장들이 헌법을 위반한 사실들이 ‘열전’에 기록될 것이라고 한다. 물론 고인이 된 수록 대상자들의 유족이나 생존해 있는 대상자들은 이의를 제기하거나 명예훼손 소송을 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명단 발표 이후 열흘이 지나도록 아직 그런 움직임은 없었다.

김평우의 이름은 405명의 명단 안에 들어 있지 않다. 그러나 기자들이 이렇게 묻는다면 그는 뭐라고 대답을 할까? ‘반헌법행위자 열전이 지금 명단대로 출판된다면 거기 수록된 법조인들을 ‘법레기(법조인+쓰레기’)라고 불러도 좋을까요?‘

탄핵심판 피청구인 박근혜는 “최후변론에 출석하지 않겠다”고 26일 헌재에 통보했다. 이변이 없는 한, 헌재가 소장권한대행 이정미가 퇴임하는 3월 13일까지는 탄핵 인용 여부를 선고할 것이 확실해졌다. 그날부터 헌재를 포함한 사법부 전체가 ‘정의와 양심’을 올곧게 지키는 기관으로 새롭게 태어나기를 기대한다.

· 이 글은 <뉴스타파>에도 함께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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