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을 쓰기 전, “인권, 인권이 존재하기 위해 먼저 선결되어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를 고민해본다. 우리의 역사 속에서 봤을 때, 인권은 늘 그 대상의 존재를 인식하는 여부와 함께 확장하고 변화하고 발전해왔다. (물론 이는 선결, 앞뒤의 문제가 아닌 동반자적인 입장이겠다.) 하지만 성소수자 인권을 원하지 않는 사람들이 세상에 너무 많다. 왜 원하지 않는 것일까? 이를 위해 성소수자의 존재를 끊임없이 지우려는 사람들이 있다. 그것은 한국 사회가 그렇고 내가 현재 활동하고 있는 대학사회도 마찬가지이다. 한국 사회 속에 대학 사회가 있는 것이니 당연한 현상이겠지만, 나는 내가 속해있고 접근성이 높은 대학사회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내가 속해 있는 “대학성소수자모임연대 QUV”(이하 큐브)는 2013년 차별금지법 제정과 대학 내의 성소수자 인권 또한 우리 사회의 인권지수와 무관할 수 없다는 인식을 공유하면서 2014년에 만들어진 연대체이다. 이곳은 2016.12.31 기준으로 전국 54개 대학, 59개모임이 모여있다. 이처럼 대학사회는 상대적으로 성소수자에 친화적이고 함께 할 수 있는 공간일 수 있겠다. 하지만 성소수자모임이 많은 만큼, 어떤 경우에 따라 가시화가 되어 있다보니 그 만큼의 반동과 혐오, 탄압이 일어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몇 가지 예를 들자면, 서강대학교의 경우는 학내 성소수자모임인 ‘춤추는 Q’에서 신입학시즌에 게시한 성소수자 신입생을 환영한다는 현수막을 교수가 임의대로 철거한 사례가 있었다. 학내에서 게시를 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행정정차를 다 거쳤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해결하는 과정에서 교수는 ‘서강대 학우는 비성소수자들도 있는데, 성소수자 입학생만 축하하는 것이냐 그러면 안된다.’는 말과, 원래 지저분한 것을 잘 떼는 사람이라는 말도 안되는 핑계를 되기도 하였다. 이에 학생 사회에서 각 학생회가 규탄 서명을 내고 고소장을 접수 하는 등의 대응을 진행하기도 했다.

보수 기독교 교단의 대학인 총신대의 경우는 더욱 심하다. 총신대의 경우, 퀴어문화축제에 본 대학모임인 깡충깡충을 색출해 내겠다는 이유로 축제 당일 학교본부와 교단 소속 목사를 퀴어문화축제 행사장에 보내기도 하였다. 또한 퀴어퍼레이드를 하는데 깡충깡충 구성원들의 신원노출을 우려해 대신 깃발을 들었던 사람을 학교에서 고소를 하기도 하였다. 기본적으로 반동성애 운동을 하는 기독교이기에 채플시간에 혐오발언은 물론 교수들의 혐오발언도 매우 심한 곳이기도 하다.

몇몇 사례일 뿐, 대학이라는 공간의 혐오는 어느때보다 짙고, 반동은 어느 때보다 심하다. 숭실대는 인권영화제에 성소수자 관련 영화를 상영한다는 이유로 대관거절, 고려대도 마찬가지며, 성소수자의 존재를 대학 사회에서 끊임없이 지우려하고 지움당하고 있다. 하지만 작년 김보미 서울대 총학생회장을 비롯해 학생사회에서 끊임 없이 커밍아웃을 하고 활동을 이어나가는 것은 왜일까?

이런 대학사회 내 탄압 속에서도 성소수자 인권운동을 하고 있으며, 선출직은 아니지만 커밍아웃을 한 채, 인권위원회라는 학생사회 내 기구에서 활동하고 있는 나의 이야기를 통해 풀어내고자 한다. 내가 있는 학교는 그렇게 성소수자를 비롯한 혐오가 가시적으로 팽배한 공간은 아니다. 하지만 교수님들의 입에서 “동성애는 출산을 할 수 없기에 수용할 수 없다.”, “동성애는 죄다.” 라는 말들이 간간히 나오고 있는 공간이다. 내가 성소수자임을 커밍아웃하고 활동을 결심하게 된 것 역시, 교수님들의 동성애 혐오적인 말들이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친구들 사이에서도 여자/남자친구에 대한 물음은 물론, 이성애중심적인 발언이 나오고 그 과정에서 나의 존재가 지워지는 것이 답답했다.

또한 학내에서 각종 문제시 되는 인권침해적 상황, 그리고 발언들이 비일비재하지만 아무도 제약하거나 조정할 수 없었던 상황이 있었다. 그 당시에는 인권위원회라는 기구도 없었고, 총학생회 역시 부재의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나는 이 상황에 있어 몹시 못마땅 하였고 이를 해결하고 싶었다. 그 과정에서 여러 사람들을 모으고 정책과 상을 구상하고 있었는데 그러다가 오는 것은 “내가 이것을 할 수 있는 명분이 있는가?”였다. 그래서 내가 인권을 말할 수 있는 최소한의 당사자임을 보여주기 위해 커밍아웃을 했고, 학생 대표자들의 인준을 통해 학생회를 할 수 있었다.

학생회를 하면서 학생 사회는 많이 변했다. 각 과에서 성소수자의 존재를 보다 가시적으로 인식하게 되었고, 그에 따른 교육들을 각과가 자생적으로 만들어내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기존에 말하지 못하던, 소수자들이 말하기 시작했다. 장애인도 장애인권 소모임이 만들어지고 운영되고 있고, 채식인들의 인권 역시 활발하게 교류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이로서 나의 커밍아웃은 완성되었다.

나의 커밍아웃은 맨 처음에는 나의 야망을 위한 하나의 수단이었다. 상대적으로 ‘관용적인’ 대학이라는 공간에 있으면서 쉽게 학생회를 하고 싶었기 때문에 커밍아웃을 했던 것도 있다. 그리고 그냥 나를 숨기는 것 자체가 너무 이해가 가지않아서 말한 것도 있다. 내게 커밍아웃의 시작은 그렇게 거창한 것이 아니었다. 단순히, 나에게 안전한 공간을 만들어내기 위해서 내가 가지고 있는 소수자성을 무기삼아 치사하게 굴었던 것이었다.

하지만 나의 커밍아웃은 학교 안에 다른 변화와 의미를 만들어 냈다. 커밍아웃은 단순히 나의 존재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존재를 말하는 것이었다. 숨겨진 사람들, 존재들이 세상에 거는 대화였던 것이다. 소통이었다. 커밍아웃은. 커밍아웃을 하기까지 끊임없이 내재적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고 언어화를 하는 내부의 커밍아웃을 경험하고 그것을 밖에, 세상에 말하는 하는 커밍아웃을 하게 된다. 하지만 어느 것 하나 쉬운 것은 없다. 왜냐하면 오히려 나를 커밍아웃을 함으로서 세상으로부터 공격당하는 것들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혐오의 사회이기도 하고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커밍아웃을 하는 이유를 찾았다. 그것은 나의 존재가 세상에 던지는 메시지이고 우리 공동체에 던지는 메시지이기 때문이다. 나의 존재로 인해서 학교는 변했다. 교수님들의 문제적 발언을 문제제기 할 수 있는 창구가 만들어졌고, 학생회가 소수자를 위해 신경써야 하는 부분들을 인식하고 준비해 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존재하였으나 목소리를 내지 못했던 사람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토양을 만들어 냈다. 그렇다. 나의 커밍아웃의 시작은 조금 별로였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우리의 인권을 함께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인권은 어느 하나, 누구 하나만의 것이 아니다, 정말 상호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다시 깨닫게 되면서. 나는 나의 커밍아웃으로 만들고자 했던 학교를 만들 수 있었다.

나의 존재로 세상에 끊임없이 말을 걸고 나를 증명해 보일 것이다. 나의 존재가 우리 모두에게 좋다. 좀 더 설쳐보자.

‘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 (http://change2020.org/) 에서 이와 관련한 카드뉴스를 미디어오늘에 보내왔습니다. 바꿈은 사회진보의제들에 대한 소통을 강화하고 시민단체들 사이의 협력을 확대하기 위해 2015년 7월에 만들어진 시민단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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