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과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공범들의 권력 야욕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탄핵심판 16차변론에서 대통령 대리인단 김평우 변호사 등이 재판정에서 고함을 지르고 강일원 재판관을 향해 “국회 측 수석대변인”이라고 비난한 건 우연이 아닐 수 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초반으로 돌아가보면, 박 대통령의 인식은 그때나 지금이나 민심과 동떨어져 있다.

지지율이 떨어지던 지난해 10월21일 박 대통령은 “법 위에 군림하는 떼법문화, 불법 파업과 불법시위 등 일상 속에서 법질서 경시 풍조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며 “그 어떤 불법도 용납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민심이 떠나도 ‘권력자는 오직 나’라는 식의 발상이다.

처음으로 100만명이 모인 촛불집회는 지난해 11월12일. 하지만 이튿날인 13일 중앙선데이에 따르면 박 대통령은 “잠이 보약”이라고 말했다. 중앙선데이는 “밖은 영하 10도인데 청와대는 영상10도”라고 보도했다. 촛불은 청와대 안까지 밝히지 못했다.

▲ 9차 촛불집회가 열린 지난해 12월24일 오후 서울 중구 대한문 앞에서 탄기국 등 보수단체 회원들이 대통령 탄핵기각을 위한 국민총궐기 집회를 펼치고 있다. 사진=포커스뉴스
▲ 9차 촛불집회가 열린 지난해 12월24일 오후 서울 중구 대한문 앞에서 탄기국 등 보수단체 회원들이 대통령 탄핵기각을 위한 국민총궐기 집회를 펼치고 있다. 사진=포커스뉴스

탄핵심판 전체일정 대통령 측 계획대로

헌재 탄핵심판은 대통령 측에 의도대로 진행됐다고 보는 게 맞다. 헌재가 이달 초 대통령 측 무더기 증인을 받아주면서 2월 선고를 넘기자, 언론에서 ‘탄핵기각설’까지 언급하며 헌재를 강하게 비판했다. 이후 헌재에 대한 주목도가 높아졌고 헌재의 태도가 달라졌다. 3월중에 선고할 가능성이 높아지자 국민들이 헌재에 신뢰감을 보내고 있다.

지난해 12월9일 탄핵안이 가결되고 준비기일과 변론이 시작된 1월초까지 헌재에 대한 관심은 높았다. 하지만 변론이 이어지자 여론의 관심이 대선, 특히 야당 후보들에게 향했다. 그 사이 탄핵심판 변론은 대통령 측에 유리하게 진행됐다.

이정미 헌재소장 권한대행은 22일 변론에서 “(16회 변론동안) 증인채택 38중 양측이 공통으로 신청한 사람이 1명, 청구인(국회)이 요청한 증인 9명, 피청구인(대통령)이 요청한 증인이 26명”이고 “사실조회 70건 중 재판부가 요청 1건, 국회 측 요청 1건, 대통령 측 요청 68건”이라고 말했다. 문서송부촉탁에 대해서도 “총 11건이 채택됐는데 대통령 요청이 6건, 국회 요청이 5건”이라고 말했다.

세간에는 ‘어차피 탄핵을 인용할 거니까 대통령의 요구사항을 다 들어주는 것’이라고 해석했지만 다른 해석도 가능하다. 헌재가 최종변론을 24일로 못 박은 시점은 대통령 측이 무더기로 15명이나 증인신청을 했는데 헌재가 8명이나 채택해, 선고가 2월 중 불가능하게 된 직후였다. 증인 8명 중 실제로 출석한 증인은 2명이었다. 일주일이 낭비됐다. 최종변론을 24일이라고 강조했지만 27일로 연기됐다.

대통령 측은 26일까지 대통령 출석여부를 헌재에 알리고 27일 최종변론을 마무리할리 없다. 27일엔 대통령 출석여부에 대해 논한다든지, 23일까지 내라고 했던 최종서면 얘기를 한다든지, 추가 증거·증인신청을 한다든지, 이 대행의 후임문제를 거론하며 최종변론 연기를 주장할 가능성이 높다.

24일 양승태 대법원장이 이 대행의 후임지명이 다음주중에 있을 것이라 밝혔다. 같은날 친박 핵심 윤상현 의원은 양승태 대법원장을 향해 이 대행의 후임자를 임명하라고 요구했다. 같은날 연합뉴스에 따르면 대통령 대리인단 손범규 변호사는 상황이 달라졌으니 3월13일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 취지의 발언을 했다. 선고 일정에 변수가 될 줄 알면서 왜 양 대법원장은 후임지명을 거론했을까? 왜 예상치 못한 변수는 대부분 대통령 측에게 유리할까?

탄핵은 인용될까?

뉴스타파는 24일 헌법재판관 성향을 분석했다. 이번 탄핵심판 16번의 변론에서 각 재판관별 질문시간을 합산했다. 그간 사건들을 통해 재판관의 성향을 따져봤다.

이 대행과 강일원 주심재판관은 특성상 발언시간이 길 수밖에 없다. 이들을 제외하면 이진성, 안창호, 김이수 재판관이 적극적으로 신문했다. 모두 신문시간이 1시간을 넘었다. 하지만 김창종, 서기석, 조용호 재판관은 거의 말이 없었다. 심지어 조용호 재판관은 질문시간이 2분8초에 불과했다. 물론 질문이 평소에도 적은 성향의 재판관이 있고, 뉴스타파도 질문시간으로만 성향을 판단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 16차 변론동안 각 재판관 질문시간. 사진=뉴스타파 보도화면 갈무리
▲ 16차 변론동안 각 재판관 질문시간. 사진=뉴스타파 보도화면 갈무리

▲ 헌법재판소 재판관 이념성향, 전체 사건 이념성향과 주목도가 큰 주요사건에서 나타난 이념성향. 사진=뉴스타파 보도화면 갈무리
▲ 헌법재판소 재판관 이념성향, 전체 사건 이념성향과 주목도가 큰 주요사건에서 나타난 이념성향. 사진=뉴스타파 보도화면 갈무리
현 재판부가 다룬 사건은 1631건이었다. 뉴스타파에 따르면 전체 사건 이념을 분석한 결과 김이수·이진성 재판관은 진보 성향, 조용호·서기석·김창종·안창호 재판관은 보수성향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다수가 주목하는 사건의 경우 성향이 달라질 수 있다는 판단에 주요사건 80건을 가지고 다시 분석했다. 주요사건에서는 중도성향으로 모여드는 성향이 있었는데 그럼에도 김이수 재판관은 진보, 김창종·조용호 재판관은 보수성향을 보였다.

김창종 재판관은 양승태 대법원장이 임명(양 대법원장은 이명박 전 대통령이 임명)했고, 서기석·조용호 재판관은 박근혜 대통령이 임명한 인사다. 안창호 재판관은 공안검사 출신으로 새누리당이 지명한 인사다. 

헌재는 이미 정권의 부당한 압력에 노출된 바 있다. 김영한 전 민정수석 업무일지에 “長엔-통진당 해산판결-年內 선고”라고 청와대와 헌재가 내통한 정황이 나와있다. 이는 실제 연내 실행됐다. 통합진보당 내란음모사건은 1심 유죄, 2심 무죄가 났다. 대법원 판결이 나기 전 헌재는 진보당을 해산시켰다. 헌재 선고 이후 대법에서도 무죄로 판결했다. 민주주의 체제의 헌재가 무죄인 사건을 8:1의 압도적 의견으로 멀쩡한 정당을 없앴다. 현 시국에선 ‘상식’에 기초한 관점이 사안을 제대로 보지 못하게 할 수 있다.

당당한 자유한국당·대리인단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정치적 공범인 자유한국당(옛 새누리당)이 야당을 향해 먼저 ‘헌재결정 승복’을 요구했다. 인용결정이 우세하다면 하기 힘든 행동이다. 비박-비문계를 제외한 제3지대에서 주장하던 개헌논의를 자신들이 주도하고 있다. 대통령 대리인단은 이례적으로 재판관들을 공격했다. 자연스럽게 소위 ‘곧 사라질 정권이 마지막 절규’정도로 해석했다. 반대로 생각할 수도 있다. 믿는 구석이 있다고 볼 수도 있다.

인명진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은 21일 “개헌하는 것만이 정치를 바로 세우는 일”이라고 말했다. 얼마전까지 개헌은 민주당 비문세력+바른정당+국민의당 정도가 하던 주장이었다. 인 위원장이 15일엔 개헌에 대해 “정치적으로 큰 의미가 있는 것 같지 않다”고 했다. 일주일 사이에 상황이 뭔가 달라졌다는 뜻이다.

21일 유승민 바른정당 의원도 보수가 소멸할 위기라며 바른정당-자유한국당-국민의당이 참여하는 보수단일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자유한국당은 탄핵이 인용될 경우 박 대통령과 함께 몰락할 가능성이 매우 크지만 기각될 경우 살아날 가능성이 있다. 박 대통령과 선을 긋고 정치적으로 정당성을 확보한 뒤 제3지대와 개헌을 고리로 연대하면 된다.

독일 방문 직전엔 큰 성과가 없었던 김종인 전 민주당 대표가 다시 개헌을 중심으로 비문계 세력 결집에 나서고 있다. 23일 자유한국당 내부모임인 ‘새로운 미래를 준비하는 모임’ 행사 에서 대선 출마에 대한 질문을 받은 김 전 대표는 “최선을 다하겠다”는 모호한 답변을 내놨다. 포인트는 개헌의 중심인 김 전 대표가 자유한국당까지 손을 잡은 사실이다.

비슷한 시기 대통령 대리인단은 급격하게 세를 불렸다. 구상진(68·사법연수원 4기) 전 서울시립대 법학전문대학원장, 정기승(89·고등고시 사법과 8회) 전 대법관, 헌법재판관 출신 이동흡(66·사법연수원 5기) 변호사, 김평우(72·사법시험 8회) 전 대한변호사협회 회장 등이 이름을 올렸다. 박 대통령 입장에서는 중량감있는 법조계 인사가 대리인단에 참여해주면 유리하다.

그렇다면 해당 법조계 인사들은 왜 막판에 대통령 대리인단에 참여할까? 상식에 기초한 분석대로 탄핵인용이 확실하다면 원로들이 굳이 대리인단에 참여해 불명예스러운 역사에 이름을 남길 이유가 없다. 한두 명의 예외적 인사가 아니라 다수가 참여한다는 건 뭔가 합리적인 이익이 포착됐다는 뜻이다. 

▲ 지난해 10월26일 오전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린 故 박정희 전 대통령 37주기 추도식에서 한 참석자가 안내책자를 들고 있다. 사진=포커스뉴스
▲ 지난해 10월26일 오전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린 故 박정희 전 대통령 37주기 추도식에서 한 참석자가 안내책자를 들고 있다. 사진=포커스뉴스

자유한국당은 민심을 잃은 친박세력들이 처분만 기다리고 있는 정당이기만 할까? 민주당은 민심을 얻어 곧 정권을 잡을 제1정당, 바른정당과 국민의당은 세력이 미약한 정당, 이렇게 병렬적으로 정당을 이해해선 곤란하다. 자유한국당은 이름에서 밝히고 있는 것처럼 이승만 자유당 시절, 박 대통령을 중심으로 보면 유신시절, 당의 연속성으로 보면 전두환 정권 민정당부터 이어져 온 집권세력이다. 수없이 민심을 잃어봤고, 국민을 상대로 싸워봤다. 일탈은 있었지만 망한 적은 없고, 어려움은 겪었지만 제대로 처벌받은 적은 없다.

박 대통령과 가깝게 지냈던 전여옥 전 의원은 지난 20일 페이스북에 “지금 세상은 ‘벚꽃대선’을 놓고 후보 간 경쟁이 불꽃을 튀기는데 청와대는 ‘어림없다’고 말한다”며 “들리는 말로는 요즘 청와대는 ‘따스한 봄’”이라고 남겼다. 1970년대 뭐든 할 수 있는 세상을 경험했던 박 대통령이 무기력하게 당할까? 어쩌면 낙관적 전망이 더 비합리적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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