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가 최근 학제개편안을 골자로 한 교육 공약을 내놓았다. 초등학교 입학 연령을 만 5세로 앞당기고 이른바 ‘5-5-2’ 학제로 학교를 재편하겠다는 공약이다. 다만 교육관련 시민단체와 학계에서는 이러한 안 전 대표의 교육공약에 정치적 수사라는 비판적인 시선을 보내고 있다.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의 교육 개편안의 주요 골자는 초등학교 입학 연령을 만 5세로 앞당기고, 유치원 2년-초등5년-중학교5년-진로탐색학교 또는 직업학교 2년-대학교 4년 혹은 직장으로 이어지는 학제개편이다. 교육부를 폐지하고 보통교육과 대학교육을 분리하는 등 창의교육에 초점을 맞춘다는 전략이다.

안 전 대표가 지난 국회 교섭단체 연설에서 밝힌 학제개편 공약에 따르면 개편 이후에는 만 3살이 되면 유치원에 입학한다. 초등학교 입학 전 유치원을 통해 유아교육을 받게 된다. 만 5살이 된 아이는 현 교육체제에서보다 1년 빨리 초등학교에 입학해 5년을 보낸다. 현 체제 하에서 만 11살에 입학하는 중학교를 개편 이후에는 만 10살에 입학하게 된다. 이후 진로탐색학교나 직업학교를 거친 뒤 대학수학능력시험을 보고 대학 입학을 결정하거나 직업훈련을 거쳐 직장에 자리를 잡게 된다.

안 전 대표는 “성적순이 아니라 학점이수제도이기 때문에 아이는 별도로 학원을 다니거나 과외를 받을 필요가 없다”고 부연했다. 이러한 교육과정 개편을 통해 사교육을 줄이는 효과도 꾀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안 전 대표는 또한 보통교육과 대학교육을 분리해 보통교육을 정상화하고 창의교육을 가능하게 해서 4차 산업혁명시대에 대비하겠다고도 밝혔다. 이를 위해 교육부를 폐지하고 국가교육위원회를 만들고 교육지원처로 재편하는 등의 교육 관련 부처 개편 방향도 언급했다.

안 전 대표는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으로, 상임위 회의에서 4차 산업혁명을 강조하며 이를 위한 교육 개혁의 필요성을 언급해왔다. 23일 JTBC 썰전에 출연한 안 전 대표는 “4차 산업혁명에 필요한 창의교육을 위해선 결국 학제개편 밖에 없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학제개편안은 안 전 대표가 바이러스 백신 개발 등의 경험을 바탕으로, 기술혁명에서의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도록 제도 개편의 하나의 방안으로 내놓은 것으로 풀이된다.

▲ 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성평등 정책 중장기 비전수립을 위한 토론회'에 참석한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가 발언하고 있다. 사진=포커스뉴스
▲ 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성평등 정책 중장기 비전수립을 위한 토론회'에 참석한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가 발언하고 있다. 사진=포커스뉴스
이러한 파격적인 학제개편은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이 지난 23일 발표한 교육혁신안에도 일부 유사한 내용이 담겨있다. 조 교육감의 제안은 ‘유치원1년-초등학교5년-중학교4년’을 의무교육으로 하되, 고등학교 3년을 학생들이 원하는 진로 방향을 찾을 수 있도록 개방형 학점제를 도입하자는 안이다.

안 전 대표의 안과 유사한 점은 유치원 등 보육과정도 의무교육과정에 편입시켰다는 점과 고등학교 과정을 학점제로 운영해 진로탐색의 기회를 폭넓게 보장할 수 있도록 했다는 점이다. 조 교육감의 안은 고등학교 3년 동안 학생들이 수강과목을 선택하고 일정학점을 이수하면 졸업할 수 있도록 했다. 학년제 대신 학생의 진로탐색과 진로희망을 반영해 과목 선택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하는 자유수강제로 운영한다는 취지다.

이처럼 안 전 대표가 꺼내든 학제개편안은 교육계에서는 완전히 새로운 안은 아니다. 노무현 정부 당시인 2007년 한국교육개발원이 펴낸 ‘미래사회에 대비한 학제개편안’ 연구 보고서에서도 5-3-3제나 5-3-4제 등 초등학교 입학연령을 앞당기는 것을 골자로 한 학제개편 방안의 타당성을 분석했다.

다만 해당 보고서에서 학제개편안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적했던 것은 개편으로 특정년도 학생들이 불이익을 볼 수 있다는 점이다. 두 연령대 학생들이 함께 초등학교 졸업을 하면서 중·고·대학진학과 취업에 이르기까지 불이익을 당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외에도 학제개편이 야기할 수 있는 문제점은 적지 않다. 또한 학생 수용과 교원의 일시적 증원과 과원, 시설의 일시적 소요 증가와 유휴화 등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고 교육과정 개편과 교원 재교육 등을 위한 추가 재원 확보도 불가피하다. 안 전 대표가 학제개편을 꺼내들기 이전부터 정치권과 학계를 중심으로 꾸준히 논의가 불거졌음에도 매번 논의에만 그친 이유이기도 하다.

실제로 일부 학계와 시민단체 등에서는 안 전 대표의 학제개편안 공약을 다소 부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과거 논의가 이뤄졌을 때도 현실적 한계에 이미 부딪혔을 뿐만아니라, 안 전 대표의 학제개편안 공약 안에는 학제라는 틀을 변경하는 것 이상으로 교육 과정과 내용에 대한 고민이 엿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다.

김진우 좋은교사운동 공동대표는 24일 미디어오늘과의 통화에서 “학제를 바꾸는 일이 엄청난 혼란을 초래하는 부분도 있고 얻어지는 실익이 없다고 본다. 또한 바꾸려면 교육과정과 평가 등도 함께 바꾸는 그림이 있어야 한다. 현재로서는 상세하고 세밀한 그림이 제시되지 않아 내용이 없는 선언적 주장”이라고 평가했다.

김용일 한국해양대 교수(교직과)도 미디어오늘과의 통화에서 교육부 폐지론에 대해 “정치적 수사”라며 “지방교육 자치제도에 의해 발생하는 각 지역간 교육 격차는 불가피하고, 따라서 중앙정부 차원에서 지역간 불평등을 조정해야 한다. 이러한 교육부의 고유 기능이 있다. 폐지론을 얘기하는 것은 실제로 폐지한다기보다는 강한 표현을 통해 이목을 집중하려는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국민의당 차원에서 교육을 대선의 주요 핵심이슈로 선점하고 교육대통령이라는 의제를 설정하려는 의도”라고 풀이했다.

김 교수는 안 전 대표가 꺼내든 4차 산업혁명에 대해서도 “4차 산업혁명 시기에는 경제적 격차와 임금격차 등이 심해질 가능성이 거론된다. 교육은 사회·경제적 격차를 해소하는 복지 시스템이다. 따라서 교육불평등 완화라는 관점이 4차 산업혁명기에 더 필요하다. 이를 간과하고 기술주의자적 관점에서 새로운 시대에 요구되는 무언가를 더 가르쳐야 한다는 것은 말 장사에 불과하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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