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부끄럽고 참담하다. 김장겸이 좋은 기사를 썼다거나 좋은 기자였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경영진으로서 좋은 성과를 낸 것도 아니다. 신뢰도·시청률을 최악으로 만들어 놓고 무슨 성과를 냈다고 사장에 응모했는지 상식적으로 납득이 안 간다.”

지난 23일 저녁 김장겸 전 보도본부장이 공영방송 MBC 신임 사장으로 선임된 후 서울 상암동 MBC 사옥 앞 광장에선 열린 ‘MBC 분노의 날’ 촛불집회에서 한 MBC 기자는 “괴물 같은 결과가 초래됐다”며 이 같이 말했다. 이 기자는 “이런 참담한 결과가 초래될 동안 왜 진작 함량 미달의 부적격 기자가 보도국에서 걸러지지 못했는지 우리 스스로 반성해야 한다”고 했다.

24일 오전 김장겸 신임 사장의 출근 첫날부터 MBC 구성원들이 ‘사장 아님’을 선포했듯, 사상 초유로 방송문화진흥회 야당 추천 이사들이 모두 표결을 ‘보이콧’한 채 청와대 추천 이사 6명이 뽑은 MBC 신임 사장에 대해 정치권과 언론계에서도 정당성을 잃은 ‘시한부’ 사장이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24일자 경향신문 사설.
24일자 경향신문 사설.
경향신문은 24일 “MBC 사장 선출 강행은 공영방송 망가뜨리는 폭거다”라는 제목의 사설을 통해 “MBC를 박근혜 정권의 대변자로 전락시킨 방송농단의 주범인 방문진이 새 사장 선임을 밀어붙인 것은 MBC를 극우세력과 박근혜 정권의 마지막 보루로 만들겠다는 의도임이 분명하다”고 비판했다.

경향신문은 “정권 교체가 되더라도 MBC를 보수정당의 영향력 아래에 두기 위해 ‘알박기 인사’를 강행한 것”이라며 “방문진이 MBC 새 사장을 선임했지만 방송법·방문진법 개정안 등 언론장악방지법이 국회를 통과하면 ‘시한부 사장’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고영주 방문진 이사장도 23일 김장겸 전 본부장을 신임 사장으로 내정한 후 MBC 해직PD인 최승호 뉴스타파 앵커와 인터뷰에서 “지금 (국회에서) 법 개정해서 바꾸겠다는데 (사장 임기가) 3년까지 가겠느냐”고 말했다. 

고 이사장은 ‘시한부’ 사장이 될지도 모르는데 굳이 사장 선임을 강행한 이유는 MBC를 박근혜 탄핵 반대 세력의 기지로 만들려고 하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우린 법상 우리에게 주어진 의무를 다하는 것이므로 오해가 없었으면 좋겠다”면서 “누구 의견을 듣고 안 듣고의 문제가 아니다”고 반박했다.

고 이사장은 방문진이 김장겸 신임 사장을 내정한 이유에 대해 “지금 이 상황에서 MBC를 제대로 끌고 갈 만한 사람이라고 판단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MBC 시청률과 신뢰도를 추락시킨 보도본부장이라는 지적에 대해선 “애국(친박·극우) 시민들이 MBC가 가장 공정한 방송을 하고 있다고 한다”고 강변했다.

MBC ‘뉴스데스크’가 ‘청와데스크’라는 힐난을 받고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국면에서도 대통령과 최순실의 ‘입노릇’을 했다는 비판에도 “우리 뉴스가 중심을 잘 잡고 있다”는 김장겸 전 보도본부장의 ‘정신 승리’가 방문진, 아니 대통령의 눈에 흡족하게 들어 ‘낙점’됐다는 설이 진작부터 파다했던 까닭이다.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 조합원들은 24일 아침 서울 상암동 MBC 경영센터 1층 로비에서 김장겸 신임 사장의 첫 출근에 “김장겸씨를 사장으로 인정할 수 없다”며 피케팅 시위를 벌였다. 사진=언론노조 MBC본부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 조합원들은 24일 아침 서울 상암동 MBC 경영센터 1층 로비에서 김장겸 신임 사장의 첫 출근에 “김장겸씨를 사장으로 인정할 수 없다”며 피케팅 시위를 벌였다. 사진=언론노조 MBC본부
한겨레는 “탄핵소추 당한 정권에 부역해온 MBC가 ‘박근혜 방송’의 핵심 인사를 다시 사장으로 뽑아 언론개혁 움직임에 ‘알박기’로 대항한 것은 박 대통령이 임명한 고영주 이사장과 여당 추천 이사진의 폭거”라며 “김 본부장 아래서 뉴스데스크는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의 본질을 외면하고 ‘태블릿PC 조작설’ 같은 저질 뉴스를 집요하게 보도했다”고 비판했다.

한겨레는 “방문진이 이런 인물을 새 사장으로 밀어붙인 것은 한 줌 극우세력의 소굴로 추락한 MBC의 지금 체제를 다가온 대선 이후에도 유지하겠다는 뜻으로 ‘박근혜 없는 박근혜 방송’을 계속하겠다는 속셈”이라며 “사태가 여기까지 오게 된 데는 방송장악방지법을 통과시키지 못한 국회에도 책임이 있다. 야당은 이제라도 방송장악방지법 통과에 온 힘을 기울이기 바란다”고 촉구했다.

고용진 더불어민주당 대변인은 24일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에 대한 왜곡· 축소·편파 보도에 앞장선 인물을 사장으로 선임한 것은 탄핵에 직면한 박 대통령을 보호하려는 친박 세력의 선택으로 볼 수밖에 없다”며 “민주당은 김장겸 사장이 MBC를 정권이 아닌 국민의 품으로 되돌려 주기 위해, 진실된 언론인의 양심으로 즉시 자진 사퇴할 것을 촉구한다”고 말했다.

 지난 2012년 12월4일 서울 여의도 MBC 방송센터 입구에서 김장겸 당시 정치부장이 대선TV토론 참석을 위해 방문한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를 맞이하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지난 2012년 12월4일 서울 여의도 MBC 방송센터 입구에서 김장겸 당시 정치부장이 대선TV토론 참석을 위해 방문한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를 맞이하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전국 민주언론시민연합도 공동성명을 내고 “김장겸씨가 사장 자리에 오른 데는 전임의 언론장악 부역 사장들과 함께 MBC를 정권에 갖다 바친 공로가 인정됐기 때문임은 두말할 나위 없다”며 “김씨는 이 과정에서 박근혜 정권의 충견을 자임하며 공정방송을 바라는 사내 구성원들을 무차별적으로 탄압하고 업무에서 배제하는 한편 그 빈자리를 시용과 경력 기자들로 채워 MBC가 권력의 앞잡이 노릇을 거침없이 수행할 수 있는 인적 토대를 만든 일등공신”이라고 꼬집었다.

전국 민언련은 “이 시각 김씨 머리가 MBC를 쥐락펴락할 생각으로 가득 차 있다가는 ‘언론장악 적폐 청산’과 ‘공정방송’을 바라는 시민들, 그리고 양심적인 MBC 구성원들에 의해 끌려 나올 것이 명약관화”라며 “혹여 방문진 일부 세력과 MBC 경영진이 썩은 동아줄이 된 박근혜 정권과 수구·종박 세력을 뒷배로 생각하고 있다면 이들과 함께 탄핵의 운명을 맞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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