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황유미씨는 ‘삼성 반도체 백혈병 문제’에 해결의 물꼬를 튼 직업병 피해자입니다. 2007년 3월6일, 23세에 숨을 거둔 그녀의 죽음은 사회에 경각심을 일으켰고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 직업병 문제 해결은 우리 사회의 과제로 남겨졌습니다. 황씨의 아버지를 비롯해 많은 피해자들이 그녀가 알린 싸움을 10년 넘게 이어가고 있습니다. 미디어오늘은 ‘故 황유미 10주기’를 맞이하는 오는 3월6일까지 이들의 연속 기고문 네 편을 싣습니다.

매주 목요일 나는 반올림 농성장에 간다. 하늘 높이 솟아 있는 빌딩, 분주히 지나가는 사람들, 건물 분양을 위해 거리에서 전단지를 나눠주는 사람들, 가게를 홍보하는 인형탈을 쓴 직원들. 종종 거리며 버스를 기다리거나, 손을 마주잡고 가는 사람들. 수많은 사람들 살아가고, 연결되어지는 곳 강남. 그곳 한 귀퉁이에 반올림 농성장이 있다.

인간미 없는 거대한 삼성 본관의 건물 앞에 ‘우리가 살고 있어요’라는 항의를 하는 곳이 반올림 농성장이다. 나는 목요일의 지킴이다. 나 혼자 살아가기에도 벅찬 세상에 누군가를 지킨다는 것이 큰 무게처럼 느껴지지만 우리는 요일마다, 시간마다 지킴이로 서로를 연결하며, 농성장을 지켜나가고 있다.

▲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 '반올림'이 지난 2월11일 박근혜 대통령 탄핵 촉구 범국민대회 당시 보인 방진복 전시. ⓒ변백선 '노동과 세계' 기자
▲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 '반올림'이 지난 2월11일 박근혜 대통령 탄핵 촉구 범국민대회 당시 보인 방진복 전시. ⓒ변백선 '노동과 세계' 기자

삼성반도체 기흥공장 백혈병 피해자 고 황유미의 아버지 황상기님은 먼 속초와 강남의 농성장을 오가신다. 2007년 3월 6일 자신의 택시 뒷좌석에서 눈을 감은 딸의 억울함을 풀기 위해서다. 지킴이들이 농성장에 들어서면 황상기 아버님은 주섬주섬 먹을 것을 꺼내주신다. 전국 곳곳에서 연대의 손길로 도착한 사과, 귤, 각종 과일부터 쌍화탕, 비타민까지. 농성장에 들른 누구 하나 허투루 보내는 법 없이 먹을 것부터, 말 한마디까지 모든 게 따뜻하신 분이다.

하루는 황상기 아버님이 사과를 깎고 계셨다. “아버님, 사과를 너무 예쁘게 깎으시네요.”(글쓴이) “사과를 예쁘게 깎으면 뭐해요? 사과를 못 받는데.” 늘 숫자개그, 아재개그에 능하신 황상기 아버님의 사과 개그. 깔깔 웃으며 넘겼지만 달콤한 사과 한 조각 속에 사과 받지 못한 씁쓸함이 묻어나왔다.

벌써 10년째다. 딸 유미의 죽음에 대해 사과 받기 위해 싸워 온지가. 건강했던 딸을 잃은 것만도 억울한데, 삼성은 10년 째 모르쇠다. 10년 전, 딸 유미의 죽음이 직업병이라는 의심에 곳곳의 시민단체, 언론, 국회의원을 수소문했지만 같이 싸워주겠다는 곳이 없었다. 한국 굴지의 기업 삼성이 걸린 문제였기 때문이다.

물어물어 수원의 다산인권센터와 연결이 되었고, 속초에서 수원을 오가는 강행군이 시작되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속초에서 수원을 오가던 길이 속초에서 서울로 바뀌게 되었다. 삼성 직업병 문제가 삼성의 도시 수원에서 시작돼 한국사회 노동자 건강권 문제로 떠올랐다. 10년이 지난 지금, 230명이 넘는 피해자가 제보를 해왔고, 이미 79명의 노동자가 세상을 떠났다.

딸의 병이 직업병이라는 확신에서 시작된 황상기 아버님의 싸움이 전국에 흩어졌던 피해자들을 모으고 그들의 아픔을 세상에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10년이 지났지만 황상기 아버님의 고된 싸움은 현재 진행형이다. 속초에서 강남에 있는 삼성본관으로. 아직 삼성에게 진정성 있는 사과와 제대로 된 보상을 받기 위한 긴 여정이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삼성전자 LCD에서 일하다 뇌종양으로 1급 장애 판정을 받은 한혜경씨와 어머니 김시녀님은 춘천과 강남을 오가신다. 때로는 장애인콜택시를 타고, 때로는 지하철을 갈아타고. 화장실도 멀고, 휠체어로 오가기 불편한데도 빠짐이 없다.

“혜경이가 농성장에 가는 걸 좋아해.”(김시녀씨) 춘천에서 재활을 위해 집과 복지관만을 오가는 혜경씨가 만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흥이 많고, 사람 만나는 걸 좋아하는 혜경씨는 강남 농성장에 오는 걸 손꼽아 기다린다. 강남 농성장은 오가는 지킴이들과 연대를 오는 사람들이 있기에 늘 북적북적하고, 만날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때로는 혜경씨와 말벗이 되어주고, 때로는 동생이, 친구가, 언니/오빠가 되어준다. 반올림 농성장은 피해자들과 지킴이들의 삶을 이어주고 있다. 오랜 시간 싸움에 외롭지 않게, 지치지 않게 말이다. 김시녀 어머님은 농성장의 살림꾼이시다. 겨울이 되면 추위대비 비닐과 바닥 스티로폼 공사를, 여름이 되면 햇볕을 피할 파라솔 설치와 장마대비 공사를 진두지휘 하신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공사가 진행된다.

▲ 고 황유미 10주기 및 삼성전자 산재사망노동자 추모 집중행동 포스터. 사진=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 '반올림'
▲ 고 황유미 10주기 및 삼성전자 산재사망노동자 추모 집중행동 포스터. 사진=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 '반올림'

2015년 가을부터 겨울, 2016년 봄, 여름, 가을, 겨울, 2017년 봄까지. ‘다음 계절 전까지 농성장 정리했으면 좋겠다.’ 모두가 입 모아 이야기하지만 계절이 깊어질 때쯤 농성장은 또 다른 계절을 준비하고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몸과 마음이 힘들어 지는 건 예상 된 결과이다. 특히 혜경씨 모녀는 혜경씨의 재활 때문에 어머님이 생업을 이어 갈수도 없는 상황이다. 직업병은 개인 뿐 아니라 가족들의 일상도 송두리째 뒤흔들어 놓는다. 혜경씨와 김시녀 어머님의 인생을 송두리째 뒤흔든 삼성은 아직도 혜경씨 모녀에게 진정성 있는 사과와 제대로 된 보상을 하지 않았다.

2007년 삼성 직업병 문제 해결을 위해 반올림이 만들어졌다. 그로부터 10년. 피해제보는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증언해줄 수 있는 이들은 고통 속에 세상을 떠나고 있다. 피해제보자 230명, 사망자 79명. 숫자로 그들을 명명하지만, 고통과 아픔 속에 발버둥쳐야 했던 노동자와 가족들의 삶은 결코 숫자로 헤아릴 수 없다.

하지만 삼성은 여전히 모르쇠다. 그저 질병과 근속기간에 따라 피해자들은 금액으로 나눌 뿐이다.

최근 이재용 부회장이 뇌물죄로 구속되었다. 삼성 사상 첫 총수 구속에 한국사회 전체가 들썩였다. 이재용 구속 소식에 혜경씨 모녀는 눈물을 흘렸고, 황상기 아버님은 떡을 돌리셨다. 사랑하는 딸을 잃게 하고, 사랑하는 딸을 아프게 한 삼성의 총수를 간접적이나마 처벌 받게 했기 때문이다.

이재용의 죄명은 뇌물죄다. 삼대 세습을 위해 권력에 아부한 그 죄는, 그간 삼성에서 고통당한 수많은 이들의 아픔을 기반으로 축적 된 부를 함부로 남용한 죄, 노동자들의 삶을 앗아간 댓가를 권력에게 바친 죄이다. 이재용은 ‘억울하다’ ‘모른다’ 하겠지만 자신의 죄가 무엇인지 구치소에서 똑똑히 알아가길 바란다. 그리고 지금도 거리에서 생활하는 직업병 피해자와 노동자들에게 사죄하고, 잘못에 대한 반성을 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삼성 직업병 첫 제보자이자, 사망자인 고 황유미씨의 기일이 다가온다. 3월 6일. 겨울과 봄의 사이에서 유미씨는 세상을 떠났다. 유미씨가 세상을 떠난지 10년. 겨울과 봄의 사이에 유미씨의 아버지 황상기님은 아직도 거리에 있다. 자식을 잃은 부모가 거리에서 보낸 10년을 어찌 말로 설명할 수 있을까?

직업병 피해 노동자와 가족들에게 10년은 너무도 긴 시간이었다. 더 이상 고통이 지연되지 않도록 삼성은 직업병 피해 노동자들에게 진정성 있는 사과와 투명하고 배제 없는 보상을 해야 한다.

3월 6일 황유미 기일에 맞춰 반올림과 삼성 직업병 문제 해결을 바라는 시민들이 추모행동을 준비하고 있다. 3월 3일 맨 처음 직업병 문제 해결을 위해 반올림을 결성했던 수원에서 도보행진과 문화제를, 3월 6일 황유미 기일에 강남 삼성본관앞에서 추모 문화제를 진행한다. 황상기 아버님과 반올림이 10년을 싸울 수 있었던 것은 직업병 피해 노동자들의 아픔에 공감해 준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고 황유미 10주기, 따뜻한 공감과 연대로 직업병 문제 해결을 위해 함께 해주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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