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에서 해고된 지 3년째인 2014년, 나는 방송기자연합회가 주관하는 ‘이달의 방송기자상’ 심사위원을 맡고 있었다. 

다른 방송사의 중견 기자들, 그리고 방송학회 교수들과 매달 한 번씩 모여 심사를 했는데 심사위원장은 방송학회장이 당연직으로 수행했다. 

그해 심사위원장은 E여대 Y교수였다. 넉넉하고 신뢰감을 주는 인상에 호탕한 성품이어서 학회장에 당선될 만한 분이라고 생각했다. 

가끔씩 회식을 하면 늘 술잔을 돌리며 좌중을 주도했고 유쾌한 농담도 잘하는 편이어서 술자리가 2차, 3차까지 이어질 때도 있었다.

그해 가을, 나는 출판사의 권유로 책을 내게 됐다. 평범한 기자였던 내가 어쩌다 노조위원장이 됐다가 이유도 없이 해고된 사연, MBC를 장악하려 했던 이명박, 박근혜 정권과 낙하산 사장들의 횡포, 그리고 해직 이후 우연히 시작한 스피커 사업 등에 관한 자전적 에세이였다. 

▲ 박성제 MBC 해직기자는 2012년 파업 과정에서 해고된 뒤 하이엔드(High-End) 스피커 ‘쿠르베’를 직접 제작하며 스피커 회사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 박성제 MBC 해직기자는 2012년 파업 과정에서 해고된 뒤 하이엔드(High-End) 스피커 ‘쿠르베’를 직접 제작하며 스피커 회사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책이 출간되자 나는 방송기자상 심사위원들에게 한 권씩 선물했다. 한 달 뒤 모임에서 Y교수가 내게 말했다.

“박 기자, 지난번에 선물해 준 책 잘 읽었어요. 난 박 기자가 그렇게 억울하게 해고된 줄 정말 몰랐습니다.”

“이해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사실 책에 다 못 쓴 이야기도 많아요.”

“책 보니까 김재철 사장 정말 나쁜 사람이더구만. 우리 방송학회가 해직 언론인들을 도울 방법이 없을까요?”

“저희는 어차피 복직소송 중이기 때문에 괜찮습니다. 재판에서 이길 겁니다. 다만 교수님들이 MBC 문제에 관심을 보여주신다면 반가운 일이죠.”

“방송학회가 어떤 식으로 MBC 문제를 다룰 수 있을지 한 번 논의해 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교수님.”

대충 이런 내용의 대화였던 걸로 기억한다. 그 뒤 방송학회에서 MBC 문제를 다룬 토론회나 세미나가 열리지는 않았지만 서운한 마음은 들지 않았다. 다른 바쁜 일이 많으셨을 거라고만 생각했다. 

몇 달 뒤인 2015년 초, Y교수는 방송학회장 임기를 마치며 심사위원장을 그만뒀고 나 역시 심사위원을 그만두게 됐다. 해직기자와 언론학자의 인연은 그게 끝인 줄 알았다.

해를 넘겨도 MBC의 상황은 악화되기만 했다. 새로 낙하산 사장이 된 안광한씨와 경영진은 파업에 참여했던 조합원들을 김재철 전 사장 때보다 더 가혹하게 다뤘다. 

간부 지시에 조금이라도 저항하는 기자, PD들은 곧바로 최하위 인사고과와 함께 방송현업과 관련이 없는 부서로 발령이 났다. 

100명이 넘는 후배들이 프로그램 제작에서 쫓겨났고 빈자리는 어떻게 채용됐는지도 모르는 경력 사원들로 채워지고 있었다. 

MBC의 별명은 엠빙신으로 굳어졌고 시청자들의 기억에서 MBC뉴스는 지워져 가고 있었다. 가끔씩 후배들을 만나 소주 한 잔이라도 할 때면 내가 오히려 그들의 절망과 분노를 달래줘야 할 지경이었다.

그해 8월, MBC의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진 임기가 끝나고 새로운 이사들 명단이 발표됐다. 나는 명단을 보다가 깜짝 놀랐다. 여당추천 이사 6명의 명단에 Y교수의 이름이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몇 달 전까지 방송학회장을 지낸 저명한 언론학자가 정부 여당의 지시를 받는 공영방송 이사에 지원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네트워크’가 뛰어난 덕분일까? 쓴웃음이 났다. 

그러다 곧 Y교수를 찾아가서 만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1년이나 얼굴 맞대고 회의했던 사이 아닌가. MBC 문제를 해결하는데 힘써달라고 부탁해 보면 어떨까. 그런 절박한 심정이었다.

하지만 결국 실행에 옮길 수는 없었다. 해직 기자가 여당추천 이사를 만난다는 게 아무래도 적절치 않아 보였다. Y교수도 왠지 내가 찾아가면 불편해 할 것 같았다. 

만약 방문진 이사로서 내게 MBC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면 먼저 연락을 해왔을 것 아닌가. 언젠가 만나게 될 터이다. 그 때 자연스럽게 얘기를 꺼내야겠다고 마음을 정리했다.

▲ 최승호 MBC 해직PD(왼쪽)와 박성제 MBC 해직기자가 2016년 1월 ‘부당해고 MBC 경영진 규탄’ 기자회견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 최승호 MBC 해직PD(왼쪽)와 박성제 MBC 해직기자가 2016년 1월 ‘부당해고 MBC 경영진 규탄’ 기자회견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다시 몇 달이 흐른 2016년 초, MBC 백종문 미래전략본부장의 술자리 발언 녹취록이 한겨레의 특종보도로 공개됐다. ‘최승호와 박성제는 노조의 후견인이었기 때문에 증거도 없이 해고했다’고 실토한 내용이었다. 

문제의 녹취록에서는 그 밖에도 경영진이 어떤 수법으로 노조를 탄압했는지 털어놓은 발언들이 쏟아져 나왔다. 기가 막힌 일이었다. 

여의도 방문진 앞에서는 이사회가 열리는 날마다 백 본부장의 발언을 규탄하는 시민단체 집회가 열렸다. 당연히 최승호 PD와 나도 꾸준히 집회에 참석해 진상규명을 요구했다.

그러던 어느 날, 집회를 피해 건물 옆문으로 들어가던 Y교수와 우연히 마주쳤다. 그의 얼굴을 본 순간 나는 무작정 소매자락을 잡고 매달렸다.

“교수님, 5분만 시간 좀 내주십시오. 말씀 드릴 게 있습니다.”

Y교수는 당황해 하며 내 손을 뿌리쳤다.

“박 기자, 회의에 늦어서 지금 좀 바쁩니다. 나중에 봅시다.”

“교수님, 그럼 한마디만 하겠습니다. 저 억울하게 해고됐으니 복직시켜 달라는 얘기 아닙니다. 다만 백종문 본부장 불러서 어떻게 된 건지 조사해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그는 곤란한 표정으로 잠시 나를 바라보더니 일언반구 없이 돌아섰다. 경비원이 잡아준 엘리베이터 안으로 황급히 사라지는 뒷모습을 나는 멍하니 바라봤다.

그날 방문진 회의에서 야당 이사들이 백종문 본부장을 불러 진상을 따지자고 요구하자 Y교수는 앞장서 반대했다고 한다. 

심지어 내 이름까지 거명해가면서 ‘나도 박성제 기자랑 잘 아는 사이지만 이 문제는 그렇게 사적인 감정으로 다루면 안 된다’고 주장했다는 것이다. 놀랍지도, 화가 나지도 않았다. 그냥 서글펐다.

▲ 이명박 정부와 맞섰던 MBC는 처참하게 망가졌다. 2008년 광우병 보도를 주도하며 촛불집회 지지를 받던 MBC는 박근혜 정부에서 극우세력 기대를 한 몸에 받는 방송사로 전락했다. 사진=이치열 기자
▲ 이명박 정부와 맞섰던 MBC는 처참하게 망가졌다. 2008년 광우병 보도를 주도하며 촛불집회 지지를 받던 MBC는 박근혜 정부에서 극우세력 기대를 한 몸에 받는 방송사로 전락했다. 사진=이치열 기자
다시 1년이 지났다. 며칠 전 ‘미디어워치’라는 인터넷 언론에서 Y교수의 이름이 다시 눈에 들어왔다. 청와대가 공영방송에 낙하산 사장을 보낼 수 없도록 하자는 이른바 ‘언론장악방지법’을 강하게 비판하는 입장을 내놓은 것이다. 

특히 노사 동수로 편성위원회를 만들면 노영방송이 된다고 주장하고 있었다. 그리고 지난 23일, 그는 방문진 이사회에서 야당이사들이 퇴장한 가운데 MBC뉴스를 망친 장본인, 김장겸 보도본부장을 사장으로 선임하는 거수기 역할을 수행했다.

아직도 궁금하다. 술잔을 부딪히며 해직언론인을 위로하던 따뜻한 성품의 언론학자. 자신을 공영방송 이사로 앉혀준 권력에게 끝까지 충성하는 어용학자.

어느 것이 Y교수의 진짜 모습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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