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저 눈빛’은 살아있었다. 지난 20일 전 민정수석 비서관의 구속영장 청구 여부도 주목받았지만 ‘우병우 눈빛’에도 관심이 쏠렸다. 우 전 수석은 그대로였다. 지난해 11월6일엔 ‘횡령 혐의를 인정하느냐’고 묻는 기자에게, 12월22일 국회 ‘최순실 게이트’ 청문회에서 특조위원에게 그리고 지난 21일 영상실질심사 전엔 ‘구속 전 마지막 인터뷰일 수 있는데 한 말씀 해달라’는 기자에게 우 전 수석은 고압적인 레이저를 쐈다.

심지어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 때도 마찬가지였다. 우 전 수석은 대통령과 청와대 수석들이 모인 자리에서도 특유의 고압적 뻣뻣함을 드러냈다. 2016년 2월부터 9월까지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 영상자료 10회 분을 찾아본 결과 우 전 수석은 단연 눈에 띄었다. 매번 누구보다 꼿꼿하게 고개를 든 채 특유의 눈빛으로 정면을 응시하고 있었다. 다른 수석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필기구로 대통령 모두 발언을 적고 있을 때도 우 수석만 미동없이 정면을 봤다. 대한민국 권력 1인자가 있는 자리에서도 눈치 보지 않는 당당함이 느껴졌다. 혹은 1인자의 뜻을 거스르는 인물은 없는지 감시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2016년 12월 22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 사건 진상 규명을 위한 국회 국정조사특별위원회' 제5차 청문회에 출석해 의원들의 질의를 듣고 있다. 이날 김성태 국조특위 위원장은 우 전 수석에게 질의 듣는 태도를 바로하라는 지적을 받았다.ⓒ사진공동취재단
▲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2016년 12월 22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 사건 진상 규명을 위한 국회 국정조사특별위원회' 제5차 청문회에 출석해 의원들의 질의를 듣고 있다. 이날 김성태 국조특위 위원장은 우 전 수석에게 질의 듣는 태도를 바로하라는 지적을 받았다.ⓒ사진공동취재단

우병우의 뻣뻣함은 그가 가진 ‘권력감(感)’을 보여준다. 두려울 게 없으니 고개를 숙일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수많은 범죄 정황이 드러났음에도 언론과 국회 앞에서 ‘꿈쩍도 하지 않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는 1987년 만 20세 때 최연소로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1990년 검사로 임관한 이후 2007년 서울중앙지검 부장검사를 시작으로 대검찰청 중수1과장, 인천지검 부청지청장을 거쳐 2014년 대통령 민정비서관, 2015년 역대 최연소 민정수석으로 수직상승했다.

그래서 우병우의 마지막은 다를 줄 알았다. 특검과 법원 앞에서는 보다 더 뻣뻣해져 꺾이지 않을 줄 알았다. 아들 군대 ‘꽃보직’ 특혜, ‘정강’의 횡령·탈루 정황이 드러나도 그걸 묻는 기자를 노려 볼 수 있었고, 국민들이 현상금을 걸 정도로 청문회를 피했음에도 ‘왜 도망다녔냐’는 국조특위 질문에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던 그였다.

‘구속 앞에 장사 없다’는 말이 맞다. 우병우도 꼬리를 잘랐다. 우 전 수석은 특검과 구속영장을 심사한 판사 앞에서 자신은 대통령의 지시에 따랐을 뿐이라 주장하고 있다. JTBC는 우 전 수석이 자신을 ‘가교 역할’이라고 까지 칭했다고 보도했다. “위에서 지시가 내려오면 밑으로 내리고, 밑에서 보고가 올라오면 위로 올리는 '가교 역할'을 했을 뿐이었다”고 말이다. 안종범 전 정책수석, 정호성 전 비서관, 김기춘 전 비서실장이 법정 앞에서 차례차례 꼬리를 잘라온 가운데 마지막 주자인 우병우 전 수석도 가세했다.

특검 수사 전까지 권능을 부리던 우병우는 특검 수사 후 ‘지시를 받을 뿐인’ 민정수석으로 변했다. 2014년 정윤회 문건 파동 수사 개입, 2014년 광주지검 세월호 수사 방해, 2016년 자신에 대한 특별감찰 방해, 2016년 문화체육관광부 국·과장급 좌천성 인사 외압, 게임회사 넥슨이 처가 땅을 사도록 했다는 의혹 등 우 전 수석에 대해서는 숱한 의혹이 쏟아져왔다. 이 정황들이 꼬리를 자른다고 잘릴 의혹들일까. 유리할 땐 권력을 부리고 불리할 땐 책임을 미루는 비겁자의 전형을 우병우도 보여줬다.

▲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2월21일 오전 10시께 구속영장 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서울중앙지방법원으로 들어서고 있다. 사진=이치열기자
▲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2월21일 오전 10시30분께 구속영장 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서울중앙지방법원으로 들어서고 있다. 사진=이치열기자

특검이 우 전 수석에게 적용한 혐의는 직권남용·직무유기·특별감찰관법 위반·청문회 불출석 등 4가지다. 개인비리를 감찰한 특별감찰관 방해, '민간인 사찰' 등과 관련해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및 특별감찰관법 위반을 적용했다. 직무유기는 최순실 등의 국정농단·개입 사실을 알고도 묵인·방조한 것이다. '최순실 게이트' 국조특위는 지난해 12월30일 합당한 사유없이 청문회에 수차례 불출석한 우 전 수석을 국회에서의 증언 및 감정 등에 관한 법률에 따른 청문회 불출석 혐의로 고발했다.

그럼에도 구속영장 기각 후 서울구치소를 나온 우 전 수석의 모습도 한결같았다. 검찰에서 민정수석까지 출세가도를 달린 법조계 인사의, 수의를 입고 구속되기 직전까지 몰렸던 모습이라고 보기 어려웠다. 그는 지금도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하고 있을까. 

공무원 권한을 남용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10년 이하의 자격정지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특별감찰관법은 위계 또는 위력으로써 특별감찰관 직무수행을 방해한 사람에게 5년 이하의 징역을 규정한다. 1차 수사 기간이 6일 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특검은 우 전 수석에 대한 불구속 기소 방침을 세울 것으로 보인다.

다음번 스포트라이트에 선 우병우 전 수석의 눈빛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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