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봉춘, 볼 날은 온다.’ 지난 2012년 전국의 MBC 구성원들이 ‘공정방송 쟁취’를 위해 170일 파업을 했을 때 어느 지역MBC에서 내걸었던 시민문화제 포스터 문구다.

이영애·유지태 주연의 영화 ‘봄날은 간다’를 패러디한 해당 포스터가 나왔던 그해 초봄만 하더라도 머지않아 국민이 그리워하던 마봉춘, MBC를 볼 날이 올 줄만 알았다. 하지만 그 후 5년이 다 되도록 마봉춘은 국민의 품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어쩌면 현 경영진은 ‘MBC의 봄’을 또 3년간 유예시킬지도 모른다.

지난 15일 기자들과 만난 김연국 신임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장은 “MBC에 새 사장이 선임되면 앞으로 3년간 봄은 오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공영방송 MBC 대주주는 방송문화진흥회인데 9명으로 구성된 이사회 중 6명이 정부·여당 추천 이사들로 장악된 상태에서 이번 달 선임될 차기 사장마저 청와대 ‘낙하산’이 온다면 절망의 시간은 더 길어질 것이라는 의미다.

김연국 신임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장.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김연국 신임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장.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김 본부장은 “아마 외부환경이 좋아지고 한국 사회에 봄이 찾아와도 현 방문진 여권 추천 이사들이 3년 임기의 새 사장을 뽑는다면 MBC는 또 겨울일 것”이라며 “이 긴 싸움을 끝낼 가장 빠른 방법은 취약한 공영방송 체제를 바꾸는 법안을 국회에서 통과하는 것이고, MBC 구성원과 1600 조합원이 바라는 딱 하나는 ‘공정방송 하게 해 달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본부장은 “그리고 공정방송을 하도록 제도적 장치와 신념으로 외부의 어떤 압력도 막을 수 있는 합리적 경영진이 선임돼야 하는데 불행히도 지난 7년간 김재철·안광한 체제, 이명박근혜 정부로 이어진 공영방송 장악 시나리오에 충실해 MBC 파괴에 핵심적 역할을 맡았던 사람들이 사장 후보로 지원했다”고 지적했다.

16일 MBC 안팎의 많은 반대에도 열린 방문진(이사장 고영주) 정기이사회에선 MBC 차기 사장 후보 세 명이 정해졌다. 권재홍 현 MBC 부사장과 김장겸 보도본부장, 문철호 부산MBC 사장이다.

이들 세 명은 지난 13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결된 ‘MBC 노조탄압 청문회’ 증인으로 채택됐다. 권재홍 부사장은 대법원에서 해고무효 판결을 받은 권성민 예능PD 해고 당시 인사위원장이었고, 현재까지 MBC 구성원들에게 부당 징계를 주도하고 있다는 이유다.

환노위는 김장겸 보도본부장 증인 채택 이유에 대해 “2012년 파업 당시 정치부장으로 문철호 보도국장과 함께 불공정 편파보도를 주도하며 공정방송 단체협약 무력화에 앞장섰다”며 “2014년 하반기 이후 보도국에서 발생한 징계와 부당전보 주도자”라고 설명했다. 문철호 사장은 2012년 보도국장으로 파업 원인을 직접 제공했고, 단협상 공정방송협의회 요구를 지속해서 거부해 기자협회 제작거부와 노조 파업을 유발했다는 점이 증인 채택 사유가 됐다.

김연국 본부장은 국회 차원에서 청문회 개최를 결정한 것에 대해 “사실 늦었다. 이렇게 파괴될 때까지 국민의 대표 기관이 MBC 문제를 방치하고 무관심 속에 팽개친 게 아닌지 아쉽다”면서도 “지금이라도 공정방송 파괴, 공영방송 몰락 경위에 대해 청문회에서 낱낱이 밝혀질 수 있다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연국 신임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장은 지난 3일 서울 MBC 상암 사옥에서 열린 집회에서 “뉴스를 하지 않을 각오로 철저하게 MBC를 무너뜨리고 다시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사진=김도연 기자
김연국 신임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장은 지난 3일 서울 MBC 상암 사옥에서 열린 집회에서 “뉴스를 하지 않을 각오로 철저하게 MBC를 무너뜨리고 다시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사진=김도연 기자
환노위에서 야당 단독으로 MBC 노조탄압·삼성전자 직업병·이랜드 임금체불 청문회 개최 의결 후, 이에 반발한 자유한국당의 ‘상임위 보이콧’으로 파행됐던 국회가 각 당 지도부의 합의로 정상화되기 했지만 여전히 청문회 개최는 난항을 겪고 있다.

자유한국당 등은 국회 파행 원인을 홍영표 환노위 위원장에게 돌리며 청문회 의결 강행에 대한 위원장의 입장 표명이 선행돼야 청문회 대상과 방법, 시기 등을 논의할 수 있다는 태도다. 당초 24일로 예정됐던 MBC 청문회도 불투명한 상황이고 MBC 경영진이 증인 출석 요구에 불응할 가능성도 크다.

김재철 전 MBC 사장도 2012년 MBC 노조 파업과 관련한 국회 환노위 국정감사 및 청문회 불출석해 ‘국회에서의 증언·감정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벌금 800만 원 형을 받았다. 환노위는 지난해 국감 증인 출석 요구에 불응한 백종문 MBC 미래전략본부장도 고발키로 했다.

김 본부장은 “사장 후보 3명도 청문회에 나가느니 벌금을 낼 것이지만 그것만으로도 공영방송 사장과 임원으로 자격이 없다고 생각한다”며 “국회에 나가서 그동안 있던 일의 진실을 밝히고 책임지는 자세를 보여야 하는데 최근 뉴스를 보면 자신들의 증인 채택 이유만으로 뉴스를 사유화하고 개인 심기와 안위를 위한 도구로 전락했다”고 비판했다.

김 본부장은 이어 “구성원을 설득할 지도력도 없고 반목과 대립으로 200명을 타 부서로 내몰고 쫓아내며 수많은 직원을 해고하고 징계했던 장본인들이 사장을 다시 하겠다는 건 마치 박근혜 대통령 임기를 3년 더 연장하겠다는 것과 같다”면서 “MBC 보도나 회사가 공식적으로 낸 입장들을 보면 마지막 발악을 하고 있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2010년 39일 파업했지만 승리 못 했고, 2012년 170일 파업 역시 승리하지 못 했어요. 그 이후 MBC가 국민에게 많이 잊히긴 했지만 내부에선 치열하게 싸웠습니다. MBC를 다시 살릴 수 있는지 여부는 언론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지키는 시금석이자 카나리아이자 리트머스 시험지가 될 거라고 생각해요.”

‘카나리아’는 과거 광부들이 탄광 속에서 유독가스가 얼마나 퍼졌는지 판단하기 위해 데리고 들어갔던 새다. 우려했던 이들이 MBC 새 사장이 되고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 법안이 통과되지 못 한다면 MBC 구성원들의 ‘죽은 노동’은 계속될 것이다. 권력에 재갈이 물린 공영방송의 폐해는 현재 야당과 국민에게 고스란히 돌아갈 수밖에 없다. MBC는 지금 봄과 겨울의 기로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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