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 국정농단 사태' 진상을 규명하기에 70일은 턱없이 부족했다. 박영수 특검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 등을 구속하며 소기의 성과를 올렸지만 아직 손을 못 댄 수사 과제 또한 산적해있다. 정치권과 시민사회가 수사기간 연장 압박에 가세하고 있지만 연장 불발을 염두에 둔 특검팀은 수사 마무리에 속도를 내고 있다.

최순실·이재용·김기춘·우병우, 골라 잡은 특검

특검팀이 주목할만한 수사 성과를 보일 수 있었던 이유로는 수사 초기부터 견지해온 선택과 집중 전략이 꼽힌다. 특검팀은 혐의의 경중, 입증 수준 등을 고려해 방대한 수사 대상 중에서도 수사 우선 순위 대상을 일부 미리 선정해왔다.

▲ 우병우 전 민정수석이 2월21일 오후 서울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영장심사가 끝난 뒤 서울구치소로 가며 고개를 숙이고 있다.ⓒ민중의소리
▲ 우병우 전 민정수석이 2월21일 오후 서울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영장심사가 끝난 뒤 서울구치소로 가며 고개를 숙이고 있다.ⓒ민중의소리

△삼성그룹-최순실 간 뇌물 거래 수사 △문화계 블랙리스트 수사 △이화여대 학사 농단 수사 △'비선진료' 의료법 농단 수사 등은 그 결실이다. 법조계에서는 70일 한정된 수사 기간과 한정된 수사 인력 등의 조건에도 불구하고 기대 이상의 성과를 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특검이 지금까지 구속한 국정농단 주범은 총 13명이다.

이화여대 학사농단은 수사가 가장 빨리 마무리 된 사건이다. 특검팀은 이화여대 교무처장 등의 입학·학적관리 업무를 방해한 혐의로 최경희 전 이화여대 총장을 구속, △김경숙 전 신산업융합대학장△남궁곤 전 입학처장 △류철균 융합콘텐츠학과 교수 △이인성 의류산업학과 교수 등 4인을 구속기소했다. 핵심 피의자인 정유라씨는 입국을 거부한 채 현재 덴마크 올보르 구치소에 수감 중이다.

문화계 블랙리스트 수사도 마무리됐다. 특검은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의 혐의로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김종덕 전 문체부 장관 △정관주 전 문체부 1차관 △신동철 전 정무비서관 등 5인을 구속기소했다. 김 전 실장과 조 전 장관에겐 위증죄도 추가됐다. 블랙리스트 이행을 주도한 김상률 전 교육문화수석과 김소영 전 문화체육 비서관은 불구속 기소됐다.

삼성그룹 뇌물-특혜 거래와 관련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뇌물공여·횡령·위증 등 혐의로,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및 위증 혐의로 구속됐다. 문 전 장관은 삼성물산 대주주인 국민연금관리공단이 손해를 감수하면서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을 찬성케 한 혐의를 가지고 있다. 이 부회장은 삼성그룹 승계 작업에 특혜를 받기 위해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금부터 최씨의 딸 정유라씨(21·입건)에 대한 우회 지원까지 430여 억 원을 최씨 등에 뇌물로 제공한 혐의다. 박상진 삼성전자 사장도 뇌물공여 혐의로 피의자 입건된 상태다.

특검은 수사 기간 연장 불발에 대비해 우병우 전 민정수석에 대한 수사를 급히 마무리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검은 지난 19일, 우 전 수석을 소환한 지 하루 만에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했다. 특검은 우 전 수석에게 직권남용·직무유기·특별감찰관법 위반·국회 증언·감정 법 위반(불출석) 등 4가지 혐의를 적용했다.

대통령 ‘농단’, 정경유착 규명… 수사 연장 불발 시 모두 물거품

문제는 최씨 측근들의 의료법 농단 수사다. 최씨 단골 의원인 김영재 의원 대표 김영재씨의 아내 박채윤 와이제이콥스메디칼 대표만 뇌물공여 혐의로 구속됐다. 김 대표의 서울대병원 외래교수 위촉 특혜, 2015년 산업통상자원부 R&D 지원사업 선정 특혜 등 수사는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특검은 수사 기간 연장 여부에 맞춰 김 대표에 대한 신병 확보 방침을 정할 예정이다.

특검은 대통령 혈액 불법 반출, 대통령 비공식 진료·시술 등의 문제가 걸린 ‘비선진료’ 수사를 끝내기 위해선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특검은 김상만 전 대통령 자문의 및 이병석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장, 최씨 측근으로 알려진 이임순 순천향대 산부인과 교수 등을 각 소환 조사해왔다. ‘기치료 아줌마’로 알려진 백아무개씨도 특검에 소환된 바 있다. 비선진료 수사는 세월호 참사 당시 ‘대통령의 7시간’을 밝혀 줄 열쇠이기도 하다.

제대로 된 정경유착 수사를 위해서도 기간 연장은 필수적이다. 삼성 외에도 17개 대기업이 미르·K스포츠재단에 거액을 출연했다. 그 중 롯데그룹, SK그룹, CJ그룹, 부영 등은 정부에 구체적인 민원을 청탁한 혐의가 특정된 바있다. 이들은 특검의 수사 기간이 연장될 시 우선 수사 대상이다. 이규철 특검 대변인은 지난 17일 브리핑에서 “대기업에 대한 수사도 상당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면서 의지를 드러낸 바 있다.

▲ 영장실질심사를 마치고 나오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포커스뉴스
▲ 영장실질심사를 마치고 나오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포커스뉴스

특검법 수사대상인 ‘최씨 일가 부정축재’도 남아 있다. 최씨 일가 재산 문제를 계속 수사 중인 특검팀은 기간 중 수사 완료가 되지 않는다면 적절한 시점에 결과를 공개할 계획이다. 부정축재 수사는 기간 연장 불발 시 특검법에 따라 서울중앙지검에 자동 인계된다. 특검팀은 앞서 최씨 관련자 40여명의 재산 기록 등을 추적 조사한 바 있다.

이밖에도 우 전 수석 개인비리 추가 수사, ‘문고리 3인방’ 국정농단 방조 문제 등도 미완의 과제로 지적된다. 특검팀은 선택과 집중에 따라 ‘가족회사 탈세 등 비리’, ‘아들 군보직 특혜 비리’ 등 우 전 수석 개인 비리는 구속영장에 기재하지 않았다. 이재만·안봉근 등 박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한 청와대 비서관들은 검찰 특별수사본부 수사 및 헌법재판소 증인 출석에 응하지 않아왔다. 안 비서관의 경우 지난 20일 특검에 출석해 처음으로 수사 기관의 조사를 받았다. 두 비서관은 박 대통령과 최씨 관계, 비선진료 실태 등을 알고 있는 증인으로 지목된다. 정호성 전 비서관처럼 이들도 공무상비밀누설 혐의가 있을 거라 의혹이 제기되기도 한다.

정유라씨에 대한 검찰 수사는 수개월 후에야 개시될 가능성이 크다. 이규철 특검 대변인은 21일 정례브리핑에서 “송환결정이 나더라도 정유라가 이의를 제기하면 재판으로 넘어간다”며 “조속한 송환이 이뤄지긴 어려워 보인다”고 말했다. 덴마크 검찰은 이르면 3월 초 정씨에 대한 강제송환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송환 결정이 나면 정씨는 통상적으로 3심까지 가지 않는 덴마크 관례에 따라 2심까지 항소를 진행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탄핵 기각? 박근혜·김기춘·우병우의 귀환

가장 중요한 쟁점은 대통령 대면조사다. 수사기간이 연장되면 특검은 지금처럼 청와대와 치열한 밀고 당기기를 하지 않아도 대면조사에 나설 수 있다.

특검이 대통령 강제 수사에 애를 먹는 이유는 “대통령은 내란 또는 외환의 죄를 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재직중 형사상의 소추를 받지 아니한다”는 헌법 조항 때문이다. 3월 초 심판 결정을 예정한 헌법재판소가 대통령 탄핵을 인용한다면 박 대통령은 즉시 대통령 권한을 잃는다.박 대통령은 탄핵 인용 후 불소추특권을 주장할 수 없다.

수사기간이 일주일 가량 남았지만 기간 내 대면조사가 성사되지 않을 가능성도 농후하다. 지난 7일 청와대 측의 거부로 대면조사가 파행으로 치달은 이래 특검과 청와대 측은 아직까지 합의를 보지 못했다. 대통령 측은 반대 여론의 압력을 견디면서 오는 28일까지 버티기로 일관할 수 있다.

검찰이 특검의 수사 기조 대로 공소를 유지할 지도 문제다. 특검은 기간 내 완료하지 못한 수사 혹은 기소 여부를 결정하지 못한 건은 특검법 9조에 따라 서울중앙지검에 인계해야 한다. 서울중앙지검은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김수남 검찰총장 등 현 정부 인사의 영향력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대기업 정경유착 수사를 비롯해 정유라 업무방해 혐의, 최씨 일가 부정축재 등 추가 국정농단 혐의, 우 전 수석 개인비리 등에 대한 수사가 제대로 추진되지 않을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해 2월1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340회 국회(임시회) 3차 본회의, 국정에 관한 국회 연설을 위해 본회의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포커스뉴스
▲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해 2월1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340회 국회(임시회) 3차 본회의, 국정에 관한 국회 연설을 위해 본회의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포커스뉴스

헌재가 대통령 탄핵을 기각한다면 문제는 더 심각해진다. 대통령 대면조사 및 청와대 압수수색은 전면 불가능해지고 서울중앙지검은 수사 독립성을 지키기 더욱 어려워진다. 채동욱 전 검찰총장은 지난 14일 tbs 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과의 인터뷰에서 “김기춘·우병우 라인을 통해서 수사정보가 유출될 우려도 얼마든지 있다고 본다”면서 “쉽게 이야기해서 수사대상인 박근혜·최순실 측도 경우에 따라서는 구체적인 수사진행 상황을 알게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가 없다. 수사를 방해하는 가이드라인이 다시 작동할 수 있고 또 거꾸로 수사검사들에게 영향과 압박이 내려가게 될 것”이라 지적한 바 있다.

특검이 기소를 완료한 사건의 공소 유지에도 영향이 미친다. 김기춘 전 실장, 조윤선 전 장관, 이재용 부회장 등 국정농단 주범들에 대한 재판 독립성이 흔들릴 수 있다는 지적이다. 박 대통령의 국정농단 혐의에 대해 형사처벌할 가능성도 배제된다.

특검 기간 연장, 김진태·정세균·황교안 장벽 부딪혀

정치권은 한 발 늦게 대응해왔다. 지난 6일 박주민 의원이 대표로 특검수사 기간 연장을 골자로 한 특검법 개정안을 발의했으나 본회의 상정은 불가할 것으로 보인다. 법안을 심사하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21일 오전 김진태 자유한국당 간사 및 같은 당 의원들의 반대로 파행에 이른 상태다. 야당이 뒤늦게 개정안을 발의했으나 실효성이 없는 상황인 것이다.

정세균 국회의장이 개정안을 본 회의에 직권상정할 가능성도 낮다. 정 의장은 지난 19일 전북 전주에서 열린 사단법인 '사람과 미래' 창립총회에서 “직권상정의 요건을 보면 4당이 국회의장에게 직권상정을 한 뜻으로 요청해야 가능한데, (현재 상황을 보면) 어렵지 않겠느냐”며 부정적 의사를 보였다.

매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리는 박근혜대통령 탄핵을 위한 범국민대회는 특검 수사 기간 연장을 구호로 외치고 있다. ‘박근혜정권퇴진 비상국민행동’은 지난 20일, 2월11일부터 10여일 간 온·오프라인을 통해 모은 약 5만1600명의 특검 연장 촉구 서명서를 권성동 국회 법사위 위원장에게 전달했다.

대통령 탄핵의 키는 헌재만이, 특검 수사 기간 연장의 키는 황교안 권한대행만이 가진 상황에서 여론은 이들의 결정을 주목하고 있다. 황 대행이 특검의 수사 기간 연장 요구를 거부할 가능성이 큰 가운데 더욱 관심이 쏠리는 쪽은 헌재다. 헌재가 탄핵 기각 결정을 내린다면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 사태’의 진상규명은 물거품으로 돌아갈 공산이 크다.

헌재의 심판 결과를 낙관할 수 없다는 지적은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대통령 측이 오는 3월13일 이정미 재판관의 퇴임 후인 ‘7인 재판관 체제’를 기도하고 있다는 점에서다. 헌재는 대통령측의 추가 증인 신청 및 증거 신청을 거부하고 박 대통령 출석 여부를 오는 22일까지 밝힐 것을 요구하는 등 재판 지연 시도에 끌려다니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청와대 측은 박 대통령 출석을 이유로 헌재 최종변론기일을 3월 2~3일 경으로 연기해달라 요청하고 있다. 이같은 상황에서 끝까지 경계를 놓을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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