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 한겨레와 레진 엔터테인먼트(이하 레진)에서 연재했던 김보통 작가의 웹툰 ‘D.P 개의날’(이하 ‘D.P’)이 영화로 만들어진다는 소식이 나왔다. ‘D.P’는 탈영병을 잡는 군인인 헌병을 소재로 사용한 작품으로 군대에서 탈영까지 몰리는 젊은 남성들의 고민을 그렸다. 사회적 메시지가 강한 만화였던 ‘D.P’는 2015년 연재를 시작한 이래 1000만 조회수가 나왔다.

정치적 메시지와 사회적 현안을 다룬 웹툰이 영상화되는 것은 최근의 일만은 아니다. 강풀 작가의 ‘26년’과 같은 경우도 동명의 영화로 2012년 개봉됐다. ‘26년’은 5.18 광주민주화 항쟁을 소재로 한 만화다. 2014년 드라마로 만들어져 ‘미생’ 신드롬을 불러일으켰던 윤태호 작가의 ‘미생’ 역시 동명의 웹툰이 원작이다. 일상적 직장생활을 다뤘지만 인턴을 거쳐 비정규직으로 생활하는 장그래의 이야기는 수많은 비정규직들의 공감을 샀다. 네이버에서 연재되는 최규석 작가의 ‘송곳’도 노동문제를 전면적으로 다뤘고 JTBC에서 드라마로 나왔다. 2015년 연재를 시작한 ‘송곳’은 드라마가 종영된 이후에도 현재 네이버에서 5부를 연재하고 있다.

▲ 영화로 제작되는 김보통 작가의 'D.P 개의날'은 탈영병을 잡는 헌병의 이야기다. 사진=레진코믹스 제공.
▲ 영화로 제작되는 김보통 작가의 'D.P 개의날'은 탈영병을 잡는 헌병의 이야기다. 사진=레진코믹스 제공.
꾸준히 사회적 소재를 다룬 웹툰이 등장하고 인기를 얻는 이유는 사회적 메시지가 담긴 만화를 원하는 독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레진 관계자는 “웹툰은 드라마나 예능 등 쉴 틈 없이 연속적으로 진행되는 다른 콘텐츠와 달리 감상할 때 차분히 생각을 정리하거나 자신을 되돌아볼 수 있다”며 “공감을 잘 느낄 수 있는 매력 때문에 정서적 위안과 위로를 원하는 젊은이들이 웹툰을 많이 찾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정치나 사회현안을 다룬 웹툰을 크게 분류하자면 직접적으로 정치나 역사, 사회를 다룬 웹툰과 일상적이면서도 그 안에 사회적 메시지를 포함한 만화로 나눌 수 있다. 뚜렷하게 ‘정치‧사회 만화’로 분류할 수 있는 작품으로는 네이버에서 연재 중인 ‘송곳’(작가 최규석)이나 ‘동네 변호사 조들호’(작가 해츨링), 다음에서 연재 중인 ‘곱게 자란 자식’ (작가 이무기), ‘동재네 식구들’(작가 김민재), 레진 코믹스의 ‘D.P 개의 날’(작가 김보통), ‘조국과 민족’(작가 강태진)등이 있다.

▲ 네이버 웹툰 '송곳'의 장면들. ⓒ네이버
▲ 네이버 웹툰 '송곳'의 장면들. ⓒ네이버
‘동네변호사 조들호’는 능력 있는 검사였던 조들호가 대기업의 비리를 밝히려다 노숙자 신세가 되고,  이후 형편이 어려운 이들의 변호사가 된다는 설정이다. KBS2에서 배우 박신양을 주인공으로 드라마로 방영됐다. ‘곱게 자란 자식’은 위안부 피해자를 소재로 했고 ‘동재네 식구들’은 프레스 금형 공장에서 일하는 국내 노동자와 외국인 노동자의 이야기를 다뤘다. ‘조국과 민족’은 안기부 요원이 간첩을 조작하는 사건을 다뤘다.

성상민 만화평론가는 ‘송곳’과 ‘조국과 민족’을 추천했다. 성상민 평론가는 ‘송곳’에 대해서는 “2000년 초중반 당시 노동상황을 최규석 작가 특유의 리얼리즘적 화법을 통해 사건을 모르는 사람들이 봐도 왜 이 사람들이 분노했는지 알 수 있게 만든다”는 평을, ‘조국과 민족’에 대해서는 “안기부 요원이 간첩을 잡는게 아니라 간첩을 만들어내는 이상한 상황을 블랙코미디처럼 그리며 한국의 1970~80년대 상황을 위트있게 보여준다”는 평을 남겼다.

▲ 강태진 작가의 '조국과 민족'은 안기부 요원이 간첩을 조작하는 사건을 다룬다. 사진=레진코믹스 제공.
▲ 강태진 작가의 '조국과 민족'은 안기부 요원이 간첩을 조작하는 사건을 다룬다. 사진=레진코믹스 제공.
뚜렷하게 정치‧사회 만화로 분류되진 않지만 소수자의 일상을 다룬 웹툰도 묵직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최근에는 여성‧성소수자‧장애인의 일상을 다룬 웹툰도 다양하게 연재되고 있다. 네이버에서 연재 중인 ‘내ID는 강남미인’(작가 기맹기)의 경우, 여성의 성형을 두고 벌어지는 여성혐오 문제를 다룬다. 작품 중 소위 ‘자연미인’으로 분류되는 이가 이런 현상을 비판한다는 점에서 또 다른 논란이 벌어지기도 했지만 성형과 여성의 문제를 깊이 있게 다뤘다는 평이다.

레진 코믹스의 ‘단지’(작가 단지)의 경우도 젊은 여성이 가정에서 겪은 차별을 다뤘다. ‘단지’는 친오빠와 달리 차별을 받은 여성이 가정에서 받은 학대와 폭력을 고발했다. 단지 작가는 “수많은 '단지'들에게 위로가 됐으면 한다"며 "동시에 이 만화가 우리 사회에서 가정 내 폭력 문제를 바라보고 생각할 수 있는 기회로 작용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네이버에서 최근 연재를 마친 ‘나는 귀머거리다’(작가 라일라)도 한국에서 청각장애인이 살아가는 일상을 그리며 호응을 얻었다. 다음에서 2014년 연재가 완료된 ‘HO!’(작가 억수씨)도 청각장애인이 주인공인 로맨스 웹툰으로 ‘연옥님이 보고계셔’, ‘오늘의 낭만부’로 인기를 끈 작가 억수씨 특유의 섬세한 대사와 스토리로 호평을 얻었다.

▲ 라일라 작가의 '나는 귀머거리다'의 한 장면.
▲ 라일라 작가의 '나는 귀머거리다'의 한 장면. ⓒ네이버
네이버에서 완결된 ‘모두에게 완자가’(작가 완자), 다음에서 연재 중인 ‘이게뭐야’(작가 지지), ㅍㅍㅅㅅ의 ‘주간 퀴어 라이프’ 등도 정치사회 현안을 직접적으로 다루지는 않지만 성소수자의 일상을 보여주면서 자연스럽게 사회적 편견이나 그 속에서 주인공들이 겪은 고민을 보여준다.

네이버 웹툰 관계자는 “창작자들이 만드는 모든 작품이 당대를 사는 독자들과의 공감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며 “뚜렷하게 정치‧사회 만화로 분류되지 않는 생활만화의 경우에도 각 에피소드마다 사회현상을 녹여서 보여준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송곳’처럼 뚜렷하게 정치나 사회를 다룬 만화로 분류되는 웹툰도 있지만 직장생활을 다룬 ‘가우스 전자’(작가 곽백수)의 경우도 대기업 안에서 일어나는 사회현상이나 젊은 회사원의 고충을 때때로 풍자한다”고 덧붙였다.

정치나 사회 현안을 다루는 웹툰은 영화나 드라마 등 영상화로 ‘멀티 유즈’(Multi use)가 용이하다는 점에서도 꾸준히 인기를 얻을 것이란 예상이 나온다. 

성상민 만화평론가는 “최근 정치적 사안을 다룬 ‘더 킹’이나 ‘재심’ 등 영화가 계속해서 개봉하는 이유는 한국의 문화 소비자들이 사회적 고발이나 답답한 현실을 다룬 콘텐츠를 계속해서 원한다는 증거”라며 “웹툰 역시 이러한 흐름에서 자유롭지 않다”고 분석했다. 성 평론가는 “이러한 흐름과 수요가 분명하기에 네이버에서 ‘송곳’이 연재되는 현상도 나왔다”며 “만화 플랫폼이나 작가들도 이런 지점을 눈여겨보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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