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당에 유력한 대선주자가 너무 많아서 누가 유력하다 한 분을 얘기하면 다른 분들이 섭섭해할 것 같다”

정우택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지난 17일 원내대책회의 직후 기자들과 만나 한 말이다. ‘대선주자가 너무 많다’ 는 말은 맞다. 자유한국당에서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한 후보는 4명이며 잠재적 후보군까지 합치면 10명에 이른다. 

하지만 ‘유력한 대선주자가 너무 많다’는 것은 사실과 다르다. 16일 여론조사전문기관 리얼미터가 MBN, 매일경제 의뢰로 2월13일부터 15일까지 전국 19세 이상 유권자 1515명을 대상으로 집계한 차기 대선 지지도 조사에서 한국당 후보는 한 명도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그야말로 0% 지지율이다.

경선 등을 시작하게 되면 곧 탄핵 인용처럼 비칠 수 있어 후보들이 몸을 사리고 있는 점을 고려해도 낮은 수치다. 그나마 홍준표 경남도지사가 유일하게 1.3% 지지율을 기록했는데 홍 지사는 재판에 넘겨져 당원권이 정지된 상태다.

▲ JTBC 썰전 방송화면 갈무리
▲ JTBC 썰전 방송화면 갈무리
1. 생애 4번째 대선 출마, 이인제 
자유한국당에서 제일 먼저 대선 출마를 선언한 이는 이인제 전 새누리당 최고위원이다. 이 전 최고위원은 지난 달 15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선 전 조기 개헌은 불가능하고 대통령이 되면 6개월 안에 분권형대통령제로 바꾸겠다"고 밝혔다. 

이어 이 전 최고위원은 “경제·교육·노동·복지 등 내정은 내각제로, 외교·안보·국방·통일 등 외정은 직선 대통령으로 권력구조를 바꾸어야만 한다"면서 "다음 대통령 임기도 단축해 2020년 3월에 대선을 하고 4월에 총선을 하면 정치가 정상궤도에 진입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공약보다 관심을 받은 건 그의 이력이다. 이 전 최고위원의 대선 출마는 이번이 4번째다. 그는 1997년 국민신당을 창당해 대선에 출마했으나 3위에 그쳤다. 이어 2002년 새천년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중도 자진사퇴했고, 2007년에는 민주당 대선후보로 출사표를 던졌지만 낙선했다. 

15번이나 당적을 옮기면서 ‘철새’라는 오명을 얻기도 했지만 그런 과정에서 6선을 하며 누리꾼들 사이에서는 ‘피닉제’라는 별명도 얻었다. 피닉제는 불사조 피닉스와 이인제 전 최고위원의 합성어다. 이번 대선 출마를 두고 누리꾼들은 “역시 죽지 않는 피닉제, 또 살아났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 

▲ 경기도 평택시 오산공군기지에 있는 공군작전사령부를 방문한 원유철 자유한국당 의원. 사진=원유철 의원실
▲ 경기도 평택시 오산공군기지에 있는 공군작전사령부를 방문한 원유철 자유한국당 의원. 사진=원유철 의원실
2. 원유철, 단톡방 이름도 ‘핵유철’ 
두 번째 타자는 원유철 의원이다. 원 의원은 지난 6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50대의 젊은 역동성과 강한 추진력으로 ‘국민 모두가 편안한, 강한 대한민국’을 만들겠다. ‘든든한 대통령’이 되겠다”면서 “강해야 살아남는다. 정권교체도, 세대교체도, 시대교체도 살아남는 것이 우선돼야 한다”고 말했다. 

‘강해야 살아남는다’ 등에서 볼 수 있듯이 원 의원은 안보이슈에 집중하고 있다. 이미 지난해 8월부터 ‘북핵 해결을 위한 자유한국당 의원모임’(핵포럼)을 출범시켰고 북한 이슈가 발생할 때마다 ‘한국형 핵무장’을 언급하며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원 의원실과 기자들이 모인 카카오톡 단체방 이름도 ‘핵유철’이다. 

원 의원은 “한국이 핵무장을 원하는 것이 아니며(No Ambition), 북한 위협만을 대상으로 해서 다른 국가에 위해가 되지 않고(No Harm), 북핵 해결시 언제든 핵을 포기하겠다는(No Addiction) ‘3불(不)원칙’을 견지하겠다” 밝혔다. 하지만 그럼에도 핵무장은 현실 가능성이 낮다는 게 전문가들의 일반적인 지적이다. 

▲ 김진 전 중앙일보 논설위원. 사진=이치열 기자
▲ 김진 전 중앙일보 논설위원. 사진=이치열 기자
3. ‘평생 언론인’ 소원도 져버렸다, 보수논객 김진
대표적인 보수논객인 김진 전 중앙일보 논설위원은 “좌파정권을 막겠다”는 것을 강조하며 출마를 선언했다. 김 전 위원은 15일 자유한국당에 입당, 대선을 출마하며 “저의 소원은 평생 언론인으로 남는 것이었다”며 “(그런데 이 나라에는) 혼란을 수습하고 새로운 미래를 열어갈 사람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김 전 위원은 “김정은 정권은 공포와 광기의 정권”이라며 “그런데도 좌파세력은 국가안보를 흔든다. 김정은 좌파정권을 환영할 것이고 핵과 미사일을 마구 휘두를 것”이라고 말했다. 김 전 위원은 안희정 충남도지사에 대해서는 ‘위장술’이라며 “안희정 정권이 아니라 좌파정권”이라고 못박았다.

김 전 위원의 정치적 행보는 이제 시작이다. 김 전 위원의 성향을 보기 위해서는 그의 글을 볼 수밖에 없다. 김 전 위원은 지난해 10월5일 MBC ‘100분토론’에서 고 백남기 농민 사건과 관련해 “폭력시위에 가담했던 시위자 한 사람이 물대포에 맞아 사망했다고 경찰관을 국회 청문회에 세우겠다는 게 야당이 할 일인가”라고 말했다.

2013년에는 시민단체가 발표한 ‘4대강 사업 찬동인사 인명사전’에 이름을 올렸다. 김 전 위원은 2009년 2월2일자 칼럼에서 “MB는 기본적으로 물의 남자다. MB는 죽어있는 청계천을 되살려 대통령이 됐고 (중략) 대운하가 죽는가 싶더니 경제 위기를 맞아 4대강이 살아나려 하고 있다”고 썼다. 

▲ 13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타임스퀘어에서 열린 자유한국당 전국위원회에 참석한 안상수 의원이 안건을 상정하며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사진=포커스뉴스
▲ 13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타임스퀘어에서 열린 자유한국당 전국위원회에 참석한 안상수 의원이 안건을 상정하며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사진=포커스뉴스
4. ‘보온병 포탄’ 안상수가 아닌, ‘인천시장’ 안상수
자유한국당에서 네 번째로 출마를 선언한 이는 안상수 의원이다. 일부 언론에서는 “지난 2011년 연평도를 방문해 포격으로 부서진 민가를 둘러보던 중 보온병을 두고 ‘포탄’이라고 발언해 빈축을 샀다”고 보도하기도 했지만 그 안상수는 창원시장이다. 안상수 의원이 거론될 때마다 나오는 오보다. 

안 의원은 21일 인천 경제자유구역청에서 열린 대선출마 선언식에서 “고용 없는 성장이 일상화되는 현실에 맞서 일하고 싶은 국민에게 일자리를 만들어주는 대통령이 되겠다”면서 “300만 개 일자리를 창출하고 실업률 제로를 달성하기 위해 전국에 일자리도시 건설을 약속한다”고 말했다. 

안 의원의 대선 출마에 대해 정우택 원내대표는 “안 의원은 우리나라 굴지의 대기업 CEO를 하고 인천시장 두 번, 국회의원은 세 번을 했다"면서 치켜세웠다. 하지만 안 의원은 인천시장 시절 수조원의 부채를 만들었다는 비판을 받은 바 있다. 

▲ 홍준표 경남도지사(왼쪽)과 이완구 전 국무총리(오른쪽). ⓒ 연합뉴스
▲ 홍준표 경남도지사(왼쪽)과 이완구 전 국무총리(오른쪽). ⓒ 연합뉴스
5. 당원권 정지된 홍준표, 바른정당에서도 ‘러브콜’
아직 출마 선언을 하지는 않았지만 여론조사 결과 유일하게 1% 이상의 지지율을 받은 홍준표 경남도지사를 빼놓을 수 없다. 서울고법 형사2부(이상주 부장판사)는 ‘성완종 리스트’에 연루돼 1심에서 징역형을 선고받은 홍 지사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홍 지사에게 돈을 전달했다는 진술에 신빙성이 없다는 판단에서다.

홍 지사의 몸값은 날로 오르고 있다. 주호영 바른정당 원내대표는 21일 오전 불교방송에서 “친박패권주의를 배격하는 홍 지사의 노선이 우리 정당과 매우 가깝다”면서 “(한국당) 당원권이 정지돼 있는데 (한국당) 판단이 있고 난 다음에 바른정당 합류 가능성이 검토되지 않겠는가 이렇게 보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당은 발끈하는 모양새다. 정 원내대표는 21일 “앞집에서 자꾸 자기네 사람이라고 하는 건 정치 도의에도 신의에도 맞지 않다”고 말했다. 홍 지사는 대선 출마와 관련해 20일 경남도청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출마를 한다면 후보가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대통령이 되기 위해 출마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상 홍 지사의 대권 행보는 이제부터다. 

▲ 태극기집회에 참가한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 사진=김문수 페이스북
▲ 태극기집회에 참가한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 사진=김문수 페이스북
6. 태극기 휘날리며,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는 ‘탄핵 반대’ 입장을 강하게 내세우며 입지를 확보하려는 전략을 세운 듯 보인다. 김 전 지사는 13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대선 출마를 언제 선언할 거냐”는 질문에 “탄핵이 돼서 공석이 되면 바로 선거지만 탄핵이 기각돼버리면 12월 선거인데 지금부터 날뛸 필요없지 않습니까”라고 답했다. 

김 전 지사는 대통령 탄핵 반대를 위한 ‘태극기 집회’에 참석해 야당 후보들을 향해 날을 세웠다. “안희정 (충남지사)은 삼성 30억원 등 수십억원을 받아 감옥에 갔던 사람”이라면서 “노무현 전 대통령은 왜 돌아가셨나. 바로 비리와 부정때문이다. 다 그런데 박근혜보다 더 깨끗한 사람이 있었느냐”고 한 것. 

김 지사는 “12월에 선거가 정상적인 법이고 탄핵이 만약 인용되면 선거가 더 당겨지는 것”이라며 “(대선 출마 여부는) 아직 결정 안 했다”라고 말했지만, 사실상 탄핵을 반대하는 입장을 공고히 하며 극우층의 지지를 끌어 모아 대선 주자 후보로서 입지를 다지려는 ‘역설적인 전략’으로 보인다. 

밑져야 본전이라는 심리로 대거 출마선언
지지율 0% 후보들의 난립은 ‘밑져야 본전’ 이라는 심리에서 만들어진 상황으로 볼 수 있다. 소종섭 정치평론가는 “단기적으로 봤을 때는 무주공산인 상황에서 대선 출마 선언을 통해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다”면서 “정치인 입장에서 이름이라도 한 줄 나오면 홍보효과가 있다. 하지만 이들이 완주할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소 정치평론가는 “자유한국당은 돈, 조직, 당사 등 물적토대가 있는 당”이라며 “만약 이들 중 한 명이 자유한국당 대선 후보로 결정될 경우, 대선의 승패에 큰 영향은 주지 못하겠지만 한 정당의 대선후보라는 정치적 경험을 가질 수 있기 때문에 이런 상황이 만들어진 것 같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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