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으로 학문이라고 하는 방식 속에서도 우리는 통섭이라는 21세기에 새로운 학문의 취합과 통섭이라고 하는 관점을 우리는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사물을 의심하고 그것에 대해서 분석을 하고 해부하는 방식이 20세기까지의 우리가 바라보는 지성과 철학이었다면 지금은 그것을 분해할 수 없는 그 요소를 모두 통섭의 관점에서 받아들일 때 그 온전한 객관적 진리에 갈 수 있다라고 하는 일정한 학문과 학문을 대하는 태도의 변화들 아니겠습니까?”

“20세기의 지성은 그런 방식을 썼으나 21세기의 지성일 수 있겠는가. 21세기의 우리의 지성사의 변화는 좀 더 통합적 관점을 띠는 것이 옳다. 그런데 예를 들면, 4대강 사업을 제가 예를 들어서 말씀을 올리겠다. 4대강 사업은 나쁜 사업이다 라고 정의를 내리는 것보다는 홍수조절, 그리고 생태 수환경의 어떤 개선, 이런 취지로 4대강 사업을 하신다고 했다. 예, 그럼 좋습니다. 그런 취지로 4대강 사업을 하시나 보다라고 받아들인다.”

다음은 지난 20일 안희정 충남도지사가 JTBC 뉴스룸에 출연해 손석희 앵커와의 질의에 답한 답변 일부다. 최근 논란이 제기된 자신의 발언인 ‘선의’에 대한 설명을 하는 과정에서 나온 발언이다.

안희정 충남도지사는 이명박 전 대통령의 4대강 사업을 ‘선의’로 받아들인다는 설명을 하기 위해 20세기와 21세기의 학문의 방식을 비교해가며 ‘통섭’이라는 관점까지 차용해야했다.

최근 안희정 충남도지사는 박근혜 대통령과 이명박 전 대통령이 ‘선한 의지’를 가지고 정책을 추진했다고 표현했다. 안 지사는 지난 19일 오후 부산대에서 열린 ‘즉문즉답’ 행사에서 전직 대통령에 대한 평가를 내놓으면서 “그 분들도 선한 의지로 없는 사람과 국민 위해 좋은 정치 하려고 했는데 뜻대로 안 됐던 것”이라고 말했다.

안 지사는 이날 박근혜 대통령에 대해 “K재단, 미르재단도 평창 동계올림픽을 앞두고 사회적인 대기업들의 많은 좋은 후원금을 받아서 동계올림픽을 잘 치르고 싶어하는 마음이실 것이라고 전 생각한다”며 “그러나 그것이 법과 제도에 따르지 않으면 이런 문제가 발생한다”고 부연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해서도 “747(공약) 잘해보고 싶었을 것”이라며 “그 분이 동원할 수 있는 방법은 현대건설 사장님 답게 24조원을 돈을 동원해서 국민들이 아무리 반대해도 국민을 위해서 4대강에 확 집어넣는 것이다. 선한 의지로 받아들이자”며 설명했다. 이날 강연 자리에서는 이러한 안 지사의 발언을 듣고 관객들의 웃음이 이어졌고 이 때문에 오히려 안 지사의 발언이 ‘조롱’의 의미가 아니었냐는 지적도 나왔다.

안 지사의 대변인격인 박수현 전 의원은 당시 안 지사 발언에 대해 “관객들은 이미 무슨 말을 할지 예상하고 웃음부터 터트린 상태였다”며 “그런 분위기에서 반어법적 비판을 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 지난 20일 JTBC 뉴스룸 화면 갈무리.
▲ 지난 20일 JTBC 뉴스룸 화면 갈무리.
손석희 앵커는 “아마 안 지사께서도 4대강 사업이 문제가 있다고 보신 모양이죠. 그러니까 조롱이라고 표현하신 것 같은데”라고 질문했다. 이에 재차 안희정 지사는 “20세기의 지성사와 우리가 지성을 가졌다라고 하는 것이 의심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했다면 어떤 주장과 사실에 대해서 의심하고 분석하는 것으로부터 우리가 20세기의 지성사를 이해했다”고 응답한다. 단순히 ‘조롱’ 혹은 ‘해학’적 관점의 표현이 아닌, 안 지사가 자신의 정치적 신념과 경험에 근거한 주관을 내비치는 과정에서 ‘선의’와 ‘통섭’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고 봐야 한다.

많이 알려진 바대로 안희정 충남도지사는 야당보다 여당 의석이 훨씬 많은 충남도의회의 협치에서 나름의 성공을 거뒀다. 최근 뭇매를 맞은 ‘대연정’ 발언도 약 10년 간 그가 겪었던 충남도 내에서의 경험이 바탕이 됐다. 인문·사회과학과 자연과학이라는 성격이 다른 학문 분야를 한데 묶어 새로운 것을 만들어낸다는 개념인 ‘통섭’을 꺼내든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야당과 여당이라는 정치적 이념이 다른 두 개의 정당을 하나로 아울러 충남도정을 이끈 ‘대연정’은 안 지사에게는 또 다른 의미의 ‘통섭’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과연 많은 국민들이 안 지사의 말처럼 이명박 대통령이 추진했던 4대강 사업과 박근혜 대통령의 미르·K스포츠재단에 대해 ‘선의’라고 판단할까.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대국민담화에서 기업인들이 선의로 두 재단에 자금을 내놓았다고 말했다. 특검이 조사 중이지만 지금 결과적으로는 삼성 등 대기업들도 일부 이익을 챙기는 수단으로 활용됐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미르·K스포츠재단의 출연 과정이 선의에서 시작됐다는 안 지사의 관점이 국민들에게는 쉽게 받아들여지기는 어려운 이유다.

▲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해 11월 대국민담화를 발표했다. 사진은 YTN 방송 화면 갈무리.
▲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해 11월 대국민담화를 발표했다. 사진은 YTN 방송 화면 갈무리.
미르·K스포츠재단의 미심쩍은 움직임은 ‘최순실 게이트’ 국면을 불러왔다. 당시 새누리당의 주장처럼 초반에는 ‘의혹과 의심’ 정도로 시작됐을지 몰라도 결과적으로는 그러한 ‘의심’을 파헤치는 과정을 통해 국정농단 실체가 뿌리채 뽑혀 올라왔다. 안 지사의 말처럼 “의심하고 분석하고 해부하는 방식이 20세기까지의 우리가 바라보는 지성과 철학”이라는 관점으로 ‘최순실 게이트’를 논할 수 있는 것인지 의문이 드는 이유다.

특히 ‘최순실 게이트’와 같은 국민적 공감대가 높은 사안에서조차 그들의 선의를 받아들이고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식의 관점은 안 지사의 한국 사회 적폐 청산과 현안 해결 의지조차 의심케 한다. 문재인 전 대표가 21일 안희정 지사의 발언에 대해 “불의에 대한 뜨거운 분노 없이 어떻게 정의를 바로 세우겠느냐”고 비판한 것은 이러한 맥락에서 적절한 지적이었다.

지난 20일 여론조사업체 리얼미터가 MBN·매일경제 의뢰로 13~17일 전국성인 2521명을 대상으로 조사해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관위 홈페이지 참조) 안희정 충남도지사의 지지율은 20.4%로 나타났다. 반기문 전 총장의 대선 불출마 선언 이후 안 지사의 충남도지사의 지지율은 꾸준히 상승하고 있는 모습이다.

안 지사는 지지율에 연연하지 않는 행보를 보여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으로 예상된다. 안 지사가 최근 지지율 상승세 때문에 그러한 행보를 보이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JTBC에 출연해 안 지사는 “똑같은 이야기는 2013년도에도 제 페이스북에 써놨다”고 설명했다. 

▲ 안희정 충남도지사. 사진=포커스뉴스
▲ 안희정 충남도지사. 사진=포커스뉴스

안희정 지사의 말과 행동은 충남도지사로서 대연정에 성공한 경험, 그보다 더 이전에는 80년대 “짱돌을 들고” 거리에 나섰다가 자신이 믿었던 선과 악의 구도가 무너지는 경험에서 나왔을 것이다. 과거 새누리당이든 심지어 박근혜 대통령이라도 선과 악으로 평가하지 않고 불법성만을 판단하려는 태도는 여와 야로 골이 깊게 패인 한국 정치사에서 보기 힘든 합리적인 모습이기도 하다. 지지율 상승의 배경에는 민주당 소속 후보임에도 이러한 유연성을 지닌 인물이라는 중도·보수 성향 유권자들의 판단이 배어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21일 안 지사는 자신의 '선한 의지'발언에 대해 "아주 죄송하게 생각한다"면서도 "어떤 분의 말이라고 해도 말씀의 액면대로 선의로 받아들여야만 대화도 할 수 있고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는 취지로 말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분노라는 요소를 적극 표출하기보다는 결과적으로 제가 도전하는 일도 대한민국 최고 책임자로서 대한민국의 모든 갈등을 해결하려는 사람"이라며 "그 자리에 도전하려는 입장에서 모든 사람을 따뜻하게 이해하고 대화로 문제를 풀려는 제 자세에 변화는 없다"고 밝혔다. 안 지사는 JTBC 뉴스룸 방송에서도 이러한 발언이 자신의 정치 철학과 관점에 대한 설명이라고 말했다.

정치인이기 때문에 정치인으로서의 관점을 밝힌 것이라는 안 지사의 입장을 ‘선의’로 받아들이더라도,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통섭’이라는 철학적 사변 차원의 논의를 꺼내든 안 지사의 발언은 정치인으로서의 언어라고 보기는 힘들다. 유권자들에게 향후 분명한 정책 행보보다 찬반 양쪽을 모두 고려한 ‘통섭’이라는 태도를 취할 것이란 예상 이외에는 정책 방향을 가늠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손석희 앵커도 이날 방송에서 “대선에 나가시는 분이고 국정을 책임지실 분이기 때문에, 만일에 당선이 되신다면, 국민으로서는 그분이 각종 정치적 현상이라든가 사회적 현상에 대해 어떻게 접근하느냐는 굉장히 중요한 문제”라며 “그것이 단지 ‘나는 정치인이고 정치인의 영역에서 얘기하는 것이야’라고 얘기한다면 그걸 시민사회에서 받아들일 수 있겠느냐 하는 문제”라고 지적했다.

결과적으로는 안 지사의 선의와 합리성, 통섭 등 모호한 입장만으로는 정당 소속 정치인 이상으로 한 국가를 이끌어 갈 대통령으로서의 비전을 판단하기는 쉽지 않다. 촛불 국면을 지나 탄핵 심판을 기다리는 유권자들은 유력후보 안 지사의 철학적 사변의 깊이를 보고 싶은 것이 아니라, 당장 현실 속 먹고 사는 문제의 해결방안과 의지를 듣고 싶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분석해야 이해할 수 있는 상황은, 박근혜 대통령 임기와 함께 끝나야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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