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백개의 카메라가 한 사람의 입을 주목하고 있다. 고개를 든 그는 크게 도시 이름을 외친다. 적막했던 장내는 순식간에 환호로 가득찬다. 화면은 곧 발표 상황을 중계를 통해 지켜보던 시민들의 모습으로 넘어간다. 수백명이 자신의 일처럼 박수를 치며 기뻐한다. 

누구의 아버지는 그곳을 방문하는 관광객에게 아버지가 물을 팔수도 있는 일이고, 누구의 누이는 경기 진행요원으로 일할 수도 있을 법하다. 하지만 몇명이 일하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누구는 수만명이라 하고 그에 따른 이익은 수조원에 달할 것이라 한다. 우리 모두의 경사에 흥분이 넘쳐난다. 하지만 살던 곳에서 쫓겨나는 가정이 몇이나 될지, 숨 막히는 노동착취에 시달리게 될 이가 몇명에 이를지, 과도한 언론통제와 치안유지정책으로 몇명이나 감옥에 갇히게 될지 누구도 말해주지 않는다.

'세계인의 스포츠 축제'라고 불리는 월드컵, 올림픽 등이 열리는 2년마다 경기장 스펙에서부터 출전 선수와 경기 결과, 각국의 응원열기, 국가 순위에 이르기까지 각종 뉴스가 언론을 통해 쏟아진다. 아시안게임, 동계올림픽, 유니버시아드까지 더하면 그 주기는 더욱 짧아진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강제퇴거-노동착취-공권력 남용-표현의 자유 탄압으로 이어지는 인권침해가 필연적으로, 또 반복적으로 발생한다는 사실은 주목받지 못한다. 대형 스포츠 행사는 인권 취약계층에 재앙으로 다가온다.

▲ 베이징 올림픽 관련 개발에 의한 철거 현황(2000~2008년)  출처 : ‘주거권을 위한 공정한 시합(Fair play for housing rights)’ 보고서
▲ 베이징 올림픽 관련 개발에 의한 철거 현황(2000~2008년)  출처 : ‘주거권을 위한 공정한 시합(Fair play for housing rights)’ 보고서

스위스의 주거권과 퇴거 센터가 발표한 ‘주거권을 위한 공정한 시합(Fair play for housing rights)’ 보고서에 따르면 1988년 서울부터 2008년 베이징까지 6번의 하계 올림픽으로 인해 살던 곳에서 강제적으로 쫓겨난 사람이 200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올림픽, 월드컵 등은 단순한 스포츠 행사를 넘어 도시 재개발의 수단으로 사용된다. 당국은 스포츠 행사와 연관된 주택 개발과 경기장 건설에 어마어마한 돈을 쏟아 붓지만, 이에 따르는 수익을 취하는 사람은 기득권에 한정된다. 경기장 건설을 위해 철거가 이뤄지는 곳은 저소득층 가구가 거주하는 지역이 다수를 차지하며, 철거는 경기 개최일이라는 '데드라인'에 맞추기 위해 토론과 주민투표 등의 민주적 절차는 생략된 채 무리하게 강제로 집행되곤 한다. 

당국에서는 낡고 오래된 지역 주택을 재개발한다는 장점을 내세우기도 하지만, 해당 지역에 새로 지어진 주택은 기존에 거주하던 주민이 감당할 수 없는 가격으로 상승해 입주를 어려운 경우가 대다수다. 2012년 런던의 사례에서 보듯이 당국이 저소득층을 위해 공급하겠다던 공공주택의 물량은 약속했던 절반 수준에서 최대 31%로 기존 계획에 못 미치고 있다.

▲ 카타르월드컵 인도·네팔출신 이주노동자 사망자 수   출처 : ITUC(국제노동조합연맹)
▲ 카타르월드컵 인도·네팔출신 이주노동자 사망자 수     출처 : ITUC(국제노동조합연맹)
▲ *카타르월드컵이 열리는 2022년에는 사망자 수가 7000명이 넘을 것이라 ITUC(국제노동조합총연맹)는 예측하고 있음
▲ *카타르월드컵이 열리는 2022년에는 사망자 수가 7000명이 넘을 것이라 ITUC(국제노동조합총연맹)는 예측하고 있음


짧은 시간 안에 경기장을 세우는 고된 일은 이주노동자의 몫이다. 국제앰네스티가 발표한 '아름다운 경기의 추한 단면(The ugly side of the beautiful game)' 보고서에 따르면 2022년 열리는 카타르 월드컵 경기장 건설에 투입된 노동자의 90%는 인도, 파키스탄, 네팔 등지에서 온 이주노동자이며 이들은 참혹한 노동착취와 인권침해에 시달리고 있다. 

섭씨 50도에 이르는 살인적인 더위 속에서 하루 12시간 넘게 작업하는 경우도 허다하며, 더럽고 좁은 숙소에서 여러 명이 생활해 전염병이 유행하기도 한다. 카타르 정부에서 이주노동자에게 적용하는 ‘카팔라(Kafala)’는 고용주의 허가 없이는 직장을 옮기거나 출국할 수 없도록 제한하는 제도로 노동 착취의 핵심적인 요소로 작용한다. 고용주들은 이주노동자들의 본국 귀환을 막기 위해 일부러 임금을 체불하거나 여권을 빼앗고 근무조건에 항의하는 이들에게 출국을 막겠다며 협박을 일삼고 있다. 

이주노동자의 처참한 현실이 국제사회에 대대적으로 공개되었음에도 카타르 정부와 국제축구연맹(FIFA)은 뚜렷한 해결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 아디다스, 코카콜라 등의 글로벌기업은 어마어마한 마케팅 기회가 될 ‘스포츠 축제’에 수천억원에 달하는 후원을 계획 중이지만 건설 노동자들의 문제는 외면하고 있다.

▲ 출처 : ‘리우데자네이루주 공공안전교육원’
▲ 출처 : ‘리우데자네이루주 공공안전교육원’

당국의 용인 아래 기업이 개발과 홍보에 열을 올리는 사이 공권력은 시민을 향해 칼을 겨눈다. 2014년 월드컵과 2016년 올림픽을 개최한 브라질의 경우 사람들의 '안전'을 위해 치안 정책을 강화했지만, 오히려 이 과정에서 공권력에 의한 사망자 수가 눈에 띄게 증가했다. 리우데자네이루에서 타인에 의해 목숨을 잃은 5명 중 1명은 경찰에 의해 사망한 것으로 나타났으며 희생자 대다수가 빈민가나 소외지역에 사는 젊은 흑인 남성으로 알려졌다. 

월드컵이 개최된 2014년에 경찰에 의한 사망률이 전년도보다 39.4% 증가했으며, 올림픽을 앞둔 2015년에는 2014년보다 11% 더 증가했다. 스포츠 행사를 빌미로 강화한 치안 정책은 무분별한 공권력 사용에 날개를 달아준 셈이 되었고, 국가 폭력에 면죄부를 부여했다.

이러한 문제가 곪고 터지는 사이 모두가 침묵했던 것은 아니다. 현상을 목격한 시민과 언론은 당국에 항의하고, 기사를 보도하고, 집회를 열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수백명의 사람이 무작위로 구금되었고 몇몇은 범죄활동과 관련됐다는 불분명한 이유를 들어 법적 제재를 받았다. 

특히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고 언론을 탄압하는데 스포츠를 악용했다는 평가를 받은 때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이었다. 중국 정부는 사회질서 문란행위 단속을 명목으로 시민운동가들을 마구잡이로 잡아들여 ‘교화를 위한 노동’에 동원했으며, 사회운동 단체들이 올림픽 종료 때까지 허가 없이 베이징을 방문하지 못하도록 조치했다. 이 기간 동안 영장 없는 임의구속 건수가 크게 늘었고 구치소 내 폭행 사건도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치적으로 민감한 티베트, 파룬궁 등과 관련된 일부 인터넷 사이트에 대해서는 접속을 차단하기도 했다. 표현의 자유가 억압받는 중에도 조명은 여전히 화려한 경기장을 비추며, 국제적 위상을 높이기 위해 분투했다.

삶의 터전이 짓밟히고 밀렸다. 버티던 이들은 끌려나간다. 사람이 떠난 자리에 거대한 아레나가 들어선다. 땅을 다지고 골조를 세우는 사이 저평가된 노동력 수천은 고혈을 쥐어짠다. 이제 곧 막이 오를 경기장을 중심으로 주변마을에 대한 심상치 않은 공권력이 사용된다. 

주변을 정리한다는 이유로 목소리를 가진 여럿은 카메라 렌즈 밖으로 사라진다. 사라진 그들은 갇히고 매질을 당하고 총을 맞았다. 아레나에는 함성이 터지고 욕망이 분출된다. 시선이 머물지 않는 곳에는 억압의 굴레가 숨통을 조인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게임의 법칙이다.

‘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 (http://change2020.org/) 에서 이와 관련한 카드뉴스를 미디어오늘에 보내왔습니다. 바꿈은 사회진보의제들에 대한 소통을 강화하고 시민단체들 사이의 협력을 확대하기 위해 2015년 7월에 만들어진 시민단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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