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씨(61·구속기소) 측이 국정농단 사태의 진상 규명 열쇠라 지목해온 '김수현 녹음파일'은 최씨의 국정개입·농단 혐의를 반전시키기엔 역부족이었다.

일부 재판 증인들이 최씨를 이용해 이권을 도모한 정황이 드러났으나 최씨의 국정농단과 별개의 문제인데다 실체가 있는 모의가 아니었다는 점에서 오히려 대통령 최측근인 최씨의 영향력만 확인했다는 평가가 제기됐다.

▲ 최순실씨가 2월20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속행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호송차에서 내려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포커스뉴스
▲ 최순실씨가 2월20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속행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호송차에서 내려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포커스뉴스

20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김세윤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최순실 게이트' 관련 제12회 공판기일에서 추가 증거로 채택된 김수현 녹음파일의 일부가 공개됐다.

김수현 녹음파일은 김씨 휴대전화에 저장된 2000여개의 음성파일을 말한다. 변호인 측은 이 파일에 담긴 고영태 전 더블루K 상무·박헌영 K스포츠재단 과장 등 최씨의 혐의를 적극적으로 폭로한 일부 증인들의 '이권 모의 정황'을 근거로 이번 사태의 기획 음모 가능성을 의심해왔다. 김수현씨는 최씨가 운영한 고원기획 대표를 맡은 바 있다.

최씨 법률대리인 이경재 변호사는 "진상 규명에 결정적인 증거가 될 것"이라면서 "(녹음파일에) 최순실에 대해 일정 부분 약점을 잡은 상태에서 비리 사건 폭로로 이 정도로 마무리할 것인가, 아니면 판을 키워서 이 판을 세력교체에 이용할 것인가, 국정농단으로 갈 것이냐 상의할 부분이 있다"고 주장했다.

류상영씨(최씨 차명회사 더운트 부장)와 김수현씨는 지난해 7월4일 전화통화에서 "차명으로 된 걸 우리 앞으로 돌려놓고 소장(최순실 지칭)이 와 가지고는 뭐 못하지 않냐, 그걸 우리가 다 먹어버리자" "이사장도 미르도, 우리가 조정할 수 있는 사람 (이사장에) 앉혀놓고 밑에서 싸인 하는 사람 앉혀놓으면 되지" "다음 정권은 친박이 아니라니까요? 다음 정권은 다른 사람된다는 건데 그 사람들한테 완전히 힘을 실어줄 수 있는 국정관여하면 된다는 거죠. 그게 훨씬 낫죠" 등의 이야기를 나눴다.

2015년 7월29일 고 전 상무, 최철(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정책보좌관), 김수현씨 간의 대화 녹음파일에서는 자신들이 운영할 수 있는 재단법인을 만들어보려고 한 대화가 확인됐다.

최철씨, 이현정씨, 김수현씨 세 사람이 2015년 1월30일에 대화한 녹음파일엔 최씨의 최측근이었던 고 전 상무를 이용해 36억원 규모 관급 계약을 수주하겠다는 계획을 얘기하는 내용이 나왔다.

이경재 변호사는 2016년 6월13일 고영태씨와 김수현씨의 대화에서 "내가 저기 재단(K스포츠)을 뭐 부사무총장 그걸로 아예 들어 가야 될 거 같아. 그래야 정리가 되니"라는 고씨 언급에 대해 "고영태가 K스포츠재단 장악 의도를 드러낸 내용"이라 강조했다.

검찰 "대화가 있었단 거지 전혀 현실성 없는 말일 뿐"

검찰 측은 "이런 대화가 이뤄졌을 뿐이지 전혀 현실성이 없다"고 일축했다.

검찰 측은 36억원 상당 정부 계약 수주 계획에 대해 "최순실에게 빌붙어 그런 계획을 얻으려는 사적 대화이지 실제 추진 상황은 없다"고 지적했다.

고씨의 '재단 장악 음모'에 대해 검찰 측은 "당시 최씨가 K스포츠재단 임원진에 불만을 표출하고 교체를 지시했다. 그래서 이런 대화가 이뤄졌을 뿐"이라 말했다.

최씨 측이 '불순한 의도'를 가장 강조한 류상영씨와 김수현씨의 대화에 있어서도 검찰은 "둘은 현실성 없는 얘기를 하고 있다"면서 '친박' '비박' 등 정치세력을 언급한 것에 대해 "당시 최순실과 같이 일을 시작하게 된 상황에서 (보도로 인해) 일 못할 게 될 것이 염려돼서 최씨의 힘을 이용해 공천권을 주고 보도를 막아보자, 이런 대화 했던 것"이라 지적했다.

검찰 측 지적대로 녹음 파일의 등장인물 대부분은 최씨의 지시를 받고 업무를 본 뒤 최씨에게 보고를 하는 '부하 직원'이었다.

이들은 '계약을 따오자', '유리한 인사를 인선하자' 등의 계획을 제안해도 실제 집행할 권한이 있다고 보기 힘들었다. 이는 이들의 대화 배경에서도 확인된다.

고씨가 지난해 6월13일 김씨에게 전화를 한 상황은 최씨가 그에게 K스포츠재단 이사장 교체를 위해 새 사람을 알아보라 지시를 내렸다. 고씨는 당시 좁은 인맥 문제로 인물 물색 지시에 대한 스트레스를 토로하기도 했다.

최씨가 고씨 및 그의 측근이 법인을 준비한다 지적한 대목은 고씨가 최싸로부터 문화체육 재단 설립 계획이 담긴 정부 문건을 받고 재단 설립 계획서를 작성하라고 지시한 때로, 이들은 이 논의와 함께 사적 대화를 한 것이었다.

이들이 자신들이 말한 바를 얼마나 체계적으로 실현시키려 노력했는지는 충분한 증거로 드러난 바 없다.

검찰 측은 이들이 최씨의 회사 일을 함에도 경제적 어려움을 호소했다고 강조했다. 최씨가 제기한 2016년 4월20일인 녹음파일에서 고씨는 "좀만 있어. 며칠만 참아. 나도 빈털터리야"라고 말했고 이에 김씨는 "그건 나도 알아요 형. 그건 아는데 힘들다고, 제가 힘들단 얘기 잘 안하잖아요"라고 답했다.

▲ 2월6일 '최순실 게이트' 공판에 증인으로 참석하기 위해 서울중앙지법에 출석한 고영태씨. ⓒ포커스뉴스
▲ 2월6일 '최순실 게이트' 공판에 증인으로 참석하기 위해 서울중앙지법에 출석한 고영태씨. ⓒ포커스뉴스

특히 녹음파일 내용은 최씨가 기업들에게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금을 강요하거나 자신의 측근 회사에 특혜성 계약을 체결케 하는 직권남용·강요 혐의와 무관하다.

고영태씨는 지난 6일 재판 증인으로 출석해 자신이 국정농단혐의를 조작했다고 의심하는 최씨 주장에 대해 "그렇게 얘기하면 내가 더 억울한 거 같다. 내가 조작을 했다면 내가 안종범 전 청와대 수석을 움직였고 정호성 비서관을 움직여서 그런 조작을 했다는 게 되고 내가 대기업을 움직여 300억 원을 받게 하고 독일 비덱스포츠에다가 200억 원 정도 지원 요청을 했다는 것"이라며 "(자신은)그런 힘이 전혀 없다"고 반박한 바 있다.

고영태·특검이 허위사실 유포한다는 최순실 측

최씨 측은 고씨, 김씨 등 녹음파일에 등장한 인물들이 허위사실을 유포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경재 변호사는 재판 후 기자들과의 만남에서 "고영태씨가 허위사실을 말한 것"이라며 "검찰은 이들들 수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최씨는 특검이 공개한 일부 수사결과도 허위사실이란 입장이다.

최씨는 재판 말미에 발언권을 얻고 "윤전추 비서관 대포폰을 사용한 적도 없고, 전화를 한 적이 한차례 있는데 장시호가 제 번호를 알아서 했다고 하는데, 독일 머물 땐 이 사건 터질 때기에 시간이 완전 한국과 다르다. 백몇십통 통화는 사실 아니"라고 특검 수사 결과를 부인했다.

특검은 박 대통령과 최순실 간 통화가 2016년 4월부터 10월26일까지 약 570회 됐다는 사실이 밝혀졌고 특히 최씨가 독일 도피 중이던 2016년 9월부터 10월26일까지는 127회 통화된 것으로 드러났다고 밝힌 바 있다.

증거인멸 우려 등으로 구속 이후 접견권이 제한돼 있는 것과 관련, 최씨는 "우울증을 많이 받고(앓고) 외부 소통 전혀 못 받고 있어 삶이 힘든 상황이라 고려해 달라"며 접견 금지 제한을 풀어줄 것을 재판부에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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