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형표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에 이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구속수감되는 등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과정의 불법성이 점점 드러나고 있는데도 국민연금공단 내부에서는 아직 아무런 목소리가 나오고 있지 않다. 매월 국민들이 납부해온 돈으로 기금운용을 하는 국민연금공단이 특정인의 사익에 동원됐다는 수사기관의 판단까지 나왔지만, 대국민사과는커녕 재판과정을 지켜보겠다는 것 이상의 반응은 없었다.

삼성물산의 1대주주였던 국민연금공단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이 1대 0.35의 비율로 합병하려 할 때 의결권자문기관들의 합병 반대 권고에도 찬성으로 의결권을 행사했다. 문형표 국민연금 이사장은 보건복지부장관 시절 합병에 찬성하도록 압력을 행사한 직권남용 혐의 및 국회 위증 혐의로 구속기소됐다. 이처럼 1대 주주의 의결권 행사를 통한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으로 인해 삼성물산 주식이 없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지분을 보유할 수 있게 됐다. 삼성물산은 삼성전자 지분을 4.05% 보유하고 있는 반면, 제일모직은 삼성전자 지분이 전혀 없었으므로 합병을 통해 이 부회장은 삼성전자에 대한 안정적인 지배를 할 수 있게 됐다.

또한 복지관련 시민단체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에 따르면 이재용 부회장 일가는 합병을 통해 3조1000억원의 이익을 얻었고, 국민연금은 4900억원의 손실을 입었다.

이처럼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가 특정 기업의 경영권 승계라는 사익에 동원된 사실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것이다. 그런데도 국민연금 내부에서는 반성은 커녕 아직 공식 입장이 한 줄도 나오지 않았다. 구속기소된 문형표 이사장은 이사장 자리에서 물러나지도 않고 있다. 국민연금 노조에서는 이사장의 사퇴, 책임자 처벌 및 내부 징계 등을 요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최경진 국민연금 노동조합 위원장(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국민연금지부)은 20일 오후 미디어오늘과 전화인터뷰에서 이를 두고 “국민연금 초유의 사태로, 당황스럽다”며 “그동안 노조가 제도 관련 문제에는 의견을 제시해왔으나 기금운용과 같은 문제는 전문영역 속한다고 보고 의견 내지 않아왔다”고 전했다.

최 위원장은 “이번 사태를 보면서 기금 자체가 불신받게 되면 제도에도 영향을 미치고, 결국 일종의 장기보험이 국민적 신뢰를 얻지 못하면 유지되기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됐다”며 “국민 노후자금으로 이런 일을 했다는 것 자체가 신뢰성의 문제가 낳은 것”이라고 털어놨다. 그는 “국민연금 기금운용을 통한 주주권 및 의결권 행사 전반에 대해 앞으로 의견을 내려 한다”며 “가입자들의 이익을 침해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최 위원장은 지난달 말 특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국민 노후자금으로 기금을 불법적으로 활용하는 것에 대해 엄벌해야 한다”고 촉구하고, 문형표 이사장 해임과 엄중처벌도 함께 요구했다고 전했다. 그는 “이사장과 본부장은 가입자의 이익을 반영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청문회를 거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 문형표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이 9일 오후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제12차 변론기일이 열린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 증인 신분으로 출석하고 있다. 사진=포커스뉴스
▲ 문형표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이 9일 오후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제12차 변론기일이 열린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 증인 신분으로 출석하고 있다. 사진=포커스뉴스
그러나 수개월 전부터 제기됐던 문제에 대해 내부적인 반성이나 책임규명이 왜 없었는지에 대한 지적이 나온다. 최 위원장은 “기금운용 전반 담당하는 본부가 강남사옥에 별도로 있는데다 기금으로 수익률을 높이는 문제와 관련돼 있는 문제라 일반직의 직원들이 접근하기가 어려웠다”며 “아주 큰 상황이 아니면 기금운용 쪽에 대해선 함부로 얘기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기금 운용 전반에 대해 관심을 갖고 얘기를 해야 한다고 본다. 그래서 우리도 자문을 받고 있다”고 해명했다.

최 위원장은 “어찌됐던 국민연금이 책임있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며 “문형표 이사장이 보건복지부 장관시절에 한 것이라 해도 어차피 의결권 행사 결정은 국민연금공단이 한 것이 때문에 우리의 책임있는 모습이 필요하다. 사과하고 책임자 처벌하는 것이 맞다”고 강조했다.

문형표 이사장 외에도 홍완선 본부장 등 당시 관여된 내부 인사들의 책임규명에 대해 최 위원장은 “당시 합병 결정을 한 투자위원회에 관여돼 있는 사람들을 어디까지 처벌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이 과정에서 불법 탈법적인 행위가 있었다면 형사처벌은 물론이고, 내부적으로 징계도 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는 상태”라며 “관련자 전원을 엄중처벌하고 징계까지 해야 한다”고 전했다.

문 이사장의 퇴진 요구와 관련해 최 위원장은 “본인은 삼성 관련해서 잘못한 것이 없으므로 물러날 이유도 없다는 것이 입장인 것으로 안다”며 “현재 구속수감 상태에서 재판중이고, 아직 유무죄에 대한 판결이 나온 것은 아니지만, 구속까지 된 데다 사태를 이 지경까지 만든 데 대해서는 더 이상 이사장 역할을 맡는다는 것을 부적절하다”고 밝혔다. 그는 “빨리 사퇴하고 마무리한 뒤 대국민에 사과하고 새롭게 출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구속수감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8일 특검사무실로 소환되고 있다. 사진=포커스뉴스
▲ 구속수감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8일 특검사무실로 소환되고 있다. 사진=포커스뉴스
국민연금공단의 이사장은 보건복지부의 제청을 받아 대통령이 임명하므로 본인의 자진사퇴나 인사권자의 결정이 없으면 물러나기 어렵다. 다만 이사회에서 해임건의안을 결의해 복지부에 제출할 수는 있다는 것. 국민연금 이사회는 11명 가운데 5명이 내부 상임이사이며, 6명은 가입자 대표가 맡고 있다. 이들은 경총, 전경련, 민주노총, 한국노총, 소비자보호원, 대한변협에서 추천한 인사가 각각 1명씩 6명이다. 안건 상정하는데 4명의 이사가 필요하다. 이 때문에 이들에게 안건상정의 필요성을 설명하고 있다고 최 위원장은 전했다.

이에 대해 국민연금 내부에서는 재판과정을 지켜보겠다는 입장이다. 국민연금 공단 관계자는 20일 미디어오늘과 전화통화에서 “아직 이에 대한 우리 코멘트가 나간 것이 없다”면서도 “특검이 기소해 현재 (문 이사장이) 재판을 하고 있는 상태로 이를 지켜보고 있다”고 밝혔다. 합병찬성 결정과정에 잘못이 없다는 것이냐는 질의에 대해 이 관계자는 “잘못이 없다는 것이 아니라 지켜보고 있다는 입장”이라고 답했다.

대국민사과할 계획에 대해 이 관계자는 “이 부분은 확인해봐야 겠다”고 말했다. 문 이사장의 거취 문제에 대해 이 관계자는 “복지부 정책국장이 22일 수감된 문 이사장에 대한 특별면회 신청을 해놓은 상태”라고 말했다.

또한 이 과정에 대한 내부감사도 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 관계자는 “감사가 아직은 없는 것으로 안다”며 “특검 수사가 우선이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 국민연금공단 홍보영상. 사진=국민연금 영상 갈무리
▲ 국민연금공단 홍보영상. 사진=국민연금 영상 갈무리
[2017년 2월9일 9시31분 기사 일부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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