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의 증거인멸에 협조한 혐의를 가진 김건훈 안 전 수석 보좌관 겸 전 청와대 경제수석실 비서관이 안 전 수석의 증거인멸 혐의를 전면 부인하고 나섰다.

김 전 비서관은 20일 오전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김세윤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최순실·안종범 등 국정농단 사건 12차 공판에 증인을 출석해 “증거인멸을 지시한 적도 없고 그럴 이유도 없었다”고 말했다.

김형수 전 미르재단 이사장, 김필승 K스포츠재단 이사 등에게 통화내역 삭제, 휴대전화 폐기 등을 교사한 혐의를 전면 부인한 것이다.

김필승 이사는 ‘최순실 게이트’가 폭로된 후인 2016년 10월20일 안 전 수석으로부터 ‘전경련이 재단 설립을 주도했고 K스포츠재단 임직원을 김 이사가 인선한 것으로 말해달라’며 ‘앞으로는 보좌관을 통해 연락하겠다’는 전화를 받았다고 증언한 바 있다. 김 이사는 바로 다음 날인 21일과 22일, 김 전 비서관을 만나 허위 진술을 요구받고 안 전 수석과의 통화내역 삭제 및 휴대전화 폐기 지시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김형수 전 이사장 또한 검찰에 참고인으로 불려가기 1~2일 전 서울 플라자호텔에서 김건훈 전 비서관을 만나 같은 취지의 말을 들었다고 증언한 바 있다. 김 전 이사장은 “안종범 전 수석과 통화내역을 없애기 위해 ‘공장 초기화(휴대전화 포맷)’를 했다”고 말한 바 있다.

김 전 비서관은 이에 대해 “전화를 폐기하라는 그런 지시를 한 적은 전혀 없고 폐기해도 내역이 삭제되는게 아니므로 그런 말 할 이유도 없다”고 부인했다.

그는 특히 안종범 수석의 지시 여부를 전면 부인했다.

‘양 재단 임원에 대한 허위 진술 강요와 증거인멸 지시가 안종범 전 수석의 지시에 따른게 아니냐’는 지적에 그는 “수석님은 그런 지시를 한 적이 없다”며 허위 진술 요구의 경우 “청와대 대응 기조를 알기 때문에 그걸 말한 것”이라 반박했다.

이들과 안 전 수석이 나눈 대화 내용과 양 재단과 관련된 청와대의 개입 여부에 대해서도 그는 “자신은 관여하지 않았기 때문에 내용은 모른다”고 일관되게 진술했다.

그는 자신의 증거인멸 혐의에 대해서도 부인했다. 김 전 비서관은 지난해 10월29일 검찰의 압수수색 집행 직전인 10월27일 폰을 교체했다.

그는 당시 검찰엔 “책상 위에서 떨어져서 파손돼 교체했다”는 증언했으나 이후 특검 조사과정에서 “후배 부모님이 스마트폰을 교체한다는 말 듣고 전달한 것”이라며 번복한 바 있다. “당시엔 전화기 문제로 안 수석님 관련해 수사가 확대되거나 처벌이 높아지는게 두렵던 측면이 있어서 거짓말을 했다”는 것이다.

그의 번복된 진술에 따르면 그는 “두 세번 떨어뜨린 건 사실이라 먹통이 되거나 갑자기 꺼지는 등 기능이 많이 저하됐던” 휴대전화를 “후배 부모님이 쓰도록 하자 싶어서 후배에게 전달”한 셈이 된다.

이 같은 증거인멸 방식은 안 전 수석 주거지에서 압수수색된 문건에 기재된 내용이다.

해당 문건엔 △휴대전화 통화내역 삭제 △휴대전화 내 카카오, sns, 메모장 등 삭제 △음성녹취 및 휴대폰 은닉 방안 △직장·자택 PC 메신저 관련 대응 방안 등이 구체적으로 기재돼있다.

휴대전화 내 카카오톡 등 삭제 방안으로는 기기 초기화와 삭제 방법이 있는데 “확실히 클리어 안돼 교체가 정답”이라고 적혀 있다. 휴대폰은 압수수색 대상이 아닌 사무실에 옮기는 방법을 써야 하며, PC의 경우 연루자와 주고받은 메일을 같이 삭제해야 의미가 있다고 적혀있다.

안 전 수석은 이를 “외부인이 작성했고 보좌관을 통해 받았다”고 검찰에 진술했으나 김 전 비서관은 “저런 문건 받은 적 없다”고 부인했다.

▲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해 8월8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비서관회의에 참석해 참모진과 대화하고 있다. 오른쪽부터 박근혜 대통령, 안종범 전 정책조정수석, 우병우 전 민정수석, 현대원 미래전략수석. ⓒ 연합뉴스
▲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해 8월8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비서관회의에 참석해 참모진과 대화하고 있다. 오른쪽부터 박근혜 대통령, 안종범 전 정책조정수석, 우병우 전 민정수석, 현대원 미래전략수석. ⓒ 연합뉴스
한편 검찰은 김 전 비서관이 ‘대통령의 공모’ 여부를 인지했다는 증거로 그의 아내와 나눈 메세지를 공개했다.

김 전 비서관의 아내는 그에게 “본인(안 전 수석)이 중간에서 지시한 거라 하면 끝나는게 아니냐”, “대통령이 인정하면 그만 아닌가요. 본인이 시킨건데”라고 보낸 바 있다. 그는 두 질문 각각에 “그렇지” “그러게요”라고 답했다.

김 전 비서관은 “수석님께서 일련의 일에 대해 수석 독단적으로 결정하거나 혼자 다 했다 생각지 않았고 그걸 아내와 말하는 과정에서 (위 말이) 나왔다”고 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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