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북한이 미사일 발사 실험을 한데 이어,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이복형인 김정남이 말레이시아에서 피살되면서 다시 ‘북풍’이 언급된다. 지금까지 북풍은 보수정권과 언론이 국면을 전환하기 위해 사용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카드였다. 하지만 이번 국면에서는 큰 영향을 주지 못하고 있다. 

이번 사건과 관련해 보수성향 언론과 정당은 △“무서워서 못 살겠다”며 공포심을 불러 일으키고 △사드배치에 반대하는 후보에게 “입장을 밝히라”고 공격하는 한편 △“내가 제일 안보 대통령”이라고 부각하고 있다. 그럼에도 보수 정당의 지지율은 제자리 걸음만 반복하고 있다. 북풍은커녕 ‘미풍’이다. 

▲ 동아일보 2월16일 12면 기사
▲ 동아일보 2월16일 12면 기사
1. “무서워서 못 살겠다” 호들갑 떠는 언론
김정남 피살 사건이 벌어진 다음날 동아일보는 “이복형도 죽이는데 우리쯤이야, 불안한 탈북자들”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탈북자들도 불안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며 “이날 탈북자들이 사용하는 모바일 메신저에서는 ‘김정은이 무섭다’는 글이 끊이질 않았다”고 보도했다.

동아일보는 “무엇보다 김정남이 공공장소인 공항에서 피살되면서 ‘한국에서도 안심할 수 없다’는 반응이 쏟아지고 있다”면서 “서울 한복판에서 비슷한 일이 발생해도 전혀 이상할 게 없는 분위기”라고 보도했다. 동아일보는 나아가 “일반 시민들도 불안함을 호소하고 있다”면서 한 주부의 말을 인용보도 했다. 

조선일보도 16일 사설에서 “북의 암살 공작조가 국내에도 잠입할 가능성이 있다”며 “대비에 빈틈이 있어선 안 된다”라고 강조했다. 불안을 부추기는 보도다. 북한의 각종 암살 도구를 집중 조명하는 보도도 쏟아졌는데, 이에 대해 민주언론시민연합은 “공포심을 부추기는 효과를 준다”고 분석했다. 

▲ 경기도 평택시 오산공군기지에 있는 공군작전사령부를 방문한 원유철 자유한국당 의원. 사진=원유철 의원실
▲ 경기도 평택시 오산공군기지에 있는 공군작전사령부를 방문한 원유철 자유한국당 의원. 사진=원유철 의원실
2. 보수정당 “내가 제일 안보 대통령”
보수진형 대선 후보들은 ‘안보위기’를 더욱 강조하며 ‘안보 대통령’ 이미지 구축에 나섰다. 원유철 자유한국당 의원은 15일 열린 비상대책위원회에서 “북한 김정은 정권의 광란 도발을 막기 위해서는 강력한 핵 억제력을 갖춰야 할 때”라며 ‘한국형 핵무장’을 언급했다. 

정치권에서 제일 먼저 사드 배치를 주장했던 유승민 바른정당 의원은 재차 사드배치를 강조했다. 유 의원은 “2013년, 2014년부터 일관되게 우리 국방예산으로 사드 2~3개 포대는 배치해야 한다는 입장”이라고 말했고, 김영우 바른정당 의원은 “선견지명이 있다”며 유 의원을 치켜세웠다. 

국민의당은 ‘사드 배치 반대’ 당론 철회를 두고 엇박자를 내고 있다. 주승용 원내대표는 15일 “사드배치를 반대할 명분은 많이 약해졌다”고 말했지만, 박지원 대표가 좀 더 숙고하자고 맞선 상황이다. 사드 배치에 대한 당론은 21일 의원 총회에서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 2월14일 조선일보 김대중 칼럼
▲ 2월14일 조선일보 김대중 칼럼
3. “사드 입장 밝히라”며 문재인 공격하기
사실상 이번 ‘북풍 몰이’의 목적은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에 대한 공격이다. 정우택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문 전 대표는 집권할 경우, 북한에 가서 패륜아 김정은을 먼저 만나겠다는 입장에도 변화가 없는지 분명하게 답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정병국 바른정당 대표 역시 16일 “김정은이 지금 대한민국을 향해서는 핵미사일을 들고 있다는 엄중한 현실을 인식해야 한다”면서 “(문 전 대표가) 대통령이 되면 사드 배치를 재검토하고 미국보다 북한을 먼저 방문하겠다고 하는데 김정은과 어떤 이야기를 나눌지 두렵다”고 말했다. 

보수정당의 이 같은 주문은 조선일보와 궤를 같이 한다. 김대중 조선일보 고문은 앞서 14일 칼럼에서 “그는 나중에 해명이랍시고 한 발언에서 ‘미국이든 일본이든 러시아든 상의해서 알아서 하겠다는 뜻’ 이라고 했는데”라며 “그러나 주저없이 ‘북한 먼저 가겠다’고 해놓고 이제 와서 빨갱이 운운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조선일보는 16일 사설에서도 “여론조사 1위를 달리는 문 전 대표를 포함한 야권은 햇볕정책으로 되돌아가겠다면 명확하게 선언하고 국민의 판단을 받아야 한다”며 “문 전 대표부터 ‘집권 시 즉각 개성공단, 금강산 관광 재개, 사드 연기’ 입장이 그대로인지 밝히라”고 주장했다. 개성공단·금강산 관광 재개, 사드 연기가 종북 혹은 좌파로 연결되는 등식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김민하 미디어스 편집장은 “보수 언론을 중심으로 대선주자들의 입장 표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면서 “그러나 대북정책에 대한 총체적 비전이 아니라 사드 한반도 배치 단일 사안에 대한 찬반을 묻는 형식의 문제제기는 결국 ‘색깔론’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가 14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 프레스클럽에서 열린 자문단 ’10년의 힘 위원회’ 출범식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 사진제공=문재인 전 대표 측
▲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가 14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 프레스클럽에서 열린 자문단 ’10년의 힘 위원회’ 출범식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 사진제공=문재인 전 대표 측
4. 하지만 제자리걸음인 지지도 
하지만 보수정당의 지지율은 제자리걸음이다. 한국갤럽의 2월 셋째 주 정례조사에서 바른정당 지지율은 6%에 그쳤고 자유한국당 지지율은 11% 수준이었다. 한국갤럽 정례조사는 2월14일부터 16일까지 이뤄졌는데 북한의 미사일 실험은 12일 진행됐고 김정남은 15일 피살됐다. 

반면 문재인 전 대표의 지지율은 오히려 지난주 29%에서 3%로 상승한 32%를 기록했고 안희정 충남도지사는 19%에서 22%로 올랐다. 유승민 의원의 지지율은 2%였고 보수 후보 중 지지율 1위를 달리던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은 9%를 기록했다. 언론과 여당이 아무리 ‘북풍’을 외쳐도 ‘미풍’에 그쳤다는 증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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