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49·구속기소)이 결국 구속됐다. 지난달 19일 특검의 구속영장 청구가 기각된 이후 1달여 만에 보강된 구속영장 청구는 받아들여진 것이다.

서울중앙지법 한정석 영장전담판사는 17일 오전 5시40분 경 “새롭게 구성된 범죄혐의 사실과 추가로 수집된 증거자료 등을 종합할 때 구속의 사유와 필요성이 인정된다”고 말했다. 지난달 19일 1차 구속영장 청구에서 보강된 내용이 주요 구속사유가 된 것이다.

일단 박영수 특검이 이재용 부회장에게 적용한 혐의는 5가지다. △뇌물 공여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재산국외도피 △범죄수익 은닉의 규제 및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국회에서의 증언·감정 등에 관한 법률 위반(위증) 등이다. 이는 1차 구속영장 청구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월16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지방법원에서 영장심사를 마친 뒤 구치소로 가기 위해 차에 타고 있다.ⓒ민중의소리
▲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월16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지방법원에서 영장심사를 마친 뒤 구치소로 가기 위해 차에 타고 있다.ⓒ민중의소리

1차 구속영장 청구 당시 조의연 영장전담판사는 “뇌물범죄의 요건이 되는 대가관계와 부정한 청탁 등에 대한 현재까지의 소명 정도, 각종 지원 경위에 관한 구체적 사실관계와 그 법률적 평가를 둘러싼 다툼의 여지, 관련자 조사를 포함하여 현재까지 이루어진 수사 내용과 진행 경과 등에 비추어 볼 때, 현 단계에서 구속의 사유와 필요성, 상당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따라 특검은 증거확보에 집중해왔다.

최순실에 430억 원 준 삼성, 피해자 아니다

특검팀은 정씨가 수십억 원을 호가하는 명마 ‘블라디미르’와 ‘스타샤’를 얻게 된 경위, 그리고 2015년 공정거래위원회가 ‘신규 순환출자 금지제도 법 집행 가이드라인’을 도입한 경위에 수사를 집중했다.

특검팀은 삼성이 최씨 일가를 지원하기 위해 집행한 자금을 정상적인 컨설팅 계약 형태로 꾸민 것이 위법하다고 판단, 재산국외도피·범죄수익은닉처벌법 위반 혐의를 추가 적용했다. 특정된 자금 규모는 약 77억9700만 원으로 알려졌다. 정유라 말 구입비 및 승마 훈련 지원비, 삼성전자 승마단 전지훈련 용역비 등이 명목이다.

뇌물공여 혐의 내용은 1차 영장 청구 때와 같다. 특검은 △삼성이 최씨 독일회사 코레스포츠와 맺은 220억 원 규모의 컨설팅 계약금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금 204억 원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최순실·장시호 운영) 지원금 16억2천8백만원 등 총 430억 원 가량을 뇌물로 파악하고 있다.

특검은 삼성이 그룹 총수 승계 작업의 방해 요소를 없애기 위해 최씨 측에 뇌물을 공여했고 그 대가 또한 받았다는 입장이다.

특검, 박 대통령 뇌물 수뢰 공범 입증해야

이와 관련해 박 대통령의 공범 입증이 관건이다. 삼성이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받은 특혜 및 미르·K스포츠 재단 출연 등은 청와대의 지시 없이 이루어지기 힘들 뿐더러 다수 관계자가 대통령의 개입 사실을 증언한 바 있다.

▲ 박근혜 대통령이 2015년 5월7일 오전 경기도 평택 고덕 국제화계획지구 내 부지에서 열린 삼성전자 반도체 평택공장 기공식에 참석, 기공 발파식을 마친 뒤 이재용 부회장과 이야기하고 있다.ⓒ연합뉴스
▲ 박근혜 대통령이 2015년 5월7일 오전 경기도 평택 고덕 국제화계획지구 내 부지에서 열린 삼성전자 반도체 평택공장 기공식에 참석, 기공 발파식을 마친 뒤 이재용 부회장과 이야기하고 있다.ⓒ연합뉴스

언론 보도를 종합하면 뇌물 공여 혐의와 관련해 박 대통령과 이 부회장이 독대한 횟수는 총 3번이다. 2014년 9월15일 박 대통령은 이 부회장과 만나 대한승마협회장을 삼성이 맡아 줄 것과 유망주들에게 명마를 사줄 것 등 적극적인 지원을 요구했다.

박 대통령은 2015년 7월25일엔 이 부회장을 청와대 안가에서 만나 정씨에 대한 지원을 독촉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 대통령은 이달 24~25일 동안 7대 대기업 총수를 독대해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금을 요구한 바 있다.

이어 박 대통령은 2016년 2월15일 이 부회장과의 일대일 면담에서 최씨와 최씨 조카 장시호씨(38·구속기소)가 운영한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에 대한 지원도 요구했다.

특검은 이 부회장 신병 확보를 발판삼아 박 대통령의 뇌물 수뢰 혐의 수사에 박차를 가할 것으로 보인다. 특검의 대통령 대면조사는 2월 셋째주 내로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박상진 구속자에서 제외된 이유는?… 정경유착 전방위 수사 실패

한편 서울중앙지법은 박상진 사장(64)에 대한 구속 필요성은 인정하지 않았다. 한정석 판사는 “피의자의 지위와 권한 범위, 실질적 역할 등에 비추어 볼 때 구속의 사유와 필요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기각 사유를 밝혔다.

법원이 박 사장의 최순실씨(61·구속기소) 및 최씨의 딸 정유라씨(21) 등에 대한 뇌물 공여를 그의 결정권 밖의 사안으로 보고 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박 사장의 영장 기각을 둘러싸고 형평성 논란이 제기될 여지도 있다. 박 사장이 최씨 일가에 뇌물성 금전을 지급하는 핵심 실무 인력이었기 때문이다.

박 사장은 삼성전자 대외협력 사장으로 2015년 8월 독일로 직접 건너 가 코어스포츠 용역계약을 체결했다. 박 사장은 정씨를 위한 말 구입 및 승마 훈련 지원 비용 등에도 적극적으로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최순실 국정농단 게이트’가 터진 후인 지난해 9월 말 경엔 박 사장은 독일로 건너가 최씨와 향후 대책을 논의하기도 했다.

박 사장은 향후 뇌물공여 혐의로 불구속 기소돼 재판에 넘겨질 것으로 보인다.

▲ 최순실씨가 2월2일 오전 서울 강남구 대치동 특별검사 사무실로 소환되고 있다.ⓒ민중의소리
▲ 최순실씨가 2월2일 오전 서울 강남구 대치동 특별검사 사무실로 소환되고 있다.ⓒ민중의소리

특검이 삼성 외 대기업으로 수사를 확대할 가능성은 희박한 상황이다. 이규철 특검 대변인은 지난 14일 “다른 대기업에 대한 본격적인 수사는 조금 불가능해 보이는 것이 사실”이라며 “현재로선 수사를 진행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삼성에게만 특검 수사가 집중된 배경엔 부족한 수사 기간과 이재용 부회장 1차 구속영장 기각에 따른 수사 지연 문제가 있다.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이 사실상 수사기간 연장을 허가하지 않을 것으로 점쳐지는 가운데, 특검의 1차 수사 기간은 오는 28일 만료된다. 특검팀은 삼성의 뇌물 공여 혐의 수사도 마무리 안된 상황에서 12일 내 다른 기업 수사를 완료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결국 ‘최순실 게이트’가 폭로되면서 제기된 ‘정경유착 재벌 엄벌’ 요구는 들어지지 않은 셈이다.

롯데그룹, SK그룹 등은 박근혜 정부 측 요구에 적극 부응하는 대가로 기업 민원 해결을 청탁한 혐의를 가지고 있다.

지난 1월 특검은 롯데그룹이 2018년 평창 동계 올림픽 공식 파트너가 돼주는 것을 대가로 신규 면세점 특허권을 받은 정황을 포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3월9일 롯데 CSR팀이 신동빈 회장에게 '평창 동계올림픽 후원(안)'을 보고했고 곧 롯데 CSR팀장은 최아무개 청와대 경제금융비서관에게 '롯데그룹 현안자료'를 이메일로 발송했다. 하루 뒤인 3월10일 박 대통령은 안종범 전 정책조정수석에게 신 회장과의 단독 면담 자리 성사를 지시했다. 14일 독대는 이뤄졌다. 3월16일, 롯데는 평창동계올림픽 조직위원회와 계약을 체결해 후원기업 명단에 이름을 올린다.

2016년 4월29일, 관세청은 서울시 내 면세점 4곳을 추가 선정한다고 발표했다. 2015년 11월 롯데월드타워 면세점이 갱신 심사에서 탈락하고 반년도 지나지 않은 시점으로 발표 당시 ‘롯데 특혜’ 논란이 일었다.

SK그룹은 최태원 SK그룹 회장 사면을 위해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 등 박 대통령 측 정책 요구에 적극 협조한 정황이 드러난 바 있다. 지난해 검찰은 압수수색과정에서 김창근 SK이노베이션 회장이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에게 '하늘같은 이 은혜를 영원히 잊지 않고 산업보국에 앞장서 나라 경제 살리기를 주도하겠다'고 보낸 문자를 확보했다. 박 대통령은 광복절 전인 2015년 7월25일 SK를 포함한 대기업 총수 혹은 임원들과 독대를 진행했다.

롯데는 미르·K스포츠재단에 총 45억 원을, SK는 총 111억 원을 출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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