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남 암살과 관련해 부정확한 정보가 쏟아지고 있다. 생산 주체는 언론이다. 각 언론사는 추측대로 이번 사건을 해석해 의미를 부여하고 있으며 실체를 알 수 없는 ‘대북 소식통’을 인용한 기사도 넘친다. 중구난방인 해석 탓에 기사를 읽어도 사건의 실체에 다가가기 어렵다. 

통일부 당국자는 16일 "말레이시아에서 공식적 발표가 나온 다음에야 우리가 의도나 평가 등을 말할 수 있다"며 "명확하게 (사실관계를) 밝히기도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연철 인제대 통일학부 교수도 15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현재 상황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사건의 실체를 확인하는 것이고 의미 부여는 그 다음에 해도 늦지 않다”고 썼다. 

혼란스러운 언론보도를 정리했다. 

▲ 16일 YTN보도
▲ 16일 YTN보도
1. 두 번째 체포된 여성의 여권은 한국? 인도네시아?
16일 오전 말레이시아 현지 통신 ‘베르나마’는 말레이시아 경찰이 6명으로 추정되는 용의자 가운데 여성 용의자 1명을 추가로 체포했다고 보도했다. 이후 일본 ‘교도통신’은 추가 체포된 여성이 한국 여권을 가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현지 경찰이 확인해 준 사실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국내 언론은 교도통신을 인용해 ‘한국 여권’을 보도해, 한 때 ‘한국 여권’이 포털사이트 실시간 뉴스검색어에 올랐다. YTN은 “한국 여권을 소지한 여성이라는 소식이 들어와있다. 일본 교도통신에서 보도한 내용”이라며 “아직 저희가 확인하거나 정확하게 어떤 소식통을 통해 나온 이야기인지 확인되진 않았다”고 보도했다. 

결과적으로 ‘한국 여권’은 오보였다. 몇 시간도 지나지 않아 현지 경찰은 해당 여성이 인도네시아 여권을 소지하고 있다고 밝혔다. 여권상 여성 용의자의 이름은 시티 아이샤(SITI AISHAH)이며, 인도네시아 세랑 출신으로 1992년 2월11일 생으로 여권에 기재돼 있었다. 몇 시간만 기다렸어도 일어나지 않았을 대량 오보 사건이다. 

2. ‘고위 관리 출신’ 탈북자는 왜 이리 많은지
국내외를 막론하고 탈북자 발언 인용 보도도 많다. 연합뉴스는 “여성 2명이 용의자라면 이들이 북한 정찰총국 산하 ‘모란꽃 소대’ 구성원일 것”이라는 ‘북한군 고위급 출신 탈북민’의 말을 인용보도했다. 연합뉴스는 이 탈북민은 2015년 한국으로 망명했다고 썼다. 

문화일보는 미국 자유아시아방송(RFA)의 ‘북한 고위 간부’ 인용 보도를 그대로 보도했다. 문화일보에 따르면 해당 북한 고위 간부는 “김정은이 해외에 머무는 김정남을 국내로 불러오라고 국가보위성에 지시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본인 스스로 귀국하도록 설득하라는 것이 지시내용”이라고 말했다.

미국의소리(VOA)가 북한 ‘고위 관리 출신’ 탈북자를 인용해 김정남 주변 인물로 분류된 인사들에 대한 숙청이 대대적으로 이뤄졌다고 한 것 역시 국내에 인용보도됐다. 이 인사는 “2003년부터 2011년초까지 중국 베이징에 주재하던 곽정철 전 북한대사관 당비서가 김정남과 접촉한 혐의로 2011년 처형당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들 보도를 얼마나 믿을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일단 고위 출신 탈북자 자체가 많지 않다. 해외에 고위급 탈북자가 얼마나 체류하고 있을지는 의문이지만 노컷뉴스 보도에 따르면 국내에 체류 중인 태영호 전 영국주재 북한 공사 등 ‘가’급 탈북고위 인사는 10여명 수준이 고작이다. 경찰에 이들에 대한 경호를 강화했다. 

▲ 이인배 통일연구원 초청연구위원. 사진=연합뉴스TV 방송화면 갈무리
▲ 이인배 통일연구원 초청연구위원. 사진=연합뉴스TV 방송화면 갈무리
3. 자기 말로 자기 말 반박하기? 모순된 해석
‘전문가’들의 모순된 해석이 여과 없이 방송되는 일도 있다. 이인배 통일연구원 초청연구위원은 16일 연합뉴스TV ‘뉴스초점’에서 공항이라는 장소에서 암살이 일어난 것에 대해 “김정은이 내게 도전하는 자들은 어떻게 될 것인가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나 이 연구위원은 채 몇 분도 지나지 않아 북한이 서둘러 시신 인도를 요구한 이유에 대해서는 “시신 부검이 이 사건 해결의 단초”라며 “시신을 빼돌려서 사인이 심장마비였다. 그러면 테러고 뭐고 성립되지 않는다. 그게 북한 당국의 속내다. 그러니까 부검하기 전에 인도 받으려고 한 것”이라고 말했다. 

보여주기 위해 공항에서 테러를 일으켰는데, 테러를 알리지 않기 위해 시신 인도를 요구했다? 앞 뒤 맥락이 맞지 않는다. 문제는 이 같은 모순된 해석이 여기저기 난무한다는 점이다. 

4. 북어독? 신경성 독가스?
암살에 사용된 물질을 둘러싼 해석 역시 중구난방이다. 조선일보는 “일본 NHK 방송이 복수의 한국 정부 관계자를 인용해 김정남이 사망에 이른 상황 등을 볼 때 사용된 것은 신경성 독가스로 보이며 맹독성의 '신경작용제 VX'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도했다”고 전했다. 

동아일보는 말레이시아 언론 ‘더스타’를 인용해 “현지 경찰은 김정남 피살에 사용된 독약이 피마자 식물의 씨앗에서 추출되는 리신이나 복어의 독에서 추출하는 테트로도독신인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말레이시아 현지 경찰은 16일 오후, 부검을 마쳤으나 아직 결과는 밝히지 않았다. 

▲ LOL 티셔츠 관련 보도. 사진=포털사이트 '다음' 화면 갈무리
▲ LOL 티셔츠 관련 보도. 사진=포털사이트 '다음' 화면 갈무리
5. LOL이 ‘최순실 프라다’ 몰아낸다고?
언론은 첫 번째로 붙잡힌 여성의 옷에 대해서도 관심을 보였다. 사실상 사건의 본질과 무관하다. 조선일보는 “디테일 추척, LOL티셔츠가 최순실 프라다 밀어낼까”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부정적 사건 연루자들의 패션을 따라하는 ‘블레임 룩’ 현상”을 언급했다.

이어 조선일보는 해당 여성의 가방에 대해 “하늘색 핸드백은 ‘크리스찬 디올’ 제품이라고 한다. 진품인지 짝퉁인지는 밝혀지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문화일보 역시 해당 티셔츠가 ‘북한 여자 스파이가 입었던 것과 같은 T“라는 이름으로 온라인몰에서 106만원 판매됐다고 보도했다. 

6. 하다하다 여기서도 ‘외모평가’
체포된 이가 여성이라는 이유로, 외모평가도 등장했다. MBN은 “김정남 살해 여성 공개…북 공작원이라기엔 외모가”라는 제목의 보도를 했다. 하지만 기사에 관련 내용은 없다. 클릭수를 유도하기 위한 ‘낚시 제목’이다. 

머니투데이 이슈팀은 “누리꾼들이 여성 공작원이라고 알려진 CCTV 속 인물의 골격이 남자같아 ‘여장남자설’을 제기했다”면서 “코를 보니 여장남자인게 확실하다” “어깨가 넓고 목젖이 있는 것 같다” “여자 혼자 김정남을 제압했다는 건 말이 안된다. 여장남자다” 등의 발언을 보도했다.

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은 YTN에서 “외형은 일단 얼굴이 광대뼈가 많이 튀어나왔기 때문에 북방계, 즉 북한 함경도나 그런 지역의 여성과 비슷한 거 보면 한국 여성이 맞는 것 같다”며 “북한에서 2009년부터 주로 암살조나 테러조는 거의 다 여성들로 교체했다”고 말했다. 

▲ 머니투데이 기사
▲ 머니투데이 기사
7. 팩트만 보자
16일 오후 6시 기준, 밝혀진 팩트만 보자. 말레이시아 경찰이 체포한 용의자는 여성 2명과 남성 1명이다. 처음 체포된 여성은 29세 베트남 여권을 가지고 있었고 두 번째 체포된 여성은 25세 인도네시아 여권을 가지고 있었다. 말레이시아 법원은 여성 2명에게 7일간 구금 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이들이 피살사건에 완전히 연루됐다는 건 다른 차원이다. 통일부는 “용의자로 보이는 사람의 신병을 확보했다는 것만으로 그가 피살사건에 완전히 연루됐다고 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 이외에도 말레이시아 경찰은 남성 3명을 추가로 추적하고 있다.

김정남과 관련해선 김철이라는 이름의 여권을 소지하고 있었지만 부검결과 김정남이 맞다는 사실 정도가 16일까지 나온 팩트다. 말레이시아 경찰이 부검 결과를 발표하지 않아 사인은 아직 불분명한 상황이다. 그리고 말레이시아 당국은 수사절차가 마무리 된 후 김정남 시신을 북한에 보낼 방침이라고 밝혔다.

누가 김정남을 죽였는지, 왜 죽였는지. 어떤 방법으로 죽였는지 등은 아직까지 밝혀진 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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