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선 이후 ‘가짜 뉴스’에 대한 논의가 급증했다. 한국에서도 가짜뉴스에 대한 논의가 환산돼 지난 7일 이철성 경찰청장이 “가짜뉴스는 경찰 수사 대상, 엄단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는 19대 대선 국면에 가짜뉴스 배포 등 사이버상의 비방 및 흑색선전에 대응한다며 지난 1월 초부터 ‘비방‧흑색선전 전담TF’를 꾸렸다고 발표했다.

사단법인 오픈넷은 이러한 선관위의 단속행위에 ‘가짜뉴스’를 빌미로 한 검열 행위라고 비판했다. 오픈넷은 △가짜뉴스의 개념이 명확하지 않아 표현 주체가 누구든 ‘허위사실공표죄’ 대상이 될 것이라는 점 △현행 선거법 독소조항으로 인해 사법적 판단 전에 게시글을 삭제할 수 있다는 점 △문제되는 온라인 글을 현행 제도로 삭제할 수 있음에도 선관위가 나선 점 △대통령의 탄핵 여부가 결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선관위가 대선을 이유로 단속에 나선 점을 문제로 꼽았다.

‘가짜뉴스’는 언론사뿐만 아니라 일반인이 뉴스 보도의 형식을 띄고 만든 게시물에도 해당될 수 있는 개념이다. 이 때문에 표현 주체가 누구든 선거법상 ‘허위사실공표죄’(제250조)를 근거로 단속·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 오픈넷은 2007년 대선 한나라당 경선에서 박근혜 후보자의 ‘최태민-최순실 유착 문제’를 제기한 김해호 목사가 처벌당한 사례를 들며 “현재 명백히 증명하지 못하였다는 이유만으로 함부로 처벌하고 차단해서는 안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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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ttyimagesbank, 디자인: 이우림 기자
오픈넷은 선거법의 독소조항으로 ‘후보자비방죄’(제251조)를 예로 들며 후보자나 가족에 대한 ‘진실’을 적시해 욕설을 하거나 풍자해도 처벌받을 수 있다는 점을 비판했다. 이 때문에 ‘가짜 뉴스’가 아닌 일반인의 표현물까지도 선관위 처벌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오픈넷은 선관위가 형사처벌 등 사법적 판단이 내려지기 전에 온라인 게시글을 직접 ‘삭제’ 명령할 수 있다는 점을 문제로 꼽았다. 지난 2016년 20대 총선에도 선거법 제82조 4의 제3항에 따라 1만7,000건이 넘는 글들이 삭제되었다. 삭제된 글 중에는 나경원 의원 딸의 부정입학 의혹을 제기하는 글과 유승민 의원의 얼굴을 내시에 합성한 이미지가 포함돼있었다.

오픈넷은 “국가기관이 나서서 무엇이 가짜이고 진짜인지를 결정하고, 이를 기준으로 표현 가능성을 결정하는 것이 바로 헌법이 경계하고자 하는 검열”이라며 “선관위의 관리감독 권한은 선거사무의 집행기관, 혹은 후보자 등 권력자의 불공정한 행위를 대상으로 수행되어야하는데 국민의 행위와 표현을 규제하고 검열하는 기관으로 변질됐다”고 비판했다.

현재 있는 제도로서 온라인 게시글과 언론보도를 차단하거나 삭제할 수 있음에도 선관위가 나선다는 점도 문제다. 현행으로 온라인 게시글이 문제가 된다면 정보통신망법상 임시조치 제도,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통신심의 제도 등으로 조치가 가능하고 언론 보도의 경우는 언론중재위원회의 조정·중재절차로 조치가 가능하다.

오픈넷은 선관위의 이번 조치가 시기상으로도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오픈넷은 “아직 대선 후보자 등록은커녕 대통령의 탄핵 여부도 결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선관위와 선거법이 대선을 이유로 단속에 나서는 것이 정당한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얼마 전 선관위는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의 퇴주잔 논란을 담은 짧은 글을 올린 네티즌을 허위사실공표 등 위반 혐의로 조사했으나, 이후 반기문 전 총장은 대선을 불출마 선언했다.

선관위의 지나친 규제를 막기위해 공직선거법 규정의 개정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현재 국회에는 유승희 더불어민주당의원이 발의한 선거법 개정안이 계류돼있다. 이 발의안은 △후보자비방죄를 폐지하고 △허위임을 알면서도 허위사실을 공표한 자에 한하여 허위사실공표죄를 적용하며 △선관위의 선거법 위반 정보 삭제명령 제도를 폐지하는 내용이 포함돼있다.

오픈넷은 “정치인에 대한 의혹 제기가 폭넓게 허용되어야 활발한 토론과 검증이 이루어질 수 있고, 이는 선거 국면일수록 더욱 보장되어야 한다”라며 “선관위는 과도한 표현물 검열권 행사를 중단하고, 국회는 위 선거법 개정안을 속히 통과시킬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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