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TBC 태블릿PC 보도를 심의하고 있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이하 방통심의위)는 해당 보도가 심의에 오른 것 자체만으로도 언론단체 등의 비판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심의 각하는커녕 ‘문제없음’ 결정도 내리지 못한 채 ‘자료 제출’이라는 애매모호한 결정을 내리며 판단을 보류했다. 

이는 정치적으로 예민한 사안에 대해 우선 시간을 끌어보겠다는 전략이다. 민원을 넣은 보수단체의 눈치를 본 결정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

▲ 지난 9일 서울 목동 방송통신심의위 앞에서 자유통일유권자본부가 주최한 '왜곡·선동 언론 규탄' 집회 참석자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 지난 9일 서울 목동 방송통신심의위 앞에서 자유통일유권자본부가 주최한 '왜곡·선동 언론 규탄' 집회 참석자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우선 해당 보도가 심의에 오른 것 자체만으로도 문제다. 16일 방송기자연합회는 성명을 내고 “방통심의위는 별도의 법적 구제수단이 취해지고 있는 사실이 확인된 경우에는 민원이 제기되더라도 심의할 수 없다는 스스로의 기준도 지키지 못하고 있다”며 “검찰과 특검에서도 이미 최순실 것이 맞다고 밝히고 증거로 채택된 태블릿PC를 놓고 방통심의위는 눈치만 보며 우왕좌왕 중심을 잃었다”고 지적했다. 이어 “(심의위가) 일부 친박세력의 압력에 못 이겨 언론의 자유를 억죄는 기관으로 변질됐다”고 비판했다.

방송기자연합회의 지적대로 심의 안건이 오른 것만으로 큰 문제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안건이 상정됐다하더라도, 위원회에서는 ‘문제없음’을 결정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왜 방통심의위는 심의 안건에 상정돼버린 JTBC의 ‘태블릿PC 보도’에 대해 ‘문제없음’ 결정을 끌어내지 못했을까. △편향적인 위원회 구성 △악인의 지렛대 효과 △야당 위원들의 퇴장 전략 등을 이유로 꼽을 수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역시 방통심의위 소위원회의 구성이다. 방통심의위 소위원회는 여당추천3인(김성묵 소위원장, 함귀용 위원, 하남신 위원):야당추천2인(장낙인 위원, 윤훈열 위원)으로 여당 측이 다수인 상황으로, 방통심의위의 문제를 꼽을 때 언제나 지적되는 불평등구조다.

두 번째가 ‘악인의 지렛대’ 현상이다.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이준웅 교수는 소수의 악인이 위원회 전체의 수준을 하락하는데 기여하는 현상이 있다고 지적한다. ‘악인의 지렛대’가 작용하는 위원회의 특징은 ‘정당의 이념투쟁 명망가 위원회’에 가깝다. 이런 특성을 지닌 위원회에서는 소수의 저질 인사의 막무가내식 언행이 전체 분위기를 좌우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 3기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위원들. 출처:방통심의위
▲ 3기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위원들. 출처:방통심의위

15일 방통심의위원회 소위원회에서 지렛대 역할을 한 것은 여당 추천 함귀용 위원이었다. 그는 JTBC가 방통심의위에 나와 소명을 하는 절차인 ‘의견진술’을 주장하다가 ‘자료제출’로 주장을 누그러뜨리긴 했으나 회의 내내 보수단체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여 말하며 전체 분위기를 이끌었다.

함귀용 위원은 “JTBC의 해명 보도를 보고 더 많은 의혹이 생긴다”, “대통령의 시술 전과 후 사진이 조작이라는 지적에 JTBC는 조작이 아니라고 말하지 않고 사진의 출처만 밝혔다”, “태블릿PC 충전 선을 사고 키는데 4분밖에 걸리지 않은 것은 비상식적이다”라며 JTBC가 태블릿PC보도를 조작했다고 주장하고 있는 태극기집회 측의 주장을 그대로 반복했다.

또한 함귀용 위원은 위원회의 합의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태도도 보였다. 야당 위원들이 ‘자료제출’ 결정에 동의할 수 없다고 하자 “자료제출은 위원들의 동의가 없어도 소위원장의 권한으로 가능하다”며 김성묵 소위원장에게 자료제출을 결정할 것을 강력하게 주장했다. 함귀용 위원의 주장으로 위원회 분위기가 강경해졌고 결국 야당 위원 둘이 퇴장하기에 이르렀다.

▲ JTBC의 최순실 태블릿PC 보도.
▲ JTBC의 최순실 태블릿PC 보도.
이러한 ‘악인의 지렛대’ 현상을 낳은 요인 중 하나는 지렛대 역할을 하는 위원의 잘못이 가장 크나, 야당 위원들의 너무나 손쉬운 ‘퇴장’ 결정도 한 몫을 했다. 물론 편향된 위원회 구성 안에서 퇴장은 불가피한 선택일 수 있다. 그러나 결국 야당 위원들 두 명이 모두 퇴장함으로서 3:2 상황에서의 합의가 아닌, 3:0 상황에서의 합의가 돼버렸다. 설득이 아닌 퇴장을 선택하는 전략은 편의적으로도 보일 수 있다.

게다가 이날 다른 여당 추천 위원인 하남신 위원은 함귀용 위원에 비해 합리적인 모습을 보여서 타협의 여지가 있는 듯 했다. 하남신 위원은 여당 추천 위원이지만 언론인 출신으로, 언론의 취재경로 보호, 취재원 보호에 대한 신념을 밝히기도 했다. 하남신 위원은 이날 “언론에게 취재원 보호란 중대한 책무로서, JTBC에 취재 경로와 입수 경로를 밝히라고 하는 것은 부적절할 수 있다”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방통심의위 안에서 적용되고 있는 악인의 지렛대 현상이 사라지지 않는다면 아무리 JTBC 관련 심의를 보류한다고 하더라도, 매번 회의마다 15일 회의와 같은 모습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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