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백만명의 시민이 촛불을 들고 광장에 선 것은 좀 더 좋은 나라로 바꿔달라는 민심의 표출이었다. 박근혜 대통령의 직무가 정지되고 탄핵 심판이 진행되고 있는 지금, 민심을 오롯이 반영할 정치제도로 국가를 개조하자는 목소리가 이어진다. 이와 함께 정치권에서 지속적으로 언급되는 ‘제왕적 대통령제’를 손보자는 개헌론도 이러한 민심에 일부 근거한다.

그러나 단지 박근혜 대통령 한 사람이 탄핵되고, 야권 성향의 유력 후보가 대통령으로 새로 뽑히는 것만으로 대한민국은 더 나은 사회가 될 수 있을까. 일부 전문가들은 대통령에만 의지한 정치제도를 타파하기 위해 국민의 민심을 정확히 반영하는 국회로 바꾸자는 제안을 던진다. 정치 개혁을 위해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실현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배경이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전체 국회의원 의석수를 정당의 득표율에 따라 배분하는 제도다. 유권자 한 명이 지역 내 국회의원 출마 후보 중 한 명과 한 곳의 정당을 뽑는 방식은 지금과 같다. 다만 각 정당의 득표율에 따라 의석을 배분하는 방식이다. 현재는 정당 득표율과 의석 비율이 일치하지 않아 민의를 왜곡했다는 지적이 있었다.

15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선거제도 개혁이 우선이다’ 토론회에서는 탄핵과 조기대선 국면에서 바꿔야 할 정치 과제에 대한 논의가 이뤄졌다.

하승수 비례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는 이날 발제를 통해 대한민국 국회의 구성이 국민들의 평균적인 모습과 거리가 먼 국회의 모습이 됐다는 점을 지적했다. 

2016년 기준 국회의원의 평균 재산이 40억원이 넘고 여성 국회의원의 비율은 17%에 불과해 세계 평균인 23.0%보다도 더 낮다는 것이다. 세계 평균 2030세대 국회의원 비율은 13.52%인데 한국의 경우 3명에 불과한 것이 현실이다. 국회가 비정규직 노동자와 농민, 장애인 등 소수자의 인권을 대변하기 어려운 이유다.

하 대표에 따르면 국회의원이 대한민국 평균 시민의 모습과 괴리된 이유는 선거제도 때문이다. 지역구 소선거구제 중심의 선거제도 하에서는 평범한 사람이나 사회적 약자들은 거대 정당에 들어가 당선 가능한 지역구에서 공천을 받기 어렵다. 정당 소속 전문 정치인들이 선거에서 유리할 수 밖에 없는 구조다.

▲ 2012년 12월19일 울산 종하체육관에 마련된 대선 개표소에서 개표요원이 박근혜 후보가 찍힌 투표용지 묶음을 투표지 분류기에서 뽑고 있다. ⓒ연합뉴스
▲ 2012년 12월19일 울산 종하체육관에 마련된 대선 개표소에서 개표요원이 박근혜 후보가 찍힌 투표용지 묶음을 투표지 분류기에서 뽑고 있다. ⓒ연합뉴스
김종철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의 분석도 이와 유사하다. 김 교수의 분석에 따르면 현행 상대다수제에 의한 소선거구제는 지역선거구별 승자독식제도를 구조화해 기득권을 가진 거대정당들에게 국민 지지도보다 높은 의석배분을 강제하는 효과를 낳는다. 

지역구 주민들은 사표를 방지하기위해서라도 자신의 입장을 대변할 수 있는 의원 대신 이른바 ‘뽑힐’ 거대 당 소속 의원에게 표를 던질 수 밖에 없다. 거대 당 소속 의원들이 결과적으로 전체 의석수에서도 과반을 차지하게 된다. 이는 또 다시 거대 당에 기득권을 안겨주는 결과로 작용한다.

전문가들의 주장대로 비례대표를 확대하고 국회의원들에게 당 지지율에 맞게 의석수를 배분해 다양한 계층의 이해관계를 대변할 인물들이 지금보다 더 많이 국회에서 활동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야 하는 이유다.

정당 득표율에 따라 국회의석이 배분된다면 국회에서 소수자의 목소리를 대변할 정책이 나올 수 있을까.

하 대표의 설명에 따르면 세계에서 부패가 적은 국가 중 하나인 덴마크에는 13개나 되는 원내 정당이 있다. 한 정당이 얻을 수 있는 최고 득표율 수준은 30%도 미치지 못한다. 이런 시스템 하에서는 최소한  한 정당이 독주하거나 특정한 정치인이 권력을 마음대로 행사하는 것은 상상할 수 없다. 하 대표가 “최순실의 숙주가 되는 ‘박근혜’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것”이라고 말하는 이유다.

한편 이러한 제도의 변경에 따라 정부 형태 역시 바뀌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비례대표제의 도입은 결과적으로 다당제를 구축하는 효과를 낳기 때문에, 입법부의 합의에 따라 행정부가 구성되는 내각제가 있어야 대통령제보다 안정적인 정국 운영이 가능할 것이라는 분석에서다. 

김종철 교수는 이에 대해서도 “(내각제 토양인) 영국에서 노동권을 가장 박살낸 정부가 보수당 정권이었다”며 “입법권과 행정권이 집중돼있었기 때문”이라고 반박했다. 

김 교수는 “87년 체제 헌법에서도 가장 큰 책임은 의회에 있다. 대통령을 군림하게 만든 건 헌법이 아니라 정치 관계법”이라고 설명했다. 반드시 대통령제를 개선해야 비민주적인 정치 환경이 개선되는 것은 아니며 내각제 토양에서도 비민주적인 제도는 얼마든지 만들어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김 교수는 “내각제와 대통령제의 선택은 행정부의 구성권을 의회에 의존해 국민과 유리된 대의제의 독주를 낳을 수 있는 위험에 대한 경계심을 기준으로 선택하는 것”이라며 "현행 대통령제 정부 형태에서도 비례대표제의 도입은 가능하며 비례대표제 때문에 대통령제 정부 형태를 바꿔야 한다는 주장에는 동의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물론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전제조건이 있다. 하승수 대표는 “국민의 저항감이 있기 때문에 국회의원들이 특권을 내려놓고 보다 국회가 예산 낭비를 없도록 만들어야 한다. 현재 국회의 의석을 늘릴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국민이 정치에 대해 다소 백안시 하는 측면이 있지만, 하 대표는 국제 기준을 따져봤을 때 현재 국회의원 수가 충분한 수준은 아니라고 설명한다. 하 대표는 "OECD국가 평균 국회의원 1인당 인구 수는 9만9469명인데, 한국은 16만8723명이다. 이처럼 국회의원 1명이 대표하는 국민숫자가 많은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전제조건은 당내 공천 과정의 민주화다. 김경진 국민의당 의원은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통해 국회의원 숫자가 늘어나게 될 경우 당 내 공천 과정의 민주성과 투명성을 확보하는 것도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라고 짚었다. 김 의원은 과거 더불어민주당에서 총선 공천 심사에서만 세 차례 떨어졌지만, 국민의당 소속으로 출마한 20대 총선에서는 광주 지역에서 당선됐다.

김 의원은 “선거 실무를 현장에서 보면 당 내 공천 시스템이 체계화돼있지 않다. 지난 총선에서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가 (20대 총선 앞두고 공천 과정에서) 옥새들고 날랐다. 박근혜 대통령도 실질적으로 공천을 좌우했다. 체계적인 검증이 없는 것이 당 내부 공천의 현실”이라고 말했다. 김 의원은 또한 “연동형 비례대표제로 간다면 이를 누가 어떤 절차로 임명할지, 또한 어떻게 통제할지도 관심가져야 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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