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 뉴스’가 화두다. 약간 발상을 달리해서 접근할 것을 제안해 본다.

1980년 5월22일. 조선일보는 “광주지역 소요가 악화된 원인은 서울을 이탈한 학원소요 주동학생 및 깡패 등 현실불만 세력이 대거 광주에 내려가 사실무근한 유언비어를 날조해 퍼뜨린데 그 원인이 있다”는 계엄사령부 발표를 인용 보도했다. 그해 5월 언론은 광주의 비명을 외면했고 광주는 완전히 고립돼 있었다. 시민들을 ‘폭도’로 매도한 MBC는 광주 사옥이 불타기도 했다.

시민들은 등사기를 밀어 투사회보를 만들어 뿌렸다.

“80만 광주시민은 잠을 이루지 못하고 울고 또 울었고 날이 새기만을 기다렸습니다. 오, 처절하고 참혹함이여. 인간 세상에 어찌 이 같은 일이 있을 수 있단 말입니까. 우리는 억누를 길 없는 울분으로 목이 메었습니다. 그러나 이 목메임은 또한 치솟아 오르는 분노와 의기의 함성이었습니다. 그리하여 목이 메이도록 외치고 외치고 또 외쳤습니다.” (투사회보 1980년 5월24일)

조선일보와 투사회보, 과연 어느 것이 진짜 ‘가짜 뉴스’였을까.

태극기를 든 탄핵 반대 집회 참가자들은 언론이 진실을 말하지 않고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카카오톡을 통해 출처 불명의 찌라시를 공유하면서 분노를 터뜨린다. “촛불 집회에 중국 유학생들이 동원됐다”거나 “박영수 특별검사가 과거 성추행 전력이 있었다”는 등의 유언비어가 떠돌고 일부는 실제로 인터넷 신문에 기사로 등장한다. 변희재씨의 미디어워치는 JTBC가 태블릿 PC를 조작했다는 음모론을 계속 기사로 내보내고 있다.

황용석 건국대 교수에 따르면 ‘가짜 뉴스’는 “실제 뉴스의 형식을 갖춘, 정교하게 공표된 일종의 사기물 또는 선전물, 허위 정보”를 말한다. 탄핵 반대 집회에 나온 이들은 이 ‘가짜 뉴스’를 진짜 뉴스로 믿고 있거나 믿고 싶은 것이다.

개념을 명확하게 정리할 필요가 있다. ‘가짜 뉴스’는 오보와 다르고 왜곡 보도와도 다르다. 시민을 폭도로 매도하는 기사가 조선일보의 지면을 통해 나갈 때 그것은 일단 진짜 뉴스지만 잘못된 정보를 담고 있다. 여기서 진짜와 가짜는 그게 언론사가 만든 기사냐 아니냐로 구분되지만 중요한 건 진짜 뉴스라고 해도 언제나 사실을 전달하는 건 아니라는 것이다.

▲ 진짜 뉴스와 ‘가짜 뉴스’를 구분하는 건 등록 여부인가? 등록만 돼 있으면 진짜 뉴스인가? 등록돼 있더라도 ‘듣보잡’이거나 평판과 명성을 전혀 확인할 수 없다면 ‘가짜 뉴스’일 가능성이 높은 것일까? 네이버와 다음 등 주요 포털 게재 여부로 ‘가짜 뉴스’ 여부를 가릴 수 있을까? 사진=픽사베이.
▲ 진짜 뉴스와 ‘가짜 뉴스’를 구분하는 건 등록 여부인가? 등록만 돼 있으면 진짜 뉴스인가? 등록돼 있더라도 ‘듣보잡’이거나 평판과 명성을 전혀 확인할 수 없다면 ‘가짜 뉴스’일 가능성이 높은 것일까? 네이버와 다음 등 주요 포털 게재 여부로 ‘가짜 뉴스’ 여부를 가릴 수 있을까? 사진=픽사베이.
며칠 전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이 출마 선언을 할 거라는 한 인터넷 신문의 보도는 찌라시로 떠도는 내용을 베껴 쓴 무책임한 오보였다. 지난해 말 미국 대선을 앞두고 트럼프가 “여성 대통령은 안 된다, 한국을 보라”고 말했다는 언론 보도 역시 오보였다. 출처는 “트럼프가 이런 말을 하면 이기지 않을까”라는 한 페이스북 글이었다. 둘 다 ‘가짜 뉴스’의 문제라기 보다는 출처 확인 없이 베껴 쓰는 기성 언론의 문제다.

안토니오 구테헤스 유엔 사무총장이 반기문 전 총장의 한국 대선 출마가 유엔 결의 위반이라고 말했다는 보도 역시 오보였다. 유로저널이라는 한 인터넷 신문이 게재한 기사가 출처 표기 없이 커뮤니티 게시판과 소셜 네트워크를 통해 확산됐고 대권 도전을 선언한 안희정 충남지사가 라디오 인터뷰에서 이를 언급하면서 파문이 확산됐다. 유로저널은 한국의 블로그 등에 게재된 내용을 참고해 기사를 작성했다고 해명했다.

중요한 질문이 있다. 유로저널은 ‘듣보잡’ 신문이라서 ‘가짜 뉴스’인가? 아니면 유로저널의 오보가 커뮤니티 게시판과 카톡을 넘나들면서 ‘가짜 뉴스’가 된 것인가? 미디어워치는 ‘가짜 뉴스’인가? 미디어워치는 언론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한국에서 인터넷 신문은 허가제가 아니라 등록제고 누구나 등록만 하면 뉴스 서비스를 운영할 수 있다. ‘가짜 뉴스’라는 비난으로 변씨의 표현의 자유를 빼앗을 수는 없다. 나쁜 뉴스일 수는 있어도 미디어워치 역시 일단은 진짜 뉴스다.

반 전 총장은 “‘가짜 뉴스’로 명예에 큰 상처를 입었다”고 말했지만 반 전 총장을 끌어내린 뉴스는 주류 언론이 만든 진짜 뉴스였다. 논란이 됐던 퇴주 잔 동영상은 분명히 ‘악마의 편집’이었지만 그걸 원본 확인 없이 퍼나른 건 역시 주류 언론의 진짜 뉴스였다. 진짜 뉴스가 ‘가짜 뉴스’를 바로 잡는 게 아니라 ‘가짜 뉴스’를 확산하는 통로가 된 것이다. 광주민주화운동을 ‘광주 사태’라 부르고 북한의 무장공비들이 폭동을 주도했다는 망발이 버젓이 방송을 타는 게 현실이다. 무엇이 진짜 ‘가짜 뉴스’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가짜 뉴스’라는 건 내용이 거짓이라서가 아니라 언론이 아닌데 언론인 것처럼 포장하고 그래서 진짜 뉴스인 것처럼 사람들을 속일 수 있기 때문에 우려스러운 것이다. ‘가짜 뉴스’는 언제나 있었다. ‘가짜 뉴스’를 무시할 수는 없지만 굳이 과대평가하는 것도 위험하다. ‘가짜 뉴스’는 가짜라는 게 드러나면 자연스럽게 소멸된다. ‘가짜 뉴스’가 범람하는 건 평판 시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지만 평판 시장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거짓 뉴스나 ‘가짜 뉴스’를 퇴출할 방법은 없다.

언론이 제 역할을 하지 않을 때 유언비어가 힘을 얻는다. 유언비어는 그 자체로 범죄가 아니고 ‘가짜 뉴스’ 역시 공론장의 자정작용에 기대는 것 말고 근절할 방법이 없는 게 현실이다. 최근 ‘가짜 뉴스’에 대한 우려는 다소 과장됐거나 엉뚱한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진짜와 가짜를 나누겠다는 시도는 무의미하고 가짜를 처벌해야 한다는 발상은 매우 위험하다.

진짜 뉴스와 ‘가짜 뉴스’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있지만 ‘가짜 뉴스’보다 더 위험한 건 여론을 왜곡하고 호도하는 나쁜 뉴스다. 진짜 뉴스와 ‘가짜 뉴스’가 공존하고 좋은 뉴스가 나쁜 뉴스를 밀어내는 게 평판 시장이 작동하는 원리다. 진짜 뉴스가 제 역할을 할 때 비로소 ‘가짜 뉴스’가 힘을 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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