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리터러시’라는 말이 유행처럼 번지고 ‘가짜뉴스’가 논란이 되면서 미디어 수용능력을 길러야 한다는 요구가 커지고 있다. 지난 13일 민간 주도로 미디어교육지원법추진위원회가 꾸려져 관련 법 제정 논의가 시작됐다. 추진위는 미디어교육의 개념을 정립하고, 컨트롤타워를 마련하고 교사 인증제도, 교안 체계화 등의 작업을 하게 된다.

미디어교육지원법은 3번이나 발의됐지만 연거푸 폐기된 비운의 법안이다. 이번에는 민간 주도라는 점이 과거와 다르지만 추진위의 구성과 방식에는 위험요소가 있다. 이를 방치한 채 무작정 진행한다면 또 다시 법안이 폐기되거나 왜곡된 미디어 교육이 시행될 가능성이 있어 제대로 된 리터러시를 위한 6가지 방법을 제시해본다.

누군가의 이익을 위한 교육은 안 돼

추진위 소속 단체에는 현업인단체가 포함됐는데, 방송기자, PD, 아나운서 단체 위주라는 점에서 우려가 있다.

과거 신문사 주도의 신문활용(NIE)교육은 ‘리터러시’ 능력을 키우기보다는 신문을 많이 판매하는 데 목적이 있었다. 지금은 중단됐지만 언론진흥재단이 퇴직 언론인을 일선 학교에 보내 교육을 하는 건 ‘퇴직언론인을 위한’ 제도였다는 지적도 나온다. 추진위는 “앞으로 다양한 단체의 참여를 받겠다”는 입장이지만, 방송판 NIE교육 재탕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언론인 자리보전이 목적이 돼선 안 된다.

추진위 참여 단체들 중 정작 교육을 받는 아동·청소년과 직결된 단체가 없다는 점 역시 수용자를 위한 교육이 제대로 이뤄질지 의문이 드는 대목이다. 세미나에 참석한 한 교사는 “학생들을 가르치는 현장에서 학생들이 어떻게 미디어를 수용을 하고 있고, 교사들은 어떤 고민을 하고 있는지 아는 게 핵심이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올드미디어가 아닌 뉴미디어 중심으로

추진위의 교육은 올드미디어 중심이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추진위에 참여한 현업인단체를 비롯해 시민단체와 언론학계는 올드미디어 중심의 사고와 활동을 해오고 있다. 그러나 조중동과 지상파가 아닌 포털이나 ‘캐리’·‘양띵’, ‘철구’를 보고 자라나는 세대에게 신문이나 방송 교육을 중점적으로 실시하는 건 미스매치다. 포털과 SNS 등 플랫폼사업자, MCN 등 뉴미디어 사업자나 관련 단체들 혹은 뉴미디어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교·강사가 필요하다.

▲ 올드미디어를 보지 않는 세대에게 올드미디어 중심의 강사가 올드미디어를 대상으로 강의를 하는 건 사실상 '미스매치'다.
▲ 올드미디어를 보지 않는 세대에게 올드미디어 중심의 강사가 올드미디어를 대상으로 강의를 하는 건 사실상 '미스매치'다.
‘뉴스 리터러시’부터 제대로 하자

리터러시라는 말에는 다양한 뜻이 있다. 추진위는 △소통할 수 있는 사람 △왜곡된 내용을 알 수 있는 사람 △미디어를 활용할 수 있는 사람의 개념을 제시했다. 추진위는 다양한 목표를 균형 있게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한국사회에 필요한 ‘리터러시’가 어떤 개념인지부터 파악해야 한다. 미디어 기술 활용 측면에서 한국은 선진국에 밀리지 않는다. 일선 학교에서 코딩을 가르치는 곳까지 생겼다. 방송통신위원회 중심의 자유학기제 수업은 영상제작 및 편집기술을 가르치는 ‘활용’ 교육을 하고 있다.

반면 한국사회는 다른 국가들보다 왜곡된 언론지형, 정치·경제 권력이 미디어에 개입하는 폐단이 심각하다. 따라서 비판적 읽기 교육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광고주의 입김이 들어간 보도, 지배구조에 따른 논조 차이를 분석하는 능력을 기르는 게 우선돼야 한다. 나아가 상업적·정치적 편집을 할 수밖에 없는 포털과 정치적 극단을 부추기는 SNS에 대한 비판적 수용 교육이 절실하다.

부처 이기주의에 휘둘리면 안 된다

미디어교육지원법안의 핵심은 방송통신위원회, 문화체육관광부, 한국콘텐츠진흥원, 인터넷진흥원 등 여러 부처에서 각개격파식으로 이뤄지고 있는 미디어 교육을 체계적으로 통합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부처 이기주의가 작용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19대 국회 때도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는 방통위 중심의 법안을 내놓았고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는 문화체육관광부 중심의 법안을 내놓기도 했다. 차기정부 조직개편 논의와 함께 제3의 컨트롤타워를 구성하는 방안도 고려해볼만하다.

▲ 인천시청자미디어센터의 자유학기제 실습교육. 주로 미디어 '체험'이나 '활용'교육에 머물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 인천시청자미디어센터의 자유학기제 실습교육. 주로 미디어 '체험'이나 '활용'교육에 머물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해외 교육 프로그램은 의외로 별 게 없다

미디어 리터러시 소개의 ABC는 해외사례 언급이다. 이날 추진위 출범 기자회견에서도 어김없이 해외사례가 거론됐다. 그러나 해외 미디어교육은 의외로 특별하지 않다. 프랑스에는 놀라운 정도의 ‘차별화된 교안’이나 시스템이 있지 않았다. 핀란드 헬싱키에서 가장 큰 미디어교육시설보다 한국의 시청자미디어센터 시설이 더 뛰어났다.

이들 나라는 기본적으로 ‘시민의식’을 교육하기 때문에 이와 맞물려 미디어 교육이 효과적으로 발휘될 수 있었다. 토양이 다른 상황에서 교육법만 가져온다고 해서 제대로 된 미디어 교육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낮다.

프랑스 끌레미(국립미디어센터) 캐롤 엘피케 미디어교사 교육 담당은 2015년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최근 다녀간 한국정부 사람들은 프랑스식 시스템을 도입하겠다면서 예산을 자랑하고, 시설투자만 이야기했다”면서 “반면 우리는 30년째 교육목표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고 꼬집기도 했다. 대학입시가 지상 목표인 대한민국 교육시스템을 근본적으로 성찰해야만 하는 대목이다.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을 교과목에 넣는 게 최우선 목표처럼 이야기되지만 취지와 달리 입시를 위해 암기하는 수업이 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입시에 반영하지 않게 되면 예체능 교과처럼 수업을 외면하고 입시공부를 할 우려도 있다.

법 제정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미디어교육지원법 추진위원회의 목적은 법안 통과지만, 그 이후에 할 일이 더 많다. ‘비판적인 읽기’ 수업에는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학교 수업에서 다뤄지더라도 텍스트 밖으로 나오기 힘든 게 현실이다. 학내 미디어교육을 실시해온 한 강사는 “팟캐스트로 교육을 하면 좋을 거 같은데 고발당하거나 논란이 될까 우려가 돼 하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교육을 행하는 주체들의 활발한 교류도 뒷받침돼야 한다. 핀란드 헬싱키에서는 지역 내에서 미디어 교육을 지원하는 교수, 시민사회단체 활동가, 정부 공무원이 정기적으로 교류하면서 교육법을 지속적으로 연구하고 있다. 이날 세미나에서 복성경 미디어 강사도 “법 만들고, 지역마다 센터를 만든다고 해서 제대로 교육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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