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중순 경 LG유플러스 강북서비스센터(이하 강북센터)에서 터져나온 말이다. 생계유지가 불가능해진 수리·개통기사들이 직접 사장에게 항의하기 위해 나선 자리에서였다. 한달 평균 230만 원은 벌었던 이들의 월급은 노조를 설립하자마자 160만원, 100만원으로 줄어들더니 급기야 55만 원까지 떨어졌다. 45명에 달했던 조합원은 2년 반 후 0명이 됐다.
‘박종수 사장’, ‘LG유플러스 강북센터’는 LG유플러스 비정규직 노조 사이에선 “치가 떨리는 이름”이라고 알려졌다. 일감을 틀어쥐고 조합원의 생계를 망가뜨림으로써 노조 파괴에 성공한 당사자기 때문이다. 박종수 사장은 (주)누리온정보통신(이하 누리온)의 사장이다. 누리온은 서울 강북·도봉·성북지역을 관리하는 강북서비스센터와 성동 지역을 관리하는 성동서비스센터 운영을 원청인 LG유플러스로부터 위탁받은 업체다.
최근 서울 강북·성북 지역사회를 중심으로 이들에 대한 퇴출운동 논의가 시작되고 있다. 지역사회를 병들게 하는 기업을 지역이 직접 잘잘못을 가려주자는 취지에서다. 이 논의를 주도하고 있는 우성구 새날교회 목사는 “주민 대부분이 노동자다. 기사들 대부분도 같은 지역에 사는 주민이더라”면서 “최소한 우리 지역은 노동자와 인간의 권리가 지켜지는 곳으로 만들고자 하는 것”이라 말했다.
살인적인 일감줄이기, 누구 하나 처벌하는 사람 없어
박종수 사장의 일감 삭감을 통한 생계 압박은 극심한 수준이었다. 1년 반을 견디다 2015년 10월 퇴사한 복정준 전 기사는 미디어오늘 인터뷰에 응하며 “4인 가족 가장이 100만원, 80만원, 50만원 돈을 벌어오는 게 어떤 건지 상상이 가냐”고 물었다. 2012년 주말·연장근무, 영업 등으로 400여만 원을 찍기도 했던 복씨의 임금은 2014년 8월 110여만 원, 9월 80여 만 원, 10월 50여 만 원으로 줄었다.
복씨는 다른 조합원도 마찬가지였다고 말했다. 평균 230만원이던 월급이 반 토막이하로 떨어지려면 평소 4~5건은 분배되던 개통 방문 건수가 1건으로 준다는 말이었다. 복씨는 아침 8시30분에 출근해 저녁 6시가 될 때까지 회사로부터 ‘문자 한 통’을 받는 생활을 수개월 간 견뎌왔다고 말했다. 2014년 3월30일 노조가 생긴 지 한두 달 후 시작된 일감 삭감이었다.
사측의 방법은 대체인력 투입이었다. 40여 명의 조합원 기사를 배제하고 대체 인력에게 일을 주는 방식이었다. “왜 일을 안주냐”고 항의하는 이들에게 당시 팀장은 “일 없으니 안 주는게 아니냐” “대체 인력이 아니라 우리가 고용한 사람들이다” “(지역 배분은) 회사가 정하는 거지 기사들이 산 게 아니잖느냐”고 되려 소리쳤다.
복씨는 이를 ‘노조 말려죽이기’라고 불렀다. 박종수 사장의 방법은 성공적이었다. 2014년 4월 45명에 달하던 조합원 수는 시간이 가면서 서서히 줄었고 장기 파업을 거친 후인 2015년 5월 조합원은 9명으로 줄었다. 그 해 10월 복씨가 퇴사한 후 다시 퇴사가 이어졌고 2016년 8월 마지막 남은 조합원 1명이 퇴사함으로써 강북센터는 무노조 센터가 됐다.
복씨가 퇴사한 배경엔 파업 복귀 후에도 계속된 박 사장의 말려죽이기가 있다. 복귀 후 복씨의 급여명세서엔 130여 만 원이 찍혔다. 조합원들은 임금협상을 통해 충분한 일감 제공을 전제로 230만 원 수준의 임금을 받을 것으로 기대했으나 강북센터는 ‘조합원 표적’ 일감 삭감을 유지했던 것이다.
박종수 사장은 조합원이 1명만 남아있던 2016년 5월, 노조를 탈퇴한 강북센터 기사에게 “이게 답이다”라고 말했다. 최영열 LG유플러스 비정규직 노조(희망연대노동조합 LG유플러스비정규직지부) 지부장이 해당 기사로부터 직접 들은 말이다. 최 지부장은 강북센터 기사들로부터 박 사장이 ‘노조에게 10원 주면 내 새끼들한테 줄 10원이 줄어든다. 못 준다’고 말해왔다는 사실도 전해 들었다.
전 기사 비정규직 만든 누리온
어렵게 체결한 단체협상은 강북센터에서 전면 무효화됐다. 개통·수리 기사들이 모두 ‘개인사업자’로 돌아갔기 때문이다. 복씨는 “애써 만들어 온 정규직 고용이 도루묵이 됐다”고 말했다. 박종수 사장은 단협 체결로 현장 기사에 대한 정규직 고용을 약속했음에도 위장 도급 복귀를 추진했다. 조합원 1명만 남아있던 2016년 4월 강북센터 고용현황을 보면 정규직인 현장기사는 조합원 1명이고 나머지 60명 기사는 모두 ‘개인도급’ 신분이다. 무노조가 된 2016년 9월부터 강북센터엔 정규직 기사가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