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 새끼만 새끼냐! 내 새끼도 새끼다! 지금 내 새끼들 다 굶어죽게 생겼다.”

2014년 중순 경 LG유플러스 강북서비스센터(이하 강북센터)에서 터져나온 말이다. 생계유지가 불가능해진 수리·개통기사들이 직접 사장에게 항의하기 위해 나선 자리에서였다. 한달 평균 230만 원은 벌었던 이들의 월급은 노조를 설립하자마자 160만원, 100만원으로 줄어들더니 급기야 55만 원까지 떨어졌다. 45명에 달했던 조합원은 2년 반 후 0명이 됐다.

‘박종수 사장’, ‘LG유플러스 강북센터’는 LG유플러스 비정규직 노조 사이에선 “치가 떨리는 이름”이라고 알려졌다. 일감을 틀어쥐고 조합원의 생계를 망가뜨림으로써 노조 파괴에 성공한 당사자기 때문이다. 박종수 사장은 (주)누리온정보통신(이하 누리온)의 사장이다. 누리온은 서울 강북·도봉·성북지역을 관리하는 강북서비스센터와 성동 지역을 관리하는 성동서비스센터 운영을 원청인 LG유플러스로부터 위탁받은 업체다.

최근 서울 강북·성북 지역사회를 중심으로 이들에 대한 퇴출운동 논의가 시작되고 있다. 지역사회를 병들게 하는 기업을 지역이 직접 잘잘못을 가려주자는 취지에서다. 이 논의를 주도하고 있는 우성구 새날교회 목사는 “주민 대부분이 노동자다. 기사들 대부분도 같은 지역에 사는 주민이더라”면서 “최소한 우리 지역은 노동자와 인간의 권리가 지켜지는 곳으로 만들고자 하는 것”이라 말했다.

▲ 2014년 8월29일 서울시 강북구에 있는 LG유플러스 강북서비스센터 앞에서 강북지회 조합원들이 집회를 열고 있다. 사진=희망연대노조 LG유플러스비정규직지부
▲ 2014년 8월29일 서울시 강북구에 있는 LG유플러스 강북서비스센터 앞에서 강북지회 조합원들이 집회를 열고 있다. 사진=희망연대노조 LG유플러스비정규직지부

살인적인 일감줄이기, 누구 하나 처벌하는 사람 없어

박종수 사장의 일감 삭감을 통한 생계 압박은 극심한 수준이었다. 1년 반을 견디다 2015년 10월 퇴사한 복정준 전 기사는 미디어오늘 인터뷰에 응하며 “4인 가족 가장이 100만원, 80만원, 50만원 돈을 벌어오는 게 어떤 건지 상상이 가냐”고 물었다. 2012년 주말·연장근무, 영업 등으로 400여만 원을 찍기도 했던 복씨의 임금은 2014년 8월 110여만 원, 9월 80여 만 원, 10월 50여 만 원으로 줄었다.

복씨는 다른 조합원도 마찬가지였다고 말했다. 평균 230만원이던 월급이 반 토막이하로 떨어지려면 평소 4~5건은 분배되던 개통 방문 건수가 1건으로 준다는 말이었다. 복씨는 아침 8시30분에 출근해 저녁 6시가 될 때까지 회사로부터 ‘문자 한 통’을 받는 생활을 수개월 간 견뎌왔다고 말했다. 2014년 3월30일 노조가 생긴 지 한두 달 후 시작된 일감 삭감이었다.

사측의 방법은 대체인력 투입이었다. 40여 명의 조합원 기사를 배제하고 대체 인력에게 일을 주는 방식이었다. “왜 일을 안주냐”고 항의하는 이들에게 당시 팀장은 “일 없으니 안 주는게 아니냐” “대체 인력이 아니라 우리가 고용한 사람들이다” “(지역 배분은) 회사가 정하는 거지 기사들이 산 게 아니잖느냐”고 되려 소리쳤다.

복씨는 이를 ‘노조 말려죽이기’라고 불렀다. 박종수 사장의 방법은 성공적이었다. 2014년 4월 45명에 달하던 조합원 수는 시간이 가면서 서서히 줄었고 장기 파업을 거친 후인 2015년 5월 조합원은 9명으로 줄었다. 그 해 10월 복씨가 퇴사한 후 다시 퇴사가 이어졌고 2016년 8월 마지막 남은 조합원 1명이 퇴사함으로써 강북센터는 무노조 센터가 됐다.

복씨가 퇴사한 배경엔 파업 복귀 후에도 계속된 박 사장의 말려죽이기가 있다. 복귀 후 복씨의 급여명세서엔 130여 만 원이 찍혔다. 조합원들은 임금협상을 통해 충분한 일감 제공을 전제로 230만 원 수준의 임금을 받을 것으로 기대했으나 강북센터는 ‘조합원 표적’ 일감 삭감을 유지했던 것이다.

박종수 사장은 조합원이 1명만 남아있던 2016년 5월, 노조를 탈퇴한 강북센터 기사에게 “이게 답이다”라고 말했다. 최영열 LG유플러스 비정규직 노조(희망연대노동조합 LG유플러스비정규직지부) 지부장이 해당 기사로부터 직접 들은 말이다. 최 지부장은 강북센터 기사들로부터 박 사장이 ‘노조에게 10원 주면 내 새끼들한테 줄 10원이 줄어든다. 못 준다’고 말해왔다는 사실도 전해 들었다.

전 기사 비정규직 만든 누리온

어렵게 체결한 단체협상은 강북센터에서 전면 무효화됐다. 개통·수리 기사들이 모두 ‘개인사업자’로 돌아갔기 때문이다. 복씨는 “애써 만들어 온 정규직 고용이 도루묵이 됐다”고 말했다. 박종수 사장은 단협 체결로 현장 기사에 대한 정규직 고용을 약속했음에도 위장 도급 복귀를 추진했다. 조합원 1명만 남아있던 2016년 4월 강북센터 고용현황을 보면 정규직인 현장기사는 조합원 1명이고 나머지 60명 기사는 모두 ‘개인도급’ 신분이다. 무노조가 된 2016년 9월부터 강북센터엔 정규직 기사가 사라졌다.

▲ 2016년 4월 기준 LG유플러스 강북서비스센터(누리온정보통신이 위탁 운영) 고용 현황. 2016년 9월부터 정규직원은 0을 기록했다. 사진=LG유플러스 비정규직 임단협 타결이후 <br /></div></div>
                                <figcaption>▲ 2016년 4월 기준 LG유플러스 강북서비스센터(누리온정보통신이 위탁 운영) 고용 현황. 2016년 9월부터 정규직원은 0을 기록했다. 사진=LG유플러스 비정규직 임단협 타결이후 <br>개인 도급확대ㆍ반인권적인 노조탄압 실태와 문제점 긴급토론회 자료집</figcaption>
                                </figure>
                                </div><br><p></p><p>당시 LG유플러스 비정규직 노조 단체협상의 골자는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였다. LG유플러스 비정규직 개통·수리 기사들은 단협 체결 전까진 ‘개인사업자’ 신분으로 센터와 ‘도급 계약(사업자 간 계약)’을 체결해 왔다. 4대 보험 안전망, 퇴직금 대상, 고용 안전망에서 배제됐을 뿐만 아니라 ‘노조할 권리(노동3권)’도 보장받지 못했다. 기사들은 개통 ‘건’ 마다 수수료를 임금 명목으로 받았기 때문에 야간·주말 가릴 것 없이 장시간 노동에 시달려야 했다. </p><p>LG유플러스 비정규직 노조는 2014년 11월부터 2015년 5월까지 장기 파업을 거친 후 협력사협의회(대표 박종수)와 단체협상을 맺었다. 복씨에 따르면 임금 삭감을 감수하고라도 수수료 임금 체계와 고용 불안정을 해결하기 위해 맺은 단협이었다. 노조가 살아있는 다른 LG유플러스 지역 센터에서는 정규직 고용이 유지되고 있는 반면 강북센터는 ‘전면 도급화’가 완료된 상태다.</p><p>최근 통신시설 설치·수리 기사와의 도급 계약은 불법적 행태라는 해석이 나왔다. 미래창조과학부는 2016년 12월 개인도급자에게 전신주 작업을 지시한 것이 불법이라는 전기통신공사업법 유권해석을 내렸다. 해당 법에 따르면 유료방송·통신 설치·수리기사 중 개인도급업자는 ‘경미한 공사’만 하게 돼 있지만 미래창조과학부는 건물 외벽, 옥상, 전봇대 작업은 경미한 공사의 범위를 넘어 서기 때문에 기간통신사업자(원청)나 정보통신공사업 등록을 한 사업자(협력업체)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p><p>강북센터의 현장 기사 전면 도급화는 미래부의 해석을 역행하는 처사다. 김일웅 성북강북지역대책위(케이블방송·통신 불법간접고용구조 개선과 비정규직 노동자 생존권 쟁취를 위한 성북강북지역대책위원회) 위원장은 “도급기사 불법 문제가 국회 차원에서 밝혀지면서 대책위에서도 대응을 했지만 원청에서 아무런 반응이 없어 소강상태였는데 지역 시민사회단체들, 노조 등 함께 모임을 가지며 다시 이 문제를 대응해 보자고 얘기하고 있다”고 강조했다.</p><p></p><div style=
▲ 전신주 작업 중인 LG유플러스 개통 기사 모습 사진=희망연대노조 LG유플러스비정규직지부
▲ 전신주 작업 중인 LG유플러스 개통 기사 모습 사진=희망연대노조 LG유플러스비정규직지부

“너무나 일상적이어서 하나 꼽기 힘들어… 노조 와해 시도는 전방위적”

일상적인 노조 괴롭힘과 노조 탈퇴 회유도 벌어졌다. 복씨는 파업 후 강북센터 조합원이 대거 탈퇴한 데엔 회사의 ‘탈퇴 회유’ 입김이 작용했다고 주장했다. 당시 사무차장이었던 복씨는 사측이 노조 간부 둘에게 ‘노조 인정해주겠다. 노사협의회도 만들고 단협도 더 잘 해주겠다. 전제조건은 조합원이 1명도 없어야 한다’면서 거래를 해왔다고 밝혔다. 해당 간부는 실제로 조합원을 한 명씩 만나 ‘그동안 힘들었지 않냐’며 회유작업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단체협약 조인식 즈음 당시 강북센터 노조위원장은 조합원을 모아놓고 “오늘부로 지회장직을 내려놓는다. 노조도 탈퇴한다”고 발표했다. 9명을 제외한 조합원들이 그 자리에서 노조 탈퇴서를 작성했다.

직군 변경, 징계 누적 등도 병행됐다. 현장기사들에겐 ‘개통’ 업무와 ‘수리’ 업무는 수학과 국어처럼 다르게 느껴지는 업무임에도 조합원들을 표적 삼아 개통기사를 수리직군에 넣는 노무관리가 들어갔다는 것이다. 복씨와 최 지부장은 “기사들에겐 굉장한 부담이자 스트레스”라고 강조했다.

경고장·경위서 남발은 강북센터를 비롯한 대부분의 센터에서 비슷하게 발견됐다. 최 지부장에 따르면 심한 센터에서는 조합원 1명이 한 달에 3~5개 징계를 받곤 했다고 지적했다.

복씨는 당시 자신을 포함한 노조 간부들이 ‘노조 만들면 불이익을 줄 것’이란 내용의 문자를 ‘119’ 번호로부터 받았다고 말했다. 이는 문자 추적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회사에서 발송된 것임이 드러난 바 있다.

LG유플러스 비정규직 노조에 따르면 강북센터는 노조를 탈퇴한 기사와 신규로 입사하는 기사에게 ‘노조 가입 불가 확약서’를 작성해야만 도급 계약을 체결해 주고 있다. 노조 관계자는 “물증은 없으나 내부 기사의 말을 들었다”고 밝혔다.

▲ 2015년 7월23일 성북강북지역대책위가 LG 유플러스 협력사 협의회 박종수 대표를 고발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희망연대노조 LG유플러스비정규직 지부
▲ 2015년 7월23일 성북강북지역대책위가 LG 유플러스 협력사 협의회 박종수 대표를 고발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희망연대노조 LG유플러스비정규직 지부

누리온 '횡령' 부도덕성에 지역사회 반발

지역사회가 누리온 비판 대열에 나서 온 계기는 또 있다. 누리온이 2013년 서울일자리플러스센터 중소기업 인턴쉽 프로그램 지원금을 부정한 방법으로 수급한 사실 때문이다.

누리온은 2013년 4·7·9월에 각각 센터 정규직으로 입사한 직원에 대해 허위 인턴쉽 프로그램 신청을 하게 해 총 3600만원 지원급을 부당 지급받은 사실이 있다. 인턴십 프로그램은 정규직 전환 계획을 가진 인턴 채용에 한해 인턴 기간 3개월 급여의 50%와 정규직 전환 후 9개월 급여의 70%를 월 100만원 한도 내에서 지원한 제도다.

성북강북지역대책위는 서울시에 누리온에 대한 감사를 실시달라고 직접 청구했다. 서울시는 총 2천83만5천원 부당 수급액을 환수하고 누리온을 향후 1년간 고용지원사업 참여에 금지하는 등의 행정조치를 취했다.

“‘살 수가 없다’ ‘무섭다’ 이 말에 퇴출운동 함께 해”

우 목사는 누리온 측의 ‘노조 말려죽이기’는 기사들에게 ‘노예의식’을 심는 등 인간 존엄을 해치는 수준까지 갔다고 강조했다. 실제 LG유플러스 통신 이용자인 강북구 주민 우 목사는 2년 전 자신의 집을 찾은 수리기사가 “살 수가 없다. 일을 안줘서 말려 죽이고, 노조에 미안하지만 나도 살아야 겠기에…”라 말을 삼키는 것을 보고 누리온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해당 기사도 조합원 출신이었다.

최 지부장도 강북센터 기사들로부터 ‘박종수가 무섭다’ ‘저 사람이 있는 한 노조 가입은 못한다’는 말을 일상적으로 들어왔다고 밝혔다. 일부 기사들은 그가 노조 모임 구경만 와보라는 말만 해도 “이런 자리 나오는 것도 무섭다. 잘릴 것 같다”고 답한다고 그는 말했다.

▲ &#039;일감 삭감&#039; 생계 탄압 비판하는 LG유플러스 비정규직 노조 피켓. 사진=희망연대노조 LG유플러스비정규직 지부
▲ '일감 삭감' 생계 탄압 비판하는 LG유플러스 비정규직 노조 피켓. 사진=희망연대노조 LG유플러스비정규직 지부

복씨는 강북센터 조합원 대부분이 당시 겪었던 경제적 고통과 인격적 모독에 따른 상처를 가지고 있을 거라 지적했다. 실제로 강북센터 출신 기사들에게 인터뷰를 요청했으나 복씨를 제외한 대부분은 “기억하고 싶지 않다”며 거부했다. 복씨는 “우리는 ‘조금만 있으면 좋아진다’ ‘조금만 버티자’라며 서로 다독였다. 부채가 쌓여도 버티고 길바닥 농성도 했다”면서 “파업 후 상황은 더 안좋아졌다. 두려움이 팽배한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성북강북지역대책위는 주민들의 직접 행동을 조직해나갈 계획을 세우고 있다. 지난 2년 간 원청 LG유플러스에는 ‘누리온 퇴출’을 요구했고 누리온 측엔 노조 탄압 중단을 요구했으나 양 측과 대화를 나눠본 적은 없다. “근로감독관은 이런 문제에 해결 의지를 보이지 않는 데다”(복씨) 강북센터가 무노조 센터가 된 상황에서 LG유플러스 비정규직 노조가 개입할 여지도 없다. 지역이 직접 LG 유플러스 통신 불매 운동 등을 거론하고 나선 이유다.

김일웅 위원장은 “아직 본격적인 계획을 세우진 않았으나 지역 단체, 주민들, 노조가 같은 뜻을 가지고 있다”면서 “누리온 퇴출을 내걸고 원청을 압박해 나갈 것”이라 밝혔다.

박종수 누리온 사장의 입장을 듣기 위해 전화, 문자 등으로 수차례 연락을 시도했으나 박 사장은 응답을 하지 않았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