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한 사람. 동아투위 해직기자가 이승을 떠났다. 고 오정환. 위중한 병석에서 고인은 투위 동지들에게 “오래 사시면서 좋은 일 많이 하시기 바란다”고 전했다. 투위 김종철 위원장에 따르면 고인은 촛불집회를 보며 “우리가 그렇게도 바라던 민주화가 이제야 이루어질 것 같아 가슴이 벅차다”고 말했다. 뒤늦게 향을 피우고 고인의 명복을 빌며 가만히 물어본다. 좋은 일 많이 하라는 사실상의 유언 앞에 나 얼마나 당당한가.

어느새 동아투위 해직기자들 스물여섯 분이 우리를 떠났다. 군부독재와 맞서 언론운동의 길을 연 동아투위는 줄기차게 복직을 요구했지만, 동아일보사를 대를 이어 세습해온 자본은 여태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스물여섯 분을 비롯해 백발성성한 해직기자들에게 언론의 자리는 엄중하다. 언론인 생활 내내 ‘자리’를 보존해온 현직 언론인들은 그 아픔을 알지 못한다. ‘오늘 하루는 어제 죽은 사람들이 간절하게 살고 싶어 했던 바로 그날’이라는 말을 새겨보면, 아직 살아있음은 물론, 기자라는 명함을 지닌 이들은 ‘좋은 기사쓰기’에 최선을 다해야 옳다.

▲ 동아일보 언론인들은 1974년 10월24일 동아투위 자유언론실천선언을 발표했다.
▲ 동아일보 언론인들은 1974년 10월24일 동아투위 자유언론실천선언을 발표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독재정권과 싸운 동료들이 감옥을 들락거리며 고통 속에 보낼 때, 후배들이 기자의 양심을 지키려다가 줄줄이 해직당할 때도 전혀 아랑곳없이 ‘현직’으로 ‘언론 권력’을 누려온 이들도 있다. 문제는 그들이 사회적 약자를 대변하는 글을 단 한 줄도 쓰지 않았다는 데만 있지 않다. 좋은 일은커녕 끊임없이 왜곡을 일삼는 데 있다.

곧 여든 살을 앞둔 조선일보 김대중 고문이 대표적 보기다. 그는 ““북한 먼저 가겠다”와 색깔론” 제하의 칼럼(2017년 2월14일)에서 “민주당 유력 대선 주자인 문재인씨”가 “대통령에 당선되면 북한부터 먼저 가겠다”고 밝힌 대목에 교묘한 색깔론을 전개했다. 칼럼의 결말은 “문씨도 어물쩍 넘겨버리려 해서는 안 되고 국민도 적당히 넘어가서는 안 된다”이다. 김 씨는 “그(문재인)가 대선 선두 주자인 만큼 그의 대북관은 우리나라 안보에 중대한 논점이 될 수 있으며 사상 검증의 대상이 돼야 한다”고 언죽번죽 부르댔다.

여기서 김 씨에게 ‘사상검증’의 권리를 누가 주었는지 묻고 싶진 않다. 기실 사상을 꼭 검증해야 한다면 지금 국립묘지에 안장되어 있는 오월항쟁의 민주화유공자들에게 “총을 든 난동자들”이라고 서슴없이 펜을 갈겨대고도 진솔한 사과 한마디 없이 늙어가는 그의 ‘사상’이 궁금할 따름이다.

하지만 ‘대선 선두주자’의 사상을 검증하겠다고 나선 고위직 언론인이 짧은 글에서 기사의 ㄱㄴㄷ조차 지키지 못하고 있다면 너무 민망하지 않은가. 그는 이렇게 쓴다.

▲ 2017년 2월14일 조선일보 김대중 칼럼
▲ 2017년 2월14일 조선일보 김대중 칼럼
“‘빨갱이’론은 문씨가 스스로 제기한 것이다. 정치권의 누구도, 어느 공직자도, 어느 논객도 그를 가리켜 공개적으로 '빨갱이'라고 언급한 기록이 없다. '빨갱이'는 SNS에서 나돌기 시작한 것이다. 어쩌면 자기 그림자에 놀란 문씨가 제 발 저려 던진 화두일지도 모른다.”

과연 그런가. 전혀 아니다. 문재인을 ‘빨갱이’로 몬 것은 다름 아닌 공영방송 문화방송의 이사회인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 고영주다. 2013년 1월 이른바 ‘애국시민사회진영 신년하례회’ 모임에서 고영주는 “(2012년 대선 후보였던) 문 후보는 공산주의자이고, 이 사람이 대통령이 되면 우리나라가 적화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확신하고 있었다”고 살천스레 말했다. MBC 이사장 고영주는 이 순간까지도 그 말을 바로잡지 않고 있다. 도대체 기사생활 50년을 넘은 김대중은 그 사실을 모르고 있는가. 그가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의 언론인이라면 마땅히 고영주의 ‘사상’을 검증해야 옳을 터다. 하지만 그의 칼끝은 정반대다.

나는 조선일보 고문 김대중이 눈을 감기 전에 단 한 줄에서라도 ‘좋은 일’ 하길 진심으로 소망한다. 사실을 왜곡하는 김대중의 자칭 ‘직필’들, 케케묵은 색깔론에 현란한 옷을 다시 입히는 낡은 글들이 내놓고 ‘계엄령’을 요구하는 저 눈먼 행렬에 녹아들어있기에 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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