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국민과의 약속대로 특별검사팀에 조사받는 시늉이라도 할까.

아마 상당수 국민은 박 대통령이 끝까지 특검의 수사를 받지않을 것으로 예상하는 것 같다. 자신이 특별기자회견을 통해 공식적으로 한 약속마저도 번번이 파기하면서까지 특검의 수사를 거부하는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박 대통령측은 합의된 대면조사 일정이 언론에 공개됐다는 이유로 수용불가 방침을 밝히자 특검팀은 "대면조사를 구걸하지 않겠다"는 원칙을 정했다. 청와대 압수수색도 하지못하고 대면조사도 거부당한 특검팀은 수사의 벽을 실감하고 있는 모습이다.

박 대통령이 정말 억울하다면 먼저 수사를 받겠다고 나서는 것이 정상이다. 검찰에도 특검에도 수사에 협조하겠다고 말하고는 실제로는 이처럼 수사에 협조하지 않고 있다. 대신 청와대 출입기자들을 불러 따로 자신의 일방적 주장을 늘어놓았다. 이것도 부족하다고 판단해서인지 극우성향의 한 개인인터넷방송을 불러 역시 일방적 주장을 적극 전파했다.

▲ 지난 1월25일, 정규재 한국경제 주필과 인터뷰하는 박근혜 대통령. 사진=정규재TV 화면 갈무리.
▲ 지난 1월25일, 정규재 한국경제 주필과 인터뷰하는 박근혜 대통령. 사진=정규재TV 화면 갈무리.
이런 일련의 행위를 보면 박 대통령이 왜 특검의 수사를 회피하는지 답이 보인다. 최소한 세 가지로 유추해볼 수 있다. 먼저 국정최고책임자의 입장에서 자신의 주장을 논리적으로 표현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의 말은 통역기가 필요할만큼 비문이 많아 이해하기가 쉽지않다. 더구나 자기가 준비한 말을 일방적으로 풀어놓는 것 조차도 버거워한다. 수사팀은 일방적 주장을 받아들이지않고 구체적 사안에 대한 정확한 답변을 요구하는 법이다.

판을 깔아주고 프롬터를 켜줘도 ‘비정상 화법’으로는 수사팀을 당해낼 수가 없다. 박 대통령 취임후 한번도 ‘국민과의 대화’를 갖지않고 언론과의 창간 특별 인터뷰 등을 일체 거부한 이유는 바로 기본적으로 자기표현이 안되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의 대변인을 지낸 전여옥 전 의원은 이를 ‘말을 배우는 아이의 옹알이 화법 즉 베이비톡’이라고 명명했다. 거창한 국정철학 논쟁 같은 것은 기대하기조차 힘들다.

지난해 박 대통령이 언론사 편집·보도국장을 청와대로 초청해 오찬 간담회를 가졌다. 취임 첫해인 2013년 4월 언론사 간담회 이후 3년 만에 갖는 ‘역사적 소통의 자리’였다. 그 자리에서도 박대통령의 ‘비정상 화법’은 또 다시 ‘박근혜 통역기’를 찾게 만들었다. 한 언론인은 자신의 블로그에 “아무리 다시 읽어봐도… 박근혜 대통령의 오늘 발언은 ‘전혀 조율되지 못한 실언’들의 모음이라는 느낌이 강하다. 모든 발언이 다 그렇다.”고 소감을 밝힐 정도였다.

장차관들의 대면보고를 받지않는 이유중 하나도 기본 커뮤니케이션이 정상적으로 되지않기 때문이다. 이해력과 설득력, 논리력, 표현력을 갖춰야 국정중대사에 대한 반박과 재반박, 조정, 합의도출이 가능한 법이다.

▲ 청와대 기자들이 지난 1일 청와대 상춘재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의 기자간담회에 참석해 박 대통령의 발언을 듣고 있다. 사진=청와대 제공
▲ 청와대 기자들이 지난 1일 청와대 상춘재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의 기자간담회에 참석해 박 대통령의 발언을 듣고 있다. 사진=청와대 제공
또 다른 이유는 박 대통령이 대면조사에서 얻을 실익보다 오히려 불이익이 더 클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의 일방적 부인, 일방적 주장에 대해 전문 수사관들이 부인할 수 없는 증언이나 증거를 제시하며 추궁할 때 자칫 유불리판단이 안된 상황에서 ‘덜컥수’를 드러낼 위험성이 높다는 계산 때문이다.

단 한번도 추궁을 당해본 경험이 없는 박 대통령에게 수사관들의 노련한 수사기법은 생소하며 당혹스런 경험이 될 것이다. 박 대통령측은 특검의 대면조사는 대통령의 진실을 입증하는 좋은 기회가 아닌 반대로 ‘감추고 싶은 진실’이 노출될 위험성을 높게 보는 것 같다.

마지막 이유는 지연전술로 판세를 바꾸겠다는 계산 때문이다. 특검과 헌재에 임하는 박 대통령측의 대응은 한마디로 지연전술이다. 헌재소장 권한대행인 이정미 재판관은 “신문이 예정된 증인들이 불출석하면 원칙적으로 재소환하지 않겠다. 지금까지 한 여러 가지 주장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서 23일까지 준비서면으로 제출해달라”고 말했다. 더 이상 끌려다니지않겠다는 선언인 셈이다. 그러자 대통령 대리인 쪽은 “대통령 직접 출석을 상의해보겠다”고 응수했다.

▲ 박영수 특별검사팀 대변인 이규철 특검보가 1월31일 오후 서울 강남구 대치동 특검 사무실에서 수사 상황에 대해 브리핑하고 있다. 사진=포커스뉴스
▲ 박영수 특별검사팀 대변인 이규철 특검보가 1월31일 오후 서울 강남구 대치동 특검 사무실에서 수사 상황에 대해 브리핑하고 있다. 사진=포커스뉴스
대통령 출석도 아니고 ‘출석을 상의해보겠다’는 것이다. 대통령 출석이라는 절차를 만들어 변론기일을 연장해보겠다는 계산이다. 특검에도 겉으로는 비난을 피하기 위해 대면조사 수용하겠다는 식으로 말만할 뿐 실제로는 그럴 의사가 없음을 드러냈다.

설혹 대통령이 특검수사 기한연장을 피하기 위해 대면조사에 임하더라도 ‘모른다’ ‘기억안난다’ ‘억울하다’ 이것외는 말을 하지않을 것이다. 특검 수사의 완결을 위해 대통령 면담수사를 요구하는 상황을 역이용하는 대통령측은 갖은 지연전략의 묘수를 찾고 있다.

더구나 현재 극우보수집회에서 김문수, 이인제 등이 공개적으로 ‘대통령은 청렴한 분’ ‘탄핵은 기각돼야 한다’고 전에 없이 소리치고 있는 형편아닌가. 친박들의 결집이 힘을 얻고 있고 특검의 시한은 가까워지고 있는데 박 대통령을 굳이 대면조사받게 할 수는 없다는 계산이다.

▲ 지난 1월24일 박영수 특별검사팀에 소환된 최순실씨. 사진=민중의소리
▲ 지난 1월24일 박영수 특별검사팀에 소환된 최순실씨. 사진=민중의소리
최순실에 의한 국정농단 사태가 명명백백히 밝혀지고 있는 마당에서, 자신의 수족들인 장차관들이 줄줄이 구속된 상황에서조차 책임은 최순실, 보좌관들에게 떠넘기는 행태를 보이는 대통령. 그렇게 억울하고 떳떳하다면 특검에 나와 당당히 말하라는 주장을 받아들이지않는 이런 이중행태는 또 다른 국민의 스트레스다.

그러나 국민도 이에 대해 책임과 고통을 나눠야 한다. 엉터리 선택을 한 장본인들은 바로 국민이기 때문이다. 국민은 지난해부터 추위에 떨며 충분한 고통의 시간을 가졌다고 생각하지만 현실은 그렇지않은 것 같다. 언론도 검증을 회피했고 국민은 ‘묻지마’ 선거를 한 결과의 참담한 현실은 언제까지 더 지속돼야 하는가. 더 이상의 혼란과 고통의 시간을 헌재가 이쯤에서 멈춰주기를 기대하는 것이 무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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