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이하 방통심의위)가 위치한 서울 목동은 방송회관은 ‘아수라장’이다. 1월 중순부터 시작된 ‘JTBC 태블릿PC조작진상규명위원회’(이하 태블릿진상위)의 장기농성으로 한동안 1층이 점거됐고 (1층 점거농성은 2월9일 해제됐다.) 방송회관 앞에서는 매주 목요일 집회가 열리고 있다. 경찰들이 방송회관을 둘렀고, 각 층과 엘리베이터에도 경찰이 있었다.

보수단체의 집회 도중 보수성향으로 평가받던 박효종 위원장에 ‘종북 빨갱이’라는 구호가 나오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박효종 위원장은 취임 당시 ‘5.16 미화’ 등 뉴라이트 역사관으로 비판을 받은 인물인데도 말이다. 박 위원장의 임기가 오는 6월 종료되는 것을 생각하면 임기 막판에 황당한 일이 벌어진 셈이다.

▲ 1월23일 서울 목동 방송회관에서 방송통신심의위원회를 향해 JTBC 태블릿PC 보도가 조작이라며 징계를 요구하는 '태블릿PC위원회'가 농성을 벌이고 있다. '박효종은 사퇴하라'는 구호 등이 보인다. 사진=정민경 기자
▲ 1월23일 서울 목동 방송회관에서 방송통신심의위원회를 향해 JTBC 태블릿PC 보도가 조작이라며 징계를 요구하는 '태블릿PC위원회'가 농성을 벌이고 있다. '박효종은 사퇴하라'는 구호 등이 보인다. 사진=정민경 기자
박효종 위원장 입장에서 생각하면 ‘황당한 일’이 또 하나 생겼다. 방통심의위 노동조합이 “방통심의위의 보수성향이 보수단체의 장기농성을 불렀다”, “이명박근혜 정권 동안 부끄러웠다”는 식의 비판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관련기사: 방통심의위 노동조합 “이명박근혜 정권 동안 부끄러워”)

목소리를 내지 않았던 방통심의위 노동조합이 조직을 비판하기 시작한 것은 새로운 노조가 들어선 후다. 방통심의위 노조는 3개로 나눠져 있었다. 방통심의위 공공노조지부, 언론노조지부, 대통합 노조가 그 갈래다. 현재는 공공노조지부와 언론노조지부가 통합돼 양대노조가 됐다.

미디어오늘이 전국언론노조 방통심의위 신임 지부장인 김준희 위원장을 만났다. 인터뷰는 8일 오후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진행됐다.”

- 노조가 출범하자마자 성명을 연달아 발표하는 등 ‘세게’ 나왔는데. 반응은 어떤가?

“박효종 위원장이 속상하고 억울해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간부회의 때 자신의 힘듦을 한참 토로했다고 한다. 노조는 지난 9년간 방통심의위가 보수적 성향을 띨 수밖에 없었던 6대3 구조를 지적한 건데, 위원장은 자신에 대한 공격이라고 받아들이는 것 같다.

박 위원장은 위원장이 되기 전까지 교수를 했으니 노조를 경험하지 못했을 것이다. 위원장 취임 후 2년 동안 노조랑 덕담이나 주고받는 관계였다. 그러니 이번 노조의 성명서를 보니 자기를 공격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 ‘정권 바뀔 것 같으니 이제야 비판에 합류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게 사실이다.

“해방되기 하루 전부터 독립운동 하는 꼴이란 말이겠지. (웃음) 새로운 노조의 성향은 나의 캐릭터 탓이 큰 것 같긴 하다. 사실 이러다가 정말로 조직이 망할 수도 있다는 위기감이 있었다. 그래서 조직을 구하겠다는 사명감에 지금이라도 나서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동안 노동조합에서 그런 역할을 못했던 것은 당연히 인정하고 반성하고, 이제부터라도 제대로 해야 한다.”

▲ 전국언론노조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지부 김준희 위원장.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 전국언론노조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지부 김준희 위원장.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 JTBC 태블릿PC 보도에 대한 이슈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방통심의위가 지나치게 오래 동안 안건을 검토하고 있기만 하다는 생각이 든다. 2월 중 안건에 오를 것이라는 말도 나온다.

“방송심의 결과에 대해 말하는 것은 매우 조심스럽지만 만약에 안건에 오르더라도 의결보류될 것으로 예상한다. 박효종 위원장이 어떻게든 늦추려는 노력을 한 것은 안다.”

- 3기 위원회의 임기도 끝나간다. 3기 위원회에 대한 내부평가는 어떤가?

“사실 3기 위원회가 다른 위원회에 비해 내부 평가가 괜찮다. 지금은 6대3 구조(여6:야3)를 지적하지만 1기,2기 위원회에서는 6대3이 아니라 6대0이었다. 9명이 회의를 하면 야당 추천 3명이 자리를 박차고 퇴장한 상태에서 나머지 6명이 결정했다.

어처구니없는 결정이 많았다. 대표적으로 2008년 YTN의 ‘블랙투쟁’(이명박 정권 언론 특보 출신인 구본홍 사장을 반대하며 YTN 앵커와 기자가 검은색 의상을 입고 뉴스를 진행한 투쟁)에 6:0으로 ‘시청자에 대한 사과’를 결정한 것이다. ‘시청자에 대한 사과’는 당시 가장 높은 중징계였는데, 복장을 문제 삼아 심의위가 이런 중징계를 내린 사례는 없었다. 만약 1기 위원들이 그대로 있었다면, ‘세월호 노란리본’을 단 방송인에게 제재를 내렸을 수도 있을 것 같다.”

▲ 2008년 YTN 김정아 앵커가 검은색 옷차림으로 뉴스를 진행하고 있다.
▲ 2008년 YTN 김정아 앵커가 검은색 옷차림으로 뉴스를 진행하고 있다.
- 1·2기보다 나으니 3기 위원회가 괜찮다는 평가를 받기에는 부족해 보인다.

“3기 박효종 위원장 이후에는 합의를 이끌어내려는 노력을 많이 했다. 예를 들어 2014년 8월 경 KBS의 문창극 보도 심의를 할 때 안건 하나를 5시간 동안 심의했다. 결과적으로 9명 합의를 통해 권고 결정을 했다. 회의록을 보면 야당 추천 위원이 ‘합의를 이끌어 낸 것에 경의를 표한다’는 말을 한다. 이런 점은 확실히 과거에 비해서 전향적 결정이었다고 본다.”

- 방통심의위가 편파적이라 문제를 넘어, 실질적 국가 검열 기구로 기능하고 있기 때문에 결국 ‘해체’되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과거에 비해 ‘해체’를 말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종합편성채널의 등장 이후 심의위가 필요한 부분이 있다고 인정되는 부분이 있다. 실제로 종편에 대한 민원을 심의하고 제재하면서 막말이나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유포하는 식의 방송이 줄었다는 평가가 있다.

해외서버에 기반을 둔 불법사이트 제재 등도 심의위의 기능 중 하나다. 자율 규제로 간다면 어떤 누가, 막대한 비용을 치루면서 이러한 역할들을 하려고 하겠나. 공적 구제로서 심의위 기능은 필요하다.”

- 차기 정부 조직에서 방송 관련 업무 부처를 합의제 위원회 형식으로 통합하자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방통심의위를 방송통신위원회에 통합하자는 건데, 정부가 직접 검열한다는 문제가 벌어질 수 있다.

“군사독재 시절 포함해서 공무원 조직이 직접 방송 내용을 심의한 적은 없었다. 방송, 통신 심의 관련 기구는 항상 민간 기구였다. 공무원 조직에서 내용을 직접 심의하게 되면 기존보다 더 ‘꼰대’심의 ,정치심의가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공무원 조직의 특성상 내부 비판과 견제가 이뤄지기 힘들 것이다. 그동안의 방통심의위가 잘했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나마의 비판 기능도 더 약화될 수 있다.

방통심의위는 공무원 조직으로의 통합이 아닌 기존의 민간 독립 기구로 남아야한다. 방통심의위가 지금까지 제 기능을 못했다면 지금보다 더욱 독립적으로, 더욱 자율적인 심의가 이뤄질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하는 게 우선 아니겠나.”

- ‘공정성 심의’를 폐지해야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어떤가. 방통심의위가 JTBC ‘세월호 르포’ 등에 공정성에 어긋난다며 ‘권고’를 내린 적 있다. 공정성 규정이 정치적으로 남용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방송통신심의제도 자체에 대한 개선을 위한 고민은 필요하다. 조심스러운 이야기지만 우선 사회적 합의가 우선돼야 한다. 지금 법에 방송은 공정해야한다고 나와 있다. 방송이 공정해야하는지, 얼마나 공정해야하는지 사회적 합의가 다시 시작돼야 한다. 합의 이후 다른 결론이 난다면 공정성 심의가 폐지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 방송통심심의위원회 3기는 2014년에 시작됐다. 3기 위원들의 임기는 오는 6월 종료된다. 사진=방통심의위 제공
▲ 방송통심심의위원회 3기는 2014년에 시작됐다. 3기 위원들의 임기는 오는 6월 종료된다. 사진=방통심의위 제공
- 공정성 심의와 함께 폐지되어야 할 문제로 명예훼손성 글에 제3자 및 직권심의를 허용하는 심의 규정이 꼽힌다. (방통심의위는 2015년 인터넷상 명예훼손성 글에 제3자 및 직권심의를 허용하는 심의 규정을 개정했다. 제3자가 타인에 대한 명예훼손이라고 판단되는 인터넷 글 등에 삭제를 요청할 수 있게 된 것. 이 규정은 권력기관 등이 비판적인 글을 임의적으로 삭제를 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다는 비판을 받았다.)

“당시 방통심의위가 욕을 많이 먹었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심의 규정을 개정하고 나서 심의위원회에서 공인에 대해서는 제3자 신고에 따른 심의를 진행하지 않겠다고 밝혔고, 실제로 제3자 신고에 의한 심의는 이후 한 건도 없다. 사실 심의규정 개정을 왜 했는지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 ‘청와대 압박’같은 이유를 생각할 수도 있지만 물증이 없다.

다만 이른바 ‘리벤지 포르노’로 불리는 디지털 성범죄에 관해서는 심의 규정을 개정하지 않았으면 제3자가 신고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었다. 2016년 한 해 동안 ‘리벤지 포르노’로 분류되는 디지털 성범죄 관련 건수가 7325건이다. 지금까지 디지털 성범죄의 경우 본인이 신고하지 않으면 심의가 어려웠는데 이제는 제3자가 신고해도 심의가 가능해진 부분은 긍정적이라 본다.”

- 차기 정권이 방통심의위와 관련해 꼭 해결해야할 문제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당장 급한 것은 성명서에도 밝혔듯 6대3 편파 구조가 해결돼야한다는 것이다. 국회에서 ‘공영방송지배구조개선법’과 함께 묶어 논의가 됐으면 한다.

기구개편과 함께 나와야 할 부분은 심의위원의 구성이다. 다양성과 전문성이 채워져야 한다. 현재 심의위원 9명 모두가 5060 남성이다. 그 9명이 1년에 12~300건 되는 방송제재와 20만건 이상의 통신심의 한다. 처리하는 안건이 너무 많다. 여성 위원이나 젊은 위원들의 영입은 물론이고 다양성과 전문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심의 결정 권한의 위임이 필요하다. 학계, 시민단체 등 다양한 곳에서 전문위원회 구성을 하는 식으로 권한을 위임해야한다.”

- 앞으로 방통심의위원회의 노조위원장으로의 계획은?

“방통심의위는 일종의 ‘기준’을 제시하는 역할을 해야한다. 이를 위해 성찰이 필요하다. 한 조직의 구성원으로서 성찰도, 미디어 업계에 종사자들의 통찰이 중요한 시기다. 최근 미디어가 도구화되는 느낌이 든다. 정치권력, 자본권력의 도구화가 된다. 방통심의위가 미디어 업계의 관행이나 구조에 대해 함께 성찰하는 역할을 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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