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회에서 전시된 대통령 풍자그림 ‘더러운 잠’은 하나의 이미지가 얼마나 많은 논의를 불러올 수 있는지 보여줬다. 풍자를 담은 한 컷의 이미지에는 ‘권력비판’이라는 평가와 ‘눈살 찌푸리게 하는 저질 그림’이라는 평가가 공존했다. 하나의 이미지에 사회의 문제와 비판을 제대로 담는 일이란 그만큼 어려운 일이다.

이런 작업을 매일 하나씩 만들어내는 이들이 있다. 시사만화가들이다. 김낙호 만화평론가는 시사만화의 기능에 대해 “뉴스 매체에서 가장 날것의 진심이 담겨있는 사설”이라며 “현대 언론 윤리에서 객관성을 기계적으로 강조하다보니 종종 직접 말하지 못하는 진의를 과장과 비유, 아이러니를 통해 드러낸다”고 평가했다.

현재 주요 일간지에 연재되고 있는 만평이나 시사만화로는 경향신문 ‘김용민의 그림마당’, ‘장도리’(박순찬), 국민일보 ‘국민만평’(서민호), 서울신문 ‘조기영의 세상터치’, 중앙일보 ‘김회룡 만평’, 한겨레 ‘한겨레 그림판’(권범철), 한국일보 ‘한국 만평’(배계규) 등이 있다.

▲ 현재 신문에 연재되고 있는 시사만화들.
▲ 현재 신문에 연재되고 있는 시사만화들.
신문에 실리는 시사만화의 경우 1955년 연재를 시작한 ‘고바우영감’(김성환, 동아일보)이나 ‘두꺼비’(김경인, 경향신문)등 신문 한 면에 자리를 잡은 지 50여년이 지났지만 오히려 인터넷 환경에서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권력에 대한 풍자를 한눈에 보여주는 시사만화의 직관성이 디지털 환경에도 적합한 콘텐츠라는 것이 인정받고 있는 것이다.

한겨레에서 ‘한겨레 그림판’을 연재하는 권범철 만평 작가는 디지털 시대 언론의 콘텐츠 강화 전략으로 시사만화를 꼽았다. 권 작가는 “디지털 전략의 희생양일 줄 알았던 시사만화가 디지털 콘텐츠의 하나의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라며 “언론의 제 기능을 온전히 작동할 때 독자가 반응한다는 사례로 시사만화를 들 수 있다”고 밝혔다.

시사만화협회 전진이 사무국장은 신문들이 여전히 전통적 만평을 계속해서 실고 있는 이유에 대해 ‘조회수’를 언급했다. 전진이 사무국장은 “예전에는 시사만화가 기사가 말하지 못하는 직설적 표현 등으로 결정적 풍자를 하는 역할을 했었는데 최근에는 인터넷 등에서 조회수를 높이는 역할도 더해졌다”라며 “특히 권력풍자가 한창인 최근에는 타 기사에 비해 시사만화가 조회수로도 밀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특히 22년째 경향신문에 4컷 만화를 연재하고 있는 박순찬 화백의 ‘장도리’는 경향신문 내에서도 조회수가 상위권에 속한다고 한다. ‘장도리’의 경우 젊은 독자층에게도 인기를 얻어 ‘갓(God)도리’라고 불리기도 한다. 지난해 12월 ‘장도리’를 엮은 ‘굿바이 사이비 전성시대’(비아북)가 출판되기도 했다. '장도리'는 매해 1년간 연재분을 묶어 출판된다. 

▲ 1년간 '장도리'를 엮어서 낸 책 '헬조선에 장도리를 던져라'.
▲ 1년간 '장도리'를 엮어서 낸 책 '헬조선에 장도리를 던져라'.
잘 만들어진 시사만화 하나는 매체의 마스코트 역할을 하기도 한다. 경향신문의 ‘장도리’와 함께 시사인의 ‘본격 시사인 만화’를 그리는 ‘굽시니스트’ 만화가 대표적이다. ‘본격 시사인 만화’는 대중문화 패러디를 사용해 정치 시사를 다루는 만화로, ‘복잡하게 엮인 모습을 효과적으로 잘 전달해 사안에 대한 다른 정보도 찾아보게 만드는 매력’(만화평론가 김낙호)이 있다고 평가받는다.

시사인의 한 기자는 “시사인을 펼치면 가장 먼저 ‘굽시니스트’의 만화를 읽는다는 독자들을 굉장히 많이 만났다”라며 “동시에 페이스북에서도 꾸준히 제일 많이 읽히고 댓글도 많이 달리는 콘텐츠”라고 전했다.

“시사만화 읽는 플랫폼 바뀌니 만화도 바뀌죠”

인쇄된 신문에서 ‘장도리’를 읽는 재미도 있지만 인터넷이나 페이스북을 통해 시사만화를 보는 통로도 늘었다. 최근 조선일보에서는 ‘권권규 뉴스툰’, ‘치삼 뉴스툰’, ‘고콜 뉴스툰’ 등 인터넷 시사만화 작가를 대거 영입했다.

최근 연재를 시작한 ‘권권규 뉴스툰’은 조선일보에서 윤서인 작가의 ‘조이라이드’ 연재 종료 이후 새로 시작한 웹툰이다. 연재확정 당시 조선일보의 성향과는 다소 동떨어진 섭외로 화제를 끌었다. 실제로 ‘권권규 뉴스툰’의 경우 새누리당이나 보수층에 대한 풍자가 대부분이다.

권권규 작가는 “플랫폼이 다르니 만화의 속성도 달라진다”라며 “기존의 만평이나 시사만화가 매체의 성향을 잘 드러냈던 특징을 가진 것과 달리, 웹툰이 매체의 성향과는 별개로 트래픽을 끄는 하나의 콘텐츠로 사용되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 디지틀 조선일보의 '권권규 뉴스툰'.
▲ 조선일보의 '권권규 뉴스툰'. 
권 작가의 지적대로 신문사들의 시사만화는 연재처를 종이에서 인터넷으로 바꾸며 기존의 만평이나 4컷 만화 등에 비해 가벼워졌다. 성향보다는 독자들의 이목을 끌 수 있는지가 중요해졌다.

생활만화들도 정치풍자 만화 못지않게 독자들의 이목을 끌기도 한다. 한국일보 닷컴 ‘서늘한 여름밤의 내가 느낀 심리학썰’(서늘한 여름밤, 이하 ‘서늘한 심리학썰’)이 대표적이다. 설연휴 올라왔던 ‘서늘한 심리학썰’의 경우, 며느리가 시댁에 가지 않는다는 소재를 다뤘는데 이에 작가가 “(남편이나 시댁에) 고마워 할 일이 아니다”라는 멘트를 사용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해당 만화에는 800개가 넘는 댓글이 달리며 명절문화에 대한 토론이 오고갔다. 

생활만화 역시 일정 부분 시의적이고 현실의 문제를 다루고 있기에 광범위한 시사만화로서 기능하고 있는 셈이다.

▲ '서늘한 여름밤의 심리학썰' 중 '우리의 관계는 이제 막 시작되었다'의 한 장면.
▲ '서늘한 여름밤의 내가 느낀 심리학썰' 중 '우리의 관계는 이제 막 시작되었다' 중. 출처: 서늘한 여름밤 블로그

생활만화를 시사만화의 한 유형으로 보기에 무리가 있다는 의견도 나올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생활만화 역시 시사만화를 유지해온 한 축이다. 이런 생활만화가 신문매체를 통해 연재된 사례를 거슬러 올라가보면 1990년대 후반 ‘광수생각’(조선일보)나 ‘도널드닭’(동아일보) 등을 꼽을 수 있다.

하종원 선문대학교 언론광고학부 교수는 '한국 신문시사만화의 지형과 전망'(2009)에서 생활만화에 대해 “종래의 전통적인 시사만화와는 다른 재미와 즐거움을 갖고 독자의 정서에 호소하여 적지 않은 관심을 받는다”라며 “특히 비주얼을 선호하는 젊은 세대 독자들을 신문으로 끌어들이는 성과를 거두었다”고 평가했다.

예민한 소재 잘못다뤄 눈살 찌푸리게 하기도…“입장 바꿔 생각해 고민해야”

시사만화는 정치나 사회 사안 중 예민한 부분을 다루기 때문에 사안에 대한 고민과 배려가 필요하다. 한 컷의 그림이라도 불러오는 사회적 파장은 매우 클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조선일보에서의 연재가 끝난 윤서인 작가가 자유경제원에 그린 한 컷이 대표적이다.

윤서인씨는 고 백남기 농민의 딸이 비키니를 입고 휴양지에서 페이스북을 하며 ‘아버지를 살려내라 X같은 나라’라고 쓰는 모습을 그렸다. 하지만 이후 유가족이 휴양지로 발리를 찾은 것이 아니라 발리에 사는 가족을 방문한 것이라는 사실이 밝혀졌고, 윤서인씨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등에 고소를 당했다.

시사만화가 다루는 소재뿐 아니라 형식적인 부분이 문제가 되기도 한다. 만화의 특성상 독자들의 웃음을 불러야한다는 강박 때문에 독자들의 반감을 사는 경우도 있다. 특히 도가 지나친 비유나 소수자 혐오 소재를 사용해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사례도 종종 나왔다.

‘한겨레 그림판’의 경우 11월22일 만평에서 ‘여성의 사생활’이라는 제목을 붙인 만평 때문에 여성혐오에 해당된다는 지적을 받은 적 있다. 해당 만평은 대통령의 변호인이 검찰조사를 앞두고 ‘여성으로서의 사생활’을 언급한 이후 나온 만평으로 박근혜 대통령이 침대에 누워 파마롤을 말고 이름점을 보고 있는 그림이다. 이에 “변호인이 여성으로서의 사생활이라는 막말을 했지만 이를 비판하지 않고 그대로 이용해 그린 것은 여성혐오적이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에 권범철 화백이 한겨레 고경태 신문부 부장에게 "우리 독자들 예민하다"라며 "여성비하 표현으로 욕을 먹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관련기사: 한겨레 '그림판의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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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11월22일 만평.

시사만화의 파급력이 큰 만큼 작가 스스로 예민한 사안을 미리 고려해 작품을 만들어야 하는 시대다.

권권규 작가는 “풍자를 하면서 인물 등을 희화화하게 되는데, 비판을 위한 희화가 아니라 그냥 기분 나쁘고 불쾌한 그림을 그리는 것은 아닌지 고민한다”라며 “예를 들어 진보적인 스탠스를 가진 이들은 대통령이나 권력을 가진 정치인들을 웃기게 그리는 것을 보면서 좋아하기도 하는데, ‘일간베스트’ 등에서 고 노무현 대통령을 희화화한 그림을 보면 분노하기도 하지 않나. 그 차이는 비판을 담은 희화화인지, 희화화를 위한 희화화인지에 따라 달라진다고 생각 한다”고 말했다.

※ 참고문헌

① “한국 신문시사만화의 지형과 전망: 정치성과 풍자성을 중심으로”, 하종원 선문대학교 교수, 2009

② “만화가 담아내는 세상”, 김낙호, 2015

③ “시사만화와 언론의 콘텐츠 강화 전략”, 권범철,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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