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앞에서 200일 넘게, 서울 한복판에서 석 달을 기다렸는데 못 만났습니다. 희망을 가지고, 끈질기게 싸우면 진짜 사장을 만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말이죠. 저의 진짜 사장, LG유플러스 이야기입니다. 아마 저 위에서, 저 멀리서 저를 봤을 겁니다. 2014년 한 겨울, 여의도 트윈타워 앞에 깔린 침낭 수백개 중 하나에 제가 들어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서울중앙우체국 전광판 아래서 구호를 외친 노동자들 중에 제가 있었습니다.

대단한 투쟁을 했지만 대단한 요구를 하지는 않았습니다. 우리는 노동자니까 4대 보험이 필요하다고 했고, 퇴직금을 달라고 했고, 명절에 쉴 수 있게 해달라고 했습니다. 200만원 남짓한 월급의 절반 이상이 실적급인 ‘근로자영자’ 신세를 벗어나고 싶다고 요구했습니다. LG 옷 입고, LG 가방 메고 찾아갔는데 회사 문턱도 못 밟았습니다.

만나면 하고 싶은 말이 많았습니다. 사정하든 뭘 하든 하루빨리 파업을 끝내고 현장으로 돌아갔으면 했습니다. 그런데 만나지도 못했습니다. 진짜 사장은 “우리 직원 아니다”라고만 했고, 가짜 사장은 “원청에 가서 데모하라”고 했습니다. 결국 진짜 사장도 가짜 사장도 우리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노동조합을 깨려고만 했습니다. 250만원을 주면서 노조를 탈퇴하라고 했습니다.

▲ 오는 10일부터 11일까지 진행되는 '비정규직, 정리해고, 노조파괴 없는 세상 만드는 1박2일 대행진' 홍보물.
▲ 오는 10일부터 11일까지 진행되는 '비정규직, 정리해고, 노조파괴 없는 세상 만드는 1박2일 대행진' 홍보물.

9달 동안 노숙하고 3달 간 고공농성하고 나서야 ‘협력업체 정규직’이 됐고, ‘단체협약’을 체결했습니다. 그런데 우리 사장들은 조합원들에게 일을 주지 않았고, 조합원들의 월급은 반토막이 났습니다. 업체가 바뀔 때마다 신입사원이 되고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것도 바뀌지 않았습니다. 

노동조합 활동을 하면서, 교섭을 하면서 뼈저리게 느낍니다. 고용안정, 임금인상, 노조활동 같이 우리가 요구하는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은 진짜 사장뿐이라는 걸 말이죠.

진짜 사장의 위력을 절절하게 느낍니다. 조합원이 전주에 떨어져 다치면 한 시간 만에 원청이 센터에 연락을 취하고, 센터 노사갈등이 생기면 원청이 센터에 대응방안을 지시합니다. 모든 센터의 현안에 대해 LG는 알고 있습니다. 결국, LG는 모든 것을 알고 LG가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확신이 강해집니다. 새로운 업체가 들어오기 이틀 전에 그 회사에 어용노조가 생기고, 노동개악이 이루어지자마자 센터가 저성과자 해고를 추진하는데 이것이 과연 LG와 무관할까요? LG는 우리가 가늠할 수 없는 권력을 휘두릅니다.

LG유플러스의 IPTV, 초고속인터넷, 070인터넷전화, 사물인터넷을 개통하고 수리하는 노동자들은 여전히 건당 포인트의 노예로 삽니다. 여전히 가짜 사장과 교섭합니다. 위험을 강요당합니다. 올해 들어서면 동료 셋이 전주와 옥상에서 떨어졌습니다. 해피콜에서 ‘매우 만족’을 못 받으면 월급이 깎이고 징계를 받을 수 있는 것도 과거와 똑같습니다.

▲ LG유플러스 설치·수리 기사들은 '하청'이라 불리는 협력업체 LG전자 서비스센터 등에 간접고용된 노동자다. 사진=희망연대노조 LG유플러스 지부 제공
▲ LG유플러스 설치·수리 기사들은 '하청'이라 불리는 협력업체 LG전자 서비스센터 등에 간접고용된 노동자다. 사진=희망연대노조 LG유플러스 지부 제공

올해 LG유플러스는 사상 최대의 영업이익을 기록한 것으로 압니다. 무려 7557억7800만원입니다. 해마다 이익이 늘고 있습니다. 

그런데 현장에서 일하는 우리 노동자들의 통상임금은 150만원이 채 안 됩니다. 이런데도 LG는 올해 수수료를 낮추고 영업장려금을 높였습니다. 목표의 99%를 달성하면 B등급으로 평가하기로 했습니다. 기술서비스노동자를 영업사원으로 만들고, 더 쥐어짜려는 겁니다. LG는 이렇게 돈을 만들어 비선실세를 지원하고 사면을 청탁했습니다. 그리고 노동자의 월급통장을 털어 극우단체에 돈을 줬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올해도 진짜 사장을 만나러 찾아가려고 합니다. 올해도 노동조합을 지켜내려고 합니다. 이런 위대한 일을 계속 해보려고 합니다. 여의도 트윈타워, LG유플러스 용산사옥에도 찾아갈 겁니다. 조만간 특검에 출두할지 모르니 대치동에 있는 특검 사무실 앞에서도 진짜 사장을 기다릴 생각입니다. 

긴장하길 바랍니다. 올해는 촛불을 들고, 시민들과 함께 갑니다. 한국의 진짜 사장들이 상상조차 못한 싸움을 시작하려고 합니다. 지금 만나러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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