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리서치가 발표한 올해 1라운드(1월) 라디오 청취율 조사에서 시사 프로그램이 강세를 보이면서 라디오 방송계의 지각변동을 예고하고 있다.

한국리서치가 지난달 3일부터 16일까지 서울과 수도권 지역 13~69세 라디오 청취자 3000명을 대상으로 한 올해 1라운드 라디오 청취율 조사에서 지상파 3사(KBS·MBC·SBS) 뉴스와 시사 프로그램은 고전을 면치 못했다. 반면 시사 콘텐츠를 강화한 tbs(95.1 MHz)와 CBS(표준 98.1 MHz) 등이 좋은 성적을 보였다.

특히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은 지난해 10월 4라운드 조사에서 방송 시작 한 달 만에 청취율이 두 배(2.1%)로 오른 데 이어, 올해 1라운드 조사에선 5.4%까지 치솟았다. 청취율 종합 순위도 39위에서 4위로 무려 35계단이나 상승했다.

동 시간대 오전 시사 프로그램 중 1위를 달렸던 MBC ‘신동호의 시선집중’ 청취율은 3.3%로 0.2%p 상승에 그치며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과 큰 격차로 1위 자리를 내줬다. ‘시선집중’은 CBS ‘김현정의 뉴스쇼’와도 0.9%p 차이로 좁혀졌다.(관련기사 : tbs ‘김어준 뉴스공장’, MBC ‘시선집중’ 청취율 압도)

▲ tbs 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
▲ tbs 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

지난해 하반기부터 정치·시사 콘텐츠에 대한 국민의 수요는 꾸준히 증가 추세였다. 9월부터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온 나라가 들썩이고 전국 각지에서 국민이 촛불을 들고 광장으로 모여들기 시작하면서 뉴스와 시사 라디오 프로그램을 찾는 사람들이 대폭 늘어났다.

MBC 라디오의 전성기를 이끈 PD 출신의 정찬형 사장이 2015년 12월 취임한 후 제작 자율성을 보장하면서 시사 프로그램의 콘텐츠 경쟁력을 강화해온 tbs는 지난해 9월 팟캐스트 스타였던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를 5년 만에 지상파 라디오 진행자로 섭외하면서 돌풍을 예고했다.

지난해 9월26일 ‘김어준의 뉴스공장’은 첫 방송 때부터 tbs 홈페이지는 동시 접속자가 늘어나 서버 과부하로 일시 다운되기까지 했다. 김 총수는 ‘뉴스공장’ 진행을 시작하면서 “원래 ‘시사’하면 매끈하고, 넥타이를 맨 와이셔츠 입은 사람들이 사무실에서 신사적으로, 논리적으로, 이성적으로 하는 그런 이미지가 떠오르는데 나는 일단 그런 외모가 아니다”며 “성정도 그렇게 곱지 못해서 좀 좌충우돌하고 시끌벅적할 거다. 사무실 시사, 양복 시사가 아니라 작업복 시사, 공장 시사를 할 것”이라고 밝혔다.

‘뉴스공장’이 표방한 재밌고 쉬운 시사는 시사 콘텐츠에 거리감을 느꼈던 청취자층이 모여들 게 하는 데 주효했다. 청취율 조사에 앞서 팟캐스트 시장부터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방송 시작 며칠 만에 팟캐스트 순위 상위권 올랐고, 7일까지 국내 최대 팟캐스트 호스팅 업체 ‘팟빵’에서 종합 순위 1위를 달리는 중이다.

tbs에 따르면 지난달까지 ‘뉴스공장’ 누적 다운로드 수는 2억6000만 회에 육박했다. 지난해 12월2일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가 출연했던 방송분은 하루 최고 다운로드 수 552만 회를 기록했다. 팟캐스트에 붙는 광고도 14개로 가득 차 광고주들이 순서를 기다리는 상황이다. ‘뉴스공장’과 함께 ‘정봉주의 품격시대’, ‘9595쇼’ 등 다른 프로그램들도 광고가 2~3개씩 붙고 광고단가도 43%나 증가했다.

정경훈 ‘뉴스공장’ PD는 6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청취율과 팟캐스트 등 흥행 비결에 대해 “김어준 진행자의 영입과 시국이 잘 맞아떨어진 게 가장 크게 작용했다고 생각한다”며 “우리가 색다르고 다른 시도를 했다고 백날 얘기해도 수용자들이 그렇게 느끼지 않으면 소용없는데 최대한 예능의 틀에 시사를 넣고자 한 것을 청취자들이 받아들여 준 것 같다”고 말했다.

시사와 예능을 접목하고자 하는 ‘뉴스공장’ 제작진의 시도는 프로그램 곳곳에서 엿보인다. 코너 중간에 ‘9595쇼’ 진행자 배칠수·전영미씨가 등장해 웃음을 선사하기도 하고 전영미씨 성대모사가 삽입된 최순실 풍자송이 ‘뉴스공장’에서 공개된 후 음원으로 출시돼 화제가 되기도 했다.(▼싱어송라이터 심재경씨가 만든 시국가요 ‘큰일났네’) 

정 PD는 “김어준 진행자의 거침없는 질문에 인터뷰 섭외가 어려울 때도 있는데 그럴 때면 아예 콩트 형식의 예능을 한다든가 시사 현안과 관련이 없어도 외신과 과학 등 얘기를 재밌게 전달해 줄 수 있는 게스트를 준비해 놓는다”며 “계속 긴장감만 유지할 수 없으니 예측 불가능한 메뉴를 들이대는 게 사실은 복안”이라고 털어놨다.

정 PD는 게스트 섭외 시 가장 고려하는 부분에 대해선 “첫 번째는 지금 흘러가는 시국의 핵심인 사람이고 두 번째는 감추어진 급소를 찌르는 중요한 제보자를 섭외하는 것”이라며 “‘최순실 게이트’ 같은 범죄 사건은 최순실씨나 장시호씨 등과 관련한 은밀한 얘기를 알고 있는 사람을 찾아내야 해서 일종의 범죄 수사나 마찬가지”라고 웃으며 말했다.

“의무적 훑고 가는 것은 이제는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것이고, 지금 나열하는 KBS 뉴스보다 하나만 파는 SBS ‘그것이 알고 싶다’가 훨씬 재밌는 이유가 그런 거죠.”

‘사람을 변화시키는 건 설득이 아니라 유머’라는 철칙, 일부 인터뷰이들과 청취자들의 ‘불편한’ 반응을 감내하면서도 국민이 가장 궁금해하는 것을 제대로 파헤쳐 보겠다는 tbs와 ‘뉴스공장’의 인기는 방송계뿐 아니라 학계에서도 주목하고 있다.

KBS PD 출신의 장해랑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 교수는 “TV든 라디오든 방송은 세상과 국민의 욕구를 반영하는 건데 지금 공영방송이 무너진 상황에서 국민은 궁금증을 제대로 해소해 주는 뉴스에 목말라 있다”며 “JTBC ‘썰전’ 같은 시사교양 프로그램이 높은 시청률을 보이는 이유도 뉴스의 맥락과 본질을 짚어주고 무엇이 문제인지 드러내 주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전통의 강자였던 MBC ‘시선집중’이 청취율 1위 자리를 내어준 사실이 갖는 시사점이 크다는 의미다.

장 교수는 “‘뉴스공장’은 김어준의 진행 방식과 팟캐스트에서 확장한 매스미디어의 영향력, 날것의 뉴스에 대한 국민의 갈구가 맞아떨어진 것”이라며 “‘뉴스공장’ 팟캐스트는 광고가 되기 시작했는데, 이는 다른 독립·시민 언론에도 중요한 수익원으로서 좋은 선례가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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