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에서 ‘언론장악 방지법’이 논의되는 가운데 방송문화진흥회(이사장 고영주)가 지난 2일 차기 사장을 선임하기로 결정하자, MBC 내·외부의 반발이 커지고 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본부장 조능희)를 비롯한 MBC 구성원들은 “‘무자격 방문진’이 뽑는 MBC 사장은 결코 인정할 수 없다”며 방문진의 MBC 사장 선임을 즉각 중단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MBC를국민의품으로!공동대책위원회와 언론단체비상시국회의도 7일 방문진이 위치한 서울 여의도 율촌빌딩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청와대와 여당 인사들이 대다수를 차지한 방문진은 그동안 공영방송 MBC를 박근혜 정권의 대변자로 전락시킨 방송 농단의 주범”이라며 “그들은 MBC 새 사장을 뽑을 자격이 없으므로 총사퇴로 국민에게 사죄해야 옳다”고 비판했다.

앞서 지난 2일 열린 방문진 정기이사회에선 일부 이사들의 반대에도 9명의 방문진 이사 중 고영주 이사장을 포함해 여당 추천 이사 6명 전원이 찬성해 2월 중 차기 사장을 선임하기로 밀어붙였다.

방문진에서 선임될 차기 사장 내정자는 방문진과 정수장학회(이사장 김삼천)의 주주총회 의결을 통해 최종 임명되므로, 사실상 방문진 여당 추천 이사들이 결정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여야 6대 3 구성의 방문진 이사회에서 또다시 정권의 입맛에 맞는 ‘낙하산’ 사장이 올 수 있게 된 것이다.

▲ MBC 기자·PD·아나운서 등 언론인 200여명이 지난 3일 서울 상암동 MBC 사옥 로비에서 안광한 MBC 사장과 김장겸 보도본부장 등의 사퇴를 촉구하며 MBC 정상화에 한목소리를 냈다. 사진=김도연 기자
MBC 기자·PD·아나운서 등 언론인 200여명이 지난 3일 서울 상암동 MBC 사옥 로비에서 안광한 MBC 사장과 김장겸 보도본부장 등의 사퇴를 촉구하며 MBC 정상화에 한목소리를 냈다. 사진=김도연 기자
이날 사장 선임을 3월 이후로 연기해야 한다고 제안한 이완기 이사는 “방문진 이사회에 대한 도덕적 문제가 제기돼 안건으로도 올라가 있다”며 “감사 결과를 보고 방문진 이사들의 법적·도덕적 문제가 발생하면 앞으로 3년 임기가 담보된 사장 선임을 방문진 이사회에서 논의해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이 이사가 언급한 방문진 이사진의 법적·도덕적 문제는 지난해 12월 윤길용 울산MBC 사장 등 지역MBC 사장들이 인사권자인 안광한 본사 사장을 비롯해 대주주인 방문진 이사들에게 수차례 부적절한 선물과 골프 접대를 한 사실이다. 이 이사는 이날 이사회에 방문진 이사들에 대한 특별감사 결의 안건도 올렸지만, 여당 추천 이사 전원이 반대해 채택되지 못했다.

이 이사는 또 “방송법과 방문진법 개정안이 임시국회에 올라가 있어 2월 중 논의가 가속화되면 향후 방문진 이사들의 신변에도 변동이 생길 것”이라며 “그런 측면에서 현재 10기 방문진이 2월 중 사장 선임에 신중해야 하고 특별감사 결과를 기다렸다가 3월에 다시 논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제안했다.

유기철 이사도 “MBC 편파 보도의 1차적 책임은 안광한 사장 등 MBC 경영진에 있지만, 방문진 이사진도 지금 이 시점에서 권한 행사보다는 책임 의식을 느껴야 한다”며 “정관과 세법 범위 내에서 3월 결산 주총 이전에만 사장을 선임하면 문제가 없고, 방문진법 개정안 취지가 공영방송 사장을 제대로 뽑자는 것인데 현 방문진 이사들이 사장을 뽑고 나가는 것은 사실상 권한남용”이라고 지적했다.

현재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안건조정위원회에 회부된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법안이 2월 임시국회에서 통과될 경우 법 시행 후 3개월 이내에 새로운 방문진 이사진을 구성하고 사장을 임명해야 한다.

방문진이 이달 중 차기 사장을 선임한다고 해도 방문진법이 개정되면 ‘시한부’ 사장일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언제 교체될지 모르는 지금의 방문진 이사회가 사장을 뽑는다면 향후 다시 사장과 임원을 선임해야 하는 등 인사 파동이 불가피하므로 사장 선임 절차를 유예하고 법 개정 상황 등을 지켜보자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지역MBC와 계열사 입장에서도 지금 사장이 바뀌는 것은 회사에 막중한 재정 부담을 안겨줄 수 있다. 지금 MBC 관계사 임원을 모두 새로 선임할 경우 방문진법 개정 후 임원이 교체되더라도 퇴직하는 임원들에 대해선 남은 임기만큼의 임금을 보전해 줘야 하기 때문이다.

한 지역MBC 관계자는 “지역MBC 사장이 형사적 문제가 있어 쫓겨나지 않는 한 ‘임원 퇴직연금 지급규정’에 따라 중간에 잘려도 거의 3년 치 연봉을 다 받아간다”며 “지역MBC는 한 해 영업이익을 몇천만 원 남기느냐, 마느냐에도 벌벌 떠는데 지역 상무 연봉만 해도 한 명당 2억5000만 원 정도여서 작은 지역사일수록 재정적으로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 MBC를국민의품으로!공동대책위원회와 언론단체비상시국회의도 지난 7일 방송문화진흥회가 위치한 서울 여의도 율촌빌딩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고영주 방문진 이사장과 여당 추천 이사들은 공영방송 MBC를 박근혜 정권의 대변자로 전락시킨 방송 농단의 주범”이라며 차기 MBC 사장 선출을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MBC를국민의품으로!공동대책위원회와 언론단체비상시국회의도 지난 7일 방송문화진흥회가 위치한 서울 여의도 율촌빌딩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고영주 방문진 이사장과 여당 추천 이사들은 공영방송 MBC를 박근혜 정권의 대변자로 전락시킨 방송 농단의 주범”이라며 차기 MBC 사장 선출을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하지만 다수의 여당 추천 이사들은 아직까지 방문진 이사회가 아무런 문제 없이 운영되고 있으므로 정치권의 법 개정 논의와는 별개로 사장 선임 일정을 계획대로 진행해야 한다고 반박하며 다수결로 사장 선임 절차를 강행했다.

이인철 이사는 “법안 내용을 보면 발효되기까지 3개월, 이사진을 임명하면 6개월이 걸리는데 그동안 MBC를 운영하지 말라는 건 말이 안 된다”며 “방송법 개정안 핵심 내용이 이사진 구성만 있는 게 아니라 (노사 동수)편성위원회 등 복잡한 문제가 있어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이므로 경영 공백을 막으려면 일정대로 (사장 선임을) 진행하는 게 맞다”고 말했다.

이 같은 방문진 결정에 대해 언론노조 MBC본부는 성명을 내고 “김재철·안광한 체제에서 공영방송 MBC는 끝없이 추락했다. 뉴스는 편파와 왜곡으로 일관했고, 취재 현장에서는 시민들의 비난이 따갑다”면서 “유능한 기자·PD·아나운서 100여 명이 여전히 제작에서 배제돼 있는데 안광한 경영진의 이 모든 역주행에 방문진은 눈을 감았다”고 질타했다.

노조는 “그런데도 방문진은 든든한 ‘뒷배’를 자임하며 탈선을 조장했고 ‘백종문 녹취록’에서 드러난 ‘부당 해고 자백’을 ‘개인적 술자리 대화’쯤으로 치부했다”며 “이들은 촛불 민심에 따라 국회가 탄핵한 박근혜 대통령의 사람들인데 이것만으로도 ‘무자격 방문진’이 뽑겠다는 MBC 새 사장은 아무런 권위와 정당성을 확보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언론단체비상시국회의 등도 7일 “방문진은 스스로 권한을 내려놓지 않은 채 안광한 사장의 임기를 모두 채워 주고, 또다시 임기 3년의 MBC 사장 자리에 자신들의 인사를 앉히려 하고 있다”며 “방문진은 이제라도 무자격한 사장 선출 과정을 중단하고 고영주 이사장과 여당 이사들은 국민과 MBC의 구성원을 모두 좌파로 몰며 방송을 사영화한 데 따른 책임을 지고 물러나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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