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가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변론에서 박 대통령 측이 신청한 무더기 증인 15명 중 8명을 채택하며 2월 말 선고가 불가능해지자 오늘자 아침신문에는 ‘탄핵기각설’, ‘탄핵 선고 연기설’까지 등장했다. 탄핵 안이 가결되던 지난해 말에는 박한철 전임 헌재 소장의 임기 전인 ‘1월말 선고’를 예상하기도 했는데 한 달 이상 미뤄지면서 분위기가 반전됐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 측은 지난달에도 증인 39명을 무더기로 신청한 바 있는데 이때부터 ‘시간끌기’라는 비판이 나왔다. 지난달 신청한 증인 39명에 대해 헌재가 29명을 기각한 데 비해 이달 신청한 증인 15명 중 절반 이상인 8명을 채택한 것을 두고 분위기가 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대통령 측이 신청한 증인 중에는 자신들에게 불리한 증인도 있다.

정치권에서도 탄핵에 대한 관심이 다시 높아지기 시작했다. 그간 법리상 탄핵 인용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많았고, 특히 야권에서는 정권교체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대선 국면에 가까운 분위기가 연출되기도 했다. ‘대선보다 탄핵이 우선’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 8일자 경향신문 만평
▲ 8일자 경향신문 만평

다음은 8일자 아침종합신문 1면 머리기사 제목이다.

경향신문 “박 대통령 탄핵심판 ‘2월 선고’ 불가능”
국민일보 “헌재 ‘2월 말 선고’ 사실상 물 건너가”
동아일보 “3월초에 맞춰진 탄핵심판 시계”
서울신문 “대졸 정규직 뽑는 ‘녹색’ 공고는 단 한 개”
세계일보 “‘대선 전리품’으로 전락한 특임공관장”
조선일보 “트럼프 ‘방위비 분담’ 방아쇠 당겼다”
중앙일보 “혁신 중소기업에 청년 일자리 5만개 만들자”
한겨레 “법원, 노후원전 ‘멋대로 수명연장’ 제동”
한국일보 “문 닫거나 동남아로 떠밀려간 공장들”

탄핵기각설·탄핵선고연기설

한국일보는 “야권 대선 주자들이 일제히 헌재를 걱정하는 데엔 최근 정치권에 급속히 퍼지고 있는 ‘탄핵 기각설’ ‘탄핵 선고 연기설’ 등의 영향이 크다는 것이 정설”이라고 보도했다. 심상정 정의당 대표는 “어째 돌아가는 꼴이 심상치 않다”고 말했다. 최근 새누리당 일부 인사가 친박 집회에 참여해 “대통령 사수”를 외치고 헌재 변호인단이 지연 전략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등 보수 진영의 움직임이 예사롭지 않은 상황에 대한 우려다.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도 “2월 말 3월 초면 탄핵 결정이 나오리라는 예상이 불투명하게 됐다”고 말했고, 이재명 성남시장도 “정치권이 다시 광장으로 돌아가 국민과 함께 해야한다”고 주장했다. 안희정 충남지사도 자신의 페이스북에 ‘탄핵시계는 절대 멈춰서는 안됩니다’라는 글을 통해 “헌재는 무리한 증인신청으로 탄핵일정을 늦추려는 박근혜 대통령 측의 꼼수에 단호히 대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회 소추위원단 권성동 바른정당 의원은 “세상일이 어떻게 될지 모르기 때문에 모든 경우의 수를 다 살펴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동아일보는 이에 대한 헌재의 반응을 전했다. 이 신문은 “헌재는 야권 일부 대선 주자들의 조속한 탄핵 인용 결정 압박에 공식 입장을 내놓지는 않았다”면서 한 헌재 연구관의 발언을 옮겼다. 이 연구관은 “정치권은 헌재 주변에서 지지층을 결집하기 위한 퍼포먼스를 하지 않도록 자제해야 한다”며 “이렇게 정치적으로 민감한 시기에는 헌재가 외부의 영향을 받지 않고 헌법과 법률에 따라 판단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들어 줘야 한다”라고 말했다.

한국일보에 따르면 탄핵기각설은 “보수 성향으로 분류되는 A재판관을 중심으로 B재판관도 기각에 심증을 굳혔고, 여권이 안정적인 기각 결정을 이끌어 내기 위해 최근 C재판관까지 적극적으로 설득 중”이라는 내용이 골자다. 법조계에선 “A 재판관의 기각 심증은 확실하고, D 재판관이 최근 기각 쪽으로 돌아섰다”는 다른 버전의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고 한국일보는 전했다. 재판관 이름은 다르지만 기각설은 ”이들 재판관 모두 ‘탄핵을 결정할 정도로 실체 규명이 되지 않았다’는 논리를 형성했고, 3월 중순 이정미 재판관이 퇴임하면 탄핵 찬성 재판관이 5명 이하가 돼 기각될 수밖에 없다“는 내용으로 마무리된다. 물론 반론도 만만치 않다.

한국일보에 따르면 탄핵 선고 연기설은 “대통령 측 변호인단이 증인 추가 신청과 변호인 사퇴 등의 전략을 구사하고 이정미 재판관 퇴임 이후 후임자 인선이 늦어져 3월 말 이후로 자연스럽게 선고가 미뤄질 것”이라는 전망을 근거로 하고 있다. 한국일보는 “특히 박영수 특검의 수사결과 발표 이전에는 헌재가 정치적 부담을 이유로 선고를 하지 않으려 해 현재의 수사 속도를 보면 4~5월은 돼야 선고가 날 것이라는 논리를 전개하고 있다”고 전했다.

국민일보 역시 “재판관 사퇴 등 시나리오…與 탄핵기각론 ‘슬금슬금’”이란 기사에서 “헌재 8명 추가증인 채택으로 박 대통령 측 고무”라고 전했다. 국민일보는 “인선 주체와 과거 주요 결정에 비춰보면 강일원, 김이수, 이정미 재판관은 중도·진보에 가깝고, 김창종, 서기석, 안창호, 이진성, 조용호 재판관은 보수성향으로 분류된다”며 “다만 이번 탄핵심판은 이념 대결이 아니라 헌정 농단의 문제여서 정치적 성향이 큰 변수가 되지 않을 것이란 평가가 우세하다”고 했다.

국민일보는 “3월초 선고 가능성이 남아 있지만 이마저도 불확실하다”며 “박 대통령 대리인단은 박 전 소장이 조속한 심판을 강조하자 전원 사퇴 뜻을 내비친 바 있다”고 전했다. 경향신문은 “헌재가 대통령 측 작전에 말려들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며 “우선 박 대통령이 직접 헌재에 출석하겠다고 나서는 경우”라고 보도했다. 박 대통령 측은 “(직접 출석이 어렵다는 것은) 1차 변론기일에 한한 것이고, 최종 변론에 대해 말한 것이 아니”라며 가능성을 열어놨다“고 말했는데 이를 두고 경향신문은 ”이 경우 출석 시기를 두고 헌재와 줄다리기를 하다 시기를 3월로 넘길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청와대는 여론전에 주력하고 있다. 국민일보는 “지난달 박 대통령이 정규재 한국경제 주필과 인터뷰한 내용이 지지층에선 상당한 반향이 있었다고 판단하고 추가 인터뷰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며 “민심에 상관없이 확실한 지지세력과 정치하겠다는 의도”라고 분석했다. 이 신문은 “허원제 정무수석도 물밑에서 새누리당 의원들을 두루 접촉하고 있다”고 전했다. 한 청와대 관계자는 “탄핵 기각 가능성이 얼마가 됐든 할 수 있는 건 다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국민일보는 같은 면에 “주호영 ‘모든 정당이 헌재 결정에 승복 약속하자’”는 제목의 기사를 배치했다. 주호영 바른정당 원내대표는 7일 “헌재 결정이 탄핵 인용이든, 기각이든 그것은 헌법 정신의 최종확인”이라며 “모든 정당이 함께 헌재 판결에 대한 승복을 약속하자”고 말했다. 주 대표는 “촛불 민심과 태극기 민심이 격렬히 대립하는 지금 상황을 보면 헌재 탄핵심판 결정 이후에도 심각한 대립과 후유증이 예상된다”고 덧붙였다. 헌재기각설까지 나온 와중에 나온 주 대표의 발언은 다시 해석의 여지가 남아있지만 국민일보 뿐 아니라 서울신문, 동아일보, 조선일보 등 다수 신문이 해당 발언을 제목으로 뽑아 기사를 배치했다. 점점 촛불민심과 대의제 간 거리감이 생기고 있다.

서울·국민, 황교안 띄우기

탄핵심판을 두고 국회와 청와대, 야권과 여권, 촛불민심과 태극기민심의 대결이 이어지는 가운데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이 차기 대권주자로 지지세를 모으는 것 역시 박 대통령 측에 유리하게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서울신문은 적극 황 대행을 띄웠다.

서울신문 “황교안 ‘적당한 때 밝힐 것’…대선 출마로 기우나”라는 기사에서 “황 대행이 대선 출마 쪽으로 발걸음을 조금씩 옮기는 분위기가 감지된다”며 “여권 내에선 ‘황 대행도 출마 의지를 갖고 있다’는 주장이 나오기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서울신문은 국회를 방문한 황 대행에 대해 “황 대행의 표정에는 여유가 묻어났다”고도 했다.

▲ 8일자 국민일보 4면기사 “‘대선 입장 밝힐 적당한 때 있을 것’…한결 여유”
▲ 8일자 국민일보 4면기사 “‘대선 입장 밝힐 적당한 때 있을 것’…한결 여유”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불출마를 선언해 여권의 관심이 황 대행에게 주목되므로 황 대행은 말을 아끼는 게 유리하다. 황 대행의 지지가 높아질수록 대통령의 낮은 지지율을 대신해 국정 장악력을 확보할 수 있다. 박근혜 실정 공동책임자인 황 대행 입장에서도 탄핵국면을 유리하게 이끌 동력은 자신의 지지율 상승 뿐이기도 하다.

국민일보 역시 “‘대선 입장 밝힐 적당한 때 있을 것’…한결 여유”라는 기사에서 부제를 “미소 짓는 황교안”으로 짓고 황 대행이 미소짓는 사진을 실었다. 청와대에 대한 특검 압수수색 거부, 특검 시한 연장 등 민감한 문제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은 황 대행에 대해 비판하지 않고 오히려 미소 짓는 모습을 부각한 것이다.

▲ 8일자 서울신문 만평
▲ 8일자 서울신문 만평

야권 김 빼기

국민일보는 야권에 대해 부정적인 모습을 부각했다. 김부겸 의원의 대선불출마 소식을 전하는 기사 제목을 “김 빠진 민주당 경선…3명만 남았다”고 뽑았다. 국민일보는 부제를 “박원순 이어 김부겸도 ‘불출마’…대선 전략 차질 빚나”라고 뽑았는데 민주당 당내 경선은 원래 문재인-안희정-이재명 3파전 양상이었고, 다수 여론조사에서 이 셋의 지지율의 합은 과반이 넘는다. 반면 여권에서는 이렇다 할 후보조차 없는 상황이다.

국민일보의 목표는 문재인 공격이다. 이 신문은 “당 안팎에서 ‘친문패권주의’ 비판이 커질 것이란 우려도 적지 않다”며 “3파전으로 좁혀진 탓에 문 전 대표의 영향력이 더 커질 수 있어서”라고 전했다. 이재명을 이용해 야권을 공격하기도 했다. 국민일보는 “헌재 탄핵 결정 지연 가능성이 제기된 점도 이 시장에겐 나쁘지 않다고 판단한다”며 “다시 한 번 ‘이재명의 시간’이 돌아올 수 있다는 기대감”이라고 분석했다.

▲ 8일자 중앙일보 기사 “갈라지는 친노…문재인은 부산팀, 안희정은 금강팀이 핵심”
▲ 8일자 중앙일보 기사 “갈라지는 친노…문재인은 부산팀, 안희정은 금강팀이 핵심”

중앙일보는 문재인과 안희정을 갈라놨다. “갈라지는 친노…문재인은 부산팀, 안희정은 금강팀이 핵심”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노무현 정권 주요 인사들 중 문재인 캠프와 안희정 캠프의 인사를 각각 나열해 표로 정리했다.

중앙일보는 “부자간에도 나누지 못한다는 권력의 속성상 경쟁이 치열해질 경우 분화가 분열로 이어질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고 보도했다. 문 전 대표가 7일 대전과 충정 지역을 다닌 것을 두고 “안 지사를 의식한 일정이란 말이 나왔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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