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은미·황선의 전국 순회 토크콘서트를 ‘종북콘서트’라 조롱하면서도 영상 제작자에 사전양해도 없이 해당 영상을 도용한 종편과 지상파 방송사에 손해를 배상하라는 판결이 나왔다.

서울고법 민사5부(재판장 한규현 부장판사)는 지난달 26일 주권방송이 TV조선 채널A MBN 등 종편 3사와 MBC 등 지상파 방송사를 상대로 제기한 저작권 침해 손해배상 청구소송 항소심에서 이들 방송에 1심 판결에서 주문한 배상액에 별도로 추가된 손해배상액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TV조선은 1심 배상액과 함께 2810만 원을, 채널A는 2010만 원, 매일방송(MBN)은 2390만 원, 문화방송은 1510만 원을 추가로 배상하라고 이 재판부는 주문했다.

이로써 배상액 규모는 지난해 1월28일 1심 선고와 비교할 때 보다 크게 늘어났다. TV조선의 경우 1심 때 배상액 1360만 원에서 2810만 원이 추가된 4170만 원을 배상해야 하고, 채널A도 1020만 원에다 2010만 원을 더한 3030만 원을 배상하도록 판결이 나왔다. MBN의 경우 1심 땐 340만 원이었으나 2390만 원이 늘어나 2730만 원을 배상하라고 재판부는 주문했다. MBC도 1심 때 430만 원에다 1510만 원이 추가된 1940만 원을 배상하게 됐다.

이같이 배상액 규모가 늘어난 이유는 1심 판결 때 재판부가 저작권법상 보호받을 수 있는 ‘저작물’로 인정하지 않은 신은미 황선의 통일토크콘서트와 강연 촬영·편집 영상에 대해 항소심 재판부는 모두 저작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저작권이 있는 영상을 정당하지 않은 방법으로 도용했으므로 그에 대한 손해배상을 해야 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다만 정당한 인용을 한 경우에는 손해배상 책임을 묻지 않았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통일토크콘서트와 강연을 촬영·편집한 주권방송의 영상물에 대해 “저작자 나름대로의 정신적 노력의 소산으로서의 특성이 부여돼 있고, 다른 저작자의 기존의 작품과 구별할 수 있을 정도에 이르렀다”며 “저작권법에 의해 보호되는 저작물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사실의 전달에 불과한 시사보도에 해당한다고 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 지난 2014년 12월9일 대구 동성아트홀에서 진행된 신은미-황선 통일토크콘서트 영상 갈무리. 사진에서 발언하고 있는 이가 신은미씨.
▲ 지난 2014년 12월9일 대구 동성아트홀에서 진행된 신은미-황선 통일토크콘서트 영상 갈무리. 사진에서 발언하고 있는 이가 신은미씨.
해당 영상은 △황선의 ‘북한에서의 세쌍둥이 출산’ 발언부분 △신은미의 ‘새로운 지도자 추대에 따른 북한의 분위기’ 발언 부분 △대구통일콘서트에서 신은미가 노래부른 부분 △익산 콘서트 도중 김아무개 학생이 무대에 화염물질을 던진 부분 △대구에서 신은미의 편지낭독 부분 등을 강조하기 위해 편집한 영상이다.

TV조선 채널A MBN MBC 등이 이 같은 영상을 정당하게 인용했다고 재판부가 판단한 것은 신은미 황선 두 사람을 수사기관에서 수사하기 시작했을 때 수사내용을 보도하면서 일부 인용한 토크콘서트 관련 주권방송 영상이었다. 재판부는 “두사람이 토크콘서트에서 한 발언과 수사내용 등을 보도 또는 비평하기 위해 종편과 MBC가 주권방송 영상을 인용한 것이므로 인용의 목적에 정당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또한 이 부분을 인용한 방송사들의 보도 영상 가운데 수사중이라는 내용이 주된 내용이고 주권방송 영상을 인용한 것은 ‘부종적 성격’(종적인 성격)을 가진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문제는 종편과 MBC 등이 이런 정도의 인용으로 끝나지 않았다는데 있다. 재판부는 TV조선 채널A MBN MBC의 다른 주권방송 인용 영상의 경우 정당한 범위 안에서 인용한 것이라고 보기 어렵거나 공정한 관행에 합치된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들 방송이 신은미 황선 등의 발언 내용을 소개하는 수준을 넘어 주권방송 영상물을 과다하게 인용하거나 동일한 영상을 불필요하게 수회 반복해 재생했거나 프로그램 진행자 등의 발언 내용과 상관없이 단순 배경화면으로 사용했다는 점을 지적했다. 재판부는 “지나치게 많이, 또는 불필요하게 이를 인용함으로써 이들 방송사의 영상만 시청하면 굳이 주권방송 영상을 시청하지 않아도 될 정도에 이르렀다”며 “정당한 범위 안에서 인용한 것이라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인용의 방법에 대해서도 재판부는 이들 방송(종편 3사, MBC)이 출처를 표시하기는커녕 ‘주권방송’의 로고 등을 삭제했다고 비판했다. 재판부는 “방송사들의 영상물의 경우 원 영상물에 표시돼 있던 ‘주권방송’, ‘615TV’, ‘채널615’라는 로고 표시 부분을 삭제하고 자신들의 로고를 그 위에 덧씌우는 등의 방법으로 주권방송 저작물 표시를 하지 않았다”며 “이들 방송사가 제작한 것으로 시청자들이 오인할 여지가 많도록 했다”고 전했다. 재판부는 “이는 타인의 저작물을 마치 자신의 저작물인 것처럼 속이는 행위로서 우리 사회 일반의 저작권에 대한 인식과 보호 수준에 비춰 볼 때 비난 가능성이 큰 행위라고 할 수 있다”고 비판했다.

재판부는 또 △이렇게 저작권을 침해한 영상물에 광고료를 받거나 이를 다른 방송사에 유료로 판매할 수 있는 등 영리적·상업적 성격을 가지며 △인용의 정도가 정당한 범위를 넘어서거나 인용방법도 정당한 관행에 합치되지 않을 뿐 아니라 △이미 공중에 방송됐기 때문에 저작권 침해의 파급력이 상당하다고 판단했다.

▲ 지난 2014년 12월9일 대구 동성아트홀에서 진행된 신은미-황선 통일토크콘서트 영상 갈무리. 왼쪽이 황선씨, 오른쪽이 신은미씨.
▲ 지난 2014년 12월9일 대구 동성아트홀에서 진행된 신은미-황선 통일토크콘서트 영상 갈무리. 왼쪽이 황선씨, 오른쪽이 신은미씨.
이에 따라 재판부는 손해배상액을 주권방송 영상 분량을 기준으로 30초 이내 사용시 50만 원, 이후 추가 10초당 10만원으로 산정했다.

이에 반해 1심 재판부였던 서울중앙지법 민사 11부(재판장 김기영 부장판사)는 지난해 1월28일 판결에서 신은미 황선의 강연 및 통일토크콘서트의 현장을 촬영한 영상물에 대해 저작물로 인정하지 않았다. 

당시 재판부는 “각 영상물 촬영자는 강연 또는 토크콘서트 실황을 있는 그대로 촬영했고, 영상 촬영 카메라 구도의 선택, 촬영기법 등에서 촬영자의 별다른 개성이나 창작적 노력이 감지되지 않는 점 등에서 비춰보면, 각 영상물은 저작권법에 의해 보호할 만한 어떤 창작적 노력 내지 개성이 드러나 있는 저작물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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