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계획적으로 녹음하려고 한 거 아니냐”

“(언성 높이며) 본인이 나를 미친 놈으로 하려고 하는데”

“(흥분하며) 아니 나는 미친놈이라고 한 적 없어요.”

지난해 10월 한겨레와의 인터뷰로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를 푸는 열쇠를 제공한 바 있는 이성한 전 미르재단 사무총장이 법정 증인으로 출석해 최순실씨와 날선 공방전을 벌였다.

이성한 전 사무총장은 6일 오전 10시10분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김세윤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최순실·안종범 등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 사건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최순실씨가 미르재단의 실질적 의사결정권자임을 증언했다.

이날 재판부로부터 피고인의 직접 증인 신문 권한을 받은 최씨는 “너무 억울하다”고 호소하며 이 전 사무총장이 쌍방 간 대화를 ‘계획적으로’ 녹음했고 이와 관련해 허위 진술을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최씨는 증인 신문 말미에 “그 날 한강에서, 하도 녹음파일 문제가 있으니까, (이성한이) 고영태에게 여러 번 녹음파일을 공개한다고 말하니까 한번 만나서 달래서 이 문제 확대되지 않게 하려고 나간건데”라며 “전화기를 다 없애고 만난건데 그날 누구 전화기로 녹음을 한거예요”라고 첫 질문을 던졌다.

지난해 8월 경 이 전 사무총장은 고영태 전 더블루K 상임이사의 연락을 받고 서울 반포 인근 한강시민주차장에 주차된 최씨의 SUV 차량에서 최씨를 만난 바 있다. 당시 고 전 이사는 녹음을 우려하며 이 전 사무총장의 휴대전화를 수거했지만 이 전 사무총장은 “향후 자신에게 책임을 뒤집어 씌울 수 있다”는 우려로 미리 가져간 추가 녹음기를 이용해 최씨와의 대화를 녹음했다.

▲ 최순실의 ‘비선 실세’를 폭로한 이성한 전 미르재단 사무총장이 6일 오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최순실 등 국정농단 사건’ 9차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하고 있다. 사진=포커스뉴스
▲ 최순실의 ‘비선 실세’를 폭로한 이성한 전 미르재단 사무총장이 6일 오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최순실 등 국정농단 사건’ 9차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하고 있다. 사진=포커스뉴스
당시 최씨는 이 전 사무총장에게 ‘자신의 존재가 드러나지 않게 해달라’는 취지로 회유성 발언을 했다. 최씨는 이 전 사무총장에게 ‘재단 이사장을 통해 사무총장으로 선임된 것이라 명확히 얘기해야 언론이 문제 삼지 못한다’고 말했다.

이 전 사무총장은 “‘그 당시 녹음 파일 가지고 문제가 됐다’는데 언제 그게 문제가 됐다는 거냐”며 녹음 상황 당시 문제가 된 적이 없음을 반문했다. 이어 이 전 사무총장은 “주머니에 녹음기를 별도로 넣고 있었다”고 답했다.

최씨는 이에 “계획적으로 녹음하려고 한 거 아니냐”고 언성을 높여 물었고 이 전 사무총장 또한 흥분된 목소리로 “본인이 나를 미친 X으로 하려고 하는데”라고 답하며 맞섰다.

“미친 놈을 생각한 적 없다”고 최씨가 즉각 답한 데 대해 이 전 사무총장은 ‘그렇게 봤다’는 취지의 답변을 내놓으며 날 선 신경전을 벌였다.

고성이 오고가는 사이 법정 방청석 곳곳에서 웃음소리가 터져나왔다. 재판부의 제지로 논쟁은 멈췄다.

최씨는 이 전 사무총장이 허위 진술을 하고 있다고 문제제기했다.

최씨는 “그날 (이성한이) 한미약품에 컨설팅을 해서 돈 받을 게 몇십 억원이 있는데, (한미 측이) 돈을 안줘서 소송을 해야 하는데 변호사 비용도 없다”며 “고속도로 변에 있는 이성한씨 땅을 사주던지 5억 원을 달라고 했다”고 주장했다.

이 전 사무총장은 “고영태씨가 한 말을 헷갈리는 것 같다”며 ‘하늘에 맹세코 없냐’는 최씨의 말에 “네. 없습니다”라고 재차 대답했다.

앞서 변호사 증인 신문 과정에서 이 전 사무총장은 “한미약품 측과 일한 것은 맞는데 컨설팅 비용은 아니다”라며 “소송 준비를 하고 있고 구체적 금액은 말씀드릴 수 없다”고 답했다. 최씨 측 변호인은 회유성 발언을 했다고 지적되는 지난해 8월 대화 당시, 이 전 사무총장이 한미약품으로부터 컨설팅 계약 비용 20억을 못받았다며 5억원을 최씨에게 달라는 요구를 했다고 지적했다.

이 전 사무총장은 이날 최씨 측 변호인과도 대립각을 세웠다.

최광휴 변호사가 지난해 8월 반포 인근 한강시민주차장에서의 최씨의 말을 회유성 압박으로 받아들인 게 맞냐는 수차례 거듭된 질문에 이 전 사무총장은 “변호사님, 내가 바보가 아닌 이상, 전체적 맥락을 못 알아 듣겠습니까. 무슨 말인지 다 알아듣지”라고 언성을 높였다.

이 전 사무총장은 미르재단의 실질적 의사결정 권한자가 차은택 전 창조경제추진단장으로 몰고가는 최씨 측 신문 전략에 단호하게 “아니다”라고 답했다.

그는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 수석으로부터 직위해제를 권유받은 것과 관련, ‘차은택과 김성현이 증인을 사퇴하도록 한 것 때문에 안 전 수석이 그렇게 말한게 아니냐’는 말에 “아니다”라고 답했고 ‘사업 이사 등과 사업 부문 의견 충돌 때문이 아니냐’는 질문에도 “아니다”고 말했다. 최씨가 자신의 직위해제 건을 결정했음을 간접적으로 밝힌 진술로 최씨가 미르재단의 인사결정권한을 가졌음을 드러낸 대목이다.

미르재단 이사회 이사진을 차은택 전 단장이 모두 추천·인선한게 아니냐는 변호인 지적에 이 전 사무총장은 “김영석 이사는 최순실이 추천한 것으로 알고 있고, 김영석 이사가 나머지 3분, 조이숙·채미옥·송혜진 이사를 추천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답했다.

검찰 측의 ‘김성현(전 미르재단 사무부총장)과 차은택이 증인을 사퇴하게 할 능력이 있냐’는 질문에 그는 “없다”고 답했다. ‘최순실 승인을 받아야만 하냐’는 연이은 질문에 그는 “네. 맞습니다”라고 답했다.

이 전 사무총장은 미르재단 사업 내용과 관련해 최씨가 주재한 회의 내용이 청와대 관계자와 가진 청와대 연풍문 회의에서 “토씨하나 틀리지 않게” 언급됐다고 밝혔다. 최씨가 테스타로싸에서 연 회의는 김성현 전 사무부총장, 이한선 전 이사 등에게 최씨가 지시한 사업 보고를 듣는 자리였고 이 회의에서 나온 내용이 청와대 측과의 회의에서 똑같이 거론된 것을 “눈으로 목격했다”는 것이다.

차은택 전 단장은 이 전 사무총장과 단둘이 만난 자리에서 “(이성한을) 회장님(최순실을 지칭) 사람으로 품어주시죠. 저를 보고라도, 회장님께 실수한 거 없고 잘했지 않냐, 열심히 하지 않았냐, 충성하지 않았냐. 그런 저를 봐서라도 믿어주시죠”라고 최씨에게 말했다며 “회장님이 정이 있거든. 무서우면 진짜 무서워. 알잖아. 이 바닥에서 정치만 평생한 사람이라서”라고 말한 바 있다. 이같은 발언은 이 전 사무총장이 녹음한 파일을 통해 확인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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