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대로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은 링에 올라보지도 못하고 스스로 중도하차했다. 인천공항을 아수라장으로 만들만큼 화려하게 입국하여 조롱과 비난속에 초라하게 물러나는데 불과 3주 밖에 걸리지 않았다. 한국인 최초로 유엔사무총장을 했다는 막연한 기대와 존경심의 허상을 스스로 깨부수며 준비 안된 노탐의 실상을 공개하는 행보는 일주일만에 드러났다.

반 전 총장은 대선 불출마를 선언할 때도 정치권과 언론을 맹렬히 비난했다. 불출마 선언 그다음 날인 2월2일에도 기자들에게 “왜 사람들이 정신을 못 차리고 우물 안 개구리 같은 (생각을 하나). 바깥에서 한국을 보면 너무 적나라하게 보이는데 특히 정치 지도자들이 (문제를) 못 보고 있다”며 정치권을 싸잡아 비판했다.

한국 정치에 대해 국민이 불만이 많다는 점에서 일정 부분 이해가 간다. 그러나 “이 한몸 불사르겠다“ ”정치 교체 하겠다“며 호기롭게 뛰어든 반 전 총장의 3주 코믹 드라마는 국민을 감동시키지 못했다. 최순실게이트에 이은 박근혜 탄핵으로 바뀐 국내 정치 지형, 촛불로 대변되는 정치에 대한 관심과 이해, 투표의 중요성에 대한 각성, 가짜에 대한 경각심, 불법과 특혜가 판치는 상황에서 정의에 대한 목마름, 기존정치에 대한 불만과 실망하는 사람들에게.

▲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1월12일 오후 인천국제공항으로 귀국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포커스뉴스
▲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1월12일 오후 인천국제공항으로 귀국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포커스뉴스
우물 안 개구리들의 좌절과 실망은 끝이 없었다. 추위를 무릅쓰고 거리로 달려나가 촛불을 들고 부정 불법에 대한 탄핵과 정의를 부르짖었다. 한때 지지율 1위를 달렸던 반기문은 바로 이런 우물 안 개구리들의 열망과 기대 속에 나왔다. 우물 밖 개구리 그것도 ‘세계의 대통령’이라는 유엔 사무총장 반기문은 가만히 있어도 아우라가 넘치는 강력한 대권후보였다. 그런데? 그냥 잊히기에는 너무나 값진 7 가지 교훈을 유엔사무총장이 온몸으로 우리에게 선사하고 있어 정리해둘 가치가 있을 듯 하다.

1. ‘목숨걸겠다, 몸바치겠다’는 사람을 조심해라.

이완구 전 국무총리도 성완종 뇌물 리스트에 이름이 올라 수사가 시작되자 ‘목숨 걸겠다’고 했다. 반 전 총장은 ‘한 몸 불사르겠다’는 외교관이 사용하지않는 강렬한 언어를 구사했다. 사기꾼들의 특징이 용어가 화려하고 강력하다. 그리고 행동보다 항상 말이 앞서간다. 인제대학교에서 총장을 다섯명 모시며 처장으로 느낀 것이 ‘말이 행동을 앞서는 총장’은 요주의 인물이라는 것이다. 인제대학교 총장 중 유일하게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쫓겨난 사람이 한 명 있다. 그는 취임식 자리에서 LG에서 100억 삼성에서 100억 씩 가져오겠다고 했다. 결과는? 상상에 맡기겠다.

2. 의욕이 준비를 앞서면 참사가 예비된 것이다.

대통령 출마는 규모면에서 그 준비와 철저함이 혼자 준비하는 것과 별개로 팀이 꾸려져야 할 정도다. 해외에서 10년을 외교관으로 살아온 전문 관료가 퇴직하자마자 하루 아침에 변화가 빠른 한국의 대통령이 되겠다는 것은 과욕이다. 뉴욕 생활을 청산하자마자 공항에서부터 지하철 해프닝, 생수 해프닝 팽목항 연출 등은 어릿광대의 자충수였다. 한 두번은 실수로 치부할 수 있지만 반복되면 참모탓이 아니고 본인이 그 정도밖에 안된다는 고백이다.

▲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이 1월31일 서울 마포구 사무실에서 기자회견 하고 있다. 사진=포커스뉴스
▲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이 1월31일 서울 마포구 사무실에서 기자회견 하고 있다. 사진=포커스뉴스
3. 유권자들의 민심을 읽지못하면 외면당한다.

반 전총장은 최순실의 국정농단 사태로 대통령이 직무정지된 정치상황에서 제1의 가치로 내건 것은 ‘안보’였다. 안보는 항상 중요하지만 지금 이 시점에서 국민은 ‘불법’ ‘특혜’에 분노하며 ‘정의’를 애타게 찾고 있다는 흐름을 읽지도 못했다. 대중과의 커뮤니케이션 실패는 지지율 하락으로 이어지는 법이다. 이재명 성남시장은 촛불시위전에는 광역시장도 아닌 기초자치단체의 장에 불과했다. 그러나 대중이 기대하는 발언과 비전을 제시하자 단박에 대권후보 반열에 올랐다. 민심을 읽는 ‘사이다 발언’을 해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불통 대통령으로 고통받는 국민이 또 다시 대화가 되지않는 후보를 좋아할 리 없다.

4. 모든 일에 명분이 분명하고 확고해야 한다.

정치는 특히 명분으로 한다. 명분은 유권자들이 따라야 할 근거를 제시하는 법이다. 일상의 작은 결단에도 명분이 있는데, 반 전 총장은 왜 정치판에 허겁지겁 뛰어들어야 하는지 명분을 알수 없었다. ‘정치교체’라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누구와 어떻게 하겠다는 건지 내용은 없고 구호 뿐이었다. 특히 오갈데없는 정치꾼, 구태정치인들을 모아 ‘정치교체’라는 명분은 처음부터 설득력을 상실했다.

5. ‘남탓’하면 바보를 자초하는 결과가 된다.

물론 남탓, 정치환경탓 할 수도 있다. 반 전 총장도 대선 포기 선언후 ‘개구리 타령’ ‘가짜뉴스 타령’ 인격살상용 언론탓‘ 등 환경탓을 열거했다. 섭섭했을 수도 있고 부당했을 수도 있다. 대통령이 되겠다고 결심했다면 언론의 검증, 여론의 비판을 감수하겠다는 자세가 필요했다. 더구나 유엔 사무총장은 직후 자국에서 대통령 출마는 곤란하다는 결의안까지 있는데 이를 어기며 나올 때 그만한 각오는 돼있어야 하지않는가. 제대로 검증도 받기전에 중도하차를 선언하며 남탓하는 것은 얼마나 준비가 부실하며 얼마나 맷집조차 약한가를 보여주는 부분이다. 더구나 물러나는 결심조차 스스로 해놓고 남탓하는 것은 무책임하다는 지적까지 받는 법이다.

6. 편협한 ‘엘리트 의식’으로는 대중의 리더가 될 수 없다.

반기문은 서울대 외교학과를 나와 외무고시 출신으로 대중과는 멀어진 삶을 살았다. 특히 자신의 말마따나 과장때부터 장차관 유엔사무총장 등 40여년을 남이 차려놓은 밥상에 숟가락만 드는 삶을 살아왔다. 취재기자들에게 ‘선거캠프 꾸리는데 돈이 많이 지출된다며 정당에 들어가야겠다’는 말을 본인은 아무렇지않게했지만 대중은 충격으로 받아들인다. 처음으로 자기 돈이 지출되는 사무실 임대 등을 해보는 딴세상 경험을 한 것이다. 그동안 ‘세계의 대통령’이라고 추켜세우던 언론이 ‘위안부합의에 대한 평가가 바뀐 이유’를 캐묻자 바로 ‘나쁜놈들’이라고 욕설을 할 정도로 자신도 모르게 엘리트주의에 빠져있는 것이다. 기적적으로 사무총장이 되고 연임까지 하고나니 스스로 대단한 인물로 착각하며 어린 기자들의 비판에 간단하게 자신의 편협한 엘리트주의를 드러낸 것이다.

▲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2016년 6월9일 뉴욕 유엔본부에서 출입기자단들과 기자회견 시간을 가졌다. 사진=포커스뉴스
▲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2016년 6월9일 뉴욕 유엔본부에서 출입기자단들과 기자회견 시간을 가졌다. 사진=포커스뉴스
7. 좌절과 실패의 경험은 리더의 필수덕목이다.

고시출신들은 그 한번의 시험으로 팔자를 고친 사람들로 대중은 인식한다. 9급에서 출발하는 사람과 4,5급에서 시작하는 사람은 승진 속도도 다르고 다다르는 목표점도 다르다. 인사상 작은 불이익은 있을 수 있으나 전체적으로 무난하게 승진하다보니 실패나 눈물을 흘려볼 기회가 없다. 마치 재벌을 일군 총수들의 리더십이 재벌 2,3 세들에서 나타나지않는 것과 같은 이치다. 책으로 배울 수 있는 것과 몸으로 체험해야만 깨달을 수 있는 것이 따로 있는 법이다. 외국에서 리더를 키우기 위해 험지에 가서 봉사부터 시키는 이유는 바로 이런 체험에서 리더십이 길러진다는 이치 때문이다. 반기문의 초년출세는 말년출세로까지 이어지는 기적의 연속이었다. 만족하고 감사할 줄 모르는 그의 언행은 유엔의 명예마저 실추시켰다.

70대 반기문은 많은 특혜와 세계의 지원속에 축복받은 삶을 누렸다. 대통령 같은 헛된 꿈을 꾸지말고 이제부터 진정한 봉사를 실천하며 보은의 삶을 보여주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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