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19대 대통령 선거 피선거권을 갖고 있다고 유권해석을 했던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이달 초 전체회의를 열어 반 전 총장의 피선거권을 논의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중앙선관위는 반 전 총장의 피선거권이 있다며 입장이 달라진 게 없다고 수차례 답변해왔다. 그러나 별도의 위원회 차원의 회의는 한 번도 열지 않고 입장부터 내놓고, 피선거권 부존재 확인소송과 같은 법적 쟁송이 붙는 등 논란이 커지니 전체회의를 열려는 것 아니냐는 의문이 나온다.

김영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달 31일 중앙선관위로부터 제출받아 1일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중앙선관위는 2월초 전체회의에서 논의하기로 했다고 답변했다. 선관위 확인 결과 해당 전체회의를 오는 2월6일 오전 10시에 열기로 결정됐다. 중앙선관위 전체회의는 위원장과 상임위원, 그리고 위원 7명 등 모두 9명으로 구성돼 있다. 

답변서 전문은 다음과 같다.

“김영호 위원님께서 1. 「공직선거법」제16조제1항의 ‘선거일 현재 5년 이상 국내에 거주하고 있는’이 선거일 기준 최근 5년 이상인지 생애 통틀어 5년 이상인지, 2. UN사무총장 재임이 공무인지에 관한 답변을 요구하셨습니다.

우리 위원회는 반기문 前)유엔사무총장의 피선거권과 관련하여 2월초경 위원회의에서 논의하기로 하였음을 알려드립니다.”

이를 두고 김영호 의원은 1일 자료에서 “이는 이전에 선관위가 내렸던 유권해석이 뒤집힐 수도 있다는 의미로 읽힐 소지가 있다”고 평가했다.

▲ 1월2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이 정세균 국회의장을 예방,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진=포커스뉴스
▲ 1월2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이 정세균 국회의장을 예방,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진=포커스뉴스
김 의원은 “선관위는 지난달 13일 보도자료를 통해 반기문 전 총장의 피선거권에 문제가 없다는 유권해석을 내린 바 있다”며 “그러나 선관위가 유권해석을 내린 후 각계에서 논란이 분분하다”고 전했다. 그는 “시민단체 등의 소송이 제기되는가 하면, 국회 입법조사처에서도 2월1일 이재정 의원의 관련 질의에 반 전 총장의 피선거권이 있다고 보는 견해도 있고 없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고 답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김영호 의원은 “논란이 많고 국민의 관심이 큰 사안인만큼 선관위에서 이번에는 명확한 근거에 의한 공식적인 입장을 밝혀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 의원실 관계자는 1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구정 전 선관위 실무진과 유선상 통화에서 ‘서류로 나갈 수 있는 답변이 없다, 2월 중 전체회의에서 다시 회의를 열어서 답변할 예정’이라고 해서 그렇게라도 작성해 보내달라고 한 것”이라며 “전체회의 개최는 반 전 총장 피선거권과 관련해 계속 논란이 일고 하니까 열게 된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앞서 중앙선관위는 지난 13일 기자들에게 보낸 안내메일에서는 다음과 같은 입장을 내놓았다.

“선거법 제16조제1항 본문의 문언과 입법연혁, 다른 규정, 운용사례 등을 종합하여 볼 때, 선거일 현재 5년 이상의 기간을 국내에 거주한 사실이 있는 40세 이상의 국민은 국내에 계속거주와 관계없이 대통령의 피선거권이 있음”

“따라서 제19대 대통령선거일까지 5년 이상 국내에 거주한 사실이 있다면, 공무 외국파견 또는 국내에 주소를 두고 일정기간 외국체류 여부를 불문하고 피선거권이 있음”

참고

“1997년 12월18일 실시된 제15대 대선에서 1993년 영국으로 출국하여 1년간 체류한 김대중 후보자의 피선거권에 대한 거주요건을 제한하지 아니함”

▲ 김영호 더불어민주당 의원. 사진=김영호 의원 블로그
▲ 김영호 더불어민주당 의원. 사진=김영호 의원 블로그
중앙선관위는 이 같은 입장을 내놓지 일주일 뒤인 20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는 ‘실무선의 판단에 의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선관위가 위원회 회의를 한 차례도 열지 않고 입장부터 냈다는 것을 시인한 것이다.

‘어떤 전체 중앙선관위 회의를 열지는 않았느냐’는 박범계 위원의 질의에 김대년 중앙선관위 사무총장은 “예 않았습니다”라며 “(법문상) 명확하다고 저희는 판단했다”고 답했다. ‘지금 사무총장 전결로 지금 의견을 보낸 것이냐’는 질의에 김대년 총장은 “예, 그렇습니다”라고 답했다. ‘선관위도 아무런 의문이 없기 때문에 선거관리위원 전체회의를 개최하지 아니하고 실무자 선에서 결정한 것이냐’는 권성동 법사위원장의 질의에도 김 총장은 “그렇다”고 답했다.

이에 대해 중앙선관위는 반 전 총장의 피선거권 문제를 전체회의에서 '논의'하기로 한 것이 아니라 보고하기로 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김영호 의원에 제출한 답변서를 작성한 중앙선관위 해석과의 담당사무관은 이날 오후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자꾸 사무처 쪽에서 답이 나가다보니 그런 것 같다”고 답했다. 그러나 이후 중앙선관위 공보과의 담당주무관은 전화를 걸어와 “논의하기로 한 것이 아니라 위원들에게 보고한다는 의미”라며 “답변서에 ‘논의’라고 쓴 것은 표현상의 오류였던 것 같다”고 해명했다. 그는 “논의 표현 자체가 했던 결정 다시하거나 의결을 다시한다는 인상을 줄 수 있는데 그런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한편, 지난달 25일 김영수 김현승 백은종 정병진 차우열 등 5인의 시민단체 대표가 반 전 총장과 김용덕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을 상대로 제기한 반기문 전 총장의 19대 대선 피선거권 부존재확인 청구소송에 대한 서울중앙지방법원의 재판부가 배당이 됐다. 이 재판은 서울중앙지법 민사18부에서 진행하게 된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