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접 가가호호 집을 방문해 도시가스 안전을 점검하는 검침원(안전매니저)들이 열악한 임금조건 문제를 고발하며 서울시에 책임있는 대책을 요구하고 나섰다.

은평도시가스ENG가 위탁 운영하는 서울도시가스 강북5센터에 근무하는 가스검침원 20여 명은 25일 오전 서울 시청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우리의 임금을 결정하는 곳도, 한 달에 얼마만큼의 일을 해야 하는지 결정하는 곳도 바로 서울시였다”면서 “우리에게 강제되는 부당한 임금 착복을 멈추고 시민들의 공공요금이 올바른 곳에 정당히 쓰이도록 서울시는 책임을 다하라”고 주장했다.

검침원은 도시가스를 사용하는 서울 시민에게 익숙한 존재다. 이들은 1년에 2회 직접 사용자의 집을 방문해 도시가스 설비 등을 점검한다. 이들은 안전점검 업무를 비롯해 가스 검침, 고지서 송달 등의 업무도 맡고 있다.

이들이 행동에 나서게 된 이유는 서울도시가스로부터 가스검침·안전점검 업무 등을 위탁받은 ‘강북5센터’에서 ‘임금 빼돌리기’ 정황이 계속 발견돼왔기 때문이다.

이들은 2014년부터 서울시가 책정한 도시가스 검침원 임금보다 18~25만 원 가량 적게 받아왔다고 주장했다. 2016년 서울시 임금 산정표가 월평균 급여를 163만2174원으로 두고 있다면 이들은 18만 원 적은 145만 원 가량을 받아온 것이다. 세금 등이 공제되면 급여는 120만 원 선으로 줄어든다.

강북5센터 검침원들은 △식대 차별 지급 △명절 선물 임금 공제 △연차수당 미지급 등이 차액의 이유라고 지적했다.

검침원들이 한달 식대 6만 원을 받을 동안 사무직, 관리직 직원들은 서울시가 책정한 금액 그대로인 12만 원을 지급받았다. 성·국적·신앙 등을 이유로 근로조건에 대한 차별적 처우를 금지한 근로기준법 6조 위반이다.

강북5센터는 2014년에서 2016년까지 명절이나 근로자의 날 선물을 제공한 뒤 이를 임금에서 공제했다. 2016년 1월 검침원 임금명세서엔 명절 선물 4만3470원이 ‘선지급액’으로 공제됐다. 2015년 9월엔 4만1120원이 선지급액으로 공제됐다. 근로기준법 제43조는 임금은 통화로 지급해야 함을 규정하고 있다.

이들은 2014년부터 연차수당, 연장근로 등의 수당도 받지 못했다. 2016년 서울시 산정 임금표에 따르면 이들에겐 연차수당 6만1496원, 연장근로 8302원 등이 책정돼있다. 검침원 임금명세서엔 지급 되지 않았다는 뜻으로 ‘-’ 표시만 남아있다.

사측은 또한 연차 휴가를 법정 공휴일 등에 맞춰 사용하자는 합의를 노동자대표와 맺었다고 주장하나 노동자 측 입장은 다르다. 검침원들은 누구를 대표로 정할 지 논의조차 없던 상황에서 사측이 일방적으로 대표를 지정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임금 빼먹기’가 더 문제가 되는 이유는 검침원의 노동에 책정된 기본급 자체가 최저임금 수준이기 때문이다. 5년 근속 검침원의 2016년 기본급은 128만 5270원이다. 법정최저임금 6030원에 법정근로시간 209시간을 곱하면 126만 270원으로 검침원 기본급과 불과 2만5000원 차이가 난다.

나현숙 강북5센터 검침원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밖에서 하는 일이다 보니 화장실 가고 싶어도 마땅한 장소가 없어서 5시간 넘게 참고 일한 적도 있고 한여름엔 속옷이 흠뻑 젖도록 일한다. 일하다가 개에게 물리거나 눈길에 미끄러져 다리를 다치는 일, 높은 난간에서 떨어지는 일 등 셀 수도 없는 어려움이 있다”면서 “최근 맞벌이 가구와 1인가구가 많아져 (근무시간에 채 점검하지 못해) 늦은 밤, 주말에 더 많은 일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서울도시가스 강북5센터 검침원들과 공공운수노조 서경지부 관계자들이 1월25일 오전 서울시청 앞에서 도시가스 고객센터 비위행위를 방관하는 서울시 규탄 기자회견을 열었다.
검침원들은 결국 서울시를 찾을 수밖에 없었다는 입장이다. 현재 서울시에 도시가스를 공급하는 5개 업체와 이들의 자회사인 71개 고객센터를 관리 감독할 주체가 마땅찮기 때문인 것이 첫 번째 이유이고 서울시가 이들의 임금 산정을 책임진다는 것이 두 번째 이유다.

하해성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서울경인공공서비스지부 공인노무사는 “서울시가 책정한 임금이 제대로 지급되지 않는다고 수없이 문제제기했지만 서울시는 ‘우리 권한 밖’이라고 말해왔다. 서울시엔 녹색에너지과(도시가스 관리 부서)만 있는 게 아니라 노동정책 담당 부서도 있다”면서 “서울시가 아무 관리감독을 안하면서 ‘우리는 지금 수수료만 맞추면 된다’고 하는 이런 행정 때문에 (검침원들이) 결국 설을 앞두고 거리로 나왔다”고 비판했다.

하 노무사는 이어 박원순 서울시장이 추진하고있는 생활임금 정책에 대해 “(이들의 임금엔) 생활임금에 대한 가치기준이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면서 “도시가스 요금을 낮추기 위해 이 업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의 생활은 전혀 고려하지 않는 판단이 작용했다”고 지적했다.

한편 이들은 사라진 금액이 ‘임금 착복’으로 귀결됐을 것이라며 서울시의 관리감독을 재차 요구했다.

하 노무사는 사측이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 제출한 실급여 데이터를 본 결과 “관리직급이 서울시 산정 금액 318만 4310원보다 많은 330만 원 선을 받는 것을 확인했다”며 “(검침원들에게서) 빠진 임금이 어디로 가겠냐. 서울시는 자신들의 책정한 금액이 제대로 분배되는지 감독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서울시 소관부서 녹색에너지과 관계자는 25일 “총괄원가 산정과 지급까지가 (녹색에너지과의) 권한 영역이다. 그 이외는 권한 밖의 일이고 (노조와 사측 간) 조정회의에도 참석해 권한 사항이 아니라는 것을 전달했다”고 밝혔다. 해당 관계자는 “민원이 접수되면, 해당 부처, 소관부서에 배부가 돼서 조사를 하게 된다”며 다른 부처를 통해 고발 조치를 할 수 있을 것이라 지적했다.

최저임금 수준의 급여책정과 관련해 이 관계자는 “(도시가스는) 공공요금이기 때문에 여러 고려들로 인해 요금이 그리 높지 못하다. 결국 그것으로 처우가 그분들이 원하는 만큼이 되지 못하는 것”이라면서 “센터 임금은 시에서 지급하는 수수료만으로 정해지는 건 아니고 가스렌지 판매 등 센터 자체 수익사업도 있다”고 말했다.

서울 도시가스 공급 및 유지 업무는 5개 사기업이 맡고 있다. 검침·고지서발송·안전점검 등의 일은 이들 5개 회사가 자회사 격으로 타 업체에 위탁한다. 서울시엔 현재 69개 고객센터가 있다. 서울시 내 총 검침원 수는 1600명 가량이다.

문제가 된 강북5센터는 5개 회사 중에서도 가장 규모가 큰 ‘서울도시가스’의 19개 고객센터 중 한 곳이다. 총 근무자는 50명 가량이며 검침원 33명 중 20명이 근로 처우 등을 개선해보고자 민주노총에 가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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