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레기’는 언론에 대한 강한 불신을 드러내는 신조어다. 기자와 쓰레기의 합성어라 듣기에 따라 모욕적인 표현이 될 수도 있다. 법원도 그렇게 생각하는 모양이다. 지난해 11월 서울고등법원은 MBC가 미디어오늘을 상대로 낸 정정보도 등 청구소송 항소심에서 미디어오늘에 기사 일부 삭제와 함께 300만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기레기’란 말이 “모멸적이고 경멸적인 인신공격적인 표현에 해당한다”는 게 법원의 결론이었다.

문제가 된 미디어오늘 기사는 두 건이다. 첫 번째는 2014년 8월 ‘유민 아빠’ 김영오씨에 대한 왜곡 보도를 비판하는 전국언론노동조합과 민주언론시민연합 등 시민단체들의 기자회견을 다룬 기사였다. 두 번째는 2014년 9월 “이래서 기레기? 폭행 논란만 요란, 특별법은 침묵”이라는 제목의 기사로 세월호 유가족들의 대리 기사 폭행 사실을 대서특필하면서 정작 세월호 특별법 관련 소식에는 침묵하고 있다는 비평 기사였다.

첫 번째 기사에서 ‘기레기’는 실제로 기자회견에서 나온 말이었다. 이들은 기자회견에서 “조선·동아일보와 MBC 등 보수 언론은 김영오씨의 생명을 건 단식을 철저히 폄훼하며 개인의 사생활을 난도질해 자신들 입맛대로 꿰어 맞춘 인격 살인을 저질렀다”면서 “쓰레기 언론이라는 말도 아까운 ‘양아치 언론’, ‘언론빙자 폭력배’”라고 비판했다. 법원의 판단에 따르면 기자회견에서 나온 말을 인용 보도하는 것만으로도 모욕이 되고 손해배상을 해야 한다.


김영오씨가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면서 48일째 단식을 이어가고 있던 때였다. MBC는 고 김유민양의 외삼촌이 한 포털 사이트에 쓴 “김씨는 딸의 기저귀 한 번 갈아준 적 없다”, “김씨의 단식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등의 글을 인용하면서 ‘아빠의 자격’을 문제삼고 나섰다. 김씨의 해명을 싣긴 했지만 보험금을 노리고 있다거나 금속노조 조합원이라는 악의적인 소문을 거론하면서 본질을 왜곡했다.

실제로 이 리포트를 한 기자는 다음날 사내 게시판에 “단식하는데도 과연 아빠의 자격이 필요한 건지, 금속노조원이면 단식을 해서는 안 된다는 건지 납득이 안 돼 왜 이 리포트를 해야 하는지 스스로 많은 의문이 들었지만 결국 했다”면서 “중요한 사실 하나를 확인하고 가자면 뉴스데스크에서는 그동안 김영오씨 단식 소식을 한 번도 따로 다룬 적이 없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미디어오늘은 MBC를 겨냥해 직접적으로 ‘기레기’라고 비난한 적 없다. MBC를 ‘기레기’라고 비판하는 현장의 목소리를 전달했을 뿐이다. 300만원의 손해배상이 두려워 이들의 목소리를 순화하거나 외면할 수는 없다. 사실 지난 7년여 동안 MBC 보도는 ‘기레기’라는 표현 외에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을 정도로 추락을 거듭해 왔다. 세월호 유족들에 대한 악의적인 보도가 그랬고 최근 최순실 태블릿 PC를 둘러싼 근거없는 음모론도 마찬가지다.

MBC는 이 사설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기 바란다. ‘MBC를 국민의 품으로 공동대책위원회’는 2014년 12월 출범 선언문에서 “MBC는 땡전뉴스나 다름없는 기레기 방송으로 몰락했다”고 비판했다. 2015년 4월, 전국언론노동조합과 한국PD연합회 등 언론단체들은 세월호 1주기 기자회견에서 “무능하고 무책임한 KBS, 현실을 왜곡하는 MBC에 대해 우리는 분노를 금치 못한다”고 밝혔다. 이 기자회견문 제목은 “영원한 기레기가 된 우리를 규탄합니다”였다.

지난해 10월29일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요구하는 촛불집회에서 MBC 취재진이 쫓겨난 적 있었다. 시민들은 “기레기들이 왜 와있어?”,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 “니네가 언론사냐”고 외치면서 거세게 항의했다. 당시 현장을 유튜브 영상으로 중계한 한 누리꾼은 “MBC가 그동안 해온 일들을 생각해보면 저들이 받은 가혹한 비난이 당연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가슴 한쪽 언저리 어딘가가 아려오는 건 어쩔 수가 없는 것 같다”고 글을 남겼다.

‘기레기’는 모욕적인 표현이 맞다. 법원이 ‘기레기’란 말에 손해배상을 명령했다고 해서 MBC가 ‘기레기’라는 비난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MBC는 ‘기레기’라는 비난을 모욕으로 느낄 게 아니라 ‘기레기’라는 비난에 소송으로 맞서는 비참한 현실을 부끄러워해야 한다. MBC가 어쩌다 이렇게 됐나. 미디어오늘은 필요한 비판이라면 300만원을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다. 대법원에 상고를 했고 최종 패소하더라도 할 일을 했을 뿐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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