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수 특검이 남은 후반전까지 '살아있는 권력'을 성공적으로 정조준할 수 있을까. 1차 수사 기간 70여 일 중 35일이 경과한 가운데 특검팀의 수사 의지가 오는 2월28일까지 변함없이 관철될 수 있을 지 관심을 모으고 있다.

후반전의 핵심 인물은 박근혜 대통령, 우병우 전 민정수석, 삼성그룹을 제외한 재계 총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특검팀이 충분한 수사 준비 및 우선 순위 고려 등을 이유로 미뤄 온 수사 대상이다.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가 김 전 실장의 발목을 잡고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안'이 재계 1위 삼성을 잡았다면 후반전에는 어떤 키가 특검에 쥐어 질 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롯데·SK·CJ 본격 수사 예정… 특검, 20대 그룹 내 어디까지 수사 확대하나

특검팀은 미르·K스포츠재단에 출연한 기업 중 대가 관계 물증이 잡힌 기업부터 수사해 나가겠다는 입장이다. 이규철 특검 대변인은 지난 20일 "일단 별도의 부정 청탁이 있는 기업들이 우선 (수사 대상) 기업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 서울중앙지법으로 부터 구속 영장 기각 처분을 받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9일 오전 경기 의왕시 서울구치소를 빠져나오고 있다.ⓒ포커스뉴스

우선 수사 대상은 롯데그룹, SK그룹, CJ그룹 등으로 좁혀진다. 롯데는 면세점 사업권 취득, SK와 CJ는 총수 사면을 위해 대가성 뇌물을 공여한 정황을 특검이 포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손경식 CJ 회장은 모두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 시점을 전후해 박 대통령과 독대했다.

일부 보도에 따르면 특검은 롯데의 경우 신 회장과 박 대통령이 독대한 지난해 3월14일을 전후 정황에 집중하고 있다. 3월9일 롯데 CSR팀이 신 회장에게 '평창 동계올림픽 후원(안)'을 보고했고 곧 롯데 CSR팀장은 최아무개 청와대 경제금융비서관에게 '롯데그룹 현안자료'를 이메일로 발송했다. 하루 뒤인 10일 박 대통령은 안 전 수석에게 신 회장과의 단독 면담 자리 성사를 지시했다. 14일 독대는 이뤄졌다. 이틀 뒤인 16일, 롯데는 평창동계올림픽 조직위원회와 계약을 체결해 후원기업 명단에 이름을 올린다. 2016년 4월29일, 관세청은 서울시 내 면세점 4곳을 추가 선정하는 방침을 발표했다. 2015년 11월 롯데월드타워 면세점이 갱신 심사에서 탈락하고 반년도 지나지 않은 때로 발표 당시 특혜 논란이 일었다.

롯데는 미르·K스포츠재단에 총 45억원을 출연했다. 검찰 조사 결과 박 대통령은 독대 직후 안 전 수석에게 '롯데가 하남시 체육시설 건립과 관련 75억원을 부담하기로 했으니 진행상황을 챙겨보라'고 지시했고 롯데는 그해 5월 말경 K스포츠재단에 70억원을 추가 출연했다. 롯데는 압수수색이 들어오기 직전 70억원을 돌려받았다.

SK는 미르·K스포츠재단에 총 111억원을 출연해 세번째로 많은 출연금을 냈다. 2015년 8월15일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횡령혐의로 구속된 지 2년 6개월만에 특별사면됐다. 사면 이틀 전인 13일, 김창근 SK이노베이션 회장은 안 전 수석에게 "하늘같은 이 은혜 영원히 잊지 않고 산업보국에 앞장서 나라 경제 살리기 주도할 것"이라며 "수석님 은혜 또한 잊지 않겠다. 최태원 및 SK 식구들"이라고 문자메시지를 보낸 사실이 확인됐다. 김 회장은 박 대통령이 7대 기업 총수와 독대해 미르재단 출연을 요구했던 2015년 7월24일 최태원 회장을 대신해 대통령과 만났다.

면세점 사업권 문제도 있다. 일부 보도에 따르면 특검은 박 대통령과 최 회장이 독대한 지난해 2월16일 '대통령 말씀자료'에서 '면세점 특허상실 안타까워. 개선방안 마련하겠음'이라는 내용이 기재된 것을 확인했다. SK는 롯데와 마찬가지로 2015년 11월 면세점 사업권을 따내지 못해 워커힐면세점 등의 사업권을 잃은 상태였다.

양 재단에 총 13억 원을 출연한 CJ그룹도 이재현 그룹 회장 사면을 대가로 청와대 측 각종 출연 요구를 따른 것으로 보인다. 이재현 CJ그룹 회장은 지난해 8월15일 특별사면됐다. CJ는 재단 출연금 외에도 차은택 전 창조경제추진단장이 주도한 문화창조벨트사업에 1조원이 넘는 투자계획을 체결한 것으로 확인된 바 있다.

‘검찰 식구’ 우병우, 특검이라도 의심 불식하기 힘들어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구속여부도 초미의 관심사다. '법률 미꾸라지'라 불리며 지난 25여 년 간 사정기관의 수사를 피해 온 김기춘 전 비서실장이 구속기소됨에 따라서다.

▲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2016년 12월2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 사건 진상 규명을 위한 국회 국정조사특별위원회' 제5차 청문회에 출석해 의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사진공동취재단

수사 개시 한 달이 지나도록 우병우 전 수석의 이름이 거론되지 않았던 상황과 관련해 이 대변인은 "수사 우선순위 문제 때문이지 수사 의지가 없는게 아니"라며 "향후 수사 이루어질 것"이라 강조한 바 있다. 특검은 우 전 수석에 대한 본격적인 수사가 개시되기 전까지 관련된 수사기록, 제보 사항 등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혀왔다.

특검은 수사 중반기를 지나면서 우 전 수석에 대한 수사를 예고했다. 이규철 대변인은 지난 20일 "우 전 수석은 저희들이 제보에 대해 기초 조사를 하고 있어 추후 조사가 시작되리라 예상한다"면서 "현재 구체적 일정은 잡히지 않았다"고 밝혔다.

수사는 두 방향으로 전개될 것으로 보인다. 크게 민정수석 권한과 관련된 직무유기·직권남용 혐의 규명과 우 전 수석 개인 비리행위 수사다.

특검법은 우 전 수석이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 △청와대 문건 등 국가기밀 유출 △최순실 이권취득을 위한 부당 지원 및 불법 인사 조치 등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와 관련된 8가지 사건을 제대로 감찰·예방하지 못한 직무유기를 수사 대상으로 정하고 있다. △이들 비리에 직접 관여한 행위 △미르·K스포츠재단 수사했던 이석수 특별감찰관 부당 해임 △특검 수사 중 인지하게 된 관련 범죄 혐의 등도 수사대상으로 열려 있다.

지금까지 특정된 직권남용 혐의는 '정윤회 문건 사태‘ 당시 수사 개입 의혹 및 이석수 특별감찰관 활동 방해 등이다. 한일 전 서울지방경찰청 경위는 당시 민정수석실이 자신과 고 최경락 전 경위에게 '문건을 유출했다'고 진술할 것을 강요했다고 밝힌 바 있다. 고 최 경위는 이 과정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정윤회 문건은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실이 2014년 1월에 작성한 정윤회씨에 대한 동향감찰보고서인 '靑비서실장 교체설 등 VIP측근(정윤회) 동향'을 말한다.

우 전 수석의 개인 비리는 △아들 군복무 보직 특혜 의혹 △가족 명의 회사 재산 축소 신고 △처가-넥슨 간 부동산 거래 뇌물 의혹 △진경준 검사장에 대한 인사검증 부실 등이 있다.

이와 관련한 특별 감찰이 지난해 7월 시작됐으나 감찰은 한 달도 채 넘기지 못하고 유야무야됐다. 이석수 특별감찰관이 조선일보에 감찰 내용을 누설했다는 보도가 나오고 청와대가 '묵과할 수 없다'는 입장을 표명하며 사퇴압박이 거세졌기 때문이다. 민정수석실은 감찰 초기부터 마지막까지 이 특별감찰관을 조직적으로 방해한 것으로 알려졌다.


▲ 23일 서울 대치동 특검 사무실 앞에 국내외 시민들이 특검 수사를 응원하며 보낸 꽃바구니들이 놓여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우 전 수석이 최씨의 국정개입 및 비위행위를 얼마나 파악했는지 여부도 직무유기 혐의의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정윤회 문건 및 고 최 경위의 휴대전화에는 최순실씨과 관련된 감찰 내용이 기록돼있다. 최 경위의 휴대전화엔 최씨가 박 대통령 개인사를 관장하고 대한승마협회에 외압을 행사하고 있다는 대화 내용이 녹옴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우 전 수석이 최씨의 비위 행위를 모를 수 없었다는 주장이 나오면서 직무유기 및 위증 혐의가 제기되는 대목이다.

특검은 지난 17일 100여 건이 넘는 고발장과 수사의뢰를 접수했다고 밝혔다. 주요 피의자와 관련된 각종 제보도 끊이지 않았다. 우 전 수석과 관련해서도 아직 언론을 통해 공개되지 않은 제보가 있을 여지가 크다. 이 중 김기춘 전 비서실장의 문화계 블랙리스트와 같은 '키'가 입수됐을 지도 모른다.

특검이 우 전 수석을 제대로 수사할 수 있을 지는 불확실하다. 우 전 수석이 검찰 주요 요직을 두루 거치고 청와대 고위직까지 역임했기에 수사 독립성이 지켜지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가 끊임없이 제기된다. 특검이 김기춘 전 실장을 구속하는 등 수사 의지를 보여준 만큼 우 전 수석 수사를 지켜봐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박 대통령, 특검 조사 받을 것 한 보따리

특검은 2월 초까지 박 대통령에 대한 대면조사가 이뤄질 것이라 밝혔다. 아울러 이 대변인은 지난 17일 “대통령께서 대면조사에 응한다는 취지로 말했기 때문에 응할 것이라 본다”면서 “응하지 않으면 강제로 대면조사 할 방법은 사실상 없다”고 말했다. 특검이 박 대통령을 향해 ‘조사 시일을 못박았으니 향후 조사에 응하라’는 요구를 통보한 모양새다.

박 대통령이 당장 특검에 해명해야 할 의혹은 삼성물산 합병안과 관련한 뇌물 수수 혐의, 문화계 블랙리스트 작성 지시 혐의다. 모두 박 대통령만 제외하면 수사가 어느 정도 완료된 사안이다. 특검이 블랙리스트 사안에 대해 엄벌 의지를 공언한 만큼 박 대통령의 지시 물증이 확보된다면 특검은 박 대통령에게도 법적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최씨의 각종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관련된 공모 혐의, 미르·K스포츠재단 기업 출연 뇌물 수수 혐의 규명도 향후 특검의 과제다. 민간인 신분인 최씨가 대기업 인사 및 재정 출연에 압력을 행사할 수 있는 배경은 최씨와 박 대통령 간 특수한 관계 때문에 가능했다는 지적이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특검법이 태동하게 된 배경엔 최순실씨가 연루된 국정농단 사태에 박 대통령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 낱낱이 밝혀주길 바라는 국민적 요구가 있었다. 단순한 ‘공모관계’ 이상을 밝혀주길 바라는 요구다. 검찰 특수본은 최씨와 박 대통령이 공모관계라고 적시했으나 이를 기소로 연결짓지 않았다.

이밖에 연설문, 해외순방일정 표 등 정부 기밀 문서 유출, 청와대 내 의료법 위반 등도 조사가 필요한 부분이다.

정유라만 특검 사무실 오면 되는데…

수사 진행이 가장 빠른 사안은 ‘정유라 이화여대 부정 입학 및 학사 비리’다. △류철균 이화여대 융합콘텐츠학과 교수 △이인성 신산업융합대학 의류산업학과 교수 △김경숙 전 신산업융합대학장 △남궁곤 전 이화여대 입학처장 등 관련 주요 피의자 대부분이 구속됐다. 특검은 학사 특혜 제공을 최초 청탁한 것으로 보이는 최씨의 체포영장을 발부받았다.

▲ 김경숙 이화여대 체육대학장이 15일 국회에서 열린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4차 청문회에 출석해 위원들의 질문에 대답하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문제는 특혜 수혜자인 정씨의 신병확보다. 특검은 정씨의 자진 귀국을 이끌어내기 위해 수사 초기부터 강하게 정씨를 압박했다. 특검은 본격 수사가 시작되자마자 정씨의 업무방해 혐의와 관련해 체포영장을 발부받았고 여권 무효화 조치에 착수했다.

특검으로선 현재 정씨의 즉각적인 입국을 강제할 카드가 마땅치 않다. 우선 덴마크 사법당국의 판단을 기다려야 하고 이후 정씨 법적 대응에 따라 귀국 일시가 올해 3월을 넘길 수도 있다.

덴마크 검찰은 오는 31일까지 정씨의 강제 송환 결정을 내릴 예정이다. 덴마크 검찰이 어떤 결정을 내릴 지는 단정할 수 없다. 강제 송환이 결정된다 해도 정씨가 항소하면 정씨의 귀국시점은 더 늦춰진다. 덴마크 법은 3심제를 택하지만 정씨의 경우 2심까지만 항소가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이창재 법무부 차관은 20일 중앙일보와 만나 “덴마크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대법원까지 사건이 가지 않기 때문에 통상 2심까지 진행될 수 있는데 재판이 매우 신속하게 이뤄진다”고 지적했다.

특검은 정씨가 발급받은 독일 비자의 구비 서류로 이화여대 입학증명서가 포함된 것에 착안, 정씨의 독일 비자 유·무효 문제를 살펴보기 위해 외교부를 통해 독일 당국에 확인을 요청한 상황이다.

한편 최씨도 업무방해 혐의 피의자 신분으로 입건됐다. 최씨는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강요, 증거인멸교사 등 기존 기소된 혐의 외 업무방해 혐의도 추가 적용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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