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진룡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정부 지원 배제 명단)’는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주도된 정권이 자기네 입맛에 맞지 않는 사람을 철저하게 배제하기 위해 모든 공권력을 동원한 것”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23일 오후 2시 경 참고인 신분으로 특검에 소환된 유 전 장관은 특검 사무실로 들어가기 전 20여 분 동안 기자들과 만나 이같이 밝혔다.

▲ 유진룡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1월23일 서울 대치동 특검사무실에 참고인 신분으로 조사받기 위해 출석하던 도중 기자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민중의소리

유 전 장관은 블랙리스트의 존재와 이를 김 전 실장이 주도한 것은 의심할 수없는 사실이라 못박았다.

그에 따르면 특검은 이를 입증하는 상당한 증거자료와 진술을 확보한 상태다. 그는 “김기춘씨와 관련된 많은 증거자료를 문체부가 가지고 있었고 제출됐다. 김영한 전 민정수석의 업무수첩에 나온 것처럼 그 업무수첩이 진실이라는 것, 문체부 공무원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뒷받침해줄 수 있는 자료들을 제출했었다는 것” 등을 지적하며 “특검에서 조사 받았던 많은 전 청와대 수석들이 청와대 내 회의 통해서 ‘어떤 지시가 있었다’, ‘지시 받는 걸 봤다’ 이런 증언을 했다”고 밝혔다.

유 전 장관은 또한 “나와 내 동료, 후배들이 목격하고 경험한 모든 정보를 취합해 볼 때 그거는(블랙리스트 작성 및 이행) 분명 김기춘씨가 주도를 한 것”이라면서 “취임한 이후로 그런 일이 일어났고 수석회의라던가 나한테도 그렇고 블랙리스트에 해당하는 행위를 지시하고 적용을 강요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최초 작성 지시자가 박근혜 대통령으로 지목되는 데 대해 유 전 장관은 답변하기 곤란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다만 그는 자신이 2014년 1월29일, 같은해 7월9일 두 차례에 걸쳐 박 대통령을 면담해 ‘이렇게 하시면 안된다(블랙리스트로 지원 배제를 하면 안된다)’고 말한 바 있다고 지적했다.

블랙리스트의 존재를 가장 적극적으로 폭로해 온 유 전 장관은 폭로 계기에 대해 “(명단 관리는) 민주화되면서 없어진거거든요? 그런데 이게 다시 부활한 겁니다. 대한민국 역사를 30년 돌려놓은 것”이라면서 “이건 헌법가치를 훼손한, 그것도 조직적으로 훼손한 범죄행위기 때문에 반드시 없어져야하는 문제”라고 주장했다.

▲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22일 오후 서울 강남구 특검 사무실로 조사를 받기 위해 들어서고 있다.ⓒ포커스뉴스

블랙리스트 수사 진행과 관련해 이규철 특검 대변인은 23일 오후 정례브리핑에서 “김 전 실장과 조 장관은 조만간 다시 소환할 가능성이 높다”면서 “대질신문은 원론적으로 가능하지만 실질적인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보면 될 것”이라 밝혔다.

한편 박영수 특검은 삼성그룹에 대한 추가 수사를 한창 벌이고 있다. 대한승마협회 부회장인 황성수 삼성전자 전무는 지난 20~21일 삼성그룹 뇌물 공여 혐의와 관련한 추가 증거 수집을 위해 참고인 신분으로 연이어 소환됐다.

23일엔 보건복지부 뜻에 따라 국민연금관리공단 내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안 찬성 의결을 주도한 홍완선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을 재소환해 조사 중이다.

특검은 최순실씨에 대한 체포영장도 청구했다. 혐의는 정유라 이화여대 입학 및 학사 비리와 관련 ‘업무방해’다.

이같은 시도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구속영장 재청구를 위한 절차가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되는 데 대해 “재청구 여부는 결정되지 않은 상황”이라면서도 “뇌물 수수자 조사가 진행 되지 않았다는 부분과 수사 진행했지만 진술을 거부·부인한다는 여부는 별개의 것이다. 조사만 취하면 행해졌다고 판단된다”고 덧붙였다. 지난 19일 서울중앙지법은 영장 기각 사유로 ‘뇌물 수수자를 조사하지 않았다’는 취지의 내용을 적시했다.

업무방해 혐의로 소환된 피의자는 원론적으로는 다른 혐의에 대해서는 조사받지 않는다. 다만 피의자가 동의한다면 다른 혐의에 대해서도 조사가 이뤄질 수 있다.

이 경우 최씨가 뇌물수수 혐의 관련 조사를 받게 돼 이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 재청구 요건이 충족될 수 있다. 최씨가 거부할 경우, 특검은 수사 진행 상황에 맞추어 뇌물 수수 혐의를 특정해서 다시 체포영장을 청구할 수 있다.

특검이 업무방해 혐의로 최씨에게 체포영장을 발부한 이유는 해당 혐의 수사 진행이 가장 빠르기 때문이다. 이 대변인은 “이화여대 입시·학사 비리 수사 상황이 제일 빠르고, 수사가 빨리 종결할 가능성이 있어서 우선 업무방해로 체포영장 청구한 것”이라며 “이를 기저로 조사한 이후, 추후 다른 혐의로 체포영장 청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현재 구속된 이화여대 관계자는 류철균 이화여대 융합콘텐츠학과 교수, 이인성 이화여대 신산업융합대학 의류산업학과 교수, 남궁곤 전 이화여대 입학처장, 김경숙 전 이대 전 신산업융학대학장 등 4명이다.

특검은 지난 22일 최경희 전 이화여대 총장에 대해 업무방해 및 위증 혐의로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최 전 총장에 대한 영장실질심사는 오는 24일 오전 10시30분 서울중앙지법 319호 법정에서 열린다.

입학 및 학사 비리 수혜자 정유라씨는 현재 덴마크 올보르 구치소에 수감돼있다. 정씨의 강제송환 여부를 검토하고 있는 덴마크 경찰은 23일까지 검찰에 수사결과를 통보하게 돼있고 이 결과를 토대로 오는 31일까지 덴마크 법무부장관이 송환 여부를 결정하게 돼있다.

특검은 정씨가 발급받은 독일 비자의 구비 서류로 이화여대 입학증명서가 포함된 것에 착안, 정씨의 독일 비자 유·무효 문제를 살펴보기 위해 외교부를 통해 독일 당국에 확인을 요청한 상황이다.

이에 따라 정씨의 신병 확보 가능성은 31일 경에 가닥이 잡힐 것으로 보이나 장기전으로 비화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덴마크 당국이 송환 결정을 하더라도 정씨는 이에 불복하는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덴마크 법도 한국과 같이 지방법원, 고등법원, 대법원의 3심제로 이뤄져있어 송환 여부가 최종 결정될 때까지 1년 여가 걸릴 거란 지적도 제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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