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같은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에 인기가 조금 시들해졌지만, 그래도 역사나 이념 관련 분야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전문가 한분이 계시다. 이 ‘이념 전문가’는 ‘정신현상학’이라는 대작을 집필하신 저 유명한 독일의 대철학자 헤겔이다. 물론, 문화예술계 일각에서 포스트-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말이 나타날 정도로 이념이 종언을 고한지가 오래된데다, 방송계에 처리할 사안도 산적해 있어서 이 모더니즘 철학자에 대해 갑론을박할 만큼 방송문화계가 한가하지는 않다.

예컨대 오늘 방송계 종사자들은 이른바 포스트TV 시대에 본질적으로는 ‘현상’만 남아있는 방송 저널리즘의 생존 대책을 세워야한다. 이런 ‘거대담론’ 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공영방송의 독립성이라는 좀더 구체적인 사안에 대한 좀더 구체적인 해법도 찾아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해법은 진리여야 한다. 선뜻 헤겔 할아버지의 존함을 제시한 까닭이 있다. 대체 왜 노동자·시민의 수신료로 운영되는 공영방송은 정치권에 종속되어 있는가. 왜 시민의 편에 서있지 않는가.

최순실 국정농단이 정상적인 국가경영은 지연시키고 있지만, 역설적으로 공영방송 지배구조 논의는 촉진시키고 있다. 지난해 7월 야3당이 중심이 되어 공영방송 개선 법개정안을 공동발의했으나 새누리당의 반대로 무산될 위기였다가 이 당이 분당돼서 제1당이 아닌 상태가 되자, 법안 처리 가능성이 생겼다. 지난 20일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간사에 따르면, 바른정당을 제외한 미방위 야3당은 안건조정위에 회부해 법절차적인 공영방송 구조 개선에 박차를 가할 것으로 보인다. 이 법안들의 주요 골자는 ‘공영방송 이사 추천 몫을 여야 7:6으로 개선’ ‘사장 선임시 이사회 3분의 2가 동의하는 특별다수제 도입’ ‘노사 동수 편성위원회 설립’ 등이다. 여기 핵심은 시민과 노동자의 공영방송 운영 및 편성 참여이다. 이는 2차 대전 이후 한국 공영방송의 역사에서 이들 세력의 참여가 원천 봉쇄되어 있었다는 점을 말해준다. 그 이유는 그리 간단하지는 않다. 자본주의 국가의 성격에서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소속 야3당 및 무소속 의원들이 지난해 12월8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법안 논의를 촉구했다. 사진=금준경 기자.
사실 자본주의는 상품경제에 기반을 둔 경제체제에 불과하다. 겉으로만 보면, 별 문제가 없다. 오히려 공정한 시장경쟁 속에서 모두가 성장하는 꿈을 담은, 바른 체제이기도 하다. 그것은 상품과 부의 집중과 독점이 발생할 때 문제가 되는데, 이 독점이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본질적인 것이라는 점이 문제라면 문제다. 독점은 힘을 가져야 비로소 유지된다. 독재가 아니라면, 정당한 방법이라면 누구나 원하는 만큼 가질 수 있다는 법이 있어야하고 이 법을 집행하고 나라 살림을 맡을 기관이 있어야 한다. 입법부와, 사법부 그리고 행정부가 필요하다. 이것이 자본주의 국가 형성의 기본 원리이다. 그리고 오늘 여기 언론은 헌법적 권리에 기반한 표현의 자유를 실현하는 공적 기관의 지위를 부여받는다. 이른바 국가권력의 제4부로 불린다.

선진 자본주의 국가에는 노동자·시민 정당을 표방하는 정치세력들이 입법과정에, 의회에 참여한다. 대선·총선 등을 통해 행정부에도 참여한다. 사회민주주의 정치시스템을 갖고 있는 독일의 경우에는 더 나아가 사법부에도 일정하게 참여하고 있다. 예컨대 경찰청장에는 시민세력의 대표가 임명된다. 언론은 어떠한가. 유럽 주요국들은 역시 언론에도 노동자·시민의 대표들을 참여시키고 있다. 독일 공영방송 ZDF의 이사회에는 무려 77명의 각종 노동자·시민·예술단체들의 대표가 파견된다. 이렇게 보면, 노동자·시민의 대표성을 부정하고 이들의 참여를 제한하는 국가는 후진 자본주의 국가에 해당하겠다. 천민자본주의라는 참담한 이름으로도 불린다.

헤겔은 진리가 전체적인 것이라고 했다. 서로 유리되고 대립된 것으로 보이지만, 부분적이고 개별적인 것으로 보이지만 사유와 존재는 서로 연결된 하나이며 이념과 현실도 하나이다. 노동자는 노동만 하는 개별 존재가 아니다. 그는 전체로서의 세계를 창조하는 구체적인 존재이다. 그들의 머리 속에는 이미 향후 100년을 계획하는 이념이 들어있다. 이들의 이념은 누구보다 절실한 노동의 한 복판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노동자·시민은 누구보다 더 절실하게 노동 환경을, 교육을, 일상을 개선하려는 의지를 갖고 있다. 개별자로서의 생존을 넘어 사회 전체를 위한, 모두가 더불어 잘 살기 위한 강렬한 정신을 갖고 있다. 육체적·정신적 노동자들은 국가 경영에 대한 직접적인 참여를 요구한다. 정당 정치 뿐만 아니라, 이제는 제4부인 방송에도 이들의 정당한 참여가 보장되어야 하는 이유이다. 방송 프로그램의 양과 질은 반드시 더 좋아질 것이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이 결말로 치닫고 있는 가운데, 우리는 변화에 대한 거대한 욕구의 분출을 바로 눈 앞에서 보고 있다.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을 맞이하고 갈리아의 수탉이 새벽을 고하는 역사의 한 장면을 보고 있다. 사정이 이런데, 대체 언제까지 공영방송에 대한 노동자·시민의 참여를 막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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