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가 노동시간 연장 계획을 ‘노동시간 단축’으로 왜곡해 추진하고 있다. 일부 언론과 여론조사 기관을 중심으로 정부의 왜곡된 주장이 강화되고 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국면에서 ‘노동4법(근로기준법, 고용보험법, 산재보험법, 파견법 등)’ 추진에 힘이 빠지자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은 법안 하나하나를 선별적으로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고용노동부는 1~2월 임시국회에서 ‘근로기준법 개정안’ 통과에 집중하고 있다. 정부는 주 68시간 근무를 52시간으로 단축하는 안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노동부는 이채필 전 장관 시절인 2012년부터 “휴일근무는 연장근로에 포함되지 않아 근로자는 주당 최대 68시간까지 일할 수 있다”며 근로기준법 개정을 추진했다. 박근혜 정부 취임 이후인 2013년 9월에는 2016년부터 노동시간을 주 52시간으로 줄이겠다는 계획을 내놓고, 일자리도 늘어날 수 있다고 알렸다.

현행 근로기준법은 법정 노동 시간이 주 40시간이고, 여기에 당사자 합의가 있을 경우 12시간 연장근무가 가능하다. 따라서 근로기준법상 주 52시간을 넘게 노동하지 않는 게 원칙이다. 하지만 노동부는 여기에 주말 근무를 따로 계산할 수 있다고 행정해석을 해왔다. 즉 노동자와 기업이 합의해 52시간을 일하고 주말 이틀 동안 8시간씩 16시간을 추가해 총 68시간을 일할 경우 불법요소가 있지만 노동부가 자본 측에 면죄부를 줘 온 것이다.

▲ 지난해 1월 민주노총이 세종로에서 노동개악저지 총파업 결의대회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박근혜 정부는 개정안에서 1주일을 5일이 아닌 7일로 명시해 휴일근로 시간을 연장근로에 포함했다.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합법적으로 주 68시간 노동시간을 보장하는 꼴이 된다. 정부·여당 안에는 연장근무 할증률도 기존 200%에서 50% 삭감한 150%로 깎는 방안까지 포함됐다. 노동시간을 늘리며 기업부담도 줄여주겠다는 의도다. 하지만 개정안은 ‘주 68시간 근무를 주 52시간으로 단축하는 안’이라고 왜곡돼있다.

조선일보는 지난 19일 “‘週 근로 68→52시간 단축’ 탄핵 속 동분서주하는 장관”이란 기사에서 이 장관이 요즘 개정안 통과를 위해 열심히 일하고 있다는 사실만 강조했다. 이 신문은 “이 장관은 근로기준법 등 노동 개혁 4법 처리에 반대한 노동운동가 출신 홍영표 국회 환경노동위원장(더불어민주당)을 이달 들어 두 번 만났다”며 “하루에 6명의 의원을 찾아간 적도 있다”고 보도했다.

이어 “이 장관이 근로기준법 개정을 위해 동분서주하는 것은 올 상반기에 닥칠 ‘고용 절벽’ 때문”이라며 “이 장관은 18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30대 그룹 인사 담당 최고경영자(CEO)와 가진 간담회에서도 근로기준법 처리를 호소했다”고 덧붙였다. 개정안의 왜곡된 내용은 바로잡지 않은 채 이 장관이 법안처리를 위해 노력하는 모습만 부각한 기사다.

근로기준법 개정안의 왜곡된 내용은 여론조사 결과를 통해서도 확산됐다. 자신들을 온라인 조사회사라고 밝힌 ‘피앰아이(PMI)’는 지난 17일 20~50대 이상 남녀 5000명에게 근로시간 단축 법안 찬반에 대해 질문해 “국민 100명 중 찬성의견이 85명”이라고 발표했다.

피앰아이는 “새누리당이 지난해 5월 당론으로 발의한 근로기준법 개정안 내 근로시간 단축 법안은 특별연장근로 8시간 허용 부분이 오히려 전체 근로시간을 늘리는 쪽으로 해석될 수 있다는 야당의 반대에 부딪쳐 현재 국회 표류 상태”라며 “정부는 이달 개원 예정인 임시국회에서 근로기준법 개정안의 통과에 역량을 쏟고 있다”고 발표했다. 결과적으로 정부의 왜곡된 정책을 여론조사를 통해 홍보한 꼴이 됐다.

홍 의원(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위원장)은 “근로시간 단축을 통해 일자리를 늘리고자 한다면 법을 개정할 필요는 전혀 없이 정부가 현행 주 52시간인 근로기준법을 제대로 집행하면 될 일”이라며 “주당 근로시간이 52시간인지 68시간인지를 놓고 다투는 십여 개의 소송이 대법원에서 판결을 기다리고 있는데 정부도 자신들의 주장이 너무나 비상식적임을 알고 있기 때문에 판결을 통해 잘못된 행정의 실체가 드러날 것을 두려워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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