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정부 지원 배제 명단)’ 최초 작성 지시자만 남았다.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 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블랙리스트 이행 지시를 주도한 혐의로 전격 구속됐다.

성창호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부장판사는 21일 새벽 “범죄 사실이 소명되고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다”며 김 전 실장과 조 장관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영장실질심사가 시작된지 17여 시간 만이다. 박영수 특검은 지난 19일 두 피의자를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및 위증 혐의로 구속 영장을 청구한 바 있다.

▲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20일 오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영장실질심사를 마친 후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 없이 곧바로 서울구치소로 인치되고 있다. ⓒ민중의소리

문화계 블랙리스트로 구속된 피의자는 현재까지 5명이다. 지난 12일엔 김종덕 전 문체부 장관, 신동철 전 청와대 정무 비서관, 정관주 전 문체부 제1차관 등 3인에게 구속영장이 발부됐다. 이들은 김 전 실장 및 조 장관으로부터 하달되는 블랙리스트 이행 지시에 적극적으로 개입한 데 따라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가 적용됐다.

특검은 블랙리스트 작성·지시가 헌법적 가치인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심각히 위협한다는 이유로 엄벌 의지를 표명해왔다. 이규철 특검 대변인은 지난 9일 “고위공무원이 문화계 지원 배제 명단을 작성해 시행한 경위가 국민 사상 및 표현 자유를 심각히 훼손한 것이라 판단하고 문화계 지원배제 명단 작성 및 시행 관련자들에게 엄중한 책임 물을 예정”이라 밝혔다.

김 전 실장과 조 장관 혐의에는 위증죄가 포함됐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국회 국정조사 청문회에 출석해 블랙리스트 존재 인지 및 지원 배제 지시를 부인했다는 이유에서다. 국회는 특검의 요청에 따라 각각 지난 3일과 17일, 조 장관과 김 전 실장을 위증 혐의로 특검에 고발했다.

향후 증거인멸교사 혐의가 추가될 것으로 보인다. 특검은 김 전 실장 자택에서 압수한 CCTV 영상기록에서 김 전 실장이 다른 사람들에게 자료가 든 박스를 외부로 나르게 하는 장면을 확보했다고 알려졌다. 당시 압수된 김 전 실장 휴대전화는 연락처 등의 내용이 저장돼있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9월 취임한 조 장관은 그해 11월 초 문체부 직원에게 서울 서계동 집무실에 있던 자신의 컴퓨터를 교체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SBS는 20일 조 장관의 비서가 전산실 직원에게 ‘하드디스크를 없애라는데 어떻게 하느냐’고 묻자, 전산실 직원들끼리 ‘없애면 우리가 처벌받을까 봐 겁난다’는 취지의 대화를 나눈 메신저 기록을 특검이 확보했다고 보도했다.

▲ 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20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영장실질심사를 마친후 나오고 있다.ⓒ민중의소리

특검의 공식 수사 진행상황 발표 및 언론보도를 종합하면 블랙리스트 전달 경로는 ‘박근혜 대통령→청와대 비서실→정무수석실→교육문화수석실→문화체육관광부→산하 기관’이다.

특검은 지난 17일 김 전 실장과 조 장관이 특검에 소환되기 까지 이들이 블랙리스트 작성을 주도했다는 진술, 증거 등을 파악해 왔다.

수사 준비 기간 중 특검이 사전접촉한 바 있는 유진룡 전 문체부 장관은 지난해 12월26일 CBS라디오 프로그램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에서 블랙리스트가 “이전에는 구두로, 수시로 김기춘 비서실장의 지시라고 하면서 모철민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이나 김소영 (청와대 문화체육)비서관을 통해 문체부로 전달됐다”면서 “김소영 비서관이 A4 용지에 빼곡히 문화예술인 수백명의 이름을 적어 조현재 문체부 1차관에게 주면서 ‘가서 유진룡 장관에게 전달하고 그걸 문체부에서 적용하라’고 했다고 들었다”고 밝혔다.

이어 유 장관은 “김 비서관은 조 차관이 블랙리스트 작성 출처를 묻자 ‘정무수석실에서 만든 것’이라고 말했다”고 지적했다.

김기춘 전 비서실장의 지시를 받아 적은 고 김영한 전 민정수석의 업무일지에도 정부 비판적인 문화계 및 영화계 인사들을 파악하라는 지시가 적혀 있다. 2014년 9월5일엔 정부의 세월호 참사 대응을 비판한 영화 ‘다이빙벨’의 부산국제영화제에 상영금지 압박을 행사한 정황이 기재돼있다.

당시 정무수석이었던 조 장관이 동석한 2014년 10월2일 대통령 수석비서관회의에서는 “문화예술계의 좌파 각종 책동에 투쟁적으로 대응하라”(비망록)는 논의가 이뤄졌다. 2015년 1월2일 회의에서는 “영화계 좌파성향 인적 네트워크 파악이 필요하다(경제)”고 논의했다.

특검은 조 장관의 블랙리스트 지시가 확인된 물증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검은 압수한 문체부 직원 컴퓨터에서 조 장관이 블랙리스트 작성에 직접 개입한 문건을 발견했고 이와 관련된 문체부 관계자들의 진술도 확보했다. 지난 17일 노컷뉴스가 보도한 내용이다.

김종덕 전 장관은 ‘김 전 실장에게 블랙리스트에 대해 대면보고를 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JTBC는 20일 뉴스룸에서 김 전 장관이 특검 조사 과정에서 ‘블랙리스트와 관련해 여러 차례 진행 상황 등을 보고하고 김 전 실장으로부터 지시도 받았다’는 내용을 진술했다고 보도했다.

특검이 겨냥하는 최종 몸통은 박근혜 대통령인 것으로 보인다. 지난 18일자 동아일보에 따르면 특검팀은 문체부 관계자들의 진술을 토대로 2014년 5월 박 대통령이 ’좌파 문화예술계 인사들에게 문체부 예산이 지원되는 일이 없도록 하라‘는 지시를 내린 정황을 파악했다.

이에 따라 신동철 당시 정무비서관이 작성한 문화계 지원 배제 인사 80여 명의 명단이 최초 블랙리스트라는 것이다. 이같은 사실은 지난 12일 구속된 신 전 비서관의 사전구속영장에 적시된 것으로 알려졌다.

특검은 오는 2월 초 전까진 박 대통령과의 대면 조사가 이루어질 것이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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